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유산 기행 백제의 마지막 고도 부여를 걷는다.
-하루기행-
2022년 7월 23일 토요일, 여름의 한 복판에 찬란한 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부여를 걷습니다.
나라 안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규모가 큰 연지 궁남지를 답사하고 정림사지에서 부여의 고샅길을 걸어 부소산에 오르면 삼천궁녀의 한이 서린 낙화암이고 산을 내려가면 고란사에 이릅니다.
다시 부여읍에 나와 신동엽시비가 있는 나성과 부여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부산을 답사하고 부여군 임천면의 성흥산성과 대조사 일대를 걸을 예정입니다.
“위례성과 웅진에 이어 백제가 마지막으로 도읍지를 옮긴 곳이 사비성, 곧 부여이다. 옛 이름이 소부리군(所夫里郡)인 부여가 122년에 걸쳐 백제의 흥망성쇠를 지켜보았는데,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게 백제가 망한 것은 31대 의자왕, 660년 7월이었다.
“날이 부우옇게 밝았다”는 말에서 나온 부여는 아침의 땅이었다. 그러나 그 조용했던 아침의 평온은 나당연합군의 침략으로 산산이 깨어졌다. 「동국여지승람」은 당시의 모습을 “집들이 부서지고 시체가 우거진 듯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이때 삼천궁녀들이 낙화암(?)에서 몸을 던졌다.
정림사지의 백제탑을 보라. 5층석탑의 기단부에 ‘대당평제탑(大唐平齊塔)’이라는 글자가 화인(火印)처럼 찍혀 천몇백 년의 세월을 견디었다. 사람들은 가끔씩 옛 추억을 찾아가듯 부여에 갔다. 부소산 낙화암에 올라 요절한 가수 배호가 불렀던 ‘추억의 백마강’을 불러제끼는 것으로 잃어버린 왕국을 생각했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
낙화암 그늘 아래 울어나 보자.
사람들은 그 노래 한마디를 부르며 잃어버린 백제왕국을 되찾는 착각에 빠져 이 나라의 노래방에선 밤마다 슬픔도 없이 구곡간장(九曲肝腸)이 알알이 찢어져간다.
조선 숙종 때 사람 석벽(石壁) 홍춘경(洪春卿)은 그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라가 망하니 산하도 옛 모습을 잃었고나
홀로 강에 멈추듯 비치는 저 달은 몇 번이나 차고 또 이즈러졌을고
낙화암 언덕엔 꽃이 피어 있거니
비바람도 그 해에 불어 다하지 못했구나.
이 같은 역사를 지닌 부여에서 내세우는 부여팔경(扶餘八景)은 어떠한가. 양양 낙산사․삼척 죽서루 같은 관동팔경이나 도담삼봉․사인암 같은 단양팔경에서 내세우는 아름다운 광경이나 경치와는 이름부터가 틀리다. 미륵보살상과 탑 하나 덜렁 남은 정림사지에서 바라보는 백제탑의 저녁 노을과 수북정에서 바라보는 백마강가의 아지랑이, 저녁 고란사에서 들리는 은은한 풍경소리, 노을진 부소산에 간간이 뿌리는 가랑비, 낙화암에서 애처로이 우는 소쩍새, 백마강에 고요히 잠긴 달, 구룡평야에 내려앉은 기러기 떼, 규암나루에 들어오는 외로운 돛단배.
부여팔경은 부소산과 낙화암 그리고 그 아래를 흐르는 백마강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진 경치이다. 거기에 신동엽(申東曄) 시인이 썼던 「금강잡기(錦江雜記)」에 이르면 백마강과 부여 땅에 스민 슬픔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깨닫게 된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금강 속으로 여승들은 사라지고
초여름 백마강가 고란사에 세 젊은 여승이 찾아왔다. 회색 승려복을 단정히 입은 그들은 이틀을 묵으며 고란사를 찾는 사람들과 그 근처 상인들과 잘 어울렸다. 때로는 보트도 타고 조약돌을 주어 바랑에 넣으며 이틀을 지낸 후 그들은 조약돌이 가득 담긴 그 무거운 바랑을 어깨에 걸어서 허리에 꼬옥 졸라매고 일렬로 늘어서서 강의 중심을 향해서 걸어 들어갔다. 그것을 본 사람이 있었다. 건너 마을 사공이 날씨를 보러 문 밖에 나왔다가 어스름 아침에 강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세 그림자를 보고 말았다. 그것을 보고 놀라서 마을 청년들에게 소리 질렀다.
그러자 그와 때를 같이 하여 주먹만 한 소나기 빗발이 온 천지를 덮으면서 난 데 없는 뇌성벽력이 하늘과 땅을 뒤덮어 놓았다. 소나기와 천둥이 가라앉은 후 마을 사람들과 절간의 승려들이 모든 배를 동원하여 그들을 찾았는데 가장 어린 여승의 시체가 물위에 떠올랐다고 한다. 스물둘, 스물넷이라던 두 여승은 끝내 사라지고 말았다. 아무 유서도 없이 유언도 없이 그들은 떠오르지 않기 위해, 발견되지 않기 위해 무거운 자갈 바랑을 몸에 묶고 물 속으로 죽음의 길로 걸어간 것이다.
그들은 이승 저편 피안의 세계에 무엇을 보았을까. 그들의 죽음에 하늘은 어찌하여 소나기와 뇌성벽력을 조화했을까. 신동엽 시인은 그날 오후 백마강가에 나가 죽어서 누워 있는 그 젊은 여승을 보았단다. 너무도 앳띤 얼굴, 이 세상 그 어느 것에도 상관이 없다는 듯 평화스런 얼굴을 바라보고 강기슭을 한없이 거닐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경관과 나라 잃은 슬픔이 곁들여져 이곳을 찾는 나그네들의 심사를 어지럽히는 백마강 건너 솟아오른 산이 부소산이다.
부소산에는 임금과 신하들이 서산에 지는 달을 바라보며 풍류를 즐겼다는 송월대가 있고 동쪽 산정에는 임금이 매일 올라가서 동편 멀리 계룡산 연천봉에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맞으며 국태민안을 빌었다는 영일루가 있으며, 군창터가 남아 지금도 불에 탄 곡식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느티나무 한그루가 외롭게 서 있는 성흥산성과 대조사를 지나 귀로에 오를 여정에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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