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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산꾼 답사기록 : 서소문로(중구) 사진 답사기 작성 중

산중산담 2022. 6. 7. 00:06

 

초보산꾼 답사기록  :  서소문로(중구)   주위  사진 답사기

 

 

 

언제 :  임인壬寅년(22년)  6월 06일  월요일(현충일)  

 

 

누구랑 :    초보산꾼

 

 

어딜 :   서소문로(중구)   주위

 

 

 

 

서소문로(중구)   주위

 

 

 

유림면  서소문동 16     3대째 영업을 이어오고 있는 메밀국수 전문점

 

이황집터..  한신빌딩 앞      서소문동 47-2

 

베재학당    제1회 전국체육대회 개최지였다고 한다. 

 

 

고려 삼계탕    서소문동 55-3     1960년 우리나라 최초의 삼계탕 전문점을 개업

 

 

시위병영터    중앙일보 사옥 앞    서소문동 58-9

 

맞은편에서 본 시위병영터..  

 

 

소의문터..  삼성생명 정문 길 맞은편 주차장..    중구 서소문동 58-9  주차장 앞

문을 복원하지 못한 두개중 하나로 소덕문이란 표지석에서 소의문으로 바꿨다는 내용도 보인다.

 

맞은편에서 본 소의문터 표석

 

 

이충순자결터    삼성생명 서소문 빌딩 입구 옆..  순화동 7 

 

 

평안교회와 교회앞에 수렛골 표지석이 있다.    서울미래 유산인

평안교회   순화동 6-9    중구 서소문로 89-11   

이북 피난민이 모여 시작된 교회로, 건물은 적벽돌의 고딕양식이라는 건축적 가치를 갖고 있으며, 종각 동판이 예배당의 묵직한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평안교회 담 한쪽에는 옛날 숙박시설이 많고 수레가 많이 모였다고 해서 붙여진 ‘수렛골(차동)’ 이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동화약품에서 본 평안교회

 

 

이화고려정도 문을 닫고..

 

 

 

동화약품 건물   순화동 5-1   중구 서소문로9길 14

1897년 동화약방에서 시작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제조 및 제약회사인 동화약품의 본부가 있는 곳이다. 최초의 제약기업으로 설립된 곳이며 대한민국 최초의 신약 ‘활명수’를 개발한 회사로서 대한민국 제약산업의 산역사의 장소이다.

 

 

활명수로 유명한 동화약품에 무슨 일이??

 

 

 

동화약품 좌측..     동화약품    중구 순화동 5-1

덕수궁 롯데 캐슬 아파트를 빙돌아 가면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내 연락 거점 역할을 했던 서울 연통부지 표지석이 있다.

 

서소문 교차로

 

 

서소문역이 있었다는 서소문 건널목     자료참조   http://www.junggu.seoul.kr/tour/content.do?cmsid=15006&keyword=&contentId=3805&order=&gotoPage=41

서소문역(西小門驛)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미근동에 있던 경의선의 철도역으로, 현재는 폐역되어 철거되었다. 경성순환열차가 정차하였다. 역이 있던 자리는 서소문건널목으로 바뀌었다.

 

 

 

미동초    미근동 36-1       1896년 5월 1일 개교했다고 하니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이다.. 

자료 :     https://blog.naver.com/etoile1016/222591908449

 

건널목을 건너 서소문로 방향으로 이교터..

 

이교(圯橋) 합동 16번지   낟더쌔임    서소문공원 북쪽에 있었으며, 흙다리[圯] 또는 헌다리라고도 불렸다.

자료 :  기계유씨(杞溪兪氏)포럼 | 충정로 카페 [낟더쌔임] : 반송방 흙다리 자리 - Daum 카페

 

 

교각밑은 물결처럼 해 놓았는데 이 밑으로 만초천이 흐르고 있음을 알려 주는 듯도 하고..

 

상수도 사업소 지나 한블록 더 가 우측으로 민영환 집터..  공사중인데 옛 모습도 사라질까?

 

 

민영환 집터    주한 프랑스 대사관    합동 30    충정로   

  1961년 건축..   한국을 대표하는 근현대건축가 김중업의 대표작 주한 프랑스대사관은 당시 시대 상황에서 보면 문화 충격을 준 하나의 큰 사건이었다. 특히 주한 프랑스대사관은 외국 공관이지만 이 땅의 장소성과 한국 건축의 정체성을 표현하려 하였고, 그 결과 우리 문화의 자긍심과 자부심을 자신만의 건축 언어로 걸출하게 표출하였다. 비록 한국 전쟁 상흔이 치유되지 않았고 물질적으로 빈곤하였지만, 한국 건축의 정신이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언덕 위에 절묘하게 사뿐히 앉았다. 당시 건축에 대한 문화적 인식이 부족함에도 건축은 예술이고 중요한 문화예술 행위임을 실천하여 보여준 의미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 배병길(배병길 도시건축연구소 대표)    자료 :  [건축유산] 우리가 지켜야 할 남은 유산 목록 (vmspace.com)

 

 

         초보산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