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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산꾼과 함께 걷는 곳 : 비우당과 자주동샘 - 이수광의 지붕유설을 만나다

산중산담 2014. 12. 5. 23:25

 

초보산꾼과 함께 걷는 곳 : 비우당(庇雨堂)과 자주동샘(紫芝洞泉)

 

낙산산성에서 시작되는 낙산길은 역대 궁중의 여인 중에 지금까지 존경받으면서 사람들이 찾고 있는 분이 두분인데 

그 중에 한분은 광명 영회원에서 만난 조선 제16대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의 민회빈 (愍懷嬪) 姜씨(1611~1646)이고

단종과의 가슴아픈 이별이 켜켜이 남아 있는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길을 걷게 됩니다

흔적들에 남아 있는 곳에서 어떤 사연들을 남겨 놓았는지 하나씩 더듬어 갑니다

비록 함께 하지 못하더라도 좋은 자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초보산꾼 산행기 : http://blog.daum.net/kmhcshh/1736 

초보산꾼의 산행기 : http://blog.daum.net/kmhcshh/2202와 함께 합니다

 

 

 

낙산공원에서 청룡사까지 등로 - 다음 지도

 

자주동샘(紫芝洞泉)

비우당 좌편에 보이는 우물은 ‘자주동샘’이라고 하는데, 단종의 비인 송씨(정순왕후)가 비단을 빨면 자주색으로 물들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정순왕후는 궁궐의 도움을 일체 거절한 채 고고한 품성을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정순왕후는 민초들의 도움에 기대어 있지 않고 염색을 하며 생업에 뛰어들어 80을 넘길 때까지 영원한 국모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동천이라는 샘에서 자라는 ‘지초’라는 풀로 염색을 하면 보라색으로 물드는데, 정순왕후와 시녀는 이를 시장에 내다팔아 생계를 이었을 것이다.

왜 우리가 정순왕후를 잊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찾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곳이다


 

 

비우당(庇雨堂)

비우당(庇雨堂)은 ‘비를 피할 만한 집’이라는 뜻이다.

이수광이 지었다는 ‘비우당기’를 보면 이수광의 외가 5대 할아버지인 유관 대감이 이곳에 초가삼간을 짓고 살았는데,

당시 유관 대감은 정승답지 않게 동대문 밖 지봉(芝峰) 아래 작은 초가집에 살았다. 초가는 비가 오면 방에 비가 새는 집이었다.

비가 올 때마다 대감이 아내에게 한 말인즉 “우산도 없는 집은 이 비를 어찌 막을꼬”였다고 한다.

 

이수광 (李睟光, 1563~1628)의 지봉유설

이수광이 비우당에서 지은 ‘지봉유설’은 그가 영창대군 사건으로 관직을 내려놓고 원고를 정리하기 시작해 1614년에 편찬된 책으로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내용은 천문, 시령, 군도, 병정, 인문, 인사, 종교 등 25부 182항목으로 분류ㆍ구성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수광이 활동했던 시기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을 치르고, 광해군 때의 정치적 갈등과 인조 때의 이괄(李适)의 반란을 겪은 혼란기였다.

그는 이러한 어려운 정국에 살면서도 당쟁에 휩쓸리지 않았으며, 항상 강직하면서 온화한 성품을 지켰다. 지금도 그는 성실한 관료의 본이 되고 있다.

자료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91226

 

 

 

낙산공원

 

낙산에서 본 삼각산 - 앞에 보현봉을 시작으로 멀리 인수봉이 하얗게 귀를 쫑긋하고 있다

 

삼거리에서 우틀한다

 

 

낙산삼거리 정류장에서 낙산길 방향으로 좌틀

 

쌍용아파트2단지 정류장에서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조금 내려오면 비우당을 만날 수 있다 - 이정표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주동샘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옆 바위에 세겨져 있다

 

 

 

원각사에서 본 비우당

 

      

 

 

 

                                        초보산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