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헷갈린 후에야 다시 찾게 된다.
길은 헷갈린 후에야 다시 찾게 된다.
길은 헷갈린 후에야 다시 찾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 불을 켜고 내 방을 둘러보았다.
며칠 전 조금 방을 치웠기 때문에 정돈 된 방에
수북하게 쌓인 책들, 그 책들을 보며 내가 오늘과 내일 하고자 했던 일이 떠올랐다.
이탈리아, 중국, 그리고 일본 시코쿠 길을 찍은 사진들을
컴퓨터에 정리해둬야지, 하면서 카메라를 찾았더니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있는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
어디에 있지? 하면서 여기저기 둘러보아도 카메라가 보이지 않았다.
설마? 하면서 요즘 내 생활을 돌아다보니, 카메라와 함께 했던 시간이 토요일인가,
아니면 금요일인가, 분명하지 않았다.
문화재청과 명승 때문에, 천안, 밀양까지, 그리고 진안까지, 그때까지는 있었고,
광양의 섬진강 길은 어땠지,
아무래도 광양의 섬진강 길에서 사라진 것인가?
광양도서관 담당자에게 전화했지만 알 수 없다는 말,
그럼 어디지, 문화재청 담당 사무관에게 전화를 했지만 모르겠단다.
어쩌면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는 그 카메라에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베네치아, 그리고 중국의 진풍경 과
일본의 시코쿠길들이 다 들어 있는데,
그 뿐인가, 낙동강 길과 9월 이후 찍은 수많은 사진들이
세상에 들어나기를 갈망하며 잠자고 있었는데,
그럼 어디에 있지, 광양에서 순천까지 시내버스를 탔고,
80세도 넘은 어르신, 나에게 그날 가장 질문을 많이 하신 어르신이
차에 올라 꼬깃꼬깃 꾸겨진 천 원짜리와 350원의 차비를 기어이 내주셔서
순천 역에 내렸고, 편의점에서 신라면(컵 라면)을 먹고,
밤 6시 59분 무궁화 호를 타고 8시 15분 전주역에 도착 했지,
그 때 내가 탔던 열차 3호차인가 5호차인가를 분명하지 않지만 31번 좌석이었지,
전주역으로 전화를 걸어 분실물센터의 담당자에게 물었다.
여차여차해서 카메라를 잃어버렸는데, 전주역에
카메라 분실물이 있는지?
전주역에는 없단다. 열차의 종착역인 서울 용산역으로 전화를 하라고
알려주다가 내 전화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용산역으로 자기가 해보겠다고,
한 삼 분 지났을까?
용산역에 내 카메라가 있단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다시 그 때를 회상해보니, 열차에서 제일 깊숙이 깔려 있던 책을 꺼내면서
카메라는 빈 의자 한 귀퉁이에 그대로 놓고 내린 것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기도 하지, 그날이 토요일 곧 10월 20일이었는데,
며칠이 지난 오늘에야 나는 그 카메라를 생각해냈고,
그 캐논 카메라를 본 어떤 사람이거나 역무원이 분실물센타에 가져다 놓고,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요즘같이 삭막하고 이기적인 세상에
길을 잃은 카메라가 며칠을 두고 때를 타지 않고 주인을 기다리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니.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카메라의 값의 고하를 막론하고. 그 카메라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서운했던 감정이 봄눈 녹듯 사라지고,
‘세상은 그래도 살아볼만 하구나.“ 하는 생각에
고맙다는 말을 역무원에게 여러 번 건넸다.
내가 잃어버렸는지도 모른 채 며칠을 보낸 그 카메라는
다시 열차에 실려 전주 역으로 오고,
그 때 나에게 전화를 해주겠다는 역무원의 전화를 받으며,
한 참 동안 부산했던 마음을 다스리면서 ‘잃음’과 ‘찾음’을 생각한다.
당나라 때의 빼어난 문장가인 유우석이 노래했지.
“보물은 잃어버린 후에 다시 얻게 되고,
길은 헷갈린 후에야 다시 찾게 된다.”
그리고 페트로니우스는
“내 마음은 잃어버린 것을 생각하며,
푸른 하늘에 잠겨 온전히 과거 속에 뛰어든다.“ 고 말했는데,
나는 이 세상을 살면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어가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우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우는 것은 무엇일까?
어렸을 때 읽은 책 중 가장 재미나게 읽은 책이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등장하는 <서유기>였다.
아버지의 외갓집에서 빌려온 그 책은 당나라의 현장법사가 멀고도 먼 서역으로 진리를 찾아 가는 길에 동행한 세 명의 제자들이 맞닥뜨려 풀어내는 황당무계한 이야기였다.
현장법사 일행들에게 수많은 악마들이 달려들고, 온갖 고난과 고초를 겪으며 서역으로 가는 그 길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얼마나 재미가 있었던지,
지금도 그 때를 회상해보면 너무 재미가 있어서 밥 먹는 것조차 잃어버릴 정도였다.
그 때는 알 수 없는 미지의 나라,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하고, 변장을 하기도 하고, 어떤 땐 손오공이 그 와 똑같은 수많은 손오공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괴기 소설 정도로만 알았는데, 다시금 살펴보는 <서유기>에는 온갖 진리들이 다 들어 있다.
“제 말 좀 들어보세요!”하고 손오공이 소리쳤다.
“중국에서부터 여기까지 온갖 괴로움을 겪은 후에, 저희에게 경전을 주라고 부처님께서 특별히 지시하셨는데도 아난과 가섭은 엉터리 물건을 건네주었습니다. 아무것도 씌어 지지 않은 책을 가져가라고 주었다니까요. 여쭈노니, 이런 책이 저희에게 무슨 소용입니까?”
붓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소리 칠 필요 없다. 사실 그렇게 아무 것도 씌어 지지 않은 두루마기가 진짜 경전이다. 사람들이 너무 어리석고 무지해서 이것을 믿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들에게 약간의 글이 쓰여 진 책을 줄 수밖에 없었구나,”
내면 속에 깃들인 진실을 모르고, 외면을 가지고 전체를 평가하는 것,
그것이 세상의 변하지 않는 이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것이 무엇이고, 우리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가?
알긴 알아도 참된 앎을 모르고, 모르면서도 아는 척, 그렇게 살다가
종국에야 내가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는 걸 깨닫고, 쓸쓸히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닌지,
붓다는 실로 그 어떤 진리도 말하지 않으셨다.
붓다는 자신의 내면에서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는 그 진리만을 말하셨다.
“길의 끝에는 자유가 있다. 그때 까지는 참으라.“ 라고 말씀하신 붓다는
생의 마지막 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노라.”
온갖 말씀을 다 하시고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다는 부처의 말씀,
말없음의 말, 말 있음의 말은 그 어떤 차이가 있는가?
무엇이 참된 삶이고, 어떤 길이 올바른 길인지 그 누구도 모른다.
“불교의 궁극적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알게 될 때까지 그대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리라.”
석두 화천의 말이다.
그렇다. ‘더 멀리 나아갈수록, 아는 바는 더 적어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내가 아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말,
나도 당신도,
그것을 알기 위해 온 세상을 이렇게 헤매는 것은 아닐까?
내가 자연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내게 올 때가 있다.
내가 자연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내게 올 때가 있다.
“봄철 숲에서 일어나는 한 충동이
인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그대에게 말해주네.
도덕적인 악과 선에 대해서
모든 현자들보다 더 많은 것을.“
워즈워스의 <자연이 그대의 스승이 되게 하라.>라는 시 한 편이다.
어디 봄만 그럴까?
무르익은 가을. 낙동강이 바로 그런 장소이고, 그런 시간이었다.
푸른 하늘, 단풍이 드는 산천, 흐르는 물,
함성도 없이, 그냥 자연스레 흔들리는 억새와 갈대,
그런 자연 속에서 자연이 되어 걷고자 했고, 걸었고,
그리고 돌아왔다.
오래 전(2008년)에 내가 그토록 마음 쓰면서 염려했던 남지 개비리 길은
놀랍게 변하여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고,
우리 땅 걷기 도반이 아닌 일반인들도 그 대숲 가득하고
길도 길 같지 않은 길에 허물어져 가던 집 한 채 남아 있어
귀곡산장이라고 일컬었던 대숲에서 노닐고 있었고,
개나 다니던 그 길을 걷고 있었다.
지금 문화재청에서 진행되고 있는 명승 길로 지정만 하면
영아지 창아지 사람들이 남지장 가던 그 길이
오래도록 역사의 길로 거듭날 것 같지만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그 길의 가치와 역사성을 나 외의 다른 사람들이 다 인정할지 안할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 사람들의 마음은 다 같지 않기 때문인데,
그 역시 사람들은 저마다 다 다른 우주, 행성이기 때문이다.
서울, 대전, 전주 할 것 없이 비바람 불고, 어수선했다는데,
우리가 머물렀던 경남 창녕 일대의 낙동강 변은 그렇게 따사롭고,
청명했다는 것, 얼마나 행운인가. 그 또한 내가 좋아하는
사도 바울의 덕이 아닐까?
“자연 전체가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
고 말한 라이프니츠의 말과 같이
내가 기댈 곳은 자연이다.
우리가 점심 먹고 수확(?)을 했던 모과도,
낙동강 변을 거닐다가 따서 먹었던 탱지의 상큼함도,
바람에 흔들리던 억새 사이로 보이던 남강과 낙동강이
합치던 것도, 다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
바로 자연이고, 자연은 세상인심이 아무리 변모해도 그대로 남아
사람들을 감싸주고, 아픔까지도 치유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마음 내려놓고 어정거리고, 해찰하면서 살 곳은
바로 자연 뿐이다.
그런 자연을 두고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자연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내게 올 때가 있다.
그때 내가 자연이고, 자연이 바로 나다.”
언젠가 모든 것 내려놓고, 돌아가야 할, 자연,
그 자연으로 자꾸자꾸 더 침잠하면서
그 어떤 것도 의식하지 않고 자연이 되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겠다.
낙동강 기행에 함께 하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인생은 3막만으로도 완전한 드라마가 될 수 있다.
인생은 3막만으로도 완전한 드라마가 될 수 있다.
어제 돌아왔고, 이틀 동안 눈이 부시게 푸르른 하늘, 푸른 강,
하얗게 산과 강을 수놓던 억새의 향연에서 돌아와
하루 종일 집에서 머물렀을 뿐인데, 다시 그 강변의 그 자연이 그리운 것은
내가 자연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연 속에 있으면서 그 자연을 멀리 바라보고 있으면 그렇게 자연이
평화롭게 보이는데, 사실 자연 속은 평화가 아니라 순간순간이 전쟁터이다.
작은 나무들은 큰 나무 그늘 밑에서 마음껏 자랄 수가 없고,
작은 짐승들이나 곤충들도 마찬가지로 약육강식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자연이다. 인간은 또 어떤가? 육십이면 육십, 칠십이면 칠십, 기껏해야
백년을 살까 말까 하다가 떠나는 인간, 그 인간들의 삶과 죽음의 형태를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 제 2권 중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대는 이 거대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살았다. 그 기간이 5년이든 100년이든 무순 차이가 있겠는가? 세상의 법은 그대뿐 아니라 그 누구도 공정하게 대한다. 그렇다면 그대는 무엇 때문에 불만을 품는가?
그대를 이 세계에서 몰아내는 자는 폭군도, 부정한 재판관도 아니다, 그대를 세상에 보낸 자연이다. 자연은 배우를 채용했다가 다시 무대 밖으로 나가게 하는 연출자와 다르지 않는다.“
“저는 5막짜리 연극에서 3막까지만 출연했습니다.“
그대는 이렇게 하소연하고 싶지 않은가? 인생은 3막만으로도 완전한 드라마가 될 수 있다. 연극을 언제 끝낼지를 결정하실 분은 당신을 처음에 고용했고, 지금은 당신을 내모는 자연이다. 따라서 이런 결정은 그대가 상관할 것이 아니다. 만족하는 마음으로 물러서라. 그대를 떠나보내는 자연도 그대에게 미소를 보낼 것이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제 2권 중에서
거대한 자연, 아니, 빈틈없이 잘 짜여 진 자연 앞에서 인간은 바람 앞에 흔들리는 갈대보다도 더 연약한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 년 만 년을 살 것처럼, 자기 앞의 이익을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어느 순간 자연으로부터 ‘어서 오라’ 라는 신호를 듣고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끌려가는 것이다.
어차피 한 번 살다가 가는 것, 의미 있게 살다 가야 하는데,
그 방법을 찾지 못하고, 남이 장에 가니 나도 장에 가는 것처럼
돈이며, 권력에만 눈독을 들이다가 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것이 자기의 신념이라면 어쩌겠는가, 그대로 살다가 가라고 내 버려둬야지,
하지만 지나간 옛 사람이지만 당대의 현인 아우렐리우스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인생은 3막만으로도 완전한 드라마가 될 수 있다." 고,
오래 사는 것도 좋지만 짧게 살아도 잘 사는 삶이 많은 것이다.
풀어 말한다면
남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오래 사는 것도 좋지만
소신껏 떳떳한 나,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서 살 필요도 있지 않을까?
은자들이 살았을 듯싶은 깊은 산길에서 돌아와,
은자들이 살았을 듯싶은 깊은 산길에서 돌아와,
왕경미王敬美가 관서關西를 여행할 적에 한음漢陰을 경유하여 자오곡子午谷으로 들어가서 산길을 가노라니, 절벽은 높고 가파르며 숲은 우거져 무성한데, 시냇가 길에 두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가며 노래하는 것을 보고 은자隱者라고 생각되어 곧 노인들에게 읍揖하고 물었다.
“노인들은 무엇을 하는 분들입니까.?”
이에 두 노인들이 대답했다.
“우리는 글방선생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 왕경미가 물었다.
“어쩌면 그렇게 마음 가는대로 유유히 생활하며 살 수 있습니까?”
하고 고 묻자 한 노인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힘써 농사지으니, 싸라기 죽은 먹을 수 있고, 차조를 빚어 술을 담그니 친구를 청할 수 있으며, 야수野水에 임하여 대와 구름을 구경할 뿐 세상일은 전혀 듣지 않습니다.”
그 말을 받아 다른 노인이 다시 대답했다.
“못을 파서 고기를 기르고, 채마밭에 물을 주어 채소를 가꾸며, 자식에게 글을 읽힐 뿐, 세금을 독촉하는 관리를 알지 못하고, 현縣의 대부大夫를 보지 못했다.”
이 말을 들은 왕경미는 곧 일어나 사례하였다.
“두 분은 참으로 태고太古의 백성이십니다.”
<미공비급>에 실린 글이다.
내가 다녀온 고성과 인제를 잇는 새이령과,
동해와 정선을 잇는 고개 이기령길 옆에 살림을 꾸리고 살았던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살지 않았을까?
가도 가도 팍팍한 산길,
나뭇잎들이 우수수지고, 그 옆을 흐르는 시냇물,
인적 끊긴 지 오래인 길,
그 길에 곧 겨울이 올 테지.
떠난 지 몇 시간도 안 되어 그리운 그 길 때문에
떠나고 떠나고자 하는 마음,
그 마음 위로 새이령과 이기령에서 보았던
노랗고 빨갛고 파란 나뭇잎들이
선뜻 지고 있다.
혼란 속에서 내 마음은 두 개로 분열되어 있네.
혼란 속에서 내 마음은 두 개로 분열되어 있네.
살아 갈수 록 알지 못하는 것,
사람의 마음이다.
타인의 마음뿐만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의 마음까지도 살아 갈수록 알 수 없는 것은
마음은 항상 바람결에 흔들리는 갈대나 억새와 같이
순간순간 흔들리기 때문이다.
“혼란 속에서 내 마음은
두 개로 분열되어 있네.
하나는 정열의 노예,
또 하나는 이성의 종,“
멕시코의 수녀 시인인
후아나 데 아스바헤(1651-1695)가 시 속에서 노래한 것과 같이
사람의 마음은 시시각각 흔들리는 것이라서
금세 “세상은 있는 그대로가 내 마음에 드는구나.” 라고
모든 것에 만족했던 마음이 금세 곧 죽을 것과 같이
두려움과 슬픔의 감정이 밀려오기도 하는 것,
마음 때문이다.
“더욱 빈번하고 지속적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그 두 가지 것은 나의 심정을 경탄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운다.
즉, 내 머리 위에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마음속의 도덕 법칙”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이렇게 말하며,
자기 자신의 삶을 명징하게 들어내고서 규칙적인 삶을 고수하면서
살았는데,
나는 아직도 깨칠 것이 많고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아서 그런지,
그렇게 사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것 역시 내 마음의 대지에 제대로 된 씨를 뿌리지도 못하고서
알찬 수확만을 바라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리라.
소를 키우는 사람은 소의 표정을 닮아 가고
감자를 키우는 사람은 감자의 표정을 닮아 간다는데,
내 마음의 농장에는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
당신의 마음에는 무엇을 키우고 있는지
그리고 그는 떠났다. 낙엽 속으로,
그리고 그는 떠났다. 낙엽 속으로,
밤새 떨어진 나뭇잎을
아파트 관리인이 쓸고 있다.
작년 이맘때와 같이,
그냥 두어도 좋으련만,
규칙상 기어이 나뭇잎 하나 남기지 않고
쓸어야 한다는 것처럼,
얼마나 더 떨어져야
나뭇잎이 뒹굴지 않을까?
그새 달은 11월이고,
금세 다가 올 12월,
나뭇잎이 떨어져 내리는 속도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 속에
자끄 프레베르의 <아침식사>
라는 시를 다시 읽는다.
아니 마음속에서 응시한다.
“그는 부었다. 커피를
찻잔에,
그는 부었다. 밀크를
커피에,
그는 넣었다. 설탕을
밀크 커피에,
작은 스푼으로
그는 저었다.
그는 마셨다. 밀크 탄 커피를.
그리고 놓았다. 찻잔을
아무 말 없이
그는 불을 붙였다.
담배에다
그는 만들었다. 동그라미를
연기로,
그는 털었다. 담뱃재를,
재떨이에다
아무 말 없이
날 보지도 않고
그는 일어났다.
그는 썼다.
머리에 모자를
그는 입었다.
레인코트를,
비가 내리고 있었고,
그리고 그는 떠났다.
빗속으로
한 마디 말도 없이,
한 번도 보지 않고.
그래서 손에
얼굴을 파묻고서
나는 울었다.“
그렇게 떠나는 사람이
나인가? 아니면 당신인가?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또 누구란 말인가?
엊그제 봄인가 싶더니
어느 새 11월의 막바지.
홀홀히 떠나가는 세월들처럼
가고 또 가는 사람,
나도 당신도, 곧 영문도 모른 채 떠나갈 테지,
어디로, 알 수 없는 먼 곳으로,
단풍이 찬연하게 불타오르던 산천에서 돌아와,
단풍이 찬연하게 불타오르던 산천에서 돌아와,
“뜬 구름 흐르는 물에,
객은 절에 이르고
단풍 잎 푸른 이끼에
중은 문을 닫았네.“
고려 때 시인 정지상의 시 한편이다.
단풍은 찬란한데, 절은 고요하고,
마음 내려놓고 찾아간 나그네는
어디 마음 줄 데가 없어
그저 적막만 응시하고 있다.
“붉은 단풍은 산에 비쳐 병풍이요,
푸른 시내는 못에 쏟아 거울일세.
옥 세계 가운데 다니며 읊으니,
갑자기 마음이 맑음을 깨닫겠네.”
이름을 알 수 없는 시인의 시 한수가
가을빛으로 단장한 시냇물에 떠내려가다가
여울을 만나 노래로 변한다.
“흰 구름 맑은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
가을의 붉은 단풍 봄꽃보다 좋아라,
천공이 나를 위해 뫼 빛을 꾸몄으니,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
지리산에서 살았던 남명 조식의 글과 같이
산천이 모두 핏빛으로 물드는 것이 가을 산천이다.
어디 자연 뿐일까? 사람의 마음도 자연을 따라
붉게, 붉게 타오르다가 우수수 지는 나뭇잎과 같이
은밀하게 비추이는 햇살로만 남고,
“새로 내린 서리는 단풍나무 잎을 물들이고
환하게 비치는 달빛은 갈대꽃을 빌리네.“
송나라 때 시인 양휘楊徽는 이렇게 단풍을 노래했는데,
이용악은 <전라도 가시내>라는 시에서
못 내 그리운 그 마음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내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건데.“
불타고, 불타오르다가 떨어져 내리는 낙엽들이
저마다 왔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밤을 새워 사각거리다가 새벽녘에야
가만히 잠드는 계절,
며칠 후에는 그 나뭇잎들이 모두 땅에 떨어져 내리고,
앙상한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겠지.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아침 여덟시 오십분 서울행버스틀 탔다.
늦가을의 정취가 온 산천에 가득했다.
그렇게 풍성하던 가을 풍경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두리번 두리번거리며 가던 서울 길.은
가끔씩 막혔고
두 시갼 사십분이면 도착하는 버스는
열두시 정각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이덕일 김병기 선생과 만나서
영준들 향해 출발했고. 점심은 덕평.
차는 여주를 지나고 제천을 거쳐
풍기에 이르렀다.
소수서원을 지나 선비촌에서 배용호 선생읕 만나
한 문화 현장을 둘러보고
영주시장을 만났다.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세게 속의 풍류마을을
과연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일의 성패는 신도 안 수 없는 것
매순간 최선을 다해서 사는 수 ?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지.
흥부가에서 육회비빔밥을 먹고
대전 거쳐 전주에 도착한 시간이
열한시 오십 오분
버스에서 내려
노란 가로등 아래 노란 은행잎이
졸고 있는 길을 타박타박 걸어서 오는데,
두 여인이 한 마리의 개를 끌고서 지나간다.
을사년스런 11우러 한 밤의 풍경속을 걸어서
아파트에 들어서고 방문을 열고 들어오니
자정을 넘어 11월 6일이다.
돌이켜 하루를 회고해보니
내 삶이 돈키호테와 흡사하다.
다행인 것은
비루먹은 말이 아니고
튼튼하고 빠른 고속버스와
잘 달리는 승용차를 타고서
온 나라를 휘젖고
돌아다니다가 나의 휴식처인 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 다행이고
돈키호테와 다르다면 다를 뿐.
그래도 이런 무모하고
황당무계한 생각들이 해파랑길과
소백산자락길. 변산 마실길을 만들어냈고
이 땅을 걷고 또 걷게 만든 원동력이지 않았을까.
이루고 못 이루고는 중요하지 않다.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떠나고 또 떠나다가
어느 날 문득 어느 지점에선 멎? 테지.
그동안에 오고 갈 사계절이
몇 해가 될 것이고
내가 어떤 꿈들을 또 꾸고 꿀 것인지.
‘자유,’ 얼마나 사랑스럽고 경이로운 말인가?
‘자유,’ 얼마나 사랑스럽고 경이로운 말인가?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사람들의 삶은 자유롭고 살만해야 하는데, 날이 갈수록 사람들의 삶은 팍팍하고, 자유를 속박당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자유를 위해 피를 흘렸던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이 지나간 지가 오래다. 그런데, 다시금 자유가 더 속박당하고, 그래서 마음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이 더 늘어나는 것은 그 무슨 연유인가?
자유 속에서 자유를 갈구하다가 자유 속에 깊숙하게 함몰되어서 그런가? 아니면 자유가 아직 설익어서 더 익기를 기다리는 시절이라서 그런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참다운 자유는 아직도 이 세상에서 요원하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여기’와 ‘저기,’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든 곳에서 자유가 이렇게 저렇게 침해당하는 것, 그 침해당하는 자유를 존 스튜어트 밀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여론에 따라 자유를 구속하는 것은 여론에 반해 자유를 구속하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나쁘다. 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이 다르게 생각한다 해서 그 사람을 침묵시켜서는 안 된다. 이는 어떤 한 사람이 자신과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나머지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것만큼이나 허용될 수 없다.(중략)
그러나 사상에 대해서건 반대하는 이에 대해서건, 그런 행위가 지금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의 인류에게까지 강도질을 하는 것과 같은 패악을 끼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그 의견이 옳다면 억압은 오류를 밝히고 진리를 드러낼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된다. 설령 그 견해가 잘못 되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억압하는 것은 틀린 의견과 옳은 의견을 대립시킴으로써 진리를 더 생생하고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밀의 <자유론> 2장 ‘사상과 토론의 자유’에 실린 글이다.
‘자유,’ 얼마나 사랑스럽고 경이로운 말인가? 그래서 루소는
“인간은 자유로 태어났으나 도처에서 사슬에 묶여 있다.” 고 말했고,
프랑스의 철학자인 사르트르는
“자유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며, 인간을 다른 사물들과 구별해주는 징표다.” 고
말했는데,
자꾸만 세상의 여러 곳에서 억압받는 자유, 사라지는 자유를
우리는 어떻게 하면 새롭게 정립하고, 자유를 공유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인가?
그 해답을 풀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면서 세월만 보낸다. 그냥 그렇게,
비 맞은 나뭇잎을 밟으며 걷는 계절에
비 맞은 나뭇잎을 밟으며 걷는 계절에
오랜만에 하루를 집에서 보내게 되었지만
잠시의 외출은 필수다.
내가 그리워하는 책들이 있는 서점에 다녀와서
하루 종일 책에 실릴 사진을 고르고,
틈을 내서 1915년인 을묘년 6월 20일에
만해 한용운 선생이 해설한 <채근담>을 읽었다.
“사람들은 글자가 있는 책은 읽지만,
글자가 없는 책은 읽을 줄을 모르며,
현이 있는 거문고는 탈 줄 알지만,
현이 없는 거문고는 탈 줄 모른다.
형체는 시용하고 정신은 사용하지 않으니,
어찌 거문고와 책의 참맛을 터득하겠는가?“
모든 것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마음 밖의 것에 눈이 멀어 보이는 것만을 보고 사는 사람 중에
나도 있고 당신도 있다.
그러니 어디 참 지혜와 진리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산하의 대지도 이미 작은 티끌인데,
하물며 티끌 중의 티끌은 얼마나 작겠는가?
사람의 몸도 또한 거품이나 그림자에 불과한데,
하물며 그림자 밖의 그림자는 말할 것도 없다.
최상의 지혜가 아니면 분명한 깨달음이 있을 수 없다.“
티끌은커녕 먼지보다도 작으면서
스스로를 거인처럼 여기며 사는 사람들,
그 중에 한 사람이 나이고 당신이다.
자꾸만 작아지는 나.
작아지고 작아져서 실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게
작아진다면 그나마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수월할까?
바람도 없이 비가내리고,
그런데도 온 천지에 수북하게 쌓인 낙엽,
그 낙엽을 밟으며 가는 길이
처연하도록 아름다웠다. 내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몸도 마음도 가을이 이미 깊었다는 것이 아닐까?
“공명과 부귀를 탐하는 마음을 놓아 버려야
범속한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고,
도덕과 인의의 마음을 놓아버려야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참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어려운 모양이다.
살아가면서 제일 불편한 것,
살아가면서 제일 불편한 것,
살아가면서 제일 불편한 것이 무엇일까?
내가 마음속으로 허여許與하지 않은 사람을 만날 때이다.
그런 때는 마음이 불편하고, 그러다가 보니 얼굴색도 제대로 펼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은 나더러 ‘모든 사람을 포용할 것 같다.‘ 고 말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한 번 마음에서 떠나면 다시는 그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설령 다시 만난다고 할지라도
예전의 그를 만나는 것 같이 마음을 허여하지 못하는 게
나의 결점이라면 큰 결점일 것이다.
“나는 천성이 ‘높은 것(高)을 좋아한다,
높은 것을 좋아하면 거만하여 낮추지를 못한다.
그러나 내가 낮추지 못한다는 것은 권세와 부귀만을 믿는 저 사람들에게
낮추지 못한다는 것일 뿐이다.
조금이라도 훌륭한 점이나 선함이 있다면, 비록 노예나 하인일지라도
절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시대의 이단아였던 이탁오의 <고결함에 대하여(高潔說)라는 글이다.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제만 해도 그랬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어떤 위원회를 그만두면서
기억 속에서 편치 못했던 사람을 만나니 마음이 점점 불편해지며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했으니, 내 그릇의 크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그 사람도 나와 바슷한 생각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아니면 나만 그랬을 수도 있으리라.
나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
같기도 한 이탁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성인의 가르침이 담긴 책을 읽었지만,
‘성인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몰랐고, 공자를 존숭했지만
공자에게 무슨 존경할만한 것이 있는지 몰랐다.
속담에 이른바 난쟁이가 굿거리를 구경하는 것과 같아,
남들이 좋다고 소리치면 그저 따라서 좋다고 소리치는 격이었다.
나이 오십 이전까지 나는 정말 한 마리 개와 같았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어대자 나도 따라 짖어댄 것이다.
왜 그렇게 짖어댔는지 까닭을 묻는다면,
그저 벙어리처럼 아무 말 없이 웃을 뿐이었다.”
이탁오의 <성인의 가르침에 대하여>라는 글이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무작정 남이 장에 간다니까 장에 가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부지기수다.
그렇게 믿고 따르다가 어느 날 내가 그 사람에게 속았느니,
순전히 사기꾼이었는데, 왜 그걸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난리를 치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누가 믿으라고 했는가? 아니다.
자신이 믿고 자신의 발등을 자기 자신이 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탁오는 오십이 넘어서라도 그 자신의 한계. 아니 그 시대의
한계를 깨닫고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내다가
시대의 희생양이 되었다.
나는 아직 그렇지도 못하고, 그래서 옹졸하기 그지없고, 그래서
내가 처한 환경에서 조금씩 조금씩 목소리를 내고 있을 뿐이다.
개미가 지상을 부지런히 걸어가는 그 소리보다도 더 작게,
나팔꽃이나 도라지꽃이 터지는 소리보다도 더 작게,
아니, 잠자는 미녀의 숨소리보다도 더 작게,
그렇게 나는 내 소리를 내다가 어느 날 사라져 갈 테지,
그 때에도 지금 저렇게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가 들리고
나는 어떤 생각에 잠긴 채, 이 세상을 하직할 수 있을까?
세상은 걸어볼만하고 세상은 살아볼만하다.
세상은 걸어볼만하고 세상은 살아볼만하다.
그새 오랜 옛 시절의 일이다.
2006년 <다시 쓰는 택리지>가 다섯 권으로 완간 되었을 때KBS TV <책을 말하다>에 선정이 되었다.
담당 PD와 나라 곳곳을 현장 촬영을 했는데,
현장 촬영은 생활한복이 괜찮지만
스튜디오촬영을 할 때는 양복을 입었으면 좋겠다면서
자기가 한 벌 사주겠다고 백화점을 가자고 했다.
오랫동안 생활한복을 입었는데,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하자.
한사코 양복을 사러가자고 했다.
고심 끝에 한복 두루마기를 큰돈(?)을 들여서 해 입고 방송을 마쳤는데,
그 때 출연료의 거의 대부분을 두루마기 값에 썼다.
그 옷, 그 비싸게 맞춰 입은 두루마기를 일 년에 대략 한 차례씩 입는다.
그때가 바로 오늘이다.
<세상은 걸어볼만하다.> <세상은 살아볼만하다>는 주제를 내 걸고
11월 11일을 길의 날로 지정하고, 올해로 14회째 여는 길 문화축제,
처음이나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 없지만,
길을 걸으며, 길의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생각해보는 길 문화축제에
나는 처음처럼 어색하게 두루마기를 입고, 한옥마을을 활보하는 것이다.
나만 그러는 게 아니고, 우리 땅 걷기 도반들이
흰 옷을 입고, 화려한 상여를 메기도 하고, 상여 뒤를 따르며
웃으며, 혹은 정색하며 곡을 하면서 활개 치는 날이다.
말 그대로 죽음 자체가 축제祝祭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옥마을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복을 입고
어정거리는 풍경이 여기저기 즐비하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이후에 서서히 사라져가던 한복을 입고 거리를 쏘다니는 풍경이
느닷없이 재현된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후기나 일제 때의 우리나라 거리에는 어떤 풍경이 연출되었을까?
“청색이 중국의 색이라고 한다면 흰색은 한국의 색이다. 고유 의상에서는 생동감이 넘치는 백옥 같은 밝은 흰색부터 광목처럼 거칠고 투박한 흰색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종류의 흰색을 만나게 된다. 따라서 조선의 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다양한 흰 옷 물결이 만들어내는 조화는 마치 음색의 향연 그 자체?? 것이다. 앞으로 세계정세 속에서 어떠한 변화가 이어날지라도 조선 민족은 영원토록 백색 왕국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1902년 조선을 방문하여 고종의 공식 초상화를 그렸던 프랑스 화가 드 라네지에르의 글이다.
청색도 아니고, 붉은 색도 아닌 흰색을 즐겨 입어서 백의민족이라고 불린 우리나라사람들이 어느 새부터 총천연색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풍경을 보고 프랑스 여행가 듀크로끄는 <애처롭고 부드러운 조선인>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조선인들은 흰 옷을 즐겨 입는다. 이것은 동심 어린 조선인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다. 서울 거리는 어디를 가나 이러한 밝은 흰 색 옷으로 인해 항상 축제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하며, 조선인들도 이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만약 그들에게 흰 옷을 입지 못하게 한다면 쾌활함도 그만큼 반감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조국을 떠난 이국땅에서도 흰 옷을 입고 있다. 블라디보스토그에서도 중국인들의 칙칙하고 짧은 조끼나 러시아인들의 투박한 외투 사이에서 조선족의 흰 옷은 유달리 발랄하게 눈에 띈다.”
어디 그뿐인가?
“바지저고리는 물론 양말까지도 흰색으로 걸치고 천천히 활보하는 조선인들의 흰색 물결은 뭔가 매력적인 감흥을 느끼게 한다.”
미국인 앤거스 해밀턴이 1910년에 발간한 <조선인>이라는 글이다.
흰색만은 아니지만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한옥마을을 상여를 앞세우고 한 참 동안 거닐게 될 길 문화축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구나. 하루하루가 다 나에겐 축제 같다. 연중 이 시기는 내 영혼을 다른 지역으로 이끌어 가는 것 같고, 나의 영혼에게 모든 저항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같은 무언가가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프랑스와 피에르 콘티에의 말과 같이 오늘과 내일, 늦가을을 수놓은 길 문화 축제의 현장에 모든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정말 가을의 황금빛은 아름답구나?
정말 가을의 황금빛은 아름답구나?
길의 날 길 문화축제가 끝나고,
축제 때 사용했던 여러 물품들을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은 뒤 책상에 앉자.
어느 덧 올해 가을이 문득 왔다가 금세 갔다는 것을 실감한다.
예전에도 물론 가을은 짧았지만 해가 갈수록 가을은 더 짧아지고,
가을을 보내는 삼사는 더 쓸쓸하기만 하다.
뒷모습을 남기고 가는 가을을 두고 중국의 시인 신기질辛棄疾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내 젊은 시절에는
기쁨만을 찾았었다.
그리곤 산꼭대기에 올라
슬픈척하고 노래를 짓곤 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모든 것을
슬픔도, 시달림도, 아픔도 다 겪었고,
이제 적당한 말로
부를 노래를 찾지 못한 채
“정말 가을의 황금빛은 아름답구나.”
라고만 할 뿐이다.“
그렇다. 어제 미륵사지 일대도 그렇게 단풍이 고왔고,
오늘 이른 아침 금산사 일원과 쌍계사 국사암의 단풍은 더 없이 고왔다.
찬연하게 아니 슬픔처럼 불타오르던 단풍을 보며
나는 ‘곱다,’ ‘아름답다’를 연발했는데,
집으로 돌아와 생각하니, 그 아름다움이 곧 스러질
나뭇잎에 대한 연연함으로 나는 그렇게 슬픈 경탄을 하지는 않았는지 하지만
그 또한 지나간 추억이 되었으니.
내일, 모레, 그리고 며칠을 지나며
내가 보았던 그 단풍들도 우수수 떨어지고,
그 가지에는 무념무상의 바람만 스치고 지나갈 테지.
오고 가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인데,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스산하다.
“이 눈은 66번이나 변화하는 가을의 풍경을 보았다.
달빛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야기하였다.
더 이상 내게 묻지 말라.
바람 한 점 없을 때 소나무와 삼나무의 소리를 들어보라.“
빼어난 외모 때문에 불가에서 출가를 허락하지 않자,
불에 달군 인두로 얼굴을 짓뭉갠 뒤
하쿠오 선사 제자로 입문하여 수행에 온 힘을 쏟았다는
일본 에도시대의 황벽종 비구니 료넨(1646-1711)의 글이다.
아름다움도 한 때, 황량한 바람에 떨어져
바람에 날리는 낙엽을 보며,
오만가지 생각에 잠기는 계절,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시절이다.
나는 어디를 또 가고 또 가고 돌아올 것인가?
취한 때 마음이 깨어 있을 때 보다 더 좋다는데,
취한 때 마음이 깨어 있을 때 보다 더 좋다는데,
소주 두 잔, 맥주 두 잔이면 취하는 사람이 있고,
이 술 저술 가리지 않고 마시고 또 마셔도
많이 취하지 않아 두주불사斗酒不辭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
전자가 나라면, 후자는 잘은 모르지만 일찍 작고하신
우리 아버님이 아니었을까?
술을 좋아하진 않지만 가끔씩 술 한 잔이 생각나는 때가 있는데,
옛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술을 마셨을까?
“한 잔 술을 권하지, 사양 말고
두 잔 술을 권하지, 의심하지 말게나.
석 잔 권하니 이제야 내 마음 알겠지.
사람의 얼굴은 나날이 늙어 가고
취한 때 마음이 깨어 있을 때 보다 더 좋다.
천지는 아득하고 장구한데,
흰 토끼 붉은 까마귀 서로 쫓듯 달려간다.
죽은 뒤에 북두칠성에 닿을 만큼 황금을 쌓아도
살아서 한 통의 술을 마심만 못하리라.
그대는 보지 못했던가.
시끄럽게 노래하고 곡하며 나고 죽는 것이 반반인 것을
지나다니는 사람들 말을 멈추면
흰색 장의차가 다투어 길을 나가는구나.
돌아가세. 이미 머리 희어졌으니
책 팔아 술이나 마셔버리자꾸나.“
백거이의 <술을 권하다. 勸酒>라는 시의 전문이다.
돈이 없을 때에는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책을 팔아서
술을 마시고, 깨어나서 후회하던 옛 사람들이 있었고,
그 뒤를 이은 주당들이 내 곁에도 여럿이 있어서
가끔씩 술을 논하게 된다.
“한잔 술엔 청탁불고淸濁不顧요, 두 잔 술엔 노소불고老少不顧요.
석잔 술엔 생사불고生死不顧라.
첫잔에는 술이 좋아서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마시며,
둘째 잔은 노소를 가리지 않고 마시며,
셋째 잔은 생사를 돌보지 않고 마시게 된다“
이렇게 마셔야 제대로 된 주당일 것이다.
하지만 음주를 단속하는 시대에 살다가 보니
그런 주당들을 눈 씻고 보아도 찾을 수가 없는 시대가
지금의 이 시대일 것이다.
“댓잎 술잔에 스치는 바람을 읊고,
달과 노닐며 세상의 너절함을 역겨워 한다.”
<채근담>에 실린 글이다.
자연 속에서 자연이 되어 마시는 술은
세상의 근심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데,
“수심 없애려 술을 사랑한 것이 도리어 병이 되고
병을 고치느라 술잔을 멈추니 사뭇 수심이 생기네.
한밤 내 서쪽 창 너머 비바람 소란하여
수심과 병 없애고 창주滄洲(江湖)를 꿈꾸었네.“
이 한 편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아무개의 시로
수심을 없애려 마시는 술은 수심을 없애지 못하고,
도리어 수심을 키운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
‘오늘 아침 술이 있으니 오늘 아침 취하는 것이요.
내일 근심이 다가오면 내일 근심하라.
취할 것이 어디 술뿐일까?
우수수 지는 나뭇잎에 취하고,
분이 부시게 푸르른 가을 하늘에 취하고
기억의 저편에서 문득 되살아나는 그리움으로 취하면서
살다가 가면 족할 것인데,
우리는 너무 세상을 이렇게 저렇게 계산만 하다가
문득 가는 것이 아닐까?
당신의 웃음? 그것은 흐르지 않은 눈물이에요
당신의 웃음? 그것은 흐르지 않은 눈물이에요
그러니까, 오래 전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2006년 한강을 걸을 때, 그것도 서울 한강,
옥수동 부근을 걸을 때의 일이다.
사진 속에서 한 남자가 웃고 있다.
왜 웃는지, 그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웃음, 웃음 속에 진실이 있고, 웃음 속에 수수께끼가 있다.
사람은 왜 웃는 것일까?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웃음은 본능이라는 것,
물론 거짓된 웃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말했다.
“사무침이 극에 달하면 오히려 웃음이 나오고.
기뻐 뛰어 오를듯한 마음이 극에 달하면 도리어 눈물이 나온다.” 고,
과연 그럴까?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 둘 다에게 웃음은 홀가분함을 가져다주었다.
둘 다 이해가 안 가는 일 앞에서 우리는 즐거움을 나누었다.“
피터 A. 캠벌과 애드윈 M. 맥마헌의 글이다.
웃음은 더도 덜도 아닌 그런 것이다.
즐거움을 주고, 즐거움을 나누는 것,
어떤 땐 씁쓰레한 것, 그래서 쓸쓸한,
그래서 <부조리의 철학자>인 알베르 카뮈는 다음과 같이 말했는지도 모른다.
“눈물이 날 정도로 혼신을 다해서 살아라.”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배가 아파 못할 정도의 웃음이 날 정도로 세상을 격하게 살아라.”
한 사람의 선한 웃음이 만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환하게 빛나게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오비디우스는 말했다.
“자기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본인만 모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서양속담도 있다.
“극도로 고상한 것에서 웃음거리까지는 한 걸음에 불과하다.” 고,
웃음, 세상을 살맛나게도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는 웃음을 두고
러디어드 키플링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네가 세상을 보고 미소 지으면 세상은 너를 보고 함박웃음을 짓고,
네가 세상을 보고 찡그리면 세상은 너에게 화를 낼 것이다.”
그 말이 맞을 것이다. 웃고 울며 보내다가 가는 인생 길,
나도, 당신도, 사람들도, 왜 웃는 것일까?
그 말의 해답을 프란츠 카프카가 나직하게 들려준다.
“당신의 웃음? 그것은 흐르지 않은 눈물이에요.”
왜냐, 인생은 슬픔이고, 슬픔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내 주위에 온통 아름다움 뿐,
내 주위에 온통 아름다움 뿐,
가을의 끝자락
완주 고산자연휴양림을 천천히 걸었다.
얼마 남지 않은 단풍잎이 매달린 나무를 흔들자
영문도 모르고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잎들,
그 모습을 두고 ‘쓸쓸한 아름다움’이라고 말하면서
단풍잎의 세례를 받았다.
“자하가 <시경> ‘위풍衛風‘ ’석인碩人‘ 구절의 뜻을 공자에게 질문했다.
“아리따운 웃음과 예쁜 보조개, 아름다운 눈과 검은 눈동자,
소素가 곧 아름다움이로다.”
그 말이 무슨 뜻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림은 소素를 한 다음에 그리는 법이지 않은가?”
“자하가 말했다.
“예를 갖춘 다음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네가 나를 깨우는구나! 더불어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논어>에 실린 글인데 <노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널리 알려진 미美를 아름다움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 혐오스러운 것이다.
널리 알려진 선善을 착한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선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 아름다움은 그 때 그 때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며
아름다움이란 유리그릇처럼 깨지기도 쉬우며
금세 사라지는 덧없는 것이기도 하며
촌각을 두고 변하기도 하는 것이다.
살면서 그렇게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어느 순간
사라져 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때의 적막하고도
쓸쓸한 시간, 그 시간이 멀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슬픔인가, 체념인가,
그래도 삶이 계속되는 한, 아름다운 사물,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사람들과
더불어 거닐고 거닐어 야 하지 않을까?
문득 떠오르는 시 한 편이 있다.
“새벽으로 만든 집,
저녁 빛으로 만든 집,
먹구름으로 만든 집,
남자비로 만든 집,
어두운 안개로 만든 집,
여자비로 만든 집,
꽃가루로 만든 집,
메뚜기로 만든 집,
내 앞의 아름다움,
내 뒤의 아름다움,
내 밑의 아름다움,
내 위의 아름다움,
내 주위에 온통 아름다움 뿐,“
나바호족 인디언의
<?陸嗤? 찬양하는 노래> 중 ‘새벽으로 만든 집,’ 이다.
이 세상을 휘적휘적 걸어가다가 보면
새벽으로 만든 집, 그리고 햇살로 만든 집,
그리고 은은한 저녁 바람으로 만든 집에서
‘어딜 그렇게 가는가?
이 집에서 쉬었다 가지 그래,‘
하고 손짓하지 않을까?
저마다 다르게 생각하고 사는 삶,
저마다 다르게 생각하고 사는 삶,
자다가 일어나자 꿈인 듯 생시인 듯, 목이 아프다.
아아, 어제 보은에서의 하루가 추웠구나.“나는 냉담하지 않아, 내 속은 온통 따뜻해”
라고 영국의 시인 비어레크의 시 <눈 위의 산보> 중
두 소절을 낭송했어도 추운 것은 추운 것이다.
“감기가 걸리면 안 되는데,‘ 혼잤말을 하고 일어나
내 나름대로 터득한 담방약을 짓는다.
우선 뜨거운 물을 끓이고, 설탕을 두 서너 스푼을 넣고,
설탕물을 땀을 흘리며 마시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전 근대적이라고, 혹은
그게 무슨 담방약이냐고 핀잔을 해도,
나에게는 맞는 오래도록 감기 기운이 있을 때
즐겨 따르는 내 나름의 감기처방약이다.
그리고 다시 옛 사람의 글을 읽는다.
“이카로스- 한바탕 곤두박질을 하고 난 기분입니다.”
테세우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다면 인생은 살만한 것이지요.“
“오디세우스-곧 돌아오겠소.”
탈레스- 물 흐르듯 살고 잇습니다.(물은 만물의 근원이다.)
히포크라테스-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입니다.“
소크라테스- 모르겠소.
플라톤- 이상적으로 지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삶의 틀이 잘 잡혀 있지요.
“율리우스 카이사르” 내 안색이 루비쿤두스 빛으로 변한 걸 보시오.노아- 재해 보험 좋은 게 하나 있는데, 알고 계십니까?“
모세- 수염이 석자면 뭐 하겠소.?“
세헤라제데- 제가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아벨리르 -자르지 마세요?(중세 최대 연애사건의 당사자,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잔 다르크_ 아, 너무 뜨거워요.“
노스트라다무스 -언제 말입니까?“
코페르니쿠스- 잘 지냅니다. 모두 하늘이 도와주신 덕이지요“
로렌초 메디치- 화려하게 지냅니다.
“데카르트- 잘 지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버클리- 잘 지냅니다. 나는 그렇게 느낍니다.
흄- 잘 지냅니다. 나는 그렇게 믿습니다.“
파스칼 -늘 생각이 많습니다.“
헨리 8세- 저는 잘 지낸답니다. 제 아내는...
갈릴레이- 잘 돌아갑니다.
비발디- 계절에 따라 다르지요.
홉스- 굶주린 늑대처럼 배가 고파요.
프랭클린- 벼락 맞은 것처럼 짜릿합니다.
카사노바- 모든 쾌락이 다 나를 위한 것이지요.
로베스피에르-정신 차려요, 목 잘리기 전에.
베토벤- 소리를 죽이고 지냅니다.
사드- 좇나게 잘 지냅니다.
칸트- 비판적인 질문이군요.,
헤겔- 총체적으로 보아 잘 지냅니다.“
쇼펜하우어- 잘 지내려는 의지가 충만합니다.“
다윈- 사람은 적응하게 마련이지요.
니체- 잘 지내고 잘 못 지내고를 초월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카프카- 벌레가 된 기분입니다.”
드라큘라- 피 봤습니다.
파카소_ 시기에 따라 다르지요.
에른스트 블로흐- 잘 지내기를 희망합니다.
갤럽-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질문이군요‘
프로이트-당신은요?
카뮈- 부조리한 질문이군요.“
네로- 몸과 마음이 온통 불타는 듯하오.,
맬서스- 인구에 회자되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엘리엇_ 내 마음은 황무지입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중에 실린 글이다.
저마다 다른 특색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
저마다 다른 개성으로 살아간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세상은 항상 살아볼만하고,
세상은 걸어볼만하다. 그렇지 않은가?
2018년 11월 19일 월요일,
내 꿈은 마른 들판을 헤매고 돈다.
내 꿈은 마른 들판을 헤매고 돈다.
살아갈수록 삶은 어렵다.
오늘이 어제보다 힘들고, 오늘보다 내일의 삶이 어려운 것은,
꿈꾸어왔던 꿈들이 꿈으로만 남을 것 같은 아쉬움 내지는 미련,
그런 것들 때문이 아닐까?
꿈을 꾸고서, 그 꿈의 실체를 찾기 위해
세상의 이 곳 저곳을 어정거리면서 기웃거렸다.
하지만 내가 찾은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그저 순간순간 조금씩 행복하다고 말하고, 여기면서
그 삶을 이어온 것뿐이다.
“찾으면 찾게 될 것이다
찾지 않으면 발견 할 수 없다“
소포클레스의 말을 내 인생의 모토로 삼고 살아온 세월이
짧은 세월만은 아니다. 그런데, 그 꿈을 이루어 질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최선을 다해 내가 꾼 그 꿈을 향해 나아가고 또 나아갈 뿐이다.
어렵고도 어려운 꿈을 찾아나가는 노정,
그 노정의 끝이 어디일지는 나도 모르고 세상도 모르는데,
테니슨은 말한다.
“꿈은 그것이 계속되는 동안은 진실하다.
우리는 꿈속 있지 않은가?“ 라고,
그런 의미에서 나의 꿈은 아직도 도중에 있고, 그 종착역이
어디인지도 역시 모른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꿈을 꾸고 있다.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미래를 꿈꾸지 마라.
너의 의무, 네가 받을 보상, 즉 너의 운명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함마르 쉘드의 말과 같이 지금, 나는 이 지금을 잘 살아야 하는데,
그래서 꿈을 꾸다가 보면, 내가 그리는 이상향이 눈앞에 열릴지, 아니면
닫힌 문 앞에서 좌절하고 말 것인지,
“방랑에 병들어
꿈은 마른 들판을 헤매고 돈다.“
일본의 하이쿠시인 바쇼가 임종 시에 썼다는 시 구절과 같이
온 세상을 떠도는 구름과 같이
영원히 창공을 떠돌지나 않을지,
제 얼굴 못난 줄 모르고 거울만 나무란다.
제 얼굴 못난 줄 모르고 거울만 나무란다.
한 사람을 보고서 그 사람의 내면을 알 수 있는가?
무당도 아니고, 관상가도 아니면서, 하지만 살다가 보면
살아온 세월의 무게로 어느 정도 그 사람의 내면이 짐작될 때가 있다.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고,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금세 어긋날 때가 있다.
사람의 겉만 보고 내면을 어떻게 알겠으며,
사람이 사람을 한 번 보고 평가하는 것이 사실은 가당찮은 일이라서 그렇다.
“마음이 편협한 사람이나 정신적인 암흑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서
우리는 거짓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지적인 명료함과
높은 자질을 가진 사람에게서 우리는 그것을 발견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후자의 경우에는 즐거움에 가득 찬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힘은 실재이기 때문에 이러한 느낌은
거짓이 아닌 그 밖의 다른 무엇인 것이다.”
괴테의 글이다.
보고 또 보고, 겪고 또 겪어야 보이는 사람의 마음,
그 마음을 어떻게 모습이나 차림새로 알겠는가?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한 번 보았거나
어떤 경우에는 한 번도 만나지도 않고서
이렇게 저렇게 사람들을 평해서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곤 한다.
“카페의 종업원들을 보라. 그의 행동은 시키지 않아도 재빠르고
약간은 너무 작위적이며, 그의 음성과 눈빛은
고객의 주문을 받아내기 위한 열망을 보여준다.
그는 스스로에게 사물들의 재빠름과 무감정을 보여준다......
카페의 그 종업원은 바로 그러한 자기를 실현하기 위하여
그가 처한 상황과 타협하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인 사르트르가 카페의 종업원을 보고 쓴 글이다.
저마다 자기 직업에 충실하고,
그래서 직업만 보아도 그 사람의 내면을 조금은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리고 당신은 또 어떤가?
“제 얼굴 못난 줄 모르고 거울만 나무란다.” 는 속담도 있듯이
사람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이런 저런 이유로 탓할 때가 너무도 많다.
“존재 안에는 사물들이 존재한다.”
하이데거의 말과 같이
저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우주가 있고,
그런 의미에서 모든 인간이 하나의 우주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세상이 넓고,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왜냐, 넓고도 넓은 세상에서 내가 아는 것은
아주 조금 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무슨 약효를 지니지 않은 것이 없다.
어느 것 하나 무슨 약효를 지니지 않은 것이 없다.
요즘 젊은 사람들 추세가 결혼도 잘 안하지만,
결혼 한 뒤에 자식을 안 가지려고 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자식을 낳고 기르고, 그 다음엔 자식에게 무언가를 주어야 한다는 그것이
결혼도 안하고 자식들도 안 가지려 하는 사회 풍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결혼도 않고서 고독한 삶을 살면서
수많은 고전을 남긴 프란츠 카프카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결혼해서, 가족을 이루고, 태어나는 어린아이들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그들을 키우고,
하다못해 그들을 그들 버릇대로 약간 이끄는 것이야말로,
제가 생각하기에는 한 남자가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최선의 길입니다.”
한 남자가 아니 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
가족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평범하게나마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이 지구, 아니 우주에서 중요한 일인지를
살아가면서 더 절실하게 깨닫는다.
삶이 더 진지해지기는커녕 더 회화悔禍화 될수록
사람들이 결혼을 안 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일어나는 것을 불을 보듯 뻔한 일인데,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것이 해결책이고,
그것은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그러할 때 사람과 같은 자연 또한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인데,
영국의 작가인 셰익스피어는 그 것 또한 그다지 우려할 것이 없다는 의미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자연의 어머니인 대지는 자연의 무덤이기도 하고,
자연의 무덤인 그 대지는 또한 자연의 모태이기도 하지,
그리고 그 모태에서 갖가지 자식들이 태어나
다정한 대지의 젖가슴에서 젖을 빤다.
그 초목 가운데에는 훌륭한 여러 가지 약효를 지닌 것이 많고,
어느 것 하나 무슨 약효를 지니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 약효 또한 모두 다르다. 아, 나무, 풀들 할 것 없이,
그 본질 속에는 신기하고도 강력한 약효가 들어 있으니 참으로 놀랍다.
무릇 이 세상의 생물로서 아무리 해로운 것일지라도
무언가 특수한 이로움을 세상에 주지 않는 것이 없고,
아무리 좋은 것도 그 용도를 그르치면 본성에 어긋나
남용의 해를 면치 못하는 법, 덕도 잘못 쓰면 악으로 변하고,
악도 쓰기에 따라서는 선이 될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제 2막 제 3장에 실린 글이다.
무엇이 좋은지, 무엇이 그른지,
지혜로운 것이 좋은가, 어리석은 것이 좋은가를
가름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의 시대, 지금의 시대가 그렇다는 것이다.
“천금千金의 보석寶石은 이익利益으로 인연이 맺어졌고,
어린 자식은 자연自然의 힘으로 맺어졌다.
이익으로 맺어진 것은 위급하면 버리지만,
자연의 힘으로 맺어진 것은 위급하면 거두어들인다.
이로써 보면 대저 거두어들이는 것과
버리는 것의 거리가 얼마나 먼 것인가?“
장자의 <장자 외편 제 2십 산수> 에 실린 글이다.
해약도 할 수 없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그리고 함께 웃고, 울고, 느끼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살아가는 기술,
슬프기도 하고, 당연한 것이기도 한,
‘애매한 경우에는 자유를 주고,“
라는 구절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가 지금의 이 시대가 아닐까.
이별의 눈물이 마르지 않고 흐르는 강에서 돌아와,
이별의 눈물이 마르지 않고 흐르는 강에서 돌아와,
2월부터 걷기 시작한 낙동강 따라 걷는 여정이
다음 달 12월에 마무리 된다.
태백에서 부산까지, 천 삼 백리의 여정을
한 발 한 발 걷다가 보니 드디어 남해 바다에 이르는 것이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낙동강에
크고 작은 나루 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형체를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고,
지명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삼강나루, 낙동나루, 사문진 나루, 정암나루, 오우진 나루,
물금나루, 구포나루, 그런 나루들이 이름만 남고 사라져 버렸다.
안개 자욱한 낙동강 길을 따라 걸으며
강 이편과 저편을 연결하던 크고 작은 배들을 떠올려보고,
그 나루들에서 만나고 헤어지던 사람들을 회상해보았다.
낙동강의 가장 큰 지류인 남강을 거슬러 올라간 의령읍의 정암나루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곽재우가 왜군을 크게 무찌른 곳이고
그 정암 나루에 뱃노래 한 토막이 남아있다.
“정암(鼎岩) 사공아 뱃머리 돌려라
우리 님 오시는데 마중갈까나
아이고데고…… 성화가 났네”
그 노래는 떠났던 임과 재회를 기다리는
기쁨의 노래지만 나루에서는 만남 보다는 이별의 슬픔을
안타까워한 슬픔의 노래가 더 많다.
밀양시 삼랑진 낙동강과 밀양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삼랑진교가 낡은 모습으로 옛 스러움을 지키고 걸려 있는
근처에 뒷기미 나루가 있었다.
“뒷기미 나리는 눈물의 나리,
임을 랑 보내고 나 어찌 살라고,
아이고 데고 성화가 났네“
그렇다. 이별은 간장이 에이는 슬픔의 전주곡이고,
그래서 이 강, 저 강에 슬픔의 노래들이 강물처럼 흐르고 흘렀다.
그 중 우리나라의 시 중 가장 빼어난 시 중 한 편으로 평가받는
정지상鄭知常의 '?邦?送人'이다.
비 갠 긴 둑엔 풀빛이 짙어 가는데. 雨歇長堤草色多
남포에서 임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送君南浦動悲歌
대동강 물은 어느 때 마르려는지. 大同江水何時盡
해마다 이별 눈물 푸른 강물에 더해지네.別淚年年添綠波
얼마나 슬픔이 지극하면 그 눈물이 강물이 되어 흐를까?
강을 따라 걸으며 사람의 만남과 이별을 떠올리게 되고,
그래서 발걸음 발걸음이 무거워지다가 가벼워지다가
어느 순간 마음까지 무거워 강물 아래 가라앉을 것 같은 그런
시간을 견디고, 사람도 흐르고 강도 흐른다.
그렇게, 또 그렇게 세월도 흐르는 것을,
내가 나를 방안에 유폐시킨 채 살았던 그 시절,
내가 나를 방안에 유폐시킨 채 살았던 그 시절,
방안에 갇혀서 아니, 내가 나 스스로를 유폐幽閉시킨 채
그렇게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내 나이 열일곱에서 이십 대 초반 까지
방안에 갇혀 있다가 가끔씩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연이 되어
살았던 시절, 내가 나를 알기도 하고, 전혀 모르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두려운 지난 시간들, 셀 수 없는, 거의 끊임없는, 산책,
밤들, 낮들, 모든 것에 무능력한 고통 이외에는,”
프란츠 카프카가 낮은 목소리로 스스로의 내면 풍경을 감추지 않고
들어냈던 그대로의 삶,
그때 나는 삶도 아닌 삶을, 그러나 달리 말한다면
가장 절절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닐까?
그 시절을 허비하듯, 보내고,
내가 다른 삶으로 들어가고서부터
나는 본래의 나를 잃어버리고, 또 다른 내가 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현재를 잘 살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에 얽매어 살았던
나를 버리고, 현재에. 그 현재에 가장 충실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우리들이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은 현재뿐이다.
과거도 미래도 우리를 괴롭히지는 못한다.
과거는 이미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토아학파의 삶과 같이 그 현재를 충실히 살았고,
내가 접하고 있는 그 현재에다 내 인생 전체를 걸었던 것이다..
그 때 나를 변화 시킨 것은 이청준 선생의 <당신들의 천국>의
“그 자유나 사랑은 어떤 실천적인 힘의 질서 속에 자리 잡고 설 때라야
비로소 제값을 찾아 지니고, 그 값을 실천해 나갈 수 있다.“는
그 한 소절과
<순자>의 ‘혜폐解蔽’에 한 소절이었다.
“듣지 않는 것은 듣는 것만 못하고, 듣는 것은 보는 것만 못하다.
보는 것은 아는 것만 못하고, 아는 것은 실지로 행하는 것만 못하다.
학문은 실천함에 이르러 그치는 것이다.
실천을 하면 만사가 환히 통하게 되고 통하게 되면 성인이 된다.
성인이란 인의仁義를 근본으로 하여 시비의 판단을 정확히 하고,
언행을 한 결 같이 하여 티끌만큼도 어긋남이 없는 사람이다.
성인이 되는 길은 다른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며,
바로 실천을 목표로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듣기만 하고 눈으로 보지 않으면
널리 들었다 해도 반드시 잘못이 생기고,
보기만 하고 그 내용을 깨닫지 못하면
안다고 하더라도 허망한 것이 되고 말며,
알고는 있어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열심히 공부한다 하더라도 막히는 일이 생긴다.“
그렇게 내 삶은 막연한 상상력이 아닌 실천을 통한 변화의 길에 들어섰고,
지금까지 나는 내가 처한 삶의 방향에 그다지 망설이지 않고 실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가끔씩 나를 가둬두었던 그 방을 생각한다.
“항상 존재하는 것은 방 안에 갇힌 세계사이다.”
카프카가 말했던 그 때 그 시간, 그 방에서 탈출하고서도
나는 가끔씩 그 방을 떠올리고, 몸서리치면서도 그리워한다.
갈 수 없는 그 시절, 그 때를
가당치 않은 꿈들이 세상을 변화 시킨다.
가당치 않은 꿈들이 세상을 변화 시킨다.
그냥 꿈을 꿀 때가 있다.
그 꿈이 나에게 손해가 될지, 아니면 이익이 될지
그런 것은 개의하지 않고,
그냥 꿈을 꾼다.
그 꿈이 가끔 무모한 꿈이라서
동행한 사람들을 난감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능한 일이 아니라며 시도도 하지 않고
그만두면 인생이 얼마나 삭막할까?
그때도 그랬다. 구산항에서 망양리까지의 길이
‘경고, 이곳은 출입을 금지합니다.’
라는 표지판이 걸려 있어서
그때 그 길을 가지 않고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지 말라는 그곳에는 어떤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져 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멈출 수가 없어서
그곳으로 우리 땅 걷기 도반들을 수 십 여명 데리고 가면서
기이한 아름다움에 탄성을 내 질렀다.
그러다가 차마고도 같은 길이 너무 위험해서
오금을 저리면서 걸었던 길이 그 길이었다.
그 길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을 걷고 나서
울진군과 경상북도에 바닷가 풍경이
해금강과 견줄만하니 그곳을 개발하자고 여러 차례 제안했다.
제법 오랜 시간이 경과 한 뒤 며칠 전에
경상북도 김남일 국장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오늘 여러 신문에 울진비행장 때문에 개방되지 않았던 바닷가 길을
드디어 철조망을 거둬내고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길로
개발하기로 결정이 났다는 기사가 실린 것이다.
꿈을 꾸는 것만으로는 만족해선 안 된다.
“강변의 모래들이 아름답다.‘고 읽는 것만으로
만족해선 안 된다.
그 모래를 양말을 벗고 들어가 그 차디찬 모래를 온 몸으로
느낄 때 그 모래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땐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
그냥 무모한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 같을 때가 있다.
그 때의 슬픔을 견디어 내고 끊임없이 나아가고 나아갈 때.
새로운 문이 열리는 것이다.
셰익스피어 <한 여름 밤의 꿈> 제 5막 제 1장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광인과 사랑하는 사람과 시인은
한결 같이 상상력으로 머리가 가득 차 있다.
넓은 지옥에도 다 들어가지 못할 만큼의
많은 귀신을 보는 것도, 바로 광인이다.
사랑을 하는 자도 못지않게 머리가 돌아서,
집시의 얼굴도 헬렌처럼 아름답게 본다.“
그렇다. 꿈을 꾸고 꾸다가 보면
꿈속에 사람으로 살다가 죽을 수도 있지만
그 꿈의 세계가 현실로 되어서
꿈에서 깨어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지,
“희망은 맨 정신으로 꾸는 꿈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가당치 않은 꿈들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고
그 길이 개통되는 날 함께 걸어갔던
우리 땅 걷기 도반들과 다시 걷게 되기를
갈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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