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서울시내 답사기

초보산꾼 답사기록 : 동국대 - (불교계 사립 종합 대학) 사진 답사기

산중산담 2021. 10. 4. 20:23

 

초보산꾼 답사기록 :   동국대  -  사진 답사기  

 

 

 

언제 : 신축辛丑년(21년) 하늘연달 10월 나흘 달날(개천절 대체휴일)

 

 

누구랑 : 초보산꾼

 

 

어딜 :  종로5가역 7번출구 ~ 동호로 ~ 동국대 ~ 창경궁로 ~ 을지로4가역   

 

 

 

          더 많은 사진은  https://blog.daum.net/kmhcshh/5523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목멱대왕을 모신 사당이 있어 목멱산, 누에의 머리를 닮아 잠두봉 등으로 불리던 한양도성의 남쪽에 위치하여 안산의 역할을 했던 남산

국사당에 조선 건국의 주요 인물들의 위폐를 모시면서 조선의 정신적 역할을 했던 남산에 일제시대 조선 신궁을 세우면서 수난은 시작됐고

해방이 된 후에도 군사 독재정권은 그들의 정권의 안위를 위한 장소로 이용하면서 지금의 국치의 길과 인권의 길로 다시 탄생했고

그런의미에서 남산 답사를 위해 먼저 청학동천과 국치의 길, 인권의 길을 걸었기에 청계천과 한강을 기준으로 남산의 동서남북을 답사한다.

 

 

 

 

남산걷기 06  :  염초장 ~ 동호로 ~ 동국대 ~ 창경궁로(서애길) ~ 을지로 4가역     다음지도

 

 

이제 남산주위 답사도 남촌을 지나 동쪽을 끝으로 마지막 답사지인 동국대를 중심으로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곳에 남아 있는 역사를 만나기 위해

종로5가역을 출발하여 청계천 마전교를 지나면서 이미 답사했던 한옥마을에서 시작하여 1시 방향 방산시장 안으로 흘렀던 필동천의 흔적을 만나보고

청계천 염초청터가 시작점인 동호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성체묘와 같은 유형문화제나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구 경성사범학교 부속소학교 건물등을 만나고

동국대에서 다시 중구청이 있는 창경궁로를 답사하면서 동평관터와 예장 소학교, 국도극장등을 답사하면서 을지로 4가역에서 마치게 된다.  

 

 

 

 

 

동국대 중문으로 들어가는 입구 도로

 

중문 입구 좌측으로 이해랑 예술관의 자연이 아름답고..

 

중문에 들어서고..   동국대가 혜화동 대학로에서 지금 자리로 이전하며 붙여진 이름일까?

 

 

박물관을 지나고..

 

동국백년비와 종각

 

종각 옆 우측에 정각원..  경희궁의 정전이었던 ‘숭정전崇政殿’이 지금은 동국대 경내에 정각원으로 남아 부처님을 모시게 되었다..

 

 

종각을 지나고..   불교학교이다 보니 종이 치고 싶은 걸까?  종을 함부로 타종하면 퇴학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니..

 

동국대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팔정도로 내려서고..    

 

 

팔정도 좌측으로  명진관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이다. 여기가 본관인줄 알았는데 아니란다..

  

‘명진’은 ‘개명진보’의 준말로 지혜를 계발해 문화가 발달돼 결과적으로 발전을 이룬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팔정도 광장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행해야 하는 여덟가지 수행방법을 상징한다고..  그래서 중심으로 8개의 길이 뻗어져 나가는 구조라고..

 

코끼리의 모습을 보니.. 새벽에 코끼리들이 깨어나 캠퍼스를 청소한다는 전설적인 얘기가 나올만 하다는 생각..

 

석가여래상 뒤로 마지막으로 담아본 명진관

 

팔정도를 지나면 본관 우측으로 만해 한용운 시비가 보이고..

 

 

조금 내려오면.. 만해광장

 

만해광장 안쪽에 동우탑이 있고 몇 분의 흉상이 보인다..

 

만해광장을 나오면..

 

학생회관 방향으로 내려오면..

 

동문중 이계산 할머니의 장학금으로 건립한 건물이라 붙여졌다는 계산관A동 옆에 동악시단 비가 세워져 있다.

 

 

동악시단..  동악은 이곳에 살았던 이안눌의 호이다.  

 

원래 바위에 세겨진 동악선생시단은 잠시 옮기면서 쪼개지는 바람에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고..

 

답사를 마치고 후문으로 탈출하여 서애로로 해서 계속 답사를 이어갔다.

 

남산아래 위치한 관계로 고도제한이 걸려 있어 특정 높이 이상 올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세워진 고만고만한 건물들이 오히려

속세에 불심을 전하고자 하는 맘과 닮았다는 생각으로 문을 나셨다..

 

 

                   초보산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