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일반산 산행기

초보산꾼 서울근교 : 관악산 (시산제) - 경복궁과의 인연을 만나봅니다

산중산담 2012. 3. 17. 12:52

초보산꾼 서울근교 : 관악산 (시산제)

(도덕산 개인산행기)

 

날짜 : 임진년 삼월 열아흐래

누구랑 : 3450온누리 산악회 산우님과

어딜 : 관악산 사당역 6번 출구 관음사 코스

 

 

시간에 맞춰 나가보니 출구에서 은비령님과  바람꽃님이 반갑게 맞아 준다.

정기산행은 처음이라 모르는 분이 많을 것인데 어찌됐든 처음부터 항상 대간길에서 만나는 분들이 맞아주니 너무 반갑다

누구나 새로운 얼굴을 대할 때면 뻘쭘하기 쉬운데, 시작이 기분을 좋게하고, 날씨도 좋으니.....

모든 분들이 간만에 만나는 듯  얼굴에 행복이 가득차 있고.... 

 

                                        

사진 : 바다사랑님

 

그렇게 사당역 팀의 정기산행은 시작되고.... 

                                            사진 : 바다사랑님

 

관악산 초입에서 관음사 방향이 아닌 새로 길을 낸 듯한 관음사 둘레길이라 적혀진 길을 따라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한참오르니 선유천이라는 샘을 만나고 잠시 휴식

 

헬기장으로 오르는 길에 만난 돌탑 작품 (사진:http://blog.daum.net/micropsjj/17038697)

             

사진 : 바다사랑님 

 

 

관악산(冠岳山629m)은 서울시민에게는 없어서는 안되는 산이다. 그러나 관악산이 조선역사 이래로 핍박아닌 핍박받은 사연을 알면 새롭게 보일 것이다

命에 성공한 이성계가 새롭게 나라를 세웠으니, 漢陽遷都를 단행하여 수도도 옮기고, 또 궁궐도 새롭게 만드려야 하고...

그래서 나온 작품이 경복궁景福宮인데,

지금이야 높은 건물이 서울 전체를 도배하다시피 한 탓에  경복궁에서 관악산이 잘 안보이지만, 옛날에야 얼마나 잘 보였겠는가

경복궁의 정문을 열면 정남쪽에 보이는 관악산이, 하필이면 봉우리가 불꽃 형상의 풍수적으로는 화산(火山)에 해당한다고,나라를 건설하는데 크게 일조한 무학(無學)대사가 화기설을 주장하니 참으로 이일을 어찌 할꼬??

 

관음사 코스 중 처음 만나게되는 국기봉과 나란이 친구하며 헬기장에 도착하고...

우리가 들리지 못한 선유천 국기봉   사진 보물상자님

 

 

 

 

사람이 모르면 그냥 지나갈 일도 알고나면 괜히 찝찝한 것이 미신인데, 지금도 세상사가 미신을 완전히 무시 못하게하는데,

하물며 새로운 나라를 정말 훌륭히 백성을 궁흘이 여겨 만 백성을 편하게 할려고 하는데, 요놈의 관악산이 눈엣 가시라

그래 연주암도 지어주고, 숭례문 현판도 세로로 새워놓고,남지南池라는 연못도 만들고....(자세한 내용은 아래글 참조)

어메 바쁘다 바빠, 그놈의 관악산때문에.... 잠 못이루는 밤이구나??  나랏님도 힘드네... 임금도 못해 먹겄다  ㅋㅋㅋ

 

헬기장을 지나면서 본 능선에 합류하게 되고...

낙성대 갈림길을 지나니 하마바위가 육중한 몸으로 관악산의 정기를 받으며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물먹는 하마는 아니겠지?  관악산에 물이 많은 걸 보면 .......

 

 

 

이때 천금같은 말을 듣게 되니, 조선의 또 다른 개국 공신 정도전鄭道傳의 한마디 :"도성과 관악산 사이에 다행히 한강이 있어 관악산의 불기운이 물을 건너올 수 없아옵니다"

이왕이면 좋은게 좋은거,,,,, 역시 리영희 교수님의 말씀처럼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아야 하는 법.

그래서 경북궁이 지금의 백악(白岳 : 북악. 지금 청와대 바로 뒤쪽에 있는 산)의 남쪽 기슭에 터를 잡게 되었다

이제 두다리 쭉 펴고 잠 한번 실컷자야지..... 나랏님도 자야 일을 하지......

 

요런 맷돌같은 바위도 만나고

 

 

 

세상사 참 내맘대로 안되더라... 나라 일도 마찬가지 인가 보다

한강만 믿고 덜컥 경복궁을 지었는데 1,2차 왕자의 난에, 사육신의 세조 반정, 임진왜란에 병자호란까지...애고 무학대사의 화기설을 믿을 걸 그랬나???

이를 보다 못한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때 돌로 해태를 만들어 광화문 앞 양쪽에 배치하였고 관악산에 우물을 파서 안에 구리로 만든 龍을 넣음으로서 火氣를 방지하였다나 어쨌다나....

 

앞에 보이는 연주대를 향해 열심이 때로는 힘들게 오른다 사진 : 바다사랑님

 

 

우리는 지금

이렇게 알게 모르게 핍박받은 사연을 안고 있는 관악산의 정상을 향해 열심이 걷고 있다.

 

사진 : 바다사랑님

 

어느새 도착한 마당바위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한바탕 놀아본다.

 

사람이 없을 때야 마당같이 보이겠지만, 사람이 너무 많으니 마당바위가 마당노릇을 못하고 있다

 

 

 

먹고 즐기는 동안에 나는 아침먹은게 소화가 덜 되어, 등산로에서 약간 벗어난 봉우리에 올라보니

군에서 설치한 벙커 윗 부분이 전망대의 역활을 해주어 잠시 시원한 바람을 즐기며 서울 시내를 구경해 본다.

 

땅 속 에서는 새찬 한겨울의 추위도 넘기고 작은 생명이나마 마음 껏 소망을 안고서 꽃잎을 준비하고

나뭇가지를 얼싸안고 춤을 추는 봄바람의 입김마져도 우리 여산우님들의 마음의 창을 노크하며  곁으로 다가온다

역시 봄은 여심의 계절이다.

                                                                                                           사진 : 바다사랑님

 

바람나부끼면 나부끼는데로 바람불면 바람부는 데로 순응할 줄 아는 숙녀

비가와도 눈이와도 달만 떠 있어도 사색과 웃음에 젖어 버릴 줄 아는 숙녀

우리 여산우님 모두 숙녀분들 이십니다.   화이팅 !!!!

                                                                사진 : 윤서님

 

 

이제 우리는 요렇게 멋있는 능선을 버리고.... 조금 밀린다는 이유로  ㅉㅉㅉ    사진 : 바다사랑님

 

우회길로하여

 

 

이미 선발대가 무거운 짐을 지고 먼저 자리잡은 시산제의 장소 절터인 법당지에 도착하고...

                                                                                                   사진 : 보물상자님

 

선발대 고맙습니다. 덕분에 편이 왔습니다.                          사진 : 보물상자님

 

시산제는 시작되고  사진 : 보물상자님

 

사진 윤서님 

 

산악인 선서도 하고... 아직도 손발은 맞추지 못하는 산우님들                       사진: 보물상자님

 

 

시산제는 한해의 무사 산행과 안전, 그리고 산악회의 발전을 산신께 비는 자리이다

산이 있어 산을 찾는 산악인들에게 어쩌면 산에 대한 고마움을 한잔의 술을 바치는 의식이 당연한 것이다

또한 일년에 한번있는 만큼 많은 회원들이 참가하는 축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엄숙해야할 시산제의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들뜬 기분에 엄숙함을 구분 못한 일부 산우님들이 있어 아쉽다

시산제는 산악회를 위한 의식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한 의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산제를 마치고                                            사진 윤서님

 

관악산의 정상인 연주대戀主臺·629m에 도착한다  -- 연주대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 참조 ---

연주대의 또 다른이름인    靈珠臺는 세조가 기우재를 지내던 곳이다                                                  

                                                                                                      사진:바다사랑님

 

 

백두산님과 나는 일행과 떨어져 화장실겸 연주암에 들러 효령각도 들러보고

                     사진 : http://roaltlf.blog.me/59166863

 

孝寧閣은 태종의 셋째인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양녕과 효령이 궁궐을 나와 임금을 그리며(戀主대) 슬픈 마음을 달랬다는데

초기 조선에는 숭불억불정책이었음에도 효령대군은 불교에 많은 일을 남긴 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후세 어느 화승이 효령대군을 그리며 영정을 그리지 않았을지.....

 

이제 오늘의 하산길인 계곡길을 따라 진행되고              사진 : 바다사랑님

 

계곡길은 항상 위험하다. 조심 또 조심

                                                                                           사진: 윤서님

 

 

제4야영장이 있는 계곡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계곡에 아직은 남아 있는 잔설이

한손으로 어루만지고 한손으로 감지하고픈 봄의 향취를 왜 아직은 꽃샘추위가 가로막고 있는지를 느끼게 해주고

 

눈에 보이는 풍경들이 아직은 황량하기만 하는 봄의 초입이지만

그림을 그리는 마음으로 보면, 우리가 직접 그리지 않고도 멋진 한폭의 산수화를 완성할 수 있다

계속되는 우리 여산우님들의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연신 계곡을 배경으로 찍어대는 마음에서 읽을 수 있다

                                                사진 : 윤서님

 

남심도 살짝 끼워주고''''''   보물상자님 봄타시나 봐                  사진 : 윤서님

 

현명한 여행자는 가는 곳마다 풍경이 있는 것을 안다고 한다.

책과 역사는 풍경이다.  술도 시詩도 풍경이다,   달도 꽃도 또한 풍경이다. (...)“

임어당의 <자연의 즐거움>에 실린 글이다.

 

아름다운 솔밭길도 지나고

                                                                          사진:바다사랑님

 

“사람은 시처럼 살아야 하고, 물건은 그림처럼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그림을 풍경으로 보고, 화분을 뜰로 보며, 책을 벗으로 보는 것이 좋다.“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서울대 공학관에 도착하기전 자운암 갈림길을 만나고

                                                                                               사진 : 바다사랑님

 

자운암은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昭惠王后)의 위폐가 모셔져 있다고 하는데, 다음 기회로 미루고 시내버스 종점에 도착 산행을 마무리 한다.

 

서울대학교에서는 해마다 '갓(관)의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옛날의 그런 갓은 아닐 것이고, 여기서 가리키는 갓은 학사모, 석사모, 박사모일 것이다. '모자'의 잔치, '갓'의 잔치가 펼쳐진다.

지금 대학의 위치가 갓 모습의 산이라는 뜻의 관악(冠岳)의 한 산자락이고 보면

예부터 '갓 뫼'를 한자로 입산(笠山)이나 입봉(笠峰)이라 하지 않고 지금의 '갓의 잔치'와 연결되는 이름의 '관악산(冠岳山)'이라 한 것이 더 신기하다.

정기산행에 참여한 모든 산우님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진행하시느라 고생하신 운영진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초보산꾼    도     덕  산

 

아래          ---   관악산에 좀 더 알고 싶은 산우님들만 보세요. 재미 보장합니다. ----

 

관악산(冠岳山629m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과 경기도 안양시·과천시의 경계에 있는 산.

예로부터 개성의 송악산, 파주의 감악산, 포천의 운악산, 가평의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에 속했던 산이다.

그리 높다고 말할 순 없지만, 한강 유역 낮은 평지 위에 얹혀 있고 또 주위에 큰 산들이 많지 않아 유달리 그 덩치가 커 보인다.
긴잎회양목의 자생지인 관악산은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있어 어디서나 회양목을 쉽게 볼 수 있다.

검붉은 바위로 이루어진 관악산은 산의 정상부가 큰 바위기둥을 세워 놓은 모습으로 보여서 '갓 모습의 산'이라는 뜻의 '갓뫼(간뫼)' 또는 '관악(冠岳)'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

 

그러나 관악산의 봉우리가 불꽃 형상인 이 산은 풍수적으로는 화산(火山)에 해당한다

풍수적 측면에서 한양의 조산(祖山) 또는 외안산(外案山)으로 인식되었으며, 화덕을 가진 「불기운의 산」으로 전해진다.

 

조선건국 후 한양천도에 관하여 태조 이성계를 도와 국가의 기틀을 잡는 데 큰 기여를 했던 무학(無學)대사는

화산인 관악산을 정남쪽에 두고  정궁(正宮)인 경복궁을 백악(白岳 : 북악. 지금 청와대 바로 뒤쪽에 있는 산)의 남쪽 기슭에 지으면, 경복궁의 정문이 남향이 되어 화산인 관악산을 마주보게 되어, 그 불기운이 궁을 억눌러 도성에 늘 내우외환(內憂外患)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 하여,  이른바 화기설을 주장하는데....그래서 무학은 자기가 주장해 왔던 대로 무악재 밑이 궁터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 화기설을 무시할 수 만 없었던지 이태조는 화환(火患)을 막기 위해 무학의 말을 따라 이 산에 연주(戀主), 원각(圓覺) 두 사찰을 세웠다.

또 경복궁 정문에서 이 산이 덜 보이도록 그 일직선상에 남대문을 세운 것도 풍수적인 배려라는 얘기가 전해진다.

남대문의 현판인 '숭례문(崇禮門)'이란 글씨를 보면, 다른 문루의 현액과는 달리 세로로 씌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예방(禮方:남쪽)에서 오는 관악산의 불길을 밤낮으로 '서서 지켜' 막는다는 의미를 담고도 있다.
남대문 앞에 인공 연못인 남지(南池)를 파서 관악산에서 오는 화기를 없애는 상징적 방비책을 썼고, 관악산의 최고봉인 연주대(戀主臺) 뒤 높은 바위에 작은 구멍을 파서 물을 가두어 불을 누르는 뜻을 담기도 했다 자료 : 야후 지식리더 임은정 님의 글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은 정사에는 기록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사는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의 편이었다.

당시 이태조의 신임을 크게 받고 있던 정도전은, 도성과 관악산 사이에 다행히 한강이 있어 관악산의 불기운이 물을 건너올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주장으로 백악 남쪽의 궁 자리를 찬성하였고, 이렇게 해서 조선의 정궁인 경복은 지금의 모습처럼 백악 남쪽으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무학대사의 화기설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역사는 흘러만 갔으니.

이방원에 의한 1차 왕자의 난, 박포(朴苞)의 선동에 의한 2차 왕자의 난 등과 같은 왕실 반란이 있었고,

조선역사의 피바람을 몰고 왔던 사육신 처형으로 마감한 세조 반정, 왜인의 침략에 의한 임진왜란, 오랑캐의 남침에 의한 병자호란, 자주 발생하는 경복궁 화재 등 관악산의 화기설(火氣說)을 뒷받침해 주는 사건들이 꼬리를 불고 이어졌다.

순탄치 못한 일이 계속 이어지다보니 사람들은 백악 밑의 궁 자리를 반대했던 무학의 예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래서 흥선 대원군은 경복궁을 재건때 돌로 해태를 만들어 광화문 앞 양쪽에 배치하였고 관악산에 우물을 파서 안에 구리로 만든 龍을 넣음으로서 火氣를 방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광화문 앞 해태는 옛사진과 비교하면 육조거리에 사헌부를 상징하던 정의의 영물이었고,  더 이상 화기와는 관련이 없다고 한다. 육조거리를 넓히는 공사를 하면서 광화문 앞으로 옮겼을 뿐이다.

어찌됐든 관악산은 조선 초,  북악(北岳) 남쪽에 궁이 들어서고 도읍지가 서울로 정해지면서  풍수적으로 화산(火山)이라는 이유로 계속 푸대접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관악산은 이렇게 풍수적으로 미움을 받아 오긴 했어도 산자락 곳곳에 좋은 명당(明堂)을 제공하기도 했다.
조선 9대 성종과 그 계비의 능인 선릉(宣陵)과 11대 중종의 능인 정릉(靖陵)이 있다. 능이 셋 있다고 해서 삼릉(三陵)이라고도 한다.

三幕山의 전설속에 살아있는  신라시대의 성승(聖僧)인 원효(元曉), 의상(義湘), 윤필(尹弼)이 이 관악산의 한 봉우리에서 도를 깨달아 생불(生佛)이 되었다고 전한다.

강감찬이 산을 오르다 칡덩굴에 걸려 넘어져  이 산의 칡을 뿌리째 모두 뽑아 없앴다는 강감찬과 관련된 전설도 있고, 어째됐던 관악산에는 칡넝쿨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연주대戀主臺·629m

 

선왕조실록 정조 13년(1789년) 12월 조에는 정조때 충신 채제공(蔡濟恭)선생이 양녕대군과 연주대, 차일암(遮日岩)에 대해 아뢴 일이 기록되어 있다.
‘관악산 제1봉에서는 경복궁이 바라다 보입니다. 양녕대군도 필시 여기에 올라 바라 보았기에 아직도 차일을 쳤던 흔적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염주대(念主臺)라고 합니다(冠岳山第一峰 望見景福宮 而讓寧必於此登望 故尙有遮日之痕 世稱念主臺云矣)’

연주대(戀主臺)는 이명(異名)이 있다. 번암 채제공선생은 67세 되던 해인 정조 10년(1786년) 관악산에 올라 등정을 마친 후 유관악산기(遊冠岳山記)를 남겼는데 거기에서는 연주대(戀主臺)라 하였고 실록에서는 염주대라 부르고 있다. 한편 앞에 소개한 성호 이익 선생의 유관악산기에는 영주대(靈珠臺)라 하였으니 적어도 관악산 정상을 칭하는 이름은 연주대(戀主臺), 영주대(靈珠臺), 염주대(念主臺) 등이 있다.
조선 후기 홍직필(洪直弼)선생은 고려의 옛신하인 남지진 등이 고려를 그리워하며 송악을 바라 보았기에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주인(主)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이름이니 그런 해석도 있을 법 하다

주봉은 연주대戀主臺·629m이고, 산정의 영주대는 세조가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연주암

『연주암지』에 "신라 문무왕 17년(677) 의상대사가 관악사와 의상대를 창건하였다

최고봉인 연주대는 태종이 셋째인 충녕대군, 즉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자,  두 형인 양녕, 효령이 궁궐을 나와 대궐쪽을 바라보고 슬픈 마음을 달래기도 했떤 곳. 그래서 그 이름도 임금을 그린다는 뜻의 '연주(戀主)'이다.

 특히 조선시대 불교 중흥에 기여한 효령대군은 유신(儒臣)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회암사와 원각사의 중수와 창건에 관여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연주암 바로 위에는 효령대군의 영정을 모신 효령각이 있다.

아마도 후세 어느 화승이 그 때 이 곳 관악사에서 수도했다는 효녕대군을 생각하며 그린 그림은 아닐른지

 

자운암

 

자운암은 태조5년(1396년) 무학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절인데 서울대가 들어서면서 학교 구내에 자리하게 되었다.

근세에 세운 약사여래마애불도 있고, 이곳에는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昭惠王后)의 위폐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소혜왕후는 세조의 큰 아들 덕종에게 시집을 갔는데 남편이 급서한 관계로 청상과부가 되었다.

다행히 아들 자을산군이 즉위하여 성종이 되자 대비(仁粹大妃)가 되었는데 과수댁이어서 그랬는지 아들 성종의 비 윤씨를 폐비케 하는데 한 몫을 하게 되었다.

성격이 강직하다 해야 할까, 까칠하다 해야 할까, 좋게 보면 여자들을 바르게 가르치는 책이고 나쁘게 보면 여자들을 잡는 책인 내훈(內訓)을 짓기도 하였다.

성종 서거 후, 연산군이 즉위하자 어머니 폐비 윤씨 문제로 손자와 심히 대립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자료 : http://weekly2.cnbnews.com/

 

                                           초보산꾼    도     덕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