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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돌 대장님 : 한강기맥 7 구간 - 비박산행의 열정과 한계를 느끼다

산중산담 2013. 7. 20. 17:03

한돌 대장님과 함께한 한강기맥 7구간 - 먼드래재에서 청량산까지

                              

날짜 : 계사년 열매달 스물하루 ~ 스물이틀 흙날, 해날

누구랑 : 한돌대장님과 지맥 식구들

어딜 :  먼드래재 - 운무산 - 덕고산 - 구목령 - 청량산 - (춘천지맥) - 하뱃재

 

 

얼마만인가? 비박산행..

총각때 친구 등살에 밀려 몇 번 강원도 땅을 밟아 보긴 했지만 아주 먼 얘기이고...

이젠 비박이 아니라 무박 자체도 그리 가고 싶지 않은 산행이지만

어차피 나혼자 할 산행이 아닐거라면 함께 할 수 있으면 그저 좋은 것 아닌가?

집사람도 함께 했으니 끝까지 완주를 함께 하라고 용기도 주고..

해서 어렵게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준비하신 한돌대장님을 믿고 길을 떠나 본다.

 

한강기맥 전체 등로

 

횡성과 홍천땅을 경계삼아 걸어온 지난 구간 이제 평창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한강이 마르지 않도록 하며 지금까지 유구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지켜준  고마운 산줄기가 있으니

비록 오대산이란 큰 산에 기대어 양수리까리 끝없는 맥을 이어 준 한강기맥이지만

그 곳을 걸을 수 있다는 것만도 가슴이 벅차다.

 

한강기맥 7구간

 

먼길을 걸어야 하는 만큼 일찍 출발해야 한다는 대장님의 지시에 첫 차로 홍천에 도착하여 서석행 버스로

 

다시 서석버스터미널에서 원주가는 버스로 갈아타고 - 시간이 착착이다. - 한돌대장님 덕분...

 

정확히 20분 걸려 도착한 먼드래재

먼드래재 (원령)  (서석면 청량리)    좌 : 홍천군 서석면   우 : 횡성군 청일면

운무산에 너머에서 만나게 되는 원넘이재의 삼년대라는 이름처럼 이 고개에서 원님이 3년간 있으면서 넘어 다닌 고개라하여

遠嶺이라 불렸는데 한자음으로 바꿔 먼 (遠) 으로 바뀐 듯 하다

원등령’이라고도 하며 정상에 서낭당이 있었다고 한다.

 

이정표가 있는 첫 봉에 오르고

 

첫 봉에 오르면서 그렇게 정맥길에서 항상 힘 안들이고 올라가시던 드레곤님이 갑자기 힘들어 하신다.

언제나 처럼 이번에도 첫 걸음에 항상 긴장이 있으니 그러려니 하고

그간의 드레곤님의 실력을 알기에.. 본인은 힘든데...

우리는 전혀 걱정 않고 계속 이어간다

 

내촌과 상근암으로 갈리는 네거리 안부 - 이 때 까지만 해도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삼근암 갈림길 - 홍천군 서석면 청량리

커다란 바위의 무게가 무거울 것이라 생각하고 달아 보았는데 왠걸? 세근밖에 안 나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속실리로 이어지는 계곡에 있는 능현사가 보인다.

능현사 하산길 이정표(306봉 삼거리)   횡성군 속실리 내촌 능현사

해발 980m의 운무산 자락에 위치한 이곳은 횡성군 청일면 속실리 `금광골마을(이장:최계규)
금광골마을은 주막거리, 다락골, 안말, 국사랑, 본말, 황정골, 벌막골, 밤나무골 등 8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골짜기 안에 있다, 또는 산이 깊은 곳에 자리해 있어 속실리라 불리었다고 한다. 

 

당겨본 능현사 가람

운무산 촛대바위봉으로부터 치맛자락을 펼쳐놓은 듯한 치마바위와 촛불을 밝히고 정성을 드리는 여인네 형상을 하고 있는 이마을은

산이 높고 계곡이 좋아 흐르는 물이 전국에서 제일 맑고 깨끗해 물공장만 2개가 있을 정도로 청정함을 자랑한다
60여년 전인 일제강점기에는 금이 많아 광부는 물론 주막과 상가가 형성돼 200가구 이상이 거주하는 등 큰 마을을 형성했었다.
속실리가 금광골마을로 불리게 된 것도 이즈음이다

 

운무산이 구름대신 바위를 두르고 있다

속실리에는 쌍둥이가 8가구나 되는 등 다른 마을과 달리 유난히 쌍둥이를 둔 가정이 많아 이웃 마을주민들로부터 쌍둥이마을로 불리기도 한다.
김영기 노인회장은 “음의 기운이 있다고 알려진 운무산의 영향인지 우리 마을에는 쌍둥이가 유독 많았다”며

“지금은 물론 예전에도 쌍둥이 형제가 많아 자녀가 다복하다는 말을 듣곤 했다”고 전했다

http://www.kwnews.co.kr/nview.asp?s=501&aid=211041100112

 

운무산

운무산(雲霧山 980.3)

항상 구름과 안개가 걸쳐 있는 것 같은 산인 운무산는 정상부위에 항상 구름과 안개가 끼어있는것처럼 보인다하여 붙여진이름이고

율무성이라고도하는데 세종대왕 신하들이 피신했다는설과 옛날 진나라 마지막왕 태기왕이 신라의 박헉거세와 세력다툼을 하다가

태기산 전투에서 패하여 운무산으로 철수하였다는 전설이전해오는산이기도하다.

 

드래곤님과 통화해 보니 도저히 진행이 불가하다고 하고...

이미 벌어진 차이만큼 다시 되돌아가기도 어렵고, 다시 빨리 회복되기만을 기다려야 할 뿐..  점심을  해결한다.

 

송암봉인가? 멋진 소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황장곡과 삼년대 갈림길이 있는 원넘이재

원넘이재 - 횡성 황장곡   홍천 삼년대  이정표

북쪽 청량저수지로 내려가는 삼년대는 옛날 이곳에 원님이 휴양 차 와서 3년간 있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부락이름이다

특히 원님이재 고개의 경우, 벌막 위에 있는 고개로 원님이 넘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설에 의하면, 난리 때 원님과 애기라는 기생, 그리고 중이 함께 피난을 가다가,

눈물고개에서 원님은 피난 길이 한스러워 눈물을 흘렸으며, 중소에서 중이 빠져 죽었다고 한다.
애기소에 이르러 원님이 애기를 나두고 가려고 “이 소를 건너면 데리고 가고, 그렇지 못하면 데리고 가지 않겠다”고 하자,

애기는 따라 가고 싶은 마음에 건너 뛰다가 소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이후 원님은 성골에서 3일을 머무르다가 원님재를 넘어 홍천 삼년대로 갔다고 한다.

 

진행하다 가장 중요한 버너가 없는 걸 알고 일단 비상수단으로 삼겹살로 기다려 본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흘러도 드래곤님은 올 수 없다 하고...

그러나 저러나 시간은 많은데 밥은 어떻게 해 먹나?

이제 다시 되돌아 가기에는 너무 멀리와 버린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힘들어도 전진하는 수 밖에..

다행이 비상 식량으로 최고임을 증명한 누룽지가 있으니...

 

계속되는 거리 이정표를 벗 삼아 걷고 있다  - 봉북산 갈림봉인 1,038m봉

봉복산(鳳腹 1034 ) 갈림길(1038)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과 홍천군 서석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산이다(고도 : 1,034m). 산세가 봉황을 닮아 봉복산이라 한다.

산의 뒤쪽에는 봉복샘이 있는데, 남한강의 지류인 섬강의 발원지이다

신라때 봉복사라는 절에 한남대라는 스님이 처음으로 이곳을 개척해 살았다 하여 스님의 법명을 따라 한남대란 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이제 덕고산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 그런데 덕고산까지 왜 이리 먼거야, 거리 이정표 맞아?

 

덕고산 - 그런데 한돌 대장님 울고 있는 거야 웃고 있는거야?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덕고산德高山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홍천군 서석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708m). 봉복사라는 절에 '덕고산 봉복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어 산 이름이 붙여졌다

덕고산과 관련된 전설은 다음과 같다. 산자락인 현천3리 배바우에 어떤 사람이 묘를 썼는데, 사유(四乳)인 후손이 태어났다고 한다.

사유는 성인군주로 불리는 중국의 문왕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 사유를 갖고 태어난 후손은 누군지는 몰라도 크게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덕고산 중턱에는 낙석대 폭포가 있다. 폭포의 수원지는 평창군과 분수령이 되는 덕고산 정상에서 흘러내는 성골물이다.

태기궁이 있을 때 왕궁 귀족들의 낚시터였다고 한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청룡면 남산리와 둔내면에 소재하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덕고산 [德高山, Deokgosan]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2008.12, 국토지리정보원)

 

 

이정표에 500m라고 했는데, 거의 40분이나 걸렸다.

아무리 우리가 힘들게 올라왔다고는 하지만 이번구간 아무래도 거리표시가 좀??

하지만 이번 구간은 주인은 가만이 있는데 객들이 더 떠드는 것 같은 형상이다.

주인인 덕고산은 넉넉한 품으로 가만히 이렇게 순한 모습으로 있는데

객들인 암봉들이 오는 길목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어 이리 돌고 저리 돌고,

거기에 잡목까지..

 

태기산 갈림봉이기도 하고 영춘지맥의 한강기맥 구간의 시작점이기도 한 삼계봉

삼계봉(1105)

영월(영춘)지맥 분기점으로 홍천, 평창, 횡성으로 나뉜다.

태기산은 횡성에서 가장 최고봉으로 삼한시대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산성을 쌓고 최후의 항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진 명산이다


 

계속 이어지는 산죽기간

 

원넘이재를 지나면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던 산죽길이

진행 할 수록 산죽의 크기가 허리와 크기를 재자고 하고

여름내내 무척 자란 잎 새들이 무성하여 이제 산길마저 모두 삼켜버려

보이지도 않는 산길을 더듬 듯 진행하고

거기에 어둠에 잡목까지 덩달아 눈앞에 어른거리며 친구하자 하고  

거기에 또 왜이렇게 바람이 부는지...

조용히 옆에 서서 지켜보야만 할 싸리나무 같은 나뭇가지들 까지 흔들어 앞 길을 막아서고

비박에 더욱 높아진 배낭마져 가는 길에 또 다른 힘든 여정을 만들어 준다.

한가위 조금 지난 달밤에 달님을 보며 소원이라도 빌어 볼까 내심 작심도 했건만,

달은 또 구름속에 가리어 좀 처럼 나오지 않고

 

드뎌 구목령

 

이젠 조금이라고 빨리 자야 한다 - 잠이 드니 새벽 01시

 

4시에 다시 일어나 준비하고

 

구목령 들머리

 

헬기장도 지나고

 

삼각점이 있는 봉

 

어제 새벽부터 지금까지 먹은 것이 하나도 없는데,

대장님은 얼마 안남았다고 자꾸 진행하자고 하고...

어제 새벽 00시에 도착하여 우선 쉴겸 잠자두는게 급하지 먹는게 급하지 않았었다.

다시 새벽에 일어나 다시 시작된 산행도 아직 여독이 먹는 것 자체를 생각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오르다 보니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갑자기 배가 고파 도저히 진행이 안된다.

대장님은 조금이라도 민패를 줄이기 위해 이미 상당한 거리를 두고 이미 진행한 상태이다 보니

단둘이 진행하는데 그렇다고 나 혼자 밥을 먹을 수 도 없고.. 

난감 그 자체...

게다가 대장님은 헨드폰까지 잃어 버린 상태이고 보면

누구하나 알바라도 하면 정말 대책이 없으니 죽어도 따라 가야만 했다.

배고픔의 설움?

알란가 몰라...

대장님도 생각보다 늦어지는 나를 걱정하여 잠시 쉬고 있었다.

이산 가족이 되지 않은 것만도...

오늘의 최고 식품인 누룽지로 허기진 배를 잠시 체워본다.

 

장곡현

 

늦은 아침을 해결하고 출발

장곡현

강원 평창군 봉평면 흥정리

강원도 봉평면 흥정리와 홍천군 서석면 생곡리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 골짜기가 길다 하여 "장곡현" 이라 한다.

또한 장골마을에서 평창군 봉평면으로 가는 고개라 하여 “장곡현”이라 했다.

이효석의 이야기는 다음 구간에 만나기로 하고

 

이제 한결 여유로운 모습이신 대장님 한 컷하고

 

청량봉

청량봉 淸凉峰 1052m

평창 봉평과 홍천 서석면의 경계이며 영춘지맥과 춘천지맥의 갈림봉으로 대단한 역활을 담당하고 있는 봉우리

신상경표 저자 박성태님이 이런 중요한 역활을 하는 무명봉에 서석면 청량리의 지명에서 청량봉을 붙였다고 한다.

 

춘천지맥의 갈림봉이기도 하다 - 우리도 춘천기맥인 하벳재으로 하산

춘천지맥

춘천지맥이란 한강기맥 상에 있는 청량봉(1,052m)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하뱃재로 고도를 낮추다가

다시 솟구쳐 응복산(1,103 m), 백암산(1,099m), 가마봉(1,192m), 소뿔산(1,118m), 가마봉(925m), 매봉(800m), 가리산(1,051),

대룡산(899m), 응봉(759m), 연엽산(850m), 꼬깔봉(421m), 봉화산(515m), 새덕봉(488m)을 거쳐

춘천의 경강역 뒤편 북한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125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삼각점이 있는 650봉

 

하뱃재가 보이고 - 서석으로 가는 도로

 

하뱃재 바로 앞에 있는 율전삼거리를 배경으로

 

율전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도로를 건너 수퍼옆 두번째 집앞에서 직행버스를 15:00 정도에 타고서 홍천에서 오늘의 산행을 마감한다.

 

한강기맥은 오대산이 가까워 질 수록 큰산을 이루다 보니

당연히 산이 높으면 그만큼 그림자도 넓으니

그러면 당연히 사람이 먹고 살만한 것이 무엇이 있으랴...

사람이 없으니 고개도 없었을 것이고....

게다가 산줄기가 동서로 걸려 있어,

강원도로 갈 수록 고개가 적어지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문명의 세대에 살고 있는 지금도

우리가 접근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를 수 밖에 없다.

 

한돌대장님이 얼마나 많은 생각 끝에 생각해낸

비박에 의한 산행도 그래서 나온 작품인데

그저 현실은 현실일 뿐,

현실을 인정하기까지 대장님의 마음을 뒷풀이 장소에서 들을 수 있었다.

 

안타깝지만 계획은 계획일 뿐,

물리적인 거리 만큼이나 마음까지 멀어진 것은 아니었음을

대장님이 청량봉에서 춘천지맥으로 새로운 의미를 찾는 것에서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언제나 가야할 산을 가고 있고,

남겨진 길도 또 가야할 산으로 생각했으면 하는 맘...

 

대장님과 함께 힘들지만 한번 이루고자 했던 비박 2일의 산행은 실패로 끝났지만

조금 길어진 산행기를 쓰는 것도 함께 하면서 느꼈던

산행중에 벌어 질 수 있는 팀원들 간의 사소한 일들이 얼마나 크게 느낄 수 있는지,

또 조금만 상대를 생각해 주면 없는 힘도 나오는

그런 소중한 기회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 좋았습니다.

 

아픈 다리를 끝까지 최선을 다해 보려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시고도

다음날 우리가 산행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신 드래곤형님과 상큼님의 배려가 고맙고

끝까지 중심을 잃지 않으시고

이틀동안 아무 탈 없이 진행할 수 있게 해 주신 한돌대장님 감사합니다.

 

 

                           초보산꾼        多    小

 

 

 

         ---------------     자료   --------------

 

“봉복산 돼지우물, 이곳이 바로 섬강의 발원지입니다.”
횡성군 청일면 김영배 면장과 주민들은 최근 횡성군 청일면 속실리 봉복산 970m 지점의 돼지우물을 정비하고 이곳에 섬강 발원지 표지판을 설치했다.
주민들은 이를 위해 지난 5월 봉복산 일대를 사전 답사했으며 전문가들과 함께 역사, 지리학적 측면에서 심도있는 논의 끝에 봉복산 돼지우물을 섬강 발원지로 결정했다.
봉복산 돼지우물은 원주시 부론면 흥호리의 남한강과 섬강의 합수지점으로 부터 103.5㎞ 떨어진 곳으로 산돼지가 물을 마시기 위해 파 헤친 곳에서 샘물이 났다는 데서 유례하고 있으며 사계절 물량이 한결같고 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http://www.kwnews.co.kr/nview.asp?s=501&aid=209111700122

 

 

영춘지맥 [寧春枝脈]
한강기맥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춘천의 경강역 앞 북한강까지 가장 긴 지맥이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영월의 태화산 앞 남한강
까지 가장 긴 지맥이 이어진다.
그 두 지맥과 함께 지맥이 갈리는 한강기맥의 청량봉-장곡치-구목령-삼계봉 구간을 합하여 가칭 영춘지맥이라고 부른다.
(공식적인 이름은 아니고 처음 그 산줄기를 진행하신 박성태님이 영월과 춘천을 잇는다 하여 그렇게 이름을 붙임)
도상거리 약 270여km, 춘천쪽 북쪽지맥은 새덕봉, 봉화산, 고깔봉, 대룡산, 연엽산, 가리산, 매봉, 소뿔산, 가마봉, 백암산, 응봉산
등 주로 강원 오지지역을 지나가고,  영월쪽 남쪽지맥은 태기산, 치악산, 감악산, 용두산 등 유명한 산들도 있지만 덕고산, 봉화산,
풍치산, 가창산, 삼태산, 국지산 등 주로 야산을 지나 태화산에 이르게 된다.

태기산과 덕고산 이정표

태기산은 횡성에서 가장 최고봉으로 삼한시대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산성을 쌓고 최후의 항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진 명산이다. 횡성군 둔내면과 청일면, 평창군 봉평면, 홍천군 서석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태기산 정상엔 길이 약 1㎞의 태기산성과 태기산성비가 있다. 산성 주변에는 허물어진 성벽과 집터, 샘터가 남아 있어 등산객들의 발길을 잠시 멈추게 한다.

태기산과 태기왕
만현처사립(晩玄處士立)
그리고 삼계봉은 영월지맥 분기봉으로 태기산(1,259m), 매화산(1,084m), 치악산 비로봉(1,282m), 태화산(1,027m)을 끝으로 영월 아래의 한강으로 끝을 맺는 산줄기를 가르는 봉우리 이기도 하다. 언제 걸어볼 수가 있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구미가 땡기는 곳이기도 하다
태기산은 평창군 봉평면과 횡성군 둔내면에 연해 있는 해발 1261m의 산으로 이 산꼭대기에는 태기산성이라고 불리워지는 성터가 남아있고 이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부족국가시대에 왕 태기가 춘천지방에서 다른 부족에게 쫓기어 원주로 옮겼다. 이에 세력을 회복하기 위해 강릉지방의 최후의 결판을 낼 전투를 하려고 봉평 德高山(즉 태기산)에 자리를 차지하여 산성을 쌓아 만들고 병마를 훈련시켰다.

태기왕의 부하 중 와의 두 장군이 있었다. 삼형제 장군은 삼형제봉에 진을 치고 군사 3백명으로 일대를 이루고 호령 장군은 호령봉(현 會令峰)에 군사 5백명으로 진을 벌이고 있었다. 마침내 진부면 도주골(현 道師里)로부터 예국의 대국이 쳐들어 와 호령장군과 그 밑의 군사들을 전부 멸하고 태기산으로 몰려 왔다. 이러한 소식에 접한 삼형제 장군은 진을 버리고 군사를 몰아 태기산성으로 달려 갔다.

그러나 산성이 함락되고 전세가 돌이킬 수 없는 것임을 알고는 태기왕을 데리고 산성을 벗어나 급히 피난을 하였다. 태기왕은 워낙 당황하였는데다 적군의 추격이 급하여 피난하던 중 玉 臺(현 안흥동)에서 옥새를 잃어 버리고 王 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人(현 綿溫)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미 王을 호위하던 군사들이 전멸하여 더 이상 어찌할 수 없게 되자 삼형제장군은 단신으로 왕을 모시고 白玉浦(백의 장군이 왕의 옥체를 업고 물에 빠졌다 하여 백옥포라 부름)에 투신하여 최후를 마쳤다. 태기왕에 얽힌 또 하나의 지명은 왕이 無日里(현 武荑里)에 이르렀을 때 해가 저물었다 하여 무일리라 불렀는데 후세에 해가 없는 마을은 있을 수 없다 하여 무이리로 고쳤다. 한편 횡성군 둔내면에도 태기왕에 관한 전설이 있는데 이것은 봉평면의 것과는 다소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옛날 삼한의 한 나라였던 辰韓이 새로이 힘있게 나타난 신라와 투쟁을 계속하던 중 三浪津 전투에서 대패하게 되었는데 이 때가 신라는 한창 흥기할 때이고, 진한은 태기왕이 정권을 잡고 있을 당시였다. 삼랑진 전투에서 대패하고 국토를 빼앗긴 태기왕은 패잔병들을 이끌고 이곳 덕고산에 와서 분노와 한을 안고 재기의 노력을 하였다. 그는 실지 회복을 노리며 군사로 하여금 성을 쌓게 하고 화전을 개간하며 군대를 훈련하기를 4년간 이나 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이 신라에 염탐되어 신라군의 재추격을 받게 되었다.

진한군은 이 산성을 거점으로 신라의 대군을 맞아 싸웠으나 끝내는 또 참패를 당하였으며 진한도 멸망하고 태기왕도 덕고산에서 최후를 마쳤다. 이 뒤로부터 태기왕의 이름을 따서 덕고산을 태기산이라 부르고 그 성터를 태기산성이라 이름하였다는 것이다.

https://www.yes-pc.net/information/happy034.asp
 

 

구목령九木嶺

홍정리 홍정계곡

 

옛날에 구목령으로 올라가는 골짜기 중간에 마씨 내외가 살았다. 마씨 내외는 백발이 성성하게 늙도록 자손이 없어 자식같이 키우는 말 한필을 데리고 살았다. 어느날 그 말을 강가에 매어다 놓고 두 내외는 집에 들어 앉아서 한탄을 했다. 백발이 찾아와 죽을 날이 머지 않았는데 후대를 이을 자식이 없으니 어떡하나 하면서 한탄하고 있는데 , 갑작스럽게 하늘이 캄캄해지고 뇌성벽력이 떨어지면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뒤늦게서야 강가에 매어놓은 말이 생각난 노부부는 자식같이 여기는 말을 비맞힐 수야 없지 않겠느냐면서 폭우를 무릅쓰고 말을 데리러 나갔다. 노파가 말렸지만 노인은 듣지 않고 기어코 나갔다. 밤이 새도록 노인도 말도 소식이 없었다.
새벽이 되자 폭우로 방문턱까지 물이 찼다. 이무 소식이 없자 노파는 아직 물에 잠기지 않은 바위에 올라가 휭하니 둘러 보았다. 그러나 노인과 말은 온데간데 없고 홍수만 흘러갈 뿐이 었다. 노파는 더 바랄 것이 없다 하고 물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그 후로 이 바위를 망정암, 노파가 물에 빠진 곳을 망정소라 부르고 있다. 그뜻은 노파가 노인과 말과 함께 살던 정을 생각해서 일편단심을 물 가운데에 던졌으므로 그 정을 바라본다고 하여 망정암과 망정소라 한다.
노인이 죽은 혼령은 구목령이라는 곳에 올라가서 산신령이 되었고, 노파의 혼령은 마고산의 모고봉에 올라가서 마고산 신령이 되었다 한다.
그리하여 산삼캐는 심마니들이 꿈을 꾸어 하얀 할머니가 나타나면 삼을 많이 캔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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