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서울시내 답사기

초보산꾼 답사기록 : 용문동. 원효로(용산구) 주위 사진 답사기

산중산담 2022. 6. 6. 09:11

초보산꾼 답사기록  :  용문동. 원효로(용산구)  주위  사진 답사기

 

 

 

언제 :  임인壬寅년(22년)  6월 06일  월요일(현충일)  

 

 

누구랑 :    초보산꾼

 

 

어딜 :   용문시장 주위 ~ 성심여고 주위 ~ 원효로(용산구) 주위

 

 

 

 

요문동. 원효로(용산구) 주위

 

 

 

 

용문동의 유래(龍門洞의 由來)  용산구      용문시장  용문동 41-44

 광복 후 용산의 龍자와 동문외계(東門外界)의 ‘문(門)’자를 각각 따서 제정된 것이다. 용문동의 우물 이름으로 반굴 우물이 있었으나 찾을 길이 없고 용문동 104번지 길가에는 물맛이 달다고 하여 단우물이란 우물이 있다. 또 용문시장 근처 용문동 79번지에는 짠우물이 있는데 위쪽의 단우물에 비해서 물맛이 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얼마 전까지도 단우물은 식수로 사용되었고 짠우물은 세척용으로만 사용 되었다. (용산문화원)

 

 

용문시장 로터리

 

 

창성옥(맛집)   용산구 용문동 25-16     미래유산  선지해장국집     새창로 124-10

 

 

단우물과 짠우물    용산 브라운스톤 아파트 정문? 과 용문시장 은미네 반찬집 앞  용산구 용문동 46

 

 

남이장군사당  용산구 용문동107

 

고개를 넘고..

 

 

 

비변사 우물터    신창동 공용주차장 건물좌측뒤 코너  신창동 53-1   

     사진 자료 :  서울의 미래 밥줄이 달린 용산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비변사(備邊司) 군인들이 이용하던 우물인 '비변사우물'(다른 이름으로는 '응달우물')이 근처에 있는데, 지금은 구립 용산주차장 건물 아래층에 그 자리만을 남겨 두었다. 그 앞으로 지나는 길은 지금 '비변사우물길'이란 이름을 달고 있었으나 지금은 다른 도로명으로 바뀌어 버렸다.  

 

 

주차장 안쪽은 가려있고..

 

성심여고 후문 방향 주차장 외부 끝 부분에 창살로 볼 수 있었다.

 

 

성심여고 안에 있는 원효로 성당 뒷길

 

 

성심여고 후문에  삼호정터 바로 위에 산천동 부군당.    초보산꾼 답사기 자료로 대신하고..  

 

 

위에서 본 산천동 부군당..  용산구 효창원로15길 7

 

옆에서 본 산천동 부군당   

 

 

 

 

산천동 가로쉼터  산천동 30-3   씨알의 소리..  정자 현판   1차 답사시 없던 시설..

  용산구가 함석헌 선생 탄생 120주년을 맞아 원효로4가 옛 집터 가까이 함석헌 기념공원을 조성했다.  전통 기와 모양 담장을 둘러 차도와 구분했고 선생이 살아온 자취와 활동 등을 엿볼 수 있는 동판을 붙였다. 기존에 있던 정자는 '씨알의 소리' 쉼터로 탈바꿈했다.  '사는 길이 결코 발 끝에 있지 않고 저 먼 앞에 있다…'는 '너 자신을 혁명하라' 는 문장비도 눈에 띈다.

자료 :  내일 신문    http://m.naeil.com/m_news_view.php?id_art=403692

 

 

 

명예도로명인 함석헌길을 따라 걷는다.

 

 

 

함석헌 살던 집    현 승진빌라  산구 원효로4가 70 

  함석헌기념관이 있는 쌍문동 집에서 6년 정도 사셨지만 오랫동안 사셨던 곳은 1956년부터 28년 동안 치열한 삶을 사셨던 으로 1970년 4.19 10돌을 맞아 진보적 평론지 '씨알의 소리'를 창간했는데 책을 펴낸 출판사 '씨알의 소리사' 주소지가 그의 자택이다.

자택 매입은 선생이 '살 곳이 없다'고 하셔서 미루다 선생의 집은 연립주택으로 바뀌었다. 공원 조성과 함께 옛 집터 인근 도로에 '함석헌길' 명예도로명도 붙였다.
함석헌이 개인잡지『씨알의소리』를 창간할 때 우리 나이로 70살이었다. 요즘이야 평균수명이 70살을 훨씬 넘어섰지만 당시에는 ‘인생70 고래희’의 시대였다. 개인이 사업을 시작하기보다 마무리를 할 연배였다. 주위에서 말렸다고 한다. 함석헌은 “사람이 일을 하려면 세 가지를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데, 밥 굶을까, 감옥갈까, 죽을까 겁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이 말을 그대로 실천한 셈이다.

 [출처] 서울미래유산-함석헌가옥|작성자 마을아카이브 

 

 

 

이어지는 함석헌 길

 

용산문화원 삼거리..  용산문화원 방향 답사기록..  자료 :  초보산꾼 답사기 중에서..   '서울 한강걷기'

 

 

용산 문화원 위 느티나무 보호수 몇 그루와 심원정터가 있다.

 

심원정터와 보호수..

 

사진상 화살표..  왜명강화지처(倭明講和之處)비와 백송의 사연..

 

지금은 사라졌다는 영의정 조두순의 정자였다는 심원정心遠亭을 대신하여 쉼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성심여고 방향으로..

 

동효빌라..  용산구 원효로4가 99-3

 

 

함벽정이 있었다는 성심여고는 오늘도 잠겨 있고.. 

 

정문..   역시 초보산꾼 서울한강걷기 답사 자료를 대신하며..

 

이 사진 한장이 여기가 전에는 함벽정이였다는 사실..  정문 앞 안내문에서.. '1900년대 용산신학교  정문에 보이는 글귀'

 

 

정문에서 사진으로 용산성당을 담아보고.. 저 고개 어디에 함벽정이 있었을 것이다.

 

 

 

원삼탕 소재지 : 용산구 원효로 123-12   하지만 안타깝게도 폐업..

1966년경 개업하여 계속 운영되고 있는 목욕탕 같은 장소에서 47여년동안 운영된 목욕탕으로 원효로3가 일대의 시대적 모습을 보여주는 장소 TV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하는 서울의 오래된 목욕탕이다. 우리나라 서민들의 목욕 문화를 민속생활사적 측면에서 잘 보여주는 곳이다. 

 

 

 

 

군자감 강감터       원효로3가 KT용산IDC   원효로3가 1-2     운양나루 안내문 참조

 군자감에 딸린 강감(江監)터로, 옛날에 많은 군수 저장미를 쌓아 두었던 곳이다. 

 

 

 

건국실천원양성소 터    원효로 2가 73   풀하우스 앞  원효로2가 72-3  안내문  

  김구 선생이 1947년 세운 건국실천원양성소는 국가를 재건할 인재를 키워낸 기관이었다. 일제가 세웠던 옛 서본원사(西本願사) 건물에 강의실을 두고 조소앙, 신익희, 양주동, 정인보 등 각계 유력 인사들을 초청해 학생들을 가르쳤다. 수료생 900여명을 배출했던 이 곳이 용산에 있었다는 사실은 주민들도 잘 알지 못한다. 건국실천원양성소 터에 아무런 안내판도 세워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료 :  김구 선생의 인재 양성소가 용산에?...역사문화명소 100선 안내판 세우는 용산 | 서울Pn (seoul.co.kr)

 

백범 김구 선생이 1947년 3월 20일 설립한 고급 인재양성 기관이다. 일제가 세웠던 옛 서본원사(西本願寺) 건물에 강의실을 두고 조소앙, 신익희, 양주동, 정인보 등 각계 유력 인사를 초청, 학생들을 가르쳤다. 9기에 걸쳐 수료생 900여명을 배출했으나 백범이 암살된 후 1949년 말 해체되고 만다.[출처] 용산구, 역사문화명소 100선 안내판 세운다|작성자 불영

 

풀하우스 건물

 

 

 

              초보산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