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승산으로 가기 전날 밤에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두승산에 간다.
동학농민혁명의 진원지인 두승산 아래
고부가 있고, 황토현, 말목장터가 있으며,
가까운 곳에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이라고 알려진 백산과 죽산이 있다.
조선 후기 나라가 어지러웠을 때
이 땅의 농민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던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한 지 어언 120주년
1894년의 갑오년, 1954의 갑오년, 그리고 60년이 지나 2014년 갑오년이다.
우리 생애에 다시 못 만날 갑오년을 코앞에 두고
두승산으로 가기 전날 밤의 마음은 착잡하다.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이 되던 해가 엊그제 같은데,
그 새 20년이 지났는데도 세상은 어지럽기 이를 데 없다.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도 분명하지 않은 작금의 시대에
두승산 자락 동학의 현장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올 것인지,
나는 1994년 ‘사람과 산‘에 <동학의 산> 그 산들을 가다를 연재 중이었고,
그때 나는 녹두장군 전봉준이 붙잡힌 피노리를 답사하고 돌아오면서
다음과 같은 메모를 했었다.
“아직 포장이 끝나지 않은 비포장도로에 내 마음은 덩 다라 흔들렸다. 나는 김개남이 잡힌 산내면 종성리 돌아 전주로 갈 것이다. 아이들은 피곤이 깊지 않은지 떠들썩하다. 나는 아이들에게 조용히 해라 말 하지 않았다. 지금은 나 혼자만 침묵할 뿐이다.
내 마음 속에 하나씩, 둘씩 살아나는 그리운 이름들 있다. 내 가슴 속에 울컥 되살아나는 그리운 얼굴들이 있다.
지금은 잊었다고 고개 흔들어도 그날의 그 역사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두 손 들고 거부해도 내 마음 속에 시퍼렇게 살아 달려오는 아름다운 이름, 아름다운 얼굴들이 있다. 형체도 없이 분해되고 해체되어 사라져갔던 그들이 갑오년의 그 역사가 다시금 이 땅에 저렇게 선명하게 되살아오는 그것들은 무엇인가.
곧 이어 이 땅에 봄이 오고 내가 가는 이길 모퉁이마다 연분홍의 진달래꽃이 피어나고 저 섬진강변 구석진 곳 어디에서고 버들강아지는 피어나리라.
그러나 아직도 이 땅은 두 동강이로 갈라진 땅이고, 사람과 사람들이 사람이 만든 이념으로 쓰잘 데 없는 욕심으로 만나고 합하지 못하는 땅이다. 나는 물었다. 사람이 한울인 나라 미륵의 나라 그리운 나라여! 당신은 어디쯤에 있고 우리는 어디쯤 가고 있는가?
의문 속에 도착한 종성리에서 나는 ‘여기가 원래의 종성리냐?’고 물었고 사람들은 “누구를 찾아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봉두난발의 조선 사내 김개남이 이곳에 왔었느냐?’고, 그리고 ‘어디로 갔느냐?’고 묻지 못하고 ‘원종성이 정말로 맞느냐?’ 고만 다시 물었다. 목이 메었다.
그때 그 시절, 그토록 가슴 아리게 찾아다녔던 동학의 현장도 20여년이라는 세월 속에 몰라보게 변했을 것이다.
나는 그 현장들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또 어떤 마음을 가지고 돌아올 것인지,
밤이 깊어가는 데도 잠 못 드는 이 마음이 두근두근 설레면서 두려운 것은 그 무슨 연유인지,
계사년 섣달 스무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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