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버스나 열차를 타고 가다가 보면 여기 저기 산천을 물들이고 있는 꽃들이 마음을 산란하게 해서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라 어딘 들 봄이 아니랴만, 서울의 봄이 더욱 요란하다. 날이 맑을 때에는 멀리 보이는 북한산이며, 인왕산, 북악산, 도봉과 수락산, 그리고 강남 쪽에 자리 잡은 관악산과 청계산, 그 어느 산이건 간에 푸르러 가는 나무들 사이로 온통 꽃밭이다.
버스에서 내려 3호선을 타고 압구정역을 지나 한강을 가로지르다 남산을 보니 산 벗꽃의 향연이 숨을 멎게 한다.
남산, 크지는 않지만 서울의 중심에 자리 잡은 산으로 누구에게나 오름을 허락하는 남산, 그 남산을 조선 후기에 올랐던 산녕재 유득공柳得恭이 <춘성유기>라는 글을 남겼다.
“.....그 이튿날 남산에 올랐다. 장흥방을 지나 회현방에 접어드니, 언저리에 옛날 이름난 재상들이 살았던 집들이 많다. 그 중에는 허물어진 담장 안에 늙은 소나무와 오래 된 회나무가 치렁치렁한 고택도 보인다.
건너 뛰어 높은 곳에 백악(白岳.북악)을 바라보니 그 모양이 둥글고 뾰족하여 마치 사람이 모자를 쓴 것 같다. 저 멀리 바라다 보이는 도봉은 뾰족뾰족하여 모양이 전통에 꽃힌 화살 같기도 하고, 붓통에 꽂힌 붓 같기도 하다. 한편 인왕산은 마치 사람이 두 팔을 쭉 뻗고 나는 것 같다. 멀리 보이는 삼각산(三角山. 북한산)은 흡사 여러 사람들이 모여 서 있는 것 같은데, 그 중에 키가 큰 한 사람이 굽어보는 것 같고, 나머지 여러 사람들의 머리가 마치 그 턱 밑에 닿은 듯하다.
성안의 기와집들은 흡사 검푸른 흙밭을 이제 막 갈아엎은 것 같고, 행인들이 오고 가는 큰 길은 마치 긴 개울이 들판을 꿰뚫고 굽이쳐 흐르는 것 같아 사람들과 말이 그 개울 속에서 노니는 물고기 모양으로 보인다. 마치 사람이 모자를 쓴 것 같다.
서울의 호구가 팔만이라 하니, 지금 이 시간에 그들 중에는 노래 부르는 사람도 있고, 우는 사람, 마시고 먹고 장기 두고 바둑 두는 사람, 남을 치켜세우기도 하고, 비방하기도 하며, 일을 하거나 또는 일을 꾸미려 하는 사람 등, 이 높은 곳에서 그 모든 작태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한다면 가히 한 바탕 웃음이 터져 나올 것이다.“
유득공의 생각과 비슷한 글이 <지비록知非錄>에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일찍이 높은 산에 올라 성시城市를 내려다보았다. 성이 개미집처럼 보이니, 모르겠지만 거기에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는가? 높은 데에서 내려다보니 세상사는 것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이 산이 성의 높이보다 과연 얼마나 더 높겠는가, 그런데도 이렇게 보이는데 진정으로 진짜 신선이 하늘 위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본다면, 개미집같이 보일정도 뿐이 아닐 것이다.”
그럴 것이다. 마치 개미나 좁쌀 같은 인간의 무리들이 그 비좁은 공간에서 서로가 잘났다고 시기질투를 벌이며 사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바로 인생살이인 것을,
숭례문에서부터 천천히 오르면 금세 도착하는 남산의 정상에서면 울긋불긋 피어난 봄꽃너머로 보이는 집들 속에 촘촘히 박혀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유득공의 모습이 보일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떤가? 서울의 남산에서도 육백여리나 멀리 떨어진 전주에서 어제 보았던 남산을 회고하고 있으니,
근간에 천천히 남산에서 광희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서울의 이모저모를 들여다 보아야 하겠다.
서울은 안녕하신가? 하고,
갑오년 사월 열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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