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그리고 바다/해파랑길 답사기

동해안 해파랑길 걷기 3.4구간 : 이천 ~ 효암천 - 부산과의 이별, 그래도 사랑해야하는 이유

산중산담 2017. 12. 11. 00:41

 

동해안 해파랑길 걷기 3.4구간 : 일광(이천) ~ 효암천 (부산구간)

 

언제 : 정유년(丁酉年 17년) 매듭달 12월 아흐레 흙날

누구랑 : 거인산악회 해파랑길팀 산우님들

어딜 : 일광(이천) ~ 동백리 ~ 신평소공원 ~ 문중리 ~ 임랑 ~ 효암천(울산 경계) 

 

                  더 많은 사진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4120 에 있습니다

 

 

더 줄 것도 없고 더 받을 것도 없는 지금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던 2017년도 어느덧 남은 달력 한 장 만이  

세월이야 지가 알아서 가는 것이고 이왕이면 한 해의 문을 닫으며 忘年이 아닌 送年의 의미를 담으라고 한다

이젠 추운 겨울바람에도 작은 미동으로 반응하는 나뭇가지 사이로 빠져 나가는 아쉬움과 새로운 희망의 공존

뜨거웠던 여름만큼이나 더 뜨겁게 다가올 세모... 모든 것을 바다 줄 것 같은 동해 바다는 해답을 줄 수 있을까? 

 

 

 

들어가기

 

 

 

해파랑길은 동해안 해변을 따라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색(파랑)을 합친 말로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바닷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으로

부산 오륙도해맞이공원을 시작으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총 10개 구간 50개 코스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770Km에 달하는 트레킹으로 신라 화랑들의 수양의 길이기도 하다

 

 

동해안 해파랑길 3.4구간 (부산 마지막) - 월광(이천)에서 효암천까지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에 대한 부담으로 코스를 줄여 진행하는 관계로 3구간의 이천항에서 시작하여

옥황상제 딸이 내려와 베를 짰다는 데서 유래한 17개의 포구가 밀집해 있는 기장군을 계속 이어가는 구간으로

일광 8경을 조금은 느낄  수 있는 일광 해변을 뒤로하여 걷다보면 역시 수많은 포구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고

동오성(문오동文五洞) 마을의 시작인 동백(문서)리와 아나고회로 알려진 붕장어를 칠암에서 만날 수 있다

 

해파랑길이 조금씩 빨라지기는 한데... 이제 서서히 팀도 자리를 잡아가고... 일광면 이천항에 도착 출발전 몸도 풀고...

 

日光이라는 한자를 써서 그런지 유난히 둥근 원 시설물이 많다. 2.3구간 일광해변 방면으로 잠시 들려 본다

 

이천 할매당집을 담아 본다. 바로 위에 할배당집이 있다고 하는데 다음 보충 답사 시 확인하기로 하고...

 

소설 갯마을 현장 안내석이 바로 아래에 있다. 일광 이천 일대가 갯마을의 배경지라고 한다.

 

일광산과 일광 해변이 펼치는 일광8경... 일광천 뒤로 일광산을 담아 본다. 주로 해가 뜨고 지고...

그렇다고 여기서 하룻밤 잘 수도 없고... 얼마나 아름다우면 일광면 8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일까 확인할 방법이 없네...

 

일광 해수욕장과 학리 방면

 

잠시 후 만나게 될 이동마을과 함께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올려질 정도로 바둑돌이 많이 났다고 하는 이천항

 

오늘의 시작은 이천해녀복지관 건물에서 시작된다

 

이천항 들머리

 

기장의 흉물로 남아 있는 한국유리공장 울타리를 따라 걷게 된다. 곧 철거한다고 한다

 

되돌아 본 이천항 그리고 학리 해변... 그 뒤 우측이 봉태산인 듯...

 

학리 끝 부분... 저 곳을 걷지 못함이 좀 아쉽다. 언젠가 다시 걸을 수 있지 않을까?

 

물이 빠지면 저기서 풍어제를 지낼 것이다. 2.3구간 죽성리 두모포풍어재 표지석을 확인했는지... 한 번 빠지니 모든 것이 아쉽다

 

 

이동항이 보이고..

 

추운데 가두리 작업중이시네요

 

잠시 길을 따르면

 

건물을끼고 우측 도로따라 돌아간다

 

기장의 흑석돌, 수영이 백색돌... 바둑 애호가들이라면 관심이 많을 듯...

 

전국 최대 다시마 집산지 기장 미역중에서도 절반가량을 여기 이천에서  생산한다고.. 이천리 이동마을 항구 방향으로...

 

이천과 마찬가지로 바둑돌이 갯가에 널려 있어 붙여진 기포()라는 옛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동항구와 방파재

 

여기서 해파랑길은 좌측 도로로 나가야 한다

 

계속 도로를 따르는데... 도로 좌측으로 예부터 해송이 우거져 수군이 배를 만드는 목재로 사용했다는 거물산 자락과 함께 한다.

이를 위해 봉산(나라에 필요한 목재로 사용하기 위해 벌채를 금지하는 산)으로 지정했다고...'송금(松禁)제도의 일종이다

 

조선시대에 소나무의 의미는 건축물 자재뿐만 아니라 자동차가 없던 시절 중요한 수송 수단이던 선박을 만들고

거기에 겨울철 연료로도 쓰이고 흉년 시 구황식품으로서의 기능까지 없어서는 안 되는 자원이기에 보호했던 것

자원이 한정됐던 조선시대에 가장 큰 국가의 정책의 1순위로 소나무를 보호하는 것은 어쩜 당연했던 것 아닐까?

 

지금도 울창한 계속되는 거물산 소나무숲과 함께하다 보면 부대앞 정류장이 나오고... 여기를 선바위 유원지라 하는 듯...

 

전국 300여 곳에 소나무를 심어 송금지역으로 지정 관리했다는 기록만 봐도 알 수 있었던 조선임업정책의 단면

지금도 아무리 사유지라도 소나무를 베는 것은 불법인데 조선시대에는 한 두 그루 베면 곤장 100대요

서너 그루 베면 곤장 100대에 군대징집, 열 그루 이상이면 곤장 100대에 변방 이주 라는 형벌에 가했던 까닭이다

 

 

선바위 유원지 부근은 수석 애호가들의 해석() 탐석지유명한 곳이었으나 무분별한 채취로 자원이 고갈되었다고 한다

 

 

이제 도로 데크길을 따르게 되어 운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해파랑길보다 자전거 길로 만들기 위해 설치한 듯...

 

도로 좌측으로 해동성취사 사찰

 

바로 옆 용주사 가는 길에 열녀문도 함께 한다

 

 

이제 도로를 버리고 문오성길(사진 상단 이정표)을 따라 해변을 따라 계속 이어가게 된다.

마을이 남쪽을 향하고 있어 따뜻하고 또한 마을에 작은 공동 샘이 있어 붙여진 이름인 온정溫井마을

 

계속되는 문오성길


 

오랜만에 부산의 빌딩숲을 지나니 파도소리가 가깝게 속삭임으로 다가 온다. 멀리 고리 원전이 눈에 가시지만...

 

동오성(문오동文五洞) 마을 시작점 동백(문서) 마을에 있는 동백포구

동오성(뭉오동文五洞) 마을

문오동(文五洞)은 기장군 일광면 지역 중 중북면에 속하였던 문동. 문중. 칠암(문하). 신평(문상. 해창). 동백(문서)

다섯 개 마을을 가리켜 마을 이름 앞 글자에 ‘문(文)’ 자가 들어간 다섯 개 마을이라 하여 문오동 또는 동오성 마을이라고 부른다.

문오동은 원래 지역 주민들만 즐겨 쓰는 지명이었으나, 칠암 횟집들이 유명세를 타며 해안 도로를 따라

횟집 구역이 늘어서게 되면서 이를 통칭해 문오동 회 거리로 부르게 되었다.

문오동 회 거리가 유명해지며 해안가를 따라 조성된 도로 이름도 문오성길이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동백방파재 등대

 

동백천 복개천 위에서 잠시 동백꽃과 관련이 없는 동백冬柏마을 버스 정류장과 동백천의 발원지인 달음산이 보인다 

달음산과 월음산 그리고 거물산 줄기 북쪽으로는 동백천이 흐르고 남쪽으로는 일광천이 흐른다

 

팔작지붕의 당사(堂祠)가 있다는데 확인하지 못하고 제단을 만날 수 있다. 전문가가 아니라서 나무 이름은 확인하지 못함

 

수호신처럼 마을을 지키고 있어 제단까지 만들어 놓고 정성을 다하고 있다

 

계속 해안길을 따르면

 

11시 방향으로 진입

 

갈매기들에게도 최고의 명당 자리가 있는 듯...

 

 

그럼 정자가 나오면서 신평소공원이 나온다

 

신평리新坪里 뒷산이 민둥산이었기 때문에 옛날에는 독이방(禿)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윳판대

 

 

신평리에서 칠암으로 들어가는 길... 일본말 아나고라 알려진 붕장어(弸張魚)로 더욱 유명한 곳이 이 곳 칠암이다

 

옻칠을 한 것처럼 바위에 윤기가 난다고 하여 부르게 된 칠암항()... 사람사는 맛이 날 정도로 발달되어 있는 듯...

 

우측부터 칠암 방파재에 있는 야구 등대 그리고 좌측으로 갈매기등대와 붕장어 등대...

..

 

이생진 시인은 ‘등대는 외로운 사람의 우체통’ 이라 했다고 한다.

망망대해에 떠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

별에서 오는 편지와 별에게 보낼 편지를 담아두는 우체통...

우리가 가진 등대에 대한 생각을 넘 멋지게 표현했다

 

청계천 답사에서도 보았던,,, 사랑의 맹서...야구등대를 보면서 야구의 도시 부산다운 생각으로 만들었다는 생각...

 

이제 칠암을 넘어 문중으로 넘어가는 구분점이 되고 있는 문중나불쉼터와 문중리 당집

 

문오동마을의 본동이였던 문중 해변을 걷다 보면 마을 구분이 쉽지 않은 문동마을이 보이기 시작하고

 

일광해창 안내문

 

문중마을 해변에서 홀로 식후경 후 우측이 문중, 좌측이 문동마을 방파재를 담아 보고

 

문동해녀복지회관을 지나 문동마을 - 문오동 마을의 마지막 마을

 

계속 해변길

 

다시 여기서 도로로 나가게 된다

 

 

새롭게 뜨고 있는 정관 신도시를 흘러 여기에서 동해에 입맞춤하게 되는 좌광천의 임랑교를 지나

 

임랑 버스 정류장이 있는 임랑삼거리에서 다시 해변으로

 

바로 박태준 생가 조성작업이 한창이다... 그 분의 평가는 역사의 몫으로...

 

숲이 울창하고 물결이 아름답다 하여 수풀 림자와 물결 랑자를 따서 임랑이라 이름 붙였다는 임랑 해수욕장

 

임랑 해수욕장을 따르다 임랑행정봉사실 건물에서 잠시 좌측으로 들어가면...

 

도로에 보호수와 당산집이 있다

 

 

 

되돌아 본 멀리 학리 해변부터 임랑까지...

 

임랑 방파재

 

해파랑길은 여기서 다시 도로로 나가야 한다

 

 

바로 다시 월내리 해변으로

 

삼성 디카를 샀다가 삼성전자는 나에게 욕은 쌍욕은 다 먹고 있다. 벌써 밧데리가 다 됐다고... 헨편으로

 

고리 원전은 더욱 가까워지고

 

월내 오일장터가 있는 월내 방파재 앞에서 다시 모두 모여 진행하기로...

 

 

시간이 남아 잠시 월내역으로...월내 오일장터에서 도로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좌측으로 가면

 

월내역사 앞에서 우측으로 보호수와 당집이 보인다

 

당집인 줄 알았는데 보부상 관련 비가 3개 있다고... 자료 참조 : http://blog.daum.net/dkfemsea/633

 

그렇다면 아까 보았던 곰솔 보호수에 있던 당집이 임랑당집일까?  속을 들어가 볼 수가 없으니...

 

모두 다시 모여 계속 해변길따라...

 

그럼 장안천 합수점에서 장안천을 따라 올라간다

 

 

다시 도로가 나모면 우틀하여 다리를 건너간다

 

길천삼거리를 지나고

吉川里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길천리

길천은 과거에 이 지역을 사투리로 질곶이천라고 불렀는데 이를 한문으로 바꾼 것이다

길천리()는 지역 내에 있는 질고지[마을 북쪽의 들]와 질곶이천[들을 흐르는 소하천]과 연관된 지명으로 추정된다. ‘질’은 ‘길’의 사투리이기 때문에 길()이 되었고, ‘천’은 소리나는 대로 차음하여 천() 자를 따서 길천()이라 불렀다.

[네이버 지식백과] 길천리 [吉川里]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여기서 좌측으로 진입 - 도로 넘어 수력 원자력 : 계속 도로를 따라가도 될 것 같은데 아마 산길이 조금 빠른 듯...

 

계속 도로를 따라가면

 

이제 봉태산 숲속으로

 

봉태산 갈림길에서 해파랑길은 좌측으로...길천리, 효암리, 울산 울주군 명산리 경계로 이제 울산과 경계를 따르게 된다

 

봉대산 방향으로 잠시 올라가면 부산시계 탐사팀 띠지가 보인다

 

봉태산 정상은 울타리가 있다

 

봉대산 아이봉수대가 바로 옆에 있는 줄 알았는데.. 도로 넘어에 있다고... 다시 되돌아 오다가 담아 본 달음산

 

삼거리에서 해파랑길을 걷다 철탑을 지나고

 

도로가 나오면 좌측으로

 

애견학교가 있는 듯... 도로를 만나면 우측으로

 

그럼 이제 울산 속살로 들어가게 되는 효암천을 만나게 된다. 해파랑길은 여기서 다리를 건너 우틀하여 효암천변을 따라 간다

 

우리는 여기서 종료하기로 하고...

 

 

 

 

해파랑길은 이제 부산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울산의 환영 속에 이어갈 것이다

조선 초기 이름 했던 부산富山이 부산釜山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내러오고 있지만

해파랑길에서 만난 가마솥을 닮은 산이 있어 붙여진 부산釜山하면 떠오르는 단어들...

조용필이라는 가수와 함께 부산의 대표적 상징이 된 오륙도를 시작으로

부산의 대표적인 도심 속 해양공원으로 알려진 광안리를 지나자마자

빌딩숲이 스카이라인을 그리는 한국의 맨하튼으로 불리는 수영만이 정점을 찍더니

지금은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휴양 관광지가 된 우리의 자랑스러운 해운대까지...

나의 결론은  이제 다시 부산富山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빌딩숲은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말 그대로 때 묻지 않은 자연을 품은 해안과 포구들

두 개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해준 새로운 부산 기장군과의 또 다른 만남이 있었기에

음양의 조화가 별거던가?

이런 음양의 조화가 부산 시민을 그래도 살만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 힘은 아닐까?

 

죽성리 왜성을 시작으로 오늘 답사까지는 할 수 없었지만 임란포 왜성 등등

일본과 마주하고 있는 동해의 숙명적인 역사들도 함께 했던 해파랑길... 

거기에 해운대에서 송정까지 펼쳐지는 절경을 한눈에 보면서

파도 소리와 힘께 걸을 수 있었던 삼포철길과 같은 낭만적이니 얘기들까지...

또 얼마나 많은 얘기들을 나를 기다리고 있고

또 들려주려 할까?

 

해파랑길이 계속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아닐까?

 

 

                                초보산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