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틀 내리던 장맛비 멎고
구름 사이로 하늘이 푸르다.
내리던 비 멎었다가 다시 내리는 장마,
그 장마 때마다 생각나는 옛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조선 중기에 정승을 지낸 유관柳寬이라는 사람이다.
“정승 유관柳寬은 성품이 청빈하였다.
그 집이 흥인문밖에 있는데, 두어 간에 불과하여도 항상 기쁘게 여겼다.
그 집은 담마저 없었다.
어느 때는 장마가 달포를 넘으므로
유정승의 집이 삼대 드리운 듯 줄줄 새었다.
유정승이 손수 우산을 받고 밤새워 지내며 부인에게 말했다.
”우산이 없는 집은 어떻게 지낼 고.“
그 말을 들은 부인이 대답하였다.
”우산이 없으면 반드시 다른 준비가 있으리다.“
그 말을 들은 유정승이 허허 하며 웃었다고 한다.
유관의 지위가 정승에 있으면서도 드나들 때에 필부와 같았고,
사람이 와서 찾으면, 겨울에도 맨발로 짚신을 끌고 나와 보았다.
어느 때는 호미를 들고 채전菜田을 가꾸기도 하였으나
한 번도 피로하게 여기지 않았다.
손님을 대할 때는 반드시 탁주 한 단지를 섬돌 위에 놓고
한 노비로 하여금 사발 술잔을 가지고 술을 드리게 하여,
서로 두어 잔 마시고 파하였다.
정승이 되어서도 유관은 교훈을 게을리 하지 아니하였는데,
많은 청년들이 청강을 하였다.
사사로이 와서 인사하는 자가 있어도 그저 턱을 끄덕일 뿐,
그들에게 누구의 자제냐고 묻지도 않았다.
반드시 친절하고 성의 있게 가르치므로,
그 문하에 학도가 많이 모여들었다.“
허균의 형인 허봉이 찬한 <해동야언>에 실린 글이다
정승(영의정, 오늘날의 국무총리나 장관)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시골 면장이나 군 의원, 또는 시의원만 되어도
이 것 저것 생기는 것이 많아서 덜컥덜컥 받아먹다가
나중에 국립 호텔에 가는 사람이 많은
작금의 현실에서 보면 우화 같은 이야기가
조선 시대 세상을 옳게 살았던 사람들 이야기이다.
고위직에 임명된 사람들치고 어느 누구 하나 구리지 않은 사람이
없어서 힘들게 날아온 직책을 고사하는 시대, 이 시대에도 희망은 있는가?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름대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고 있어서
나라가 이만큼이나마 굴러가고 있을 것이다.
가는 길은 어차피 무엇 하나 가져가지 못하는 것, 가난을 탓하지 않고서
좀 더 겸손하고, 좀 더 성실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당면한 과제가 아닐까?
갑오년 칠월 초나흘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