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초보산꾼이야기

허균이 짓고서 살고 싶었던 집.

산중산담 2013. 7. 27. 13:55

허균이 짓고서 살고 싶었던 집.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이 나이를 따지지 않고 사귀었던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서예가인 한석봉과 화가인 이정이었는데, 이정은 노비 출신 화원 집안의 자손이었다.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난 허균과 천민출신의 이정이 만나서 친교를 맺으며 살게 된 것은,

허균의 아버지 허엽이 이흥효와 신분을 생각지 않고 친하게 지냈기 때문이다.
허균이 아버지 허엽에게 이흥효를 어찌 그리 후하게 대접을 하는가 물었다. 허엽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아름다운 선비이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옛 현인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며, 거문고와 바둑을 이해하고 속이 탁 트여 세속에 얽매이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이정은 허균과 이런저런 일로 왕래가 잦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 자라서는 불교에 심취했던 허균과 불화를 잘 그렸던 이정은 서로 눈빛만 보아도 마음이 통하는 사이였다.
허균은 이정의 그림을 사랑했다. 그래서 허균은 정미년인 1607년 1월에 자기가 짓고 싶은 집 그림을 그려달라는 편지 한 통을 보냈다.

“큰 비단 한 묶음과 갖가지 모양의 금빛과 푸른빛의 채단을 짐 종에게 함께 부쳐 서경西京(평양)으로 보내네.

모름지기 산을 뒤에 두르고 시내에 임한 집을 그려주시되 다음과 같이 배치하여 주게.
온갖 꽃과 밋밋한 대나무 천 그루를 심어두고, 가운데로는 남쪽으로 향한 마루를 터주게.

그 앞 토방을 넓게 하여 석죽石竹과 금선초金線草를 심어놓고, 괴석과 해묵은 화분을 늘어놓아 주시게.

동편의 안쪽 방에는 휘장을 걷고 도서圖書 천 권을 진열해야 하네.
구리병에는 공작새의 꼬리 깃털을 꽃아 놓고, 비자나무 탁자 위에는 박산향로를 얹어놓아 주게.

서쪽 방에는 창을 내어 애첩愛妾이 나물국을 끓여 손수 동동주를 걸러서 신선로神仙爐에 따르는 모습을 그려주게.
나는 방 한가운데서 보료에 기대어 누워 책을 읽고 있고,

자네는...(원문 2자가 빠졌음) 주위에서 농담하며 웃고 즐기되 두건頭巾과 비단신을 갖춰 신고 도복에는 허리띠는 두르지 않으며,

한 줄기의 향불 연기는 발 밖에서 피어오르는데, 두 마리의 학은 바위의 이끼를 쪼고 있고,

산동山童은 빗자루를 들고 와서 떨어진 꽃잎을 쓸고 있는 모습을 그려주게. 이렇게 되면 인생의 일은 끝나는 것이라고 보네.
그림이 완성되면 돌아오는 태징공台徵公 편에 부쳐주기를 간절히 바라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이덕무李德懋는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서 허균이 “이정에게 준 편지에 동산을 그리는 데

그 배치를 설명한 것이 역력히 신묘한 경지에 들어갔으니 매우 기이한 필치이다.” 라고 하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허균은 그가 꿈꾸었던 집 그림을 받지 못하였다.

그가 보낸 편지를 받은 며칠 뒤인 1607년 2월 이정이 평양의 거리에서 갑자기 죽었기 때문이다.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
이정이 그림을 보내주었다면 허균이 그와 같은 집을 지었을 것인가? 모를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교외에다가 저마다 개성 있는 집들을 짓고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대부분이 못 이룰 꿈을 꾸다가 어느 날 깨어난다.
저마다 갖고 싶지만, 갖고 나면 그 뿌듯함도 잠시, 부담만 가는 자연 속에 지은 별장이나 전원주택을 바라보면서 나는 걱정스럽기 만하다.
왜냐? 별장이나 전원주택은 소유하는 순간부터 골치를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이상한지, 사람들이 이상한지,
하지만 허균의 꿈꾼 집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것은 그 집이 너무 사실적이면서도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인 집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생에서 짓고자 하는 집은 없는데, 혹시라도 당신이 꿈꾸어서 짓고 싶은 집은 어떤 집인지?

임진년 정월 열엿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