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자료 모음

나라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 섬진강 530리 길을 걷다. 첫 번 째

산중산담 2016. 3. 3. 09:20

 

나라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 섬진강 530리 길을 걷다. 첫 번 째

 

 

나라 안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섬진강 530리 길 도보답사가 시작됩니다.

겨울의 마지막에서 시작하여 섬진강의 아름다운 꽃길을 걷게 될 이번 여정은 네 번째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에서 시작하여 마령에서 마이산천을 만나고, 풍혈냉천과 사선대를 거쳐 임실군 운암면을 거쳐 섬진강댐까지 걷게 될 이번 여정에 많은 참여 바랍니다.

옛 시절 창이 있었던 동창을 지나면 마령-장수간 도로포장도로가 한창이기 때문에 팔공산(1151m)의 산허리가 파헤쳐진 모습이 보인다. 저 길이 뚫리면 진안 장수간 거리가 30분 정도가 단축된다고 하는데 빠른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원신암마을을 거쳐 데미샘에 도착했다. 모든 기록 속에 상추막이골로 되어있는 이 곳은 마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옛날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초막을 짓고 살았었기 때문에 위쪽에 지은 초막을 상초막이라고 했고 아래쪽에 지은 초막을 아랫초막이라고 부르면서 사시사철 아무리 가물어도 샘물이 그치지 않고 나온다는 이 샘물을 바라보며 맹자의 말 한마디가 생각났다. 맹자의 제자 서벽이 공자께서 자주 물을 찬양하여 물이여 물이여라고 하시었는데 무엇을 물에서 취하신 것입니까?”라고 질문하자 맹자는 근원이 풍부한 샘물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흘러나온다라고 말한 후 이것이 공자께서 물을 찬미하신 까닭이라고 하였는데 섬진강의 발원지 데미샘 역시 저처럼 끊이지 않고 새록새록 흘러나와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며 낮은 곳으로만 흐르고 흘러서 남해바다로 들어갈 것이다.

내린 눈 다 녹지 않은 데미샘에 비는 내리고 그래도 어쩌겠는가. 약식으로 제상을 차리고 제를 올린다.

신사년 이월 섬진강 발원지에서 하늘에 올리는 글

유세차

신사년 이월 스무사흘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상추막이골 데미샘에서 황토현문화연구소와 전북환경운동연합 그리고 우리나라 여러 지역에서 온 뜻 있는 사람들이 지극 정성 모아 하늘에 고합니다.

나라 안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섬진강의 발원지 데미샘에서 졸졸 흐르는 물이 마령 거쳐 성수를 지나고 관촌을 거쳐서 오원강이 됩니다. 옛 시절 역원이 있던 오원을 지난 섬진강은 실향민들의 한이 서린 운암강에 접어들고 그 곳에서 대다수의 물은 호남평야로 접어들고 많지 않은 물길이 진메, 천담을 지나 동계, 적성을 따라 흐릅니다. 곡성 못 미쳐에서 요천을 받아들인 섬진강이 압록, 구례를 거쳐 민족의 성산 지리산을 바라보며 하동에 이르고 하동포구를 벗어난 섬진강은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에서 남해바다에 합류합니다.

섬진강 물길이 흘러가는 오백 삼십리 길을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며 우리들이 만나게 될 사람들이나 자연환경 그리고 문화유산들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물길이 우리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라도 강 그 자체는 변하지 않는데 사람들 자체가 변하기 때문에 강도 따라 변하게 되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따라가는 그 강에 옛날처럼 은어가 뛰어 놀고 연어가 올라오는 그러한 강이 되기를 기다려야 하고 사람과 자연이 자연과 문화가 하나로 만나는 그러한 시간을 우리는 꿈꾸어야 될 것입니다.

한울님이시여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을 굽어살피시고 우리들의 봄 꽃피는 섬진강 오백 삼십리길을 따라가는 여정을 무사히 마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오원강 적성강, 순자강, 보성강 등을 비롯한 여러 지류들이 모여 섬진강이 되고 그 강이 남해 바다로 흘러가듯이 철벽같이 굳게 닫힌 마음의 벽을 허무시고 사람이 자연을 사랑하고 그 자연과 함께 하나가 되도록 일깨워 주소서. 그리하여 낮은 곳으로만 흐르는 강물을 보며 자연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모두가 섬기고 경외하는 그러한 시간을 허락하여 주소서.

 

상향

고천문이 울려 퍼지고 다 함께 절을 올린 뒤 우산을 든 채 음복을 한다. 아직도 따끈따끈한 시루떡을 나누어 먹으며 섬진강을 따라 걷는 오백삼십리 길이 무사하길 빌지만 모든 것은 하늘의 뜻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순간, 순간을 살아가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데미샘에서 원신암 마을까지 3.8km 길은 얼마 안 있으면 포장이 될 것처럼 자갈이 깔려있고 비는 끊임없이 내린다. 박준열 부장은 내리는 비속에서 내게 말을 건넨다. “얼마 전에 오래 산 사람들을 취재해보니 거의 대다수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고 하던데요. 아홉시쯤 잠이 든 후 네 시에 일어나고 수돗물을 먹지 않고 자연적으로 흐르는 물을 먹는다고 해요그러나 요 근래 들어 자연적으로 흐르는 물을 그대로 먹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눈에 덮힌 선각산

본래 진안군 남면의 지역으로 섬진강의 최상류의 산중에 암석이 많은 곳이라 하여 신암莘岩이라고 하였는데, 원신암 마을에 도착하여 흐르는 시냇물을 바라보다가 눈 들어 선각산(仙角山)을 바라다본다. 해발 1034m인 저 선각산 정상 아래에는 씨알이 쭉쭉 뻗은 더덕밭이 있었고 골짜기가 깊고 산이 가파라서 저 선각산만 오르면 나물들이 지천으로 깔려있었다. 이른 봄에 먼저 나오는 고비나물에서부터 까시가 거의 없는 오동통한 참두릅 그리고 요즈음에는 여러 지역에서 재배가 되고 있는 곰취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었다. 하나 캐고 또 눈 들어 보면 윤기가 번지르하게 눈에 밟히던 더덕덩쿨 그때가 몇십 년이 훌쩍 흐르고 난 몇 년 전 봄날에 이곳에 왔었지. 지금은 내 마음 속에 멀리 가고 없는 몇 사람과 이 골짜기에서 취나물과 딱주잎도 뜯고 더덕도 몇 뿌리 캐서 집에서 싸가지고 온 고추장과 된장에 싸먹었었지. 그때 흐르던 그 물은 어디로 가고 나는 다시 이곳을 걸어가고 있으니.

임하마을 슈퍼에서 최선생님이 여러 번 찾아뵈었다는 최만근(68) 선생을 만난다. 비가 내리는데 어떻게 먼 길을 나섰느냐고 어서 들어오라고 불을 피운다. 이런 풍경이 고향의 풍경이고 변하지 않는 우리 민족의 고운 심성일 것이다. 더러는 우산을 받쳐 들고 더러는 들어가서 초코파이 한 개씩을 나누어 먹으며 이 지역의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저 저수지 안에가 절이 있었다는 흔적이 남아있어요. 골짝 골짝 암자 터가 많이 남아있는 디 명칭이 다 있어요. 데미샘 가는디 때맛골에도 절터가 있었고 바랑골 안에도 절터가 있었어요. 시어보면 예닐곱개 될거예요.” 최만근 선생님의 말씀처럼 그 절이 불개미 때문에 망했다는 절도 많지만 대개는 빈대가 많아서 절을 불태웠다는 빈대절터가 많고 충남 보령의 성주사터도 쌀뜨물이 십리를 흘러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우리나라에 절이 들어온 이후로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명산마다 얼마나 많은 절들이 세워지면서 얼마나 많은 민중들의 희생과 고난이 뒤따랐겠는가. 산중의 암석이 많기 때문에 신암리라고 이름이 붙은 이곳 신암리 방죽을 초등학교 6년을 마치는 도중 봄소풍, 가을소풍을 몇 번을 오고 갔던가. 2, 3십리 되는 이 길을 사람들은 그때 만해도 걸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각씨가 빠져 죽었다고 해서 각씨쏘, 바람이 심해서 강신이 났기 때문에 강신만골, 옛날 옛적 주위에 느릎나무가 많이 있어 나랏골 전에 할머니가 혼자 살아서 할머니 집터 등이 있는 이 신암리에는 또한 얼마나 많은 고개들이 있는가. 예드림이라고 불리는 남쪽에서 장수군 장수읍 대성리 필덕으로 넘어가는 고개는 백제 때 장군의 말이 죽어 이 고개에 묻힌 후 3년 동안 밤마다 말 우는 소리가 들렸다 해서 마령재라는 이름이 붙었고 신암리 동쪽에서 장수군 천천면 와룡리로 넘어가는 고개는 팔공산 줄기 사이의 다섯 골짜기에서 이 고개를 향하여 내가 흐른다고 해서 오계치五溪峙라고도 부르는 외기재이다.

섬진강의 발원지는 어디인가?

나라 안에서 그 경치가 빼어날 뿐만이 아니라 아름답고 슬픈 사연이 많기로 소문난 섬진강의 발원지를 사람들은 대다수가 팔공산으로 보고 있다. 신증 동국여지승람에도 섬진강의 발원지를 중대산 또는 마이산으로 보고택리지에도 역시 마이산으로 실려 있다.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 ‘지리전고에는 이렇게 실려있다.

광양(光陽)의 섬진강(蟾津江)은 근원이 진안(鎭安)의 중대(中臺) 마이산(馬耳山)에서 나와서 합하여 임실(任實)의 오원천(烏原川)이 되고, 서쪽으로 꺾어져 남쪽으로 흘러 운암(雲巖) 가단(可端)을 지나서 태인(泰仁)의 운주산(雲住山) 물과 합하여 순창(淳昌)의 적성진(赤城津)이 되는데 이것을 화연(花淵)이라고도 한다. 이 물은 또 저탄(猪灘)이 되고, 또 동쪽으로 흘러서 남원(南原)의 연탄(淵灘)이 되며, 또 순자진(鶉子津)이 된다. 다시 옥과(玉果)에 이르러 방제천(方悌川)이 되며, 곡성(谷城)에 들어가서 압록진(鴨綠津)이 되고, 구례(求禮)에 이르러 잔수진(潺水津)과 합하였다. 잔수진은 근원이 동복(同福) 서석(瑞石) 동쪽에서 나와 현() 남쪽 달천(達川)이되고, 남쪽으로 흘러 보성(寶城) 북쪽에 이르러서 죽천(竹川)이 되는데, 이것을 또 정자천(亭子川)이라고도 한다. 다시 동북으로 흘러 순천(順天)의 낙수진(洛水津)이 되며, 잔수진에 이르러 순자강과 합하여 남쪽으로 흐르다가 화개(花開) 소쪽 경계에 이르러 용왕연(龍王淵)이 되는데, 여기는 조수(潮水)가 들어오는 곳이다. 또 광양(光陽) 남쪽 60리에 이르러 섬진강이 되는데, 그 동쪽 언덕은 곧 하동(河東)의 악양(岳陽)으로서 동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고려 때에는 이 물이 배류(輩流)한 삼대강(三大江)의 하나라 하였고, 이름을 두치강(斗峙江)이라 하였다” 1918년 일제가 만든조선지지자료전북 진안군 우곡리 부귀산에서 발원하여 경남 하동 갈도까지 본류 길이는 212.3km'라고 기록하는데, 부귀산(806.4m)은 진안읍 북서쪽 정곡리 뒷산이다. 이후 건설부에서 만든하천편람이나 수자원공사에서 만든전국하천조사서도 이 발원지 개념을 그대로 쓰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여러 각도로 계측한 결과 팔공산보다는 봉황산이 길이가 긴 것으로 추정하였고 그래서 섬진강의 상초막골 데미샘에 섬진강 발원지라는 표지석이 세워진 것이다.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68개의 제1지류와 129개의 제2지류 그리고 53개의 제3지류 및 15개의 제4지류를 받아들이면서 흐르다가 광양만에 이르러 남해바다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섬진강은 우리나라 남부 중서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총 유역 면적은 4896.5이고, 본류의 유로 연장은 212.3km로 남한에서는 네 번째 큰 강이다. 섬진강 유역의 가장 북쪽 끝은 북위 35°50’ 00”, 남쪽 끝은 북위 34°40’ 26”이며, 동쪽 끝은 동경 127°53’ 05”, 서쪽 끝은 동경 126°51’ 50”이다. 이렇듯 섬진강유역의 동쪽에는 낙동강 유역이, 서쪽에는 영산강과 동진강 유역, 그리고 북쪽에는 금강유역과 만경강유역이 접하고 있다. 그리고 총 유역 면적 4,895.5중 전라남도가 47%, 전라북도가 44%, 경상남도가 9%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고려 때부터 배류삼대강(輩流三大江)의 하나라 해서 낙동강, 금강과 같이 풍수설로는 중앙으로 향해 흐르지 않고 그것을 등지는 강으로 보았다. 그런데 낙동강과 금강은 그 유역이 삼국시대뿐만이 아니라 고려 조선의 역사에서 각광을 받았던 곳이지만 섬진강 유역은 두 강 유역을 경계 짓는 그늘진 곳으로 내려왔다. 오늘날에도 섬진강유역은 산업화의 물결이 크게 미치지 못한 곳이라 다른 큰 강 유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현시점에선 오히려 산업화에 휩쓸리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에게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있는 강이라고 할 수 있다

신정일의 <섬진강 역사문화 탐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