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산꾼 여행 이야기 : 도봉서원과 각석군(刻石群)
서울특별시기념물 28호인 도봉계곡
일시 : 병신년(16년) 하늘연달 10월 열닷새 흙날
인원 : 혼자서
어딜 : 도봉산역 ~ 도봉계곡 각석군 ~ 문사동 계곡 ~ 용어천 ~ 주능선 ~ 무수골~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3357 에 있습니다
남북으로 파로호와 통일의 댐을 감싸고 있고 걷기 좋은 길로 선정될 만큼 아름다운 길 비수구미 계곡길
절경은 접근하는 것 조차 힘들 듯이 태고의 맛을 지니고 있는 재안산은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어려워
모처럼 북한산 둘레길도 포기하고 신청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였나? 장날에 사람이 없어 취소란다...
이왕에 이렇게 된 것... 2년전부터 준비해온 도봉산 계곡에 산재되어 있는 도봉서원과 각석군을 찾아 떠나 본다
도봉계곡 각석군 지도 - 11개는 아직 정확히 파악 못했슴 - 지도 출처 : http://run2cross.tistory.com/153
들어가기
바위에 새긴 글씨를 각석(刻石)이라고 하는데 도봉산 계곡에는 각석들이 유난히 많이 산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특별시기념물 28호인 도봉서원 주변의 11개의 바위글씨를 포함 '도봉서원과 각석군(刻石群)' 으로 지정 되었다
각석군을 살필 때 도봉서원을 먼저 이해해야 할 듯 싶다. 각석을 한 주인공들이 대부분 도봉서원과 밀접한 인사들이기 때문이다.
도봉서원은 조선조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와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 대표적인 사액서원이다.
임금의 친필로 현판을 달았을 만큼 서원을 찾았던 유생들이 많았을 뿐 아니라 그들의 영향력도 대단했으리라 여겨진다.
당시 서원은 학문연마의 도장이었지만 성리학을 두고 학파와 권세를 집결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 점에서 도봉서원은 송시열의 일대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서인세력의 총본산이었다.
따라서 각석들은 서원 유생들이 아름다운 경치를 추억하거나 그들의 학문적 이상을 바위 곳곳에 새긴 흔적이자 정신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자료 : 내손안에 서울 http://mediahub.seoul.go.kr/archives/175214 정리 및 추가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각석문들은 아마 종파만 다를 뿐 이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서원을 중심으로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하며 각종 폐해를 주기도 하면서 중국에 기댄 사대주의라는 평가도 받고 있지만
평가는 역사의 몫이고 그들이 남겨준 소중한 문화 유산은 계속 보존되어야 한다는 생각...
역사학자만의 문화가 아니고 나같은 개인들도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하는 생각으로 여행을 떠나 본다
도봉산역에서 내려 상가를 지나면
북한산 국립공원 도봉지구 표지석이 나오면 잠시 계곡으로 들어가 본다
도봉서원이 있었기에 형성된 서원마을 터를 알리는 도봉산 서원말터 표지석을 먼저 보고
도봉산의 입구를 뜻하는 각석
道峯洞門
북한산국립공원 표지석 옆에 '도봉산의 입구'를 의미하는 ‘道峯洞門’이라는 각자가 새겨져 있다
도봉구에서는 이 글씨가 도봉서원에서 배향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유학자 우암 송시열의 글씨라고 하고
향토문화전자대전에서는 신원 미상 묵객의 글씨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빼어난 도봉산의 자연을 벗삼아 도봉서원을 중심으로한 유생과 문인들이 드나들기 위한 입구인 것이다
처음으로 계곡으로 들어와 보니 이렇게 길이 잘 가꾸어져 있다. 그런데 끝이 막혀 있어 다시 되돌아 와야 한다
길 옆에 가학정 정자가 보이기 시작하연
가학정 옆에 이렇게 비록 작지만 멋진 폭포가 자리하고 있다. 가학루에서도 보이니 계곡을 들어갈 필요는 없다
계곡에 들어가면 불법이므로 반드시 계곡 출입을 허가 받아야 한다. 북한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신청 (의정부시) 031 828 8000
용주담舂珠潭
찧을 용 舂자와 구슬 주 珠, 구슬이 찧어지는 개울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데,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과 웅덩이를 표현한 글귀로 여겨진다.
어느 시점에 이런 구절을 떠올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곳을 많이 아끼는 사람의 글귀일 것 같다
필동암必東巖(岩)
순자 荀子 유좌 宥坐 편에 공자의 제자 자공과 공자의 문답이 기록되어 있다.
'군자가 물을 보고서 느껴야 할 점이 무엇입니까.'라 물었을 때
'만 번을 굽이쳐 흘러도 반드시 동쪽으로 향하니 의지가 있는 것과 같다 其萬折也必東 似志'고 답했다.
물은 만번 꺾여도 반드시 동쪽으로 간다는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나왔다.
만번을 꺾여 흐르지만 반드시 동쪽으로 흐르는 황하강과 같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본뜻대로 나아가는', '절개'를 의미 한다
도봉서원과 관계가 많은 우암 송시열 선생과 관련한 글귀로 적은 것으로 보여진다.
스스로를 화양노부라 부르며, 훗날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화양서원 부근 바위에도 만절필동이란 글귀가 새겨져있습니다.
자료 : http://run2cross.tistory.com/160
자료 : 초보산꾼 화양구곡 산행기 중에서 http://blog.daum.net/kmhcshh/2621 하단에 사각안에 쓰여져 있다
필동암의 박사호는 후세에 어떤 속물 근성을 가진 자의 소행인 듯...
낙운 윤희채가 쓴 가학루기 駕鶴樓記와 현판이 '있었다'는 기록만 도봉구청에 남아있는 가학루로 올라간다
가학루기(駕鶴樓記) 일부
옛적, 한 자리에 모인 네 명의 사내들이 각기 자신의 뜻을 말하기로 하였다.
“나는 10만금을 갖고 싶어.” “난 신선이 되어 학을 타고 다닐꺼야.” “나는 양주(양주) 자사(자사)가 되고 말겠어.”
그런데 남은 한 사람이 말하기를, “하하... 나는 허리에 10만금을 차고, 학을 타고, 양주 자사가 되겠어.” 하였다고 한다.
세 사람의 일을 몽땅 갖이려는 그 사람의 뜻은 대단하다. 그러나 말로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10만 금과 자사의 벼슬을 함께 갖겠다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더구나 학까지 타겠다고 하니, 이는 인력으로는 미칠 수 없는 일일게다
1947년 여름 옥소(玉蘇) 심형진(沈衡鎭) 짓고 낙운(樂雲) 윤희채(尹禧采) 씀 - 자료 : 도봉문화원
도봉서원이 여기서 가까우니 자주 이곳에 들려 머리를 식혔을 것이다...후세에 지어졌다고 하니... 각석할 당시에는 없었겠지만...
여름에 한번 산우님들과 이 정자에 앉아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수를 보면서 도봉서원 유생들이 즐겼던 풍류를 느껴 봐야겠다
다시 계곡길 따라 걸어 올라가면
하늘아래 신선을 꿈꿨던 이상향을 담은 제일 동천 각자가 길옆에 있다
제일동천 큰 글씨와 바로 옆에 작은 글씨도 각자 되어 있다. 글을 쓴 이는 아직까지 미상으로 남아 있다
동천(洞天)은 '산천으로 둘러싸여 신선이 사는 동네'라는 뜻을 가진 도교 용어로 선경仙景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높은 산으로 그윽하고 운치어린 계곡이 있어 하늘아래 이상향을 품기에 최고의 계곡임을 표현한 것은 아닌지..
인간도 자연도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슴에 산속에 들어 물의 가치를 더욱 소중하기 위한 지혜일 것이다
여기 이 곳을 자주 찾았던 묵객들의 이상향이 제일동천 각자 옆의 작은 글씨에 잘 표현되어 있다
제일동천 각자 옆에 작을 글씨로 시가 적혀 있는데 많이 훼손되어 판독이 불가하다
洞中卽仙境 동중즉선경 _ 동(이곳)은 곧 선경이요
洞口是桃源 동구시도원 _ 동 입구는 바로 무릉도원이다
자료 : http://run2cross.tistory.com/155
바위 옆면을 보면 이렇게 7언절구가 각자 되어 있다
烟霞籠處洞門開 연하롱처동문개 _ 연기와 노을이 가득 쌓인 곳에 동문이 열리니
地向雲山物外闢 지향운산물외벽 _ 그 곳이 구름 낀 산을 향하여 속세를 떠난 경지이고
萬丈峰高丹窟深 만장봉고단굴심 _ 만장봉은 높은 곳에 연단굴은 깊으니
化翁慳秘巖泉石 화옹간비암천석 _ 조화옹(조물주)이 아껴서 감춘 아름다운 바위와 맑은 샘물과 기이한 돌일세
丁丑九月道峰樵叟 정축구월도봉초수 _ 정축년(고종 43년(1906, 광무(光武) 10년) 구월 도봉산 나무꾼
자료 : http://run2cross.tistory.com/155
** 김용관(金容觀 1853~1942 ) 85세 때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시종원 부경(侍從院副卿) 등 역임했다. 문집 ‘도봉초수유고(道峰樵叟遺稿)’에 ‘제일동천’ 시가 수록되어 있다.
자료 : 도봉문화원
또 계곡 위에 '연단굴 鍊丹窟'과 '만석대 萬石臺' 각자가 있다는데 확인하지 못했다. 저쪽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데...
더 이상 진행 불가... 다시 되돌아 계단을 올라가 보니
산악박물관 안으로 들어왔다. 문이 열려 있어 통과
산수의 풍경이 아름답다 는 뜻을 가진 山明水秀에서 따온 듯... 도봉산 계곡의 아름다움을... 알려진 것이 없지만
우측으로 지금 한창 복원중인 도봉서원터
고산앙지 각자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高山仰止
고산양지란 시경 소아(小雅)에 나오는 ‘高山仰止(고산앙지) 景行行止(경행행지)’로 큰 산은 올려다 볼 수 있고, 큰 길은 다닐 수 있다는 뜻이다.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는 뜻. 김수증이 정암 조광조의 학덕을 사모한다는 의미에서 새긴 것으로 추정됨
옥천에는 우암이 세운 二止堂(이지당)이 있는데 윗글에서 따온 것이다.
庚辰七月 金壽增(경진칠월 김수증) (경진년: 1640년 아니면 1700년이다. 김수증 17세 때 작품 아니면 77세 작품이 된다. )
자료 : 도봉문화원
김수증 [金壽增, 1624~1701]
본관 안동. 자 연지(延之). 호 곡운(谷雲). 상헌(尙憲)의 손자. 1650년(효종 1) 생원이 되고, 1652년 익위사세마(翊衛司洗馬)가 되었다.
1670년(현종 11) 강원 화천군 사내면 영당동에 복거(卜居)할 땅을 마련하고 농수정사(籠水精舍)를 지었다.
1675년(숙종 1) 벼슬을 버리고 농수정사로 돌아갔다. 그 때 주자(朱子)의 행적을 모방하여 그곳을 곡운(谷雲)이라 하고,
곡운구곡(谷雲九曲)을 경영하면서 화가 조세걸(曺世傑)에게 《곡운구곡도》를 그리게 하였다.
문집에 《곡운집》이 있다. 자료 : 도봉문화원
잠시 계곡으로 내려가 왔던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이런 각자도 보이고
좀 더 내려가다 보면 무우대 각자 바위가 나타난다
무우대’와 ‘제월광풍갱별전 요장현송답잔원’은 성리학의 이상을 적은 글귀로
이곳을 찾는 조선의 선비들은 도봉계곡에서 목욕하고 무우대 바위에 올라 바람 쏘이고 싶었던 것이다.
조선 시대 권상하와 송시열의 글씨를 새긴 바위 글씨
비 갠 뒤의 맑은 달과 빛나는 바람 제월광풍 霽月光風을 담았다
霽月光風更別傳(제월광풍갱별전) 비가 갠 뒤 맑은 달빛과 시원한 바람이 다시금 특별히 내려오는구나
聊將絃誦答潺湲(료장현송답잔원) 애오라지 거문고를 치며 소리를 읊으니 흐르는 물소리가 화답하네
華陽老夫書(화양노부서) 우암 송시열 선생 친필
舞雩臺(무우대) 寒水翁(한수옹) 한수재 권상하의 글씨(雩:기우제 우) 우암의 수제자
(무우)의 출처는 논어 선진(先進)편의 마지막장에 나온다. 선진(先進) 제11-25장을 보면
자로(子路)와 증석(曾晳)과 염유(冉有)와 공서화(公西華)가 공자를 모시고 대청마루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공자가 자로(子路)부터 차례차레 묻다가 마지막에 증석(曾晳)에게 묻는 장면이 나온다. 공자의 물음에 증석은 대답했다.
“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늦은 봄에 봄옷을 갖추어 입고 관을 쓴 어른 5~6명, 동자 6~7명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기우제를 올리는 무우단 위에서 바람 쐬고 노래를 읊으며 돌아오리오다.)
자료 : 도봉문화원
바로 좌측 바위위에도 각자가 있는데.... 濂洛正派 洙泗眞源(염락정파 수사진원) 같은데 많이 훼손되어 있다
濂洛正派 洙泗眞源(염락정파 수사진원) :쓴 이가 춘옹(春翁)인데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글씨이다.
濂洛(염락)은 염계(濂溪)와 낙수(洛水 )로 주돈이와 정자 형제가 강학하던 곳이며
洙泗(수사)는 洙水(수수)와 泗水(사수)로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던 곳이다.
따라서 ‘주자학의 바른 줄기이며 공자 가르침의 진원’이란 뜻이다
자료 : 도봉문화원
다시 되돌아 고산앙지 각자 방향으로 올라오다 보면 이름이 적힌 각자도 보이고
다시 전망대 바로 밑에 광풍제월 각자가 보인다. 한천(寒泉) 이재(李縡)가 새긴 글이다
光風霽月(광풍제월)
송나라 학자 황정견이 주자의 스승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인품과 기상을 칭송한 말로
비온 뒤 맑은 바람 비갠 뒤의 깨끗한 달이란 뜻으로 도봉서원 건물에는 제월루와 광풍당이 있었다고 한다
출세를 위해 공부하지 말고 유학에 전념하는 뜻으로 쓴 시 두편에서 한 구절씩 발췌한 것이다
이재(李縡 : 1680-1746)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희경(熙卿), 호는 도암·한천(寒泉). 진사 이만창(李晩昌)의 아들이다
이재는 충렬서원(忠烈書院)과 심곡서원(深谷書院)의 학규를 정하고, 『율곡전서(栗谷全書)』 편찬에 관여하였으며,
『검신록(檢身綠)』, 『사례편람(四禮便覽)』 등을 완성하였다. 대명의리론을 내세운 노론의 중심인물로서
일관되게 영조의 탕평책에 반대한 노론 준론의 대표적 인물이다. 자료 : 도봉문화원
서울특별시기념물 28호로 지정된 각석군(刻石群)은 거의 이 도봉서원을 중심으로 이루어 졌다. 헌재 복원중...
문사동을 확인하기 위해 좌측 서원교를 건너야 한다
금강암 갈림길 - 우측 금강암. 앞에 보이는 바위에 복호동천이 각자 되어 있다
작자 : 미상으로 정상적인 의미로 학문을 연마하며 때를 기다리는 선비를 가리키며,
사냥을 위해 엎드려 때를 기다리는 호랑이에 비유하기도 한다
도봉산 금강암
문사동 계곡을 따르다 보면 좌측으로 계단이 보이고 옥천사지가 한 때 영화를 알려준다
구봉암이 나타나고...
잠시 계곡으로 내려와 보니... 문양이 거북등을 엎어 놓은 듯 특이하게 새겨져 있는데... 밑에는 구멍이 파여있고... 무슨 의미라도...
이 구멍과 연결해 보면 구봉암이니 거북이가 물을 먹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초보산꾼 생각
구봉사 옆길을 따르면 대덕교가 나온다
대덕교는 다리 끝부분 다리 아래 좌측 바위에 새겨져 있는 각자를 그대로 따른 듯...
다리에서 위에 있는 폭포를 서광폭포 하는 듯... 좌측 바위에 서광폭이라 각자 되어 있다
폭포위로 올라와 보면 이렇게 정자를 지은 듯한 흔적이 남아 있다
정자 이름은 이 곳 바위에 새겨진 화락정으로 추측 되는데 각자를 찾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다리 끝 우측 바위에 있다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서광은 서방 정토의 부처의 빛을 염원했던 것은 아닐까?
화락정은 戶戶富實, 人人和樂(호호부실 인인화락) - 집집마다 부자가 되게 하고 사람마다 즐겁게 한다
서로 화합하고 즐기고... 소통하고... 나누고...공감하고...
대덕교를 지나 바로 성불사로 갈 수 있는 삼거리교가 나오고... 문사동계곡은 계속 직진 성도원 방향
성도원도 지나고
마당바위갈림길도 지나고
스승에게 또 묻고.. 또 묻고... 문사동 각자가 있는 폭포
스승을 찾는 계곡,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가는 곳에 언제나 스승은 있다.
스승에게 물어야(問師) 할 일이 어디 하나 둘이겠냐마는
도대체 무슨 뜻을 담고 있는 것일까?
문사동 각자 바위위에서 본 계곡은 알고 있을까?
태조 이성계가 왕림한 개울이라는 유래의 용어천(龍馭天) 계곡으로 가기 위해 용어천계곡을 건너야 한다.
다리 아래 좌측이 문사동 계곡 우측이 용어천계곡이다
여기서 용어천 계곡(주봉방향이정표)으로 우틀하면 문사동 계곡과 헤어지게 된다
용어천계곡의 명물 치마바위
그리고 협곡
높은 봉우리에 붉은 빛의 아름다운 구름이 걸린다는 의미로, 자운(慈雲)봉이 오늘은 햇볕을 받아 또 다른 아름다움을 준다. 당겨보면
잘도 넘나들던 구름도 때론 자운봉 꼭대기에 걸려 안타깝게 메달려 있어 자운紫雲으로 옷을 갈아 입었지만
하지만 오늘은 가을맞이 햇볕에 몸을 맡기니... 햇살에 장엄한 백금의 불꽃을 피워내고 있구나
신선봉의 선계에 들어 잠시 머물 수 있도록 빨리 오르고자 하나... 맘뿐이구나...
道峰의 높은 다락에 올라 술잔 들고 한번 웃서 보았다던 서거정의 싯귀를 떠올리며 만족해야 하겠다
두번의 갈림길에서 계속 우틀하니 알 수 없는 폐사지가 나온다
우측 숲속에 아직도 외로이 석불만이 한 때의 영광을 얘기할 뿐...
바위의 문양을 담고자 하는 나무... 아님 나무를 닮고자 하는 바위... 둘의 우정 영원하기를...
이제 도봉산 정상에도... 멀리 보이는 삼각산에도 가을이 성큼
마당바위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에서... 무릎보호를 위해 관음암으로 우회를 시작하고..
기둥柱자를 사용해서 이름지어진 주봉을 이 곳에서 보니 색다르고
이성계가 기도하던 곳이라는 관음암
산신각 옆 커다란 바위 아래 부처님이 몇분이나 되실까?
네거리가 나오면 계속 오봉 방향으로
주능선을 만나 우이암 방향으로 하산 시작
가을이 왔음을 느끼게 하는 도봉산을 담아 본다
우이암을 지나 바로 무수골로 하산
원통사
무수골로 내려오니 황금물결이 생각난다.
북한산 둘레길을 만나면서 오랜만에 나섰던 답사를 겸한 산행을 마친다
옛 선조들이 남긴 모든 것들은 다 유산이 된다
보는 사람에 따라 경중은 있겠지만
우리가 소중히 하면서 보존하다 보면 더욱 값진 유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값진 그 수많은 유산중에 각석문은 집에서 조용히 앉아서 즐길 문화유산이 아니다
발품을 팔아야 하고 때론 가시밭길...
때론 계곡을 건너는 위험도 불사해야 한다
계곡이나 암벽등에 남기고자 했던 선조들의 심오한 뜻이야 잘 모르겠지만
그들이 남긴 각석문을 찾아가다 보면 지금의 눈이 아닌 옛사람들의 눈을 빌린 듯한
선조들이 남긴 과거 그리고 현재,
미래의 주인공들을 하나로 묶는 연결고리가 있다는 생각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아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남길 수 있었을까
감탄할 때가 많은 이유일 것이다
지체 높으신 양반들의 놀이 문화인 각석문이다 보니
각석문을 새기는 석공 또한 내노라 하는 장인인 석공이였을 것이다
당시 내노라 하는 명필을 불러 글을 쓰게 하고
그 명필에 걸맞는 장인 석공이 남긴 소중한 유산 각석문
수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어울리니 소중한 예술로 승화된 것은 아닌지...
현재의 눈이 아닌 과거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눈쌀을 찌뿌리게 하는 현재 인간들이 남긴 각자와는 차원이 다른 얘기이다
가을이 오고 있는 보봉산
그리고 숲속 사이로 보이던 자운봉과 주봉등...
도봉산의 봉우리들이 앞다투어 불꽃을 피워내니..
역사 답사와 함게 특별한 하루로 기억될 것 같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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