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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허물과 나의 허물을 가릴 수 있는 사람

산중산담 2014. 9. 19. 22:58

남의 허물과 나의 허물을 가릴 수 있는 사람

 

 

한밤중이면 모진 바람이 불고 산중 추위가 뼈를 저미어 움막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견디지 못할 지경이었는데, 보내 주신 편지와 시를 갑자기 받으니 따뜻한 봄기운이 넘쳐 있었습니다. 흔쾌하게 한 번 소리 높여 읊어 보니 입 속에 군침이 도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들은 외롭지 않습니다. 비록 호랑이가 밖에서 노리고 있지만, 역산嶧山의 남쪽 기슭에서 난 오동나무가 불에 조금 탔다고 하여 제 소리를 잃기라도 하겠습니까.

이에 다시금 마음이 기뻐집니다. 어느 때나 서로 만나 이 회포를 털어놓을 수 있을런지요?

흠은 가을에 들어 아이들이 자주 병을 앓아 번민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온갖 생각이 시들어 버렸는데, 아직도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으니, 탄식만 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세상에서 떠났으니(벼슬길에서 나왔으니) 이 기회에 날로 새롭게 닦아 훌륭한 덕을 성취하셨으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세상에서 사귄 자가 적지 않건만 끝에 가서는 모두 본마음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대에게 바라는 마음이 더욱 얕지 않습니다.“

상촌 신흠이 청음 김상헌金尙憲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이다.

어디 한 군데 의지할 데 없이 마음이 외롭고 쓸쓸할 때

마음이 통하는 사람에게 그리운 편지나 소식이 오면 얼마나 가슴이 훈훈해질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만고의 진리인데, 먼 곳에 떨어져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만 하고 있으니,

그래도 마음을 주고받는 그리운 몇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생이 외롭지 않다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자기의 허물만 보고 남의 허물은 보지 않는 이는 군자이고, 남의 허물만 보고 자기의 허물은 보지 않는 이는 소인이다. 몸을 참으로 성실하게 살핀다면 자기의 허물이 날마다 앞에 나타날 것인데 어느 겨를에 남의 허물을 살피겠는가,

남의 허물을 살피는 사람은 자기 몸을 성실하게 살피지 않는 자이다. 자기 허물은 용서하고 남의 허물만 알며 자기 허물을 묵과하고 남의 허물만 들추어내면 이야말로 큰 하물이다. 이 허물을 고칠 수 있는 자야말로 바야흐로 허물이 없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신흠의 <검신편檢身篇>에 실린 글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세상살이는 북풍이 휘몰아치는 허허벌판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신흠의 삶도 항상 가시밭길을 헤매는 것과 같이 순탄하지 않았는데,

예나 지금이나 제 정신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견지해야 할 자세, 바른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닐까.

 

 

갑오년 칠월 열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