내리고 또 내리는 장맛비를 바라보며
밤새워 내리고, 낮에도 내린다.
아직은 시작이라 지겹다거나 귀찮다는 생각도 없이
내리는 비를 물끄러미 바라다본다.
매년 이맘때면 이 땅을 적시고 가는 장마,
장마 속에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자여子輿(가마선생)와 자상子桑(뽕나무 선생)은 벗이었다.
장마 비가 열흘이나 계속 내리던 어느 날 자여가 생각했다.
‘자상이 분명 고생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자여는 먹을 것을 싸가지고 그에게 갔다.
자상의 집 문 앞에 이르자,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하는 듯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어머님이실까. 어머님이실까. 하늘이실까. 사람들일까.”
힘에 겨워 목소리가 겨우 나오고,
가사도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자여가 들어가 물었다.
”자네 노래가 어찌 그런가?“
자상이 대답했다.
“나를 이처럼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온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중인데, 아직 알 수가 없네.
부모님이 어찌 내가 이렇게 가난하길 바라셨을까?
하늘은 사심 없이 모두를 다 같이 덮어주고,
땅은 사심 없이 모두를 다 같이 떠받아주고 있는데,
어찌 하늘과 땅이 사사롭게 나만을 가난하게 하였겠는가”
도대체 누구일까 알아보는데 알 길이 없네.
그런데도 내가 이처럼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으니
운명일 따름이네.“
<장자>에 실린 <운명일 따름이겠지> 라는 글이다.
누구를 탓하지도 않고 원망하지도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만 왜 이럴까?’
그러면서도 스스로에게 부여된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상의 운명론을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운명이 아닌 것이 없다.
물론 그 운명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더러는 있다.
“사람의 운명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 자신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베이컨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살다가 보면 어느 것 하나 운명이 아닌 것이 없다.
그것이 우연이건, 필연이건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헤어지는 것도
잘 살고 못사는 것, 그 모든 것이 다 운명인 것이다.
감내하고 사랑해야 할 운명!
그래서 셰익스피어도 <햄릿>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뜻과 운명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치달리기 때문에
우리의 방책들은 언제나 수포로 돌아간다.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것이지만,
이 생각의 결과는 하나도 우리의 것이 아니다.“
후두둑 떨어지는 장맛비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린다.
‘운명이로다. 운명이로다.
갑오년 칠월 초나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