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가락이 흐르는 강원도 정선의 산천을 걷는다.
가을의 초입에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에서 아리랑의 고장 정선을 갑니다. 정선 하이원 리조트에서 이틀 밤을 머물면서 정선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몰운대와 화암 팔경, 그리고 정선 아리랑의 발상지인 아우라지와, 구절리, 그리고 아우라지에서 북평에 이르는 아름다운 길을 걷고 정선장을 돌아볼 예정입니다.
일요일에는 정선읍에서 가수리에 이르는 뱅뱅이재와 양치재를 넘고 가수리에서 동강의 절경인 나리소 일대를 걷고 귀로에 오를 예정입니다.
특히 아우라지에서 북평면 남평리까지 이어지는 옛 신작로 길은 강을 내려다보며 걷는 최상의 길입니다.
두 번째 날정선읍에서 모평리로 이어지는 병방치 길입니다. 한반도 모양의 동강을 볼 수 있는 이 고갯길은 옛 시절 신혼길로 가마를 메고 가던 고갯길입니다.
“아우라지는 정선군 북면 여량리의 한강 상류에 있는 나루터로, 평창군 도암면의 황병산과 구절리에서 흘러내린 송천과 동쪽에서 흘러온 임계천이 합류하는 곳이다. 이 아우라지의 뱃사공이 부르던 노래가 정선아리랑이었다.
정선아리랑, 즉 정선아라리가 처음 불려지기 시작한 것은 조선 왕조 초기부터였다고 한다. 고려 왕조를 섬기고 벼슬에 올랐던 선비들 중 7명(전오륜, 고천우, 김충한, 변귀수, 김한, 이수생, 신안)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성을 다짐하면서 깊은 산골인 개성의 두문동에 은신하다가 지금의 정선군 남면 낙동리 거칠현동居七賢洞으로 옮겨 살며 지난날 섬기던 임금을 사모하고 고려 왕조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였다. 그들은 멀리 두고 온 고향의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본래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애달프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한시를 지어 읊었는데 이것이 정선아리랑의 시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확실하지는 않다.“
정선으로 달려가는 열차를 보내고 우리는 걷는다. 한 걸음 두 걸음 이 걸음들이 모여서 한강의 마지막 지점에 마침표를 찍을 그날은 언제쯤일까? 꽃벼루, 가구미, 갈금, 골금, 절골, 사실동 등 여러 마을들이 합하여 정선군 북면 여랑리에 합해진 여랑 1리에서 철길을 내려와 강길을 따라가는데 노래 한 자락이 떠오른다. "아질아질 성마령 야속하다 꽃베리``지옥 같은 이 정선을 누굴 따라 여기 왔나"라고 노래했을 만큼 이곳 아우라지는 교통이 불편했었다.
성마령은 정선군과 평창군 사이에 있는 고개로 지금은 잘 쓰이지 않지만 옛날에는 이 길이 고을의 관문이 되었었다. 어찌나 높던지 그 마루에 서면 별을 만질 수가 있을 듯하다는 뜻에서 성마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
그러나 정선아리랑을 연구하는 진용선 씨는 "옛 문헌을 보면 우리 선조들은 아우라지에서부터 동강이라는 말을 썼고, 표기도 지금의 동녘 동東이 아니라 오동나무 동桐을 썼다"고 말한다. 영월읍을 중심으로 동쪽은 동강, 서쪽은 서강이라고 쓴 것은 일제 강점기부터였다는 것이다. 이곳 동강에는 열두 곳의 아름다운 경치가 있다. 여울과 소, 절벽, 섶다리, 마을 풍경들이 그것들로서 1경-가수리 느티나무와 마을 풍경, 2경-운치리의 수동(정선군 신동읍) 섭다리, 3경-나리소와 바리소(신동읍 고성리~운치리), 4경-백운산(고성리~운치리, 해발 882.5m)과 칠족령(덕천리 소골~제장마을), 5경-고성리 산성(고성리 고방마을)과 주변 조망, 6경-바새마을 앞 뼝대, 7경-연포마을과 홍토 담배 건조막, 8경-백룡동굴(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9경-황새여울과 바위들, 10경`―`두꺼비바위와 어우러진 자갈, 모래톱과 뼝대(영월읍 문산리 그무마을), 11경-어라연(거운리), 12경-된꼬까리와 만지(거운리) 등이다.
높은 산들에 골이 깊은 정선군에서 흘러내린 물이 골지천, 오대천, 지랑천, 용탄천, 어천, 임계천 같은 여러 내를 이루며 흘러내리다가 조양강이라는 이름의 강이 되고 다시 더 내려가 동강이 된다. 강 건너 마을이 모평마을이고 우리는 지금 내방산 자락을 걸어가고 있다.“
하늘이 낮아 재위는 겨우 석 자 높이
귤암리에서 가수리까지는 도로를 넓히는 공사가 한창이고 공사장을 지나자 모평마을이다. 광석나루 위쪽 조양강 물 가운데에 섬처럼 솟아 있는 바위가 섬바우이고 저 안쪽에 있는 망하마을은 광하리의 중심에 있는 마을이지만 물이 귀한 곳이다. 근처에 큰 강을 두고서도 이용할 수 없다는 뜻에서 생긴 이름이라는 망하마을에서 평창군 미탄면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비행기재이다. 원래 이름은 아전치였는데 이 고개가 하도 높아서 마치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다 하여 비행기재라고 붙인 것이다.
그 고개 너머 평창을 두고 정귀진鄭龜晉은 "우연히 흐르는 물을 따라 근원의 막다른 곳까지 와서, 공연히 복숭아꽃 비단 물결 겹치는 것을 볼 뿐, 동학洞壑 속의 신선의 집은 어디에 있는고, 흰구름이 일만 그루의 소나무를 깊이 잠겄네" 하였고 삼봉 정도전鄭道傳은 "중원中原의 서기書記는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옛 고을 용납할 만하고, 하늘이 낮아 재 위는 겨우 석 자의 높이로구나" 하였다.
모평리를 지나 귤암리에 도착한다. 귤천과 의암의 이름을 따서 귤암이라 이름 지은 귤암마을의 옛이름은 산내울이었다. 강 건너로는 산의 모양이 나발처럼 생겼다는 나발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뚝우뚝 솟은 산세가 저마다 나름대로의 사연을 지닌 듯싶지만 침묵한 그 산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옛날 선동이 내려와 춤을 추고 놀았다고 하는 동무리마을을 지나 고개를 넘어선다. 귤암리 동강변의 심각한 오염원이 되고 있는 '정선군 분뇨처리장'이 보인다. 방류구가 동강과 직접 맞닿아 있는데 정선군 관계자의 말로는 평균 수질이 BOD기준 6.67ppm으로 완벽한 처리과정을 거쳐 방류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또한 가수리 동남천 상류에는 '정선군 위생쓰레기매립장'이 들어섰다. 그곳 관계자 역시 지난 몇 년 동안 침출수나 매연, 악취 발생 등으로 인한 민원은 한 번도 없었다면서 그곳 침출수 역시 BOD 20~30ppm정도로 정화시켜서 방류한다고 한다.
강 건너 만지산을 바라보며 여장을 풀고 찔레순을 꺾는다. 우리들은 어린 시절 학교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책보를 풀어놓고 찔레순을 꺾는 것이 일과 중의 하나였다. 도톰한 찔레순을 한 주먹씩 따다가 앉아서 까먹으면 그 상큼한 맛이 얼마나 일품이었던가. 그중에서도 그 줄기가 유난히 빨간 찔레순은 고추장 찔레라고 해서 고추장을 찍어 먹고는 했었다.
모퉁이를 돌아 빈 집이 보이자 김성규 씨가 내게 묻는다. "이 집에 살았던 사람은 어디로 이사를 갔을까요?" "글쎄요. 이 사람들도 서울이나 정선으로 갔지 않았을까요." 강물은 소리를 내며 여울져 흐르고 길가의 뽕나무에는 오디가 주저리주저리 열려 있고 벚나무에는 버찌들이 푸른빛으로 다닥다닥 열려 있지만 익으려면 아직 멀었다. 보름이나 한 달 후쯤에는 새카만 오디와 버찌들뿐만 아니라 야생 산딸기까지 온 산에 흐드러지게 익어 있으리라.
푸르른 강물은 섬진강변의 제첩국만큼이나 푸르게 흐르고 강 건너에는 배 한 척이 매어 있다. 가탄과 수미의 이름자 하나씩을 따서 아름다운 물이 합쳐져 만들어진 마을이라고 이름 지은 가수佳水리의 700년 된 느티나무 아래에서는 마을주민 몇 사람이 앉아서 담소를 나눈다. 둘레30m가 되는 이 느티나무 안쪽에는 60년대 모습을 지닌 듯한 가수초등학교가 있다. 동강은 이 마을에서 제법 큰 물줄기를 받아들인 후 더욱 넓어지고 깊어진다.
북대마을로 건너가는 무넘이다리 중간쯤에서 바라본 벼랑은, 정선과 영월 답사 길에서 윤영숙 선생이 말했던 것처럼 흡사 천하대장군을 닮은 모습이고 그 옆에 축 늘어진 소나무는 바라볼수록 운치가 있다. 멀리 닭 벼슬 같은 형상을 지녔다는 계봉산이 병풍처럼 우람하게 버티고 서 있고 건너 산에선 다시 호호호호 하고 호호새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신정일의 <한강 따라 짚어가는 우리 역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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