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일반산 산행기

초보산꾼 서울근교 : 호암산(虎巖山 관악산) - 파란문님과 함께한 송년산행

산중산담 2013. 12. 22. 12:27

초보산꾼 서울근교 :  호암산(虎巖山 관악산)  - 파란문님과 함께한 송년산행

                          (초보산꾼 개인산행기)

 

언제 : 임진년 매듭달 스물하루 흙날

누구랑 : 파란문님, 구름재등님

어딜 :   석수역 - 한우물 - 시흥동 벽산아파트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1528 에 있습니다

 

오랜만에 파란문님과 함께 산행을 하기 위해 석수역에서 관악산 방향으로 나오면

 

다리를 건너면 들머리

 

관악역에서 올라오는 석수능선과 만나 조금오르면 보이는 넓은 공터

 

멋진 암벽이 자리하고 있는 283.7봉이 보이고

 

283.7봉에 오르면 안양시 방향으로 전망이 좋다 - 오늘은 중국발 미세먼지 주의보로 조망 포기

 

기암괴석들

 

 

 

한우물로 직진으로 가는 코스를 버리고 우회해서 계속 이어가면 작지만 소나무숲들이 계속 이어진다. 

 

오랜만에 만났기에 길어진 휴식시간... 거의 2시간이나 흘러 삼성산을 조망하면서 다시 산행은 시작되고

 

칠원성군(七元星君)  미륵존彌勒尊이라 바위에 새겨 놓았다.

 

칠보란 북두칠성을 뜻하는 말이다. 도교의 숭배 대상이었던 북두칠성은 불교에 수용되면서 칠원성군(七元星君)이 되고 북두칠성의 중심점인 북극성은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로 자리 잡았다.

 

파란문님이 찾고자 했던 약수터를 만나고

 

박현수님이 계속 가꾸고 있는 약수터인 듯하다.  성벽천1,2호 약수터가 계속 이어진다

 

계속 오르면 만나게 되는 석수능선에 있는 제2한우물

 

제2우물터가 발견되면서(1990) 많은 유물이 나왔는데 그 중 ‘잉벌내력지내미(仍伐內力只內未)…’라고 적힌 청동숟가락이 나와 연대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가로 18.5m·세로 10m·깊이 2m의 우물터로 아직 복원되진 못하고 있다.

한우물 동쪽 능선에는 호암산성이 자리잡고 있다.

통일신라 문무왕 12년경 신라가 당나라와 전쟁을 벌일 때 한강을 넘어 수원으로 넘어가는 육로와 남양만으로 침입하는 해로를 효과적으로 차단·방어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 아래에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자리하고 있는 한우물

한우물  

해발 315m 호암산 정상엔 사계절 마르지 않는 신비로운 우물이 있다. 보통 우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고 해서 이름도 한우물(사적 343호)로 불리는 네모지고 널찍한 우물은 통일신라 때 가로 17.8m·세로 13.6m·깊이 2.5m로 만들어졌다가 조선시대 위치가 조금 옮겨져 가로 22m·세로 12m·깊이 1.2m로 다시 축조됐다. 임진왜란 당시 한우물은 전시에는 군용수로 사용됐고 <동국여지승람>엔 가뭄이 일어나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한우물과 석구상 자료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8042122052&code=900306

 

한우물 위에 있는 석구상

 

석구상

설명판을 읽으면, 한우물 조사 발굴 때 석구지(石狗池)라고 음각된 장대석이 나왔고, 시흥읍지에는 호암산 남쪽에 석견(石犬) 사두(四頭)를 묻었다고 기록됐다. 이런 기록으로 볼 때 최근까지 해태상 등 다른 동물로 보아 왔던 시각은 석구(石狗: 돌로 만든 개)로 통일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무슨 까닭으로 4마리의 개를 세웠을까? 아마도 네 마리 개가 사방에서 호위하여 호암을 누르도록 한 것은 아닐까?(가능성은 적겠지만, 아니면 아마도 범에게 바친 제물이던지…)

 

 

꼬리가 인상적으로 그려놓은 석구상의 뒷모습

이 석구상은 조선왕조 건국 설화와 관련이 있다. 이 동물 석상은 경복궁의 해태상과 마주보게 해 관악산의 화기를 누름으로써 서울 장안의 화재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해태상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해태보다는 개의 형상을 띠고 있어 석구(石狗)상으로 불린다

 

호암산과 호압사 그리고 신림으로 이어지는 능선, 산복터널도 보인다 - 불영사에서

호암산(虎巖山)

관악산 서쪽에 자리한 호암산(虎巖山)은 호랑이 모양을 한 범바위(虎岩)가 있어 그렇게 불렀으며 산세가 마치 호랑이가 가는 듯한 모습이다.

이 바위 호랑이의 기세를 누르기 위해 시흥에 있던 호암사라는 절을 산 위로 옮겨 호압사(虎壓寺)라 이름 짓고 이것도 모자라 상도동 국사봉(國師峰)에 호랑이와 쌍벽을 이루는 사자를 상징하는 사자암(獅子庵)을 지었다고 한다.
결국 이 호랑이의 목표가 경복궁이므로 이를 억누르고 한양 도성을 지키기 위해 세운 것이 호압사(虎壓寺)와 사자암(獅子庵)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호압사는 다음 기회로 넘기고 칼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칼바위와 금천구

금천구(衿川區)

고구려는 금천구 일대를 ‘잉벌노현’(仍伐奴縣)으로 불렀다. ‘뻗어나가는 땅’ 또는 ‘넓은 들’이란 뜻이었다.

이후 금천구는 고려 태조 23년(940년) ‘금주’(衿州)란 명칭이 붙으면서 비로소 옷깃 금(衿) 자와 인연을 맺었다.

 

믿기 힘든 칼바위 유래

 

아까 보았던 산복터널로 이어지는 호암로 도로를 만나면서 오늘의 산행은 끝이 나고

 

날머리에서 본 칼바위

 

벽산아파트 앞 섬거리에서 1번 마을 버스를 타고 은행나무가 있는 삼거리 농협옆에 있는 오늘의 뒷풀이 장소

 

이렇게 아쉽지만 '홍어와 무인도' 카페지기님이신 파란문님과 오랜만에 만난 구름재등님과 함께한 호암산 산행을 마감한다.

 

 

                                             초보산꾼   多  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