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정맥 산행기

한남금북정맥 2구간 : 속리산을 품은 보은땅을 두번째 걷다

산중산담 2013. 5. 20. 20:05

3450 온누리 산악회  한남금북정맥 2차 : 갈목재에서 구티까지                                        

                                                                                 

언제 : 계사년 푸른달 열아흐래 해날

누구랑 : 바다사랑 대장님과 한남금북정맥 식구들

어딜 : 갈목재 - 말티고개 - 구룡치 - 구티

 산행거리 및 예상시간15.1km,  7시간 예상 (접속구간 없음)  (바다사랑 대장님 공지내용)

                             (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

 

남한강 남쪽과 금강 북쪽의 물줄기를 따라 가는 한남 금북정맥길

두번째 구간을 위해 사당으로 출발하니...

이미 촉촉히 젖은 대지위에 아직도 하늘은 여전히 속살을 드러내지 않고...

그래도 오후면 그친다는 일기예보를 오늘 처럼 틀리지를 않기를 바란 일이 있었던가 싶다

첫 구간보다 많이 줄어든 인원이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는 회자되는 단어를 곱씹으며 출발한다.

 

한남금북정맥 전구간 

 

 

첫 구간에서 만난 삼가저수지가 삼가천을 이루며 금강으로 흘러 가다가

두번째 구간에서 만난 동곡저수지(지도에 구룡저수지)가 보은읍에서 '보정천'을 만나면서 탄부면에서 삼가천과 합류하여

말치고개에서 서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장재리 장재 저수지에서 흐르는 물을 탄부면 임한리에서 삼가천에 흡수하여 금강으로.....

또한 1.2구간 북사면으로 흐르는 물은 모두 달천을 이루어 탄금대에서 남한강으로 흘러 들어 가게되고...

 

 

한남금북정맥 2구간 등로

 

그동안 교통의 오지에서 새롭게 도로를 단장하고 새로운 얼굴로 태어나고 있는 보은報恩땅을 1구간에서 처음으로 밟아 봤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동학농민 전쟁의 발생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동학교도들의 보은집회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힘을 합쳐 왜양을 깨뜨려 보국하자는 내용의 「보은관아통고(報恩官衙通告)」를 만들어 보은관아 문에 붙임으로써 시작 된 보은집회

실패로 끝났지만 동학 자체의 현실 대항적 능력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었기에 척양척왜와 보국안민의 정신을 이어 갈 수 있었으리라.

 

이러한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보은땅을 우리는 계속 이어가게 된다.

 

갈목재  - 바다사랑 대장님 작품

갈목재(388m) 505번 2차선 지방도

갈목리에서 삼가저수지로 넘어가는 데 있는 고개로 전에 갈목리 마을 주위에 칡덩굴이 많아 갈목이라 하였다고 한다.

보은 고을은 풍수지리설과 관련해 사증(四甑·네 시루봉)과 팔항(八項·여덟 목)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라고 한다

삼가리 고개로 불리우다 길이 확장포장되면서 갈목재로 고쳐 부르고 있다고 한다

 

오늘의 들머리

 

"상현서원"이 있어서 서원이라는 지명이 유래한 외속리면 서원리에 있는 봉이라 붙여진 듯한 서원봉

 

가슴아픈 사연을 안고서도 넘어야만 했던 민초들의 질긴 삶을 얘기하는 "희넘이재"

희넘이재(홀어머니재, 回越峙)

황해동에서 내속리면 갈목리에서 외속리면 서원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이곳을 넘어가는 신혼 가마는

남편이 죽어 홀어미가 된다 하여 홀어머니재라고 하며, 그리하여 돌아서 간다고 해서 희너미재 회월티 라고 한다.

또한 옛날 속리절 중과 구병절 중이 이 고개에서 서로 만나게 되면 허행하고 되돌아 갔다하여 생긴 이름이라 함.  자료 : 보은 문화원

 

450봉에서 잠시 쉬어보고

 

말치재 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갈림봉인 545봉

 

산불방지 무선 중계국 시설도 지나고

 

가장 전망이 좋다는 531봉 정상에서 단체 사진

선답자의 후기를 읽어 보면 속리산의 주 능선이 모두 보이고 구병산도 손에 잡힐 듯 보이고

우리가 걸어온 정맥길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해 한번 보지 못하고 그저 앞만 보고 걸었다.

더위와 싸우지 않아 걷기에는 좋았다지만, 그래도 하는 아쉬움?

하기야 어찌 좋은 날만 바랄 수야 있겠는가? 자연이 주는 고마움에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감사할 뿐.....

 

말티재

말티재(37도로) 

'말’은 ‘높다’의 고어로 ‘말재’는 ‘높은고개’를 뜻한다고도 하고

조선 세조대왕께서 속리산에 오실때에는 급경사지로 가마 이동이 어렵다하여 말로 바꾸어타고 고개를 넘고나서

내속리면 갈목리 부락에서부터 다시 연(임금이 타는 가마) 으로 바꾸어 탔다고 하여 말티고개라 부르게도 되었다

 

티(치)와 재는 같은 고개를 뜻하는 단어인데 티(치)와 재가 혼합된 형태의 이름으로 우리나라 곳곳의 고개이름에서 볼 수 있다.

한자어로 재·티·치·령 등으로 쓰이다가 고개라는 본래의 뜻이 약화되면서, 이를 보강하기 위해 유의어인 고개(재)를 중복한 것으로 여겨진다.

어법상 "말재"로 해야 가장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분도 계시지만, 위의 의미라면 중복해서 하나의 단어가 된다면 무방할 듯 하다.

 

417m라는 삼각점도 있다

보은읍내에서 속리산(내속리면)방향으로 약 8 ㎞지점에 위치한 속리산관문으로 꼬불꼬불 12굽이나 되는 가파른 고갯길로

고려 태조대왕께서 속리산에 오실 때 고개길에 넓고 얇게 든 돌을 깔았으므로 ‘박석티’라 부르게 되었다고 함..

박석-티(薄石峙, 박석재) 말티고개의 다른 이름.

 

정자에서 점심도 해결하고 사진 한장 - 보물상자님 작품

어린 단종을 폐위시키고 조선 건국이념으로 삼았던 유교의 윤리에 반했던 세조가 불교에 기대어 자신의 합리화를 위한 장으로 만들고자 했던 속리산과 오대산

구비구비 12구비를 힘들게 자신의 오욕을 씻으려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찌 됐던지 그 힘든여정을 해야만 했던 세조의 흐르는 땀을 조금이나마 씻어 주었을 말티재

 

12구비를 날씨 관계로 조망할 수 없어 너무 아쉬웠다

 

580봉에 올라 한참을 함께할 산양산삼 재배 단지의 검은 그물망을 만나 좌틀

 

그물망과 잠시 해어졌다가

 

중판리에서 보은읍 성족리로 넘어가는 고개인 새목이재는 확인하지 못하고

그물망과 완전히 해어지게 되는 586봉 직전에 좌틀

 

구룡티도 지나고

구룡-티(九龍峙)

하판리에서 보은읍 종곡리로 넘어가는 고개. 아홉굽이가 졌다고도 하며 아홉 용이 나타날 지형이라고도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다른 고개보다 용트림하 듯 길이 길게 이어저 있다. 바로 한군데 더 사거리를 만나게 된다

 

수철령을 지나며

수철령(水鐵嶺) :

종남에서 내속리면 북암 시장터로 넘어가는 고개로 나무가 없다 하여 무수목無樹木 이라고도 부른다 하나 본말은 ‘무쇠목’이 변한 것이다

 

535.9봉에서 잠시 휴식 후

 

이번 구간에서 제일 높은 600봉을 내려오면 만나는 백석리 마을 입구

 

농로가 마루금이다

 

포장도로를 만나면서 마을에 진입한다. 앞에 보이는 422봉을 향해 가면 된다

백석리 마을

본래 보은군 산외면 지역으로서 흰 돌이 많이 있으므로 흰돌이라 하던 것을 흔들 또는 백석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갑리 일부를 병합하여 백석리라 하였다

 

백석리 농산물 집하장에서 좌틀하여 앞 소로 포장도로를 따르면

 

백석길 도로 표지판이 있는 반사경 뒤로 우틀

 

T자형 도로에서 우틀

 

잠시 오늘의 가장 높은 600봉을 되돌라 봅니다. 아직도 수줍은 듯 얼굴은 보여주지 않고 있다

 

422봉으로 오르는 진입로

 

바로 산신제단이 보인다

 

벌목지대를 만나고

 

통신 시설물도 만나고

 

바로 구티이다

산의 모양이 거북이 같다고 해서 구티 또는 거북티라 했다고 하는데....

 

구티 유래비가 있다

 

구티재를 넘는 고갯길이 아홉구비라고 해서 구치재라고도 한다지만

도로를 확장포장 하면서 지금은 네 구비만이 남아있다고 구티재 유래비는 알려준다

 

오늘의 뒷풀이 장소

 

뒷풀이

 

이렇게 한남금북정맥 2구간도 뒷풀이를 끝으로 끝을 알린다,

 

다행이 큰 비는 전날 밤으로 만족하고 걷기에 좋은 날씨만큼 비가 내려 편안했던 정맥길

전체적인 조망은 할 수 없었지만 없으면 없는데로

더욱 가까이서 신록의 조화를 볼 수 있었고

산우님들의 거친 숨소리까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만큼 가까이서

서로를 알아 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정맥의 장점은 산속을 걷다가도 흐르는 물처럼 산길을 이어가기에

떄로는 마을도 들러야 하고, 논길도 밭길도 건너야 한다.

큰 산줄기의 끝자락에 기대어 살아 가는 우리 민초들의 숨소리를 가장 가까이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코 유명 명승지가 아닌 그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의 삶의 소리...

 

한남금북2차산행에서 볼 수 있는 건 모두 본 즐거웠던 산행

함께하신 산우님들 감사하고 수고하셨습니다.

바다사랑 대장님, 탱이하트 총무님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보산꾼      도     덕  산

 

 

 

 

---  아래 ---      필요한 분만 보세요

  

몇 분이 고개를 뜻하는 티와 재 그리고 령에 대해 궁금해 하시여 초보산꾼이 전에 올렸던 글을 다시 올립니다.

 

 

 

1. 풍수지리에서 보는 관점

 

대(臺)자 지명의 신령하고 영험한 기도처!    시리즈 풍수르포〉 노병한과 함께하는 대한민국 명당산책-10

◆ 산(山), 봉(峰), 악(岳), 암(岩), 령(嶺), 현(峴), 치(峙), 대(臺)의 차이!
산(山)은 높낮이와는 관계없이 독립된 산을 상징한다. 산의 이름들 중에서 봉(峰)자와 악(岳)자의 차이는 악(岳)자보다는 봉(峰)자가 붙은 지명이 더 험한 지형이다.
민주지산 중에 무주의 삼도봉이나 서울의 도봉산처럼 봉(峰)자 붙으면 더욱 험한 지형지세임을 알면 된다.

한편 암(岩)자의 경우는 우이암과 관음암과 같이 산의 정상이 바위로만 이루어진 산을 뜻한다. 그리고 고개에 해당하는 령(嶺)은 국경을 방비하던 관방(關防)이 있던 곳으로 대관령, 한계령, 조령, 추풍령 등이 이에 속한다. 또 현(峴)과 치(峙)의 경우는 그 구분이 애매모호한 편이나 현(峴)에 비해 치(峙)가 다소 험한 고개다.
우리나라의 산지에 해당되는 지명들 중에서 산(山:3,017개)의 명칭이 가장 많고, 봉(峯:139개), 암(岩:130개), 곡(谷:80개), 계(溪:49개), 악(岳:44개), 구(丘:3개)의 순이다. 그리고 산지에서 기타의 지명으로 대(臺:96개), 굴(窟:20개), 덕(德:68개) 등이 있다. 한편 고개에 해당하는 지명으로는 현(峴:500개), 령(嶺:508개), 치(峙:315개), 고개(古介:3개) 등이 있다.

대(臺)자가 붙은 곳들이 신령하고 영험한 기도처!
산의 높이에 관계없이 산의 높은 봉우리를 봉(峰)이나 대(臺)자를 붙여서 쓴다. 봉(峰)자는 주로 산의 정상에 붙여지는 것이고, 대(臺)자는 봉(峰)보다는 높이가 낮은 곳에 붙여서 쓰인다.

물건을 얹는다는 의미의 돈대의 대(臺)자가 붙은 산(山)과 지명들이 대체적으로 신령한 기운들을 머금고 있어 영험한 곳들이다. 그래서 유명한 기도처들에는 대부분 대(臺)자가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산의 가장 높은 곳이 정상이다. 산의 정상부근에 대(臺)자가 붙은 지명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대(臺)자를 붙여서 쓰는 곳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산의 정상과 정상부근이 아닌 곳들도 있다.
신령하고 영험한 기도처로서 대(臺)자가 붙은 곳들을 몇 가지 찾아보자. 서울의 삼각산에는 백운대(臺)만경대(臺)가 있고, 관악산에는 은진전(應眞殿)이 세워진 불꽃바위와 함께 연주대(臺)가 있다. 강원도의 설악산에는 비선대(臺)와 유선대(遊仙臺)가 있고, 원주의 치악산에는 입석대(立石臺)가 있다. 충청도의 속리산에는 문장대(文藏臺), 신선대(神仙臺), 입석대(立石臺), 경업대(慶業臺)가 있다. 전라광주에는 무등산의 입석대(立石臺)와 서석대(瑞石臺)가 있다.
지리산(智異山)에도 문창대, 금강대, 가섭대, 영랑대, 소년대 등이 있다. 최고의 수도처로서 영험한 기도처로서 전해 내려오는 지리산의 금강대는 어디에 소재함인지 확실치는 않다. 현재 알려진 지리산의 대(臺)들 중에서 수도처로서 가장 좋은 최적지가 문수대이거나 상무주암이라고들 한다. 한편 지리산의 묘봉치 아래에 있는 묘봉대도 석축이 남아 존재함이니 한번 찾아볼 일이다.
부산에는 지명의 끝에 대(臺)자가 붙은 경관이 뛰어난 6대(臺)가 있다. 그 6대(臺)가 바로, 이기대(二妓臺), 해운대(海雲臺), 태종대(太宗臺), 몰운대(沒雲臺), 신선대(神仙臺), 오륜대(五倫臺)이다. 그 외에도 부산에는 학소대(鶴巢臺)와 동장대(東將臺=望月臺) 등도 있다.

대(臺)자는 큰 바위가 있고 바위주변에 샘(泉)이 있어야!
대(臺)의 일반적인 의미는 웅장하고 거대한 바위다. 그런데 이러한 대(臺)자의 의미가 중요함은 명산들에 소재한 수도처의 이름들에는 대부분 옛날부터 대(臺)자가 붙어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도처나 암자의 뒤쪽에는 반드시 집 한 채만한 바위나 그보다 훨씬 큰 암봉(巖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대(臺)자는 큰 바위가 있고 바위주변에 샘(泉)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의미가 부여되기도 했다.
옛날에 수도승들은 땅굴을 파고 기거하면서 수양을 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땅굴 대신에 깊은 산중에 한 칸짜리 암자를 지어 수행을 하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수행자가 거주하는 곳을 낮추어 일컫는 말로 토굴(土窟)이라 했다. 즉 토굴이란 혼자서 수행할 공간만 있는 조그만 암자라는 뜻이다. 이렇게 낮추어 일컫는 수행처 토굴을 불가(佛家)에서는 암자(庵子)와 구분해서 대(臺)라 칭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수도처로서의 대(臺)는 토굴의 다른 이름이며 토굴의 배경이 되는 바위를 가리키는 것만은 아닌 셈이다.
바위는 기(氣)를 모이게 하고 끌어당기는 힘이 대단하여 바위주변에서 수행하거나 기도를 행하면 영험하고 효험이 많다. 그래서 수도처와 기도처로서 큰 바위 주변에 대(臺)자가 붙은 지명이 많다는 것이지 반드시 큰 바위만이 대(臺)의 필수조건만은 아닌 셈이다.  nbh1010@naver.com       □글/노병한/한국미래예측연구소-소장/(사)한국도시지역정책학회-회장

 

 

2. 일반적인 의미

 

山, 峰, 岳, 臺, 德, 嶺, 峙의 차이 ...   자료 : http://blog.daum.net/candypull/16129003

 

峰이 모아져 하나의 집단을 이룬 것을 칭한다.(예: 천왕봉은 지리산의 주봉이기는 하지만, 지리산에 속한 가장 높은 봉우리 중 하나 일 뿐이다. 그러므로 여러 개의 봉우리 집단을 지리산이라 부른다)

 

집단의 객체에서 꼭지 점을 이룬 각 자의 개체를 말하는 것이다.

(예: 천왕봉.중봉.하봉.명성봉.토끼봉 등은 지리산 산군에 속해 있지만 각자의 지명(峰)을 가지고 있다)

 

岳(嶽)은 산우뚝할봉(峯)과 과 같은 뜻으로 뾰쭉한 산으로 나타내는데 차이점을 비교 해 보면 (嶽)은 암봉(바위)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를 말하고은 峰중에서도 우뚝 솟아오른 봉우리를 말하는 것으로 올라가기 어렵다(인수봉이나 만장봉 등이 있으나 국어사전에는 "峯"으로 풀이하였으나, 백과사전 등에는 "峰"으로 쓰고 있어 백과사전의 오기로 보임)

 

 는 강경대. 낙수대 경포대등과 같이 정자를 지을 수 있을 정도의 야산이나 산마루 중턱 전망좋은 곳을 뜻하는 것으로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곶(串)과 같다.

 

은 가목덕.내지덕.검의덕 등과 같이 오늘날의 고원을 뜻하나  당시에는 사용치 않았으므로 德을 고원의 개념으로 본다.

 

 

嶺.峙.峴는 고개(古介)에 해당한다.

 

는 대관령, 한계령  조령, 추풍령 등 관방이 설치되어 있던 곳과 교통상 중요한 몫을 하던 곳은 영의 명칭이 붙어 있다.

는 팔량치 .외치 .삼마치 .수유현.부황현, 등이 있으며 峙가 峴에 비해 높고 험하다.

 

따라서 嶺.峙.峴는 모두 고개를 뜻하지만  峙나 嶺은 높고 험한 곳을 말하고,서냥당 고개등 고을의 어귀를 넘나들던 곳을 고개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