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자료 모음

포천에 편입된 영평고을 영평향교 터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다.

산중산담 2022. 9. 14. 15:10

포천에 편입된 영평고을 영평향교 터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다.

 

한탄강 변에 유서 깊은 고을 영평현이 있었다, 1914년에 일제에 의해 포천군에 편입되어 영중면 영평리로 남은 영평에 온 나라 고을에 세워졌던 향교가 사라진 뒤 유허비만 남아 있다.

어디 향교 뿐일까? 백녀의 역사를 간직한 영평초등학교도 폐교가 되어 잡초만 무성하니,

그렇다면 영평의 옛 모습은 어떠했을까?

 

“토지가 메마르기 때문에 백성들은 한결같은 마음이 없다.”라고 <여지도서> ‘풍속‘ 조에 실린 포천에 병합된 고을이 영평이다.

성임成任은 이곳의 풍속에 대해 “고을이 작아서 송사하는 백성이 없고, 전지가 비옥하여 해마다 풍년이 든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영평현은 현재 경기도 포천군 영중면과 일동 이동. 영북면 지역에 자리 잡은 조선시대의 현이었다. 본래 고구려 때 양골현梁骨縣이었던 영평현은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에 소속되어 있다가 광개토대왕 이후에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신라 경덕왕 때 신라의 영토가 도면서 동음洞陰으로 고치어 견성군(지금의 포천군)의 영현이 되었고, 고려 현종 때는 철원에 예속되었다가 예종 때 감무를 설치하였다.

원종 때 위사공신 강윤소康을紹의 고향이라 하여 영흥현령으로 승격시켰고, 공양왕 때 관할을 교주도에서 양광도로 옮겼다. 조선시대 태조 3년(1394)에 영평현으로 바뀌었고, 광해군 10년(1618)에 이곳 경기 감영을 만들면서 포천과 합해서 대도호부가 되었다. 인조 때 영평과 포천으로 나뉘었고, 현종 때 군이 되었다가 1914년에 포천군에 속하면서 하나의 면이 되었다.

 

드넓고 평평한 금빛 물결에 은빛 모래사장

구름 낀 골짜기 비오는 강에 산뜻한 갈매기.

경치 찾아 우연히 무릉도원의 길로 들어서니

고깃배를 보내어 골짜기를 나가게 말아다오.

 

한음 이덕형의 시 한편이 남아 있는 이곳 영평의 처음 이름인 양골이란 뜻은 ‘산골’, 즉 ‘산 속의 고을’이라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이 지역은 임진강의 지류인 한탄강 유역의 산간분지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 조선시대에는 포천과 평강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가 발달했으며, 한탄강을 따라서 마전과 적성 그리고 파주를 지나 바다와 연결되었다. 영평에는 영평천이 있는데 포천군 이동면 광덕산에서 발원하여 영평팔경의 하나인 선유담을 이루고 백운동 계곡을 받아들인 뒤 청산면 궁평리에서 한탄강과 합류하는 길이가 40킬로미터에 이르는 천이다.

연천지방을 연결하던 국도와 철길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경기, 강원, 함경도 사람들이 서울로 오고 갈 때 이용하던 나루터가 이곳에 있던 아우라지 나루터였다. 아우라지라는 이름은 한탄강과 영평천이 이곳에서 ‘아우러진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이 영평현에는 살여울이 있는데, 물의 근원이 하나는 백운산에서 나오고 하나는 포천 경계에서 나와 고을 남쪽에서 합류한다. 그리고 곧은 여울直灘이 있다.

포천군 영중면 양문리는 조선시대에 평구도찰방平丘都察訪에 소속된 양문역이 있었으므로 역말, 또는 역촌이라고 불렸는데 영편현의 동쪽 9리쯤에 떨어져 있었다. 이 양문역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항간에서는 독흘獨訖이라고 부르는데, 양골梁骨이 와전訛傳된 것이 아닌가 의심 된다‘ 고 실려 있는데, 이 역에는 큰말이 3필이 있었고, 중 말은 4필, 작은 말은 3필이 있었으며, 역졸 47명이고 종 49명에 여종이 56명이 있었다.

영중면 거사리(居士里)는 선조 때 사람인 지천거사(芝川居士) 황정욱(黃廷彧)이 살았으므로 거사울 , 거시울, 거사동이라고 불렀다.

영중면 금주리에 있는 청학동(靑鶴洞)은 영평 팔경중의 한곳으로 일동면으로부터 흘러내려온 물을 껴안듯이 서 있는 병풍처럼 생긴 절벽이다. 이 벼랑 낭떠러지에는 청학동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어떤 효자가 아버님의 시신을 모시고 이장을 하기 위해서 터를 잡고서 땅을 파기 위해 한 삽을 뜨는데, 그 속에서 청학 한 마리가 하늘로 날아올라가 그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영평팔경은 화적연(禾積淵). 창수면 오가리의 금수정(金水亭). 창수면 오가리에 있는 창옥병(蒼玉屛). 영중면 거사리에 있는 낙귀정지(樂歸亭址). 이동면 도평리에 있는 선유담(仙遊潭).일동면 수입리에 있는 와룡암(臥龍岩). 영중면 거사리에 있는 백로주(白鷺洲).와 청학동인데 영평팔경을 주제로 지은 노래가 있다.

 

화적에서 벼를 털어

창옥병에 넣어들고,

낙귀정으로 돌아드니

청학이 날아드네.

금수로 술을 빚어

와룡을 빗겨타고

백로는 황강하고

선유담이 예 아니냐.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 고을을 가다>에서 신정일

 

사람도 가고, 세월도 간 그 자리에 터만 남아 있는 포천시 영중면의 영평향교에서도 옛 시절 글 읽는 소리 요란했을 것인데, 아, 가버린 세월이여,

 

2022년 8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