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운문사와 울산 반구대 암각화, 천하의 절경 경주 주상절리를 만나다.
청도 운문사와 울산 반구대 암각화, 천하의 절경 경주 주상절리를 만나다.
2022년 9월 30일(금요일)부터 10월 2일 일요일까지 청도 반시가 익어가는 가을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한 운문사와 아름다운 폐사지 장연사터를 지나 밀양의 위양지와 영남루를 거쳐 울산의 천전리 각석과 반구대 암각화, 경주 읍천리 주상절리와 해파랑 길을 걷는 여정으로 실시합니다.
아름다운 절집들과 그윽한 산길, 바닷길을 걸으며 무르익은 가을에만 나는 청도반시와 대추를 맛보며 걷게 될 이번 여정에 참여를 바랍니다.
“비구니 승가대학과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스님이 머물렀던 곳으로 이름난 운문사560년(진흥왕 21)는 한 신승(神僧)이 대작갑사(大鵲岬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고, 591년(진평왕 13) 원광(圓光)이 크게 중건하였다. 원광은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지어 이곳에서 아주 가까운 가슬갑사(嘉瑟岬寺)에서 귀산(貴山) 등에게 주었다고 전한다.
937년(태조 20)에는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후삼국의 통일을 위해 왕건을 도왔던 보양(寶壤)이 중창하고 작갑사(鵲岬寺)라 하였으며, 이 때 왕이 보양의 공에 대한 보답으로 쌀 50석을 하사하고 ‘운문선사(雲門禪寺)’라고 사액한 뒤부터 운문사라고 불렀다.
1076년(문종 30)에 원응국사(圓應國師) 학일(學一)이 중창했으며, 1105년(숙종 10)에는 원진국사(圓眞國師)가 송나라에서 천태교관(天台敎觀)을 배운 뒤 귀국하여 이곳에 머물면서 중창하였다. 그 뒤 조선시대에 들어와 1690년(숙종 16)에 설송(雪松)이 중건한 뒤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운문사 대웅보전은 보물 제8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193호로 지정된 금당 앞 석등을 비롯하여 보물 제316호로 지정된 원응국사비(圓應國師碑), 보물 제317호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318호인 사천왕석주(四天王石柱), 보물 제678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보물 제208호로 지정된 동호(銅壺) 등이 있으며, 오백나한전 안의 나한상은 보기 드문 작품이다.
울산의 태화강 상류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의 대곡천에는 시공을 뛰어넘어 이 땅을 살다간 공룡들의 발자국이 남아있고 강을 건너 벽에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그린 바위 그림들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다.
그 물길을 따라간 대곡리 서원마실에 반고서원(盤皐書院)이 있다. 고려 말의 충신으로 이곳으로 귀양을 왔던 정몽주는 이곳의 경치에 반하여 정자를 짓고서 제자들과 학문을 닦았다고 하는데, 이 서원은 숙종 38년(1712)에 고을 선비들이 문충공(文忠公) 정몽주(鄭夢周)와 문원공(文元公) 이언유(李彦油) 그리고 문목공(文穆公) 정구(鄭逑)가 이곳에 머문 것을 추모하여 창건하였다.
그곳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신석기 말부터 청동기시대에 그려진 대곡리 암각화가 있다.
에는 1억 5천만년 전 쯤에 지구를 주름잡았던 공룡들의 발자국이 200여개가 있다. 대형초식공룡인 율트라사우르스와 중형 초식공룡인 고성고사우르스 와 육식공룡인 메갈로사우르스 등 공룡들이 이리저리 배회한 흔적들이 남아 있는 그 건너편 바위가 선사시대 사람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천전리 각석川前里 刻石이다. 천전리 각석은 일명 서석書石이라고도 불리는데,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바위 표면에 마름모나 동심원 같은 기하학적인 무늬와 사슴과 용 같은 동물과 물고기 등을 그렸는데 어느 때 누가 그렸는지를 추정하기는 쉽지 않다. 현재 국보 제 147호로 지정되어 있는 천전리 암각화에는 신라 법흥왕 12년(525)년에 사탁부沙啄剖의 갈문왕이 이곳에 행차하여 새겼다는 글이 남아 있고, 화랑도들이 다녀간 흔적도 남아 잇다. 그곳에서 대곡천을 따라 2km쯤 내려가면 만나게 되는 절벽에 신석기 시대 말기를 살았던 우리들의 선조들이 그린 사슴, 멧돼지 같은 육상동물과 고래 그리고 사람 등 200여점이 있다.
2011년 봄, 부산에서 동해 바닷가 길을 따라 통일전망대까지 이르는 해파랑 길을 걷고 있을 때의 일이다. 경주시 양남면 읍천항을 지나가는데, 군부대의 철조망 때문에 바닷가 길을 갈 수가 없었다. 우뚝 서 있는 군부대의 초소가 이색적이라 들어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데, 마침 병사가 없어서 들어갔는데, ’유레카!,‘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읍천항과 하서항 사이의 해안을 따라 약 1.5km에 이르는 주상절리 중 바다 한가운데에 한 떨기 연꽃이나 부채처럼 누워 있는 비경 중의 비경 주상절리가 세상에 처음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이다.
군인들은 오랜 세월 그 주상절리를 보았지만, 바다에 떠 있는 기이한 것으로 보았을 뿐, 그것을 나라 안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이라고 여기지 못한 것이다.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온갖 것 보러 태어났건만, 온갖 것 보아서는 안 된다 하더라.” 라는 그 말을 어기고 금지된 곳을 들어가서 발견한 주상절리를 사진을 찍어 내보내자 전국의 수많은 사진작가들 사진 속에 담겼고, 지금은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 곳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