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초파일 삼사기행으로 팔공산 자락의 절집, 백홍암과 영덕의 블루로드를 걷는다.
2016년 사월 초파일 삼사기행이 팔공산 자락의 은해사와 일 년에 한번만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백흥암을 찾아갑니다. 비구니 도량인 이 절에서 먹게 되는 사찰음식은 나라 안에 제일입니다.
이 절을 지나 아름답고 고상한 절로 소문이 자자한 영천의 오백나한절인 거조암을 거쳐 포항의 보경사를 답사 한 후, 나라 안에서 물이 좋기로 소문난 백암온천에서 하룰르 묵을 예정입니다. 일요일에는 해파랑 길에서도 가장 알려진 길 중 한 곳인 영덕의 블루로드 길을 걸을 예정입니다.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의 무대인 대진해수욕장에서 축산도를 지나 창포말 등대를 거쳐 강구항에 이르는 길을 걷게 될 이번 여정에 참여바랍니다.
팔공산 자락에 있는 은해사는 일제강점기 조선 31본산 중의 한 곳이었고, 경북 5대 본산, 조선 4대 부찰(富刹)의 하나였다.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는 신라 헌덕왕 1년(809)에 창건한 절이다. 현존하는 암자만도 여덟 개나 거느린, 등 너머 동화사와 더불어 팔공산 안의 절집들을 대표하는 큰 절이다.
1920년대 후반의 은해사 전경 동화사와 더불어 팔공산을 대표하는 큰절이나 지금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고풍스런 느낌이 나지는 않지만 이 절에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남아 있다. 추사는 1848년 12월 제주도 귀양길에서 풀려나 이듬해 64세의 나이로 한양에 돌아온다. 그리고 1851년 친구인 영의정 권돈인 사건에 연루되어 함경도 북청으로 다시 유배의 길에 오르게 된다. 이 무렵, 불과 2년 남짓의 짧은 서울 생활 동안에 쓰여 진 것으로 추측되는 그의 글씨가 다섯 점이나 은해사에 전해진다.
이절의 암자 중에 백흥암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산내암자이다. 사기(寺記)에 의하면 이 절은 국사 혜철(惠哲)이 861년(경문왕 1)에 착공하여 873년에 완공하였으며,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송지사(松旨寺)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 1546년(명종 1)에 백흥암으로 개칭하였고, 1651년(효종 2)에 중건하였으며, 1677년(숙종 3)에 중수하였다. 1730년(영조 6)에는 보화루(普化樓)를 중건하였고, 1858년(철종 9)에는 청봉(靑峰)이 영산전(靈山殿)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은 한때 수백 명이 수도하였다고 하며, 규모도 암자로서는 매우 큰 편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極樂殿)을 중심으로 영산전·명부전(冥府殿)·문루(門樓)·산신각(山神閣)·선실(禪室)·원주실(院主室)·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로서 보물 제790호로 지정되어 있다. 극락전 안의 아미타삼존불을 받치고 있는 수미단(須彌壇)은 보물 제48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수미단은 높이 1.25m, 너비 4.13m에 5단으로 27등분하여 제작한 목조 탁자로서, 각 면마다 안상(眼象)·봉황·공작·학·용·동자·물고기·개구리·코끼리·사자·사슴 등이 조각되어 있으며, 우리나라 조각미술의 원조(元祖)라고 할 만큼 조각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밖에도 이 절에는 1531년(중종 26)에 간행된 법화경판(法華經板)과 이 절을 거쳐 간 24인의 고승들의 영정(影幀)이 봉안되어 있다. 이 절은 현재 비구니의 수도처로서, 안거(安居) 때에는 수십 명의 비구니들이 정진하고 있다.
나라 안에 이름난 절 중에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한 절이 청통면에 있는 거조암이다.
거조암의 영산전은 국보 제 14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단층 맞배지붕의 주심포집으로 장대석과 잡석으로 축조된 높다란 기단 위에 세워진 건물이다.
거조암의 영산전은 마구의 수법이 간결하고 기둥에 뚜렷한 배흘림이 있는 것이 특색인데, 주심포 양식의 초기적 형태를 잘 나타내는 중요한 건물이다.
영산전 안에는 청화화상이 부처의 신통력을 빌려 앞산의 암석을 채취하여 조성했다는 석가여래와 문수보살, 보현보살과 오백나한상 및 상인화상이 그린 영산회상도가 있으며, 뜰에는 손상이 심한 삼층석탑이 있다.
화강암을 깎아 만든 뒤 호분을 입히고 머리에 칠을 한 나한상들의 자세와 표정은 다양하기만 하다. 옆 사람을 그윽하게 쳐다보기도 하고 명상에 잠겨 세상을 잊은 듯 보이기도 하고 팔짱을 낀 채 거드름을 피우는 듯도 보이는 오백나한(정확히는 526나한)은 수많은 사람의 다양한 공부 방법과 세상 사람이 천태만상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듯하다.
마음에 드는 나한상 앞에 앉아 절 안팎 어디고 단청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영산전 구석구석을 바라보면 마음이 평안해지는데, 영산전에는 그 색조나 화풍이 특이한 영산탱이 있다. 청, 학, 적, 백, 흑의 다섯 가지 원색을 주조로 그려진 조선시대 불화들과 달리 붉은 바탕에 호문으로 선묘만 하였을 뿐 청록색, 흑백색 등은 극히 적은 부분에만 사용하였다. 바탕색의 변화로 모든 색을 대신함으로써 붉은색이 자극적이지도 들뜨지도 튀지도 않는 이 후불탱화를 미술사학자인 고유섭은 “명랑하고 침착하고 품위 있는 색조”라고 표현하였다. 이 후불탱화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네 명의 보살과 네 명의 불제자 그리고 두 명의 사천왕만으로 영산회상의 여덟 장면을 간략하게 압축해 구성한 것이다.
거조암에는 오백나한이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9 : 우리 산하, 2012. 10. 5., 다음생각)
영덕 대게의 고장 강구항, 은어 낚시터인 오십천
영덕지방에서 가장 큰 항구인 강구항 (江口港)은 경치가 매우 아름답기도 하지만, 영덕 대게로 유명세를 타는 곳이다.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4~5월까지 이어지는 대게 철에는 수많은 대게잡이 배들이 항구로 집결하고, 대게 위판장이 운영되며, 일명 ‘대게거리’로도 불리는 식당가도 3km나 이어져 있다. 강구항 남쪽을 통해 빠져나가는 오십천(五十川)은 은어낚시터로 유명하다. 그리고 드라마촬영지로도 알려지면서 새로운 관광명소가 되어 사시사철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강구항은 새우, 오징어, 명태도 많이 잡히고 있다.
이색이 살던 괴시리槐市里는 원래 호지마 또는 호지촌이라고 부르던 곳이었으나, 사신으로 중국에 다녀온 이색이 이곳 지형이 중국 괴시라는 지형과 흡사하다며 붙인 지명이라 한다. 현재 괴시리는 기와집 예순 몇 채를 새롭게 정비하여 관광명소로 거듭나기를 꿈꾸고 있다.
이 곳 영해에 전승되는 동해안별신굿(東海岸別神굿)은 부산광역시 동래구에서 강원도 고성군에 이르는 동해안 어민들이 풍어와 안전을 비는 마을굿이다. 영해면 괴시리에 송동숙 영해별신굿놀이 보유자가 살고 있다.
철 이른 바닷가, 대진해수욕장은 이문열의 출세작 <젊은 날의 초상>의 ‘그해 겨울’에 마치 한 폭의 산수화처럼 그려져 있다.
“내가 대진에 도착한 것은 그날 오후 두 시경 다시 내리기 시작한 진눈깨비 속이었다.
쉴 겸 젖은 옷을 말리느라 읍에서 몇 시간 지체한 탓이었다.
지금은 경상북도에서 몇 안 되는 해수욕장의 하나로 상당히 발전했다고 들었지만, 그때만 해도 대진은 여름 한 철을 제하면 볼 품 없는 포구에 지나지 않았다.
더구나 한 겨울의 인적 없는 그 포구는 그대로 유령의 섬과 같았다. 읍에서 그곳에 이르는 마지막 십리 길도 그리 순탄했던 같지는 않다. 진눈깨비로 얼룩진 그날의 수첩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바다, 나는 결국 네게로 왔다. 돌연한 네 부름은 어찌 그렇게도 강렬했던지,”
(중략)
“돌아가자 이제 이 심각한 유희는 끝나도 좋을 때다. 바다 역시도 지금껏 우리를 현혹해온 다른 모든 것들처럼 한 사기사詐欺師에 지나지 않는다. 신神도 구원하기를 단념하고 떠나버린 우리를 그 어떤 것이 구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갈매기는 날아야 하고 삶은 유지돼야 한다. 갈매기가 날기를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갈매기가 아니고, 존재가 그 지속을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존재가 아니다. 받은 잔은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한다.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다......“
이문열은 불우한 청년기를 견디고 검정고시를 치러 서울 대학교에 들어간다. 그리고 사법시험을 준비하였다. 그러던 그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남로당의 고위간부로 활동하다 월북하여 북측 고위간부를 지냈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이 알려진다. 결국 그는 반공이념이 지배하던 당시 연좌제로 인해 제도권역내에서 자신에게 활동이 허용되는 한 치의 영역도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여 방황한다. 유서와 약병을 상비하고 방황하던 그가 대진해수욕장을 찾았다. 그리고 이곳 대진 바닷가에 유서와 자살을 위해 가지고 다니던 약병을 던진다 대진바닷가는 그가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 곳이다. “진실로 예술적인 영혼은 아름다움에 대한 철저한 절망위에서 시작된다.‘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은 그런 절망위에서 비롯되었다.
대진항에서 덕천, 고래불로 이어지는 해수욕장. 진정 바다에서 바다로 이어진 모래사장 길을 맨발로 걸어보자. 발로 땅의 호흡을 느끼고, 몸으로 호흡으로 바다와 하늘의 기운에 휘감기는, 진정 자연과 내가 하나됨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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