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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란 강물과 같은 것이다

산중산담 2014. 9. 19. 23:01
시간이란 강물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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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일이 촌각을 다투는지라

불과 몇 년, 아니 일 년이나 몇 달만 지나도 당시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변하고 또 변하는 것이 이 세상의 일이다.

서해안 걷기, 보령에서 간월도까지 이르는 길에서 만나는 풍경이라고

예외 일쑤 있을까?

조선시대 그 번성했던 남포읍성은 허물어진 석성과 그 청청한 소나무를 통해

그 옛일을 눅눅하게 불어오는 바람결에 들려줄 뿐이었고,

이문구 선생의 옛집은 빈터가 되어 아파트 숲 언저리에 남아 있을 뿐이엇다.

세월은 지난 것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 이룬 것을 보여줄 뿐이다. 나는 날로 새로 이루어진 것을 볼 때마다 내가 그만큼 낡아졌음을 터득하고, 때로는 서글퍼지기도 했으나 무엇이 얼마만큼 변했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관촌부락을 방문할 때마다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이문구 선생이 소설 속에서 토로했던 것과 같이 시간이란 강물과 같은 것이다. 만상의 끝없는 흐름이다. 하나의 사물이 눈에 띠었는가 하면 그것은 서둘러 사라지는 것이며 또 하나 사물이 뒤 따라 오는가 하면 그것도 차례로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그 흘러가는 것들과 세월 속에서 변해가는 것들을 연연해 할 때가 있는데, 무엇보다도 우리의 국토가 자꾸 검증도 없이 변하고 사라져 갈 때 더욱 그렇다 

보령시 오천항 뒤 편에 있는 오천성의 마음이 더 더욱 그러했다.

조선 제 7대 임금인 세조 12년에 충청도 수군절도사영을 이곳에 두고 제 11대 임금인 중종 5(1510)에 돌로 쌓은 이 성은 둘레가 3,174자에 높이가 11자가 되며 성안에 우물 네 개와 연못이 있었다.

이 성 안에 영보정永保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수군 절도사영과 함께 지었다고 하는 이 정자를 두고 조선 중종 때의 학자였던 박은(朴誾)<영보정永保亭>기를 남겼다.

땅은 절박해 다하여도 천경(千頃)의 바다는 궁하지 않아서, 산을 열어 오히려 한 머리의 조수를 받아들이고 있구나. 빠른 바람이 안개를 쫓으니, 물은 거울 같은데, 파도가 밀려 다호는 곳(주저洲渚)에 사람 없이 새들만이 노래를 부른다. 나그네 길에 맑은 경치 만나면 매양 한탄을 일으키는 법, (임금) 있는 곳 바라보고 다시금 고향이 먼 것을 깨달았다. 고심苦心해 읊으며 떠나지 못해도 새로운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떨어지는 해 먼 하늘 가로 빠지는 것을 수심에 찬 채 바라보고 있노라.(...)

땅의 형세는 탁탁 치며 곧 날아오르려는 날개와 같고, 누정(樓亭)의 모양은 한들한들 매여 있지 않은 돛대와도 같다. 북녘으로 구름에 쌓인 산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디로 향하려는 것이냐, 남방으로 오면 둘러싸인 산천이 이곳이 가장 웅장하구나. 바다 기운은 안개를 빚어 인하여 비를 이루고, 파도의 기세는 하늘을 뒤집을 듯 스스로 바람을 일으킨다. 어두운 속에서도 새들이 서로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 듯하여, 앉아 있는 사이에 지경이 함께 비어 있음을 완전히 깨달았노라.

아름답지 않은가. 내가 아침에 홀로 와서 글 읊는 곳에, 한 낚싯대만큼 솟아오른 첫 아침 해가 발을 비쳐주네. 바람 돛대는 언제나 조수와 함께 올라오고, 어민의 집들이 모두 굽어보고 있으니, 언덕이 기울려 한다.(...).“

조선 시대의 한 선비가 먼 타향에 와서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을 주변에 펼쳐진 풍경을 통해 노래했던 그 감상을 칠백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찾는 나그네들은 또 어떤 마음으로 오천항을 굽어보고 있는지,

아름다운 곡선의 홍예문, 푸르름을 자랑하던 팽나무, 남아 있는 진휼청과 사라져 버린 영보정과 눈시울 적시며 박은 선생이 바라보았던 포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는데,

이 고을, 저 고을 떠돌며 이 산천의 변화를 가슴아파하는 나그네들은 또 누구인지, 그 나그네들의 기다리는 소망은 또 무엇인지,

더러 예외가 없을 수 있겠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아무 타산 없이 자기 천성으로 나를 아껴 준 사람을 좋아한다. 애초 이렇다 할 인연도 없었고, 재산 권세 이해득실 따위를 개떡으로 알면서 그냥 그저 그렇게 명목 없이 좋아할 수 있던 사람,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런 사람을 많이 알고 있었다.”이문구 선생이 <공산토월>에서 실토했던 것과 같은 사람을 나는 그리고 당신들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이 생각 저 생각으로 회고懷古의 정을 자아내며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시간 속에

문득 그리움처럼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던 그 날 그 오천성,

 

 

갑오년 칠월 열나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