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자료 모음

일곱 명당이 있는 청양의 칠갑산과 장곡사를 가다.

산중산담 2016. 3. 3. 00:22

 

일곱 명당이 있는 청양의 칠갑산과 장곡사를 가다.

 

 

을미년 마지막 달인 12월 첫째 주 토요일에 청양의 칠갑산을 갑니다. 산책길처럼 편안하면서 소나무숲길로 이어진 아름다운 칠갑산 길을 걷고 상대웅전 하대웅전이 있는 유서 깊은 절 <장곡사>를 거쳐 이몽학의 난의 진원지인 청남면 아산리 일대와 금강변을 걷게 될 이번 답사에 참여바랍니다.

 

칠갑산은 청양군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대치면과 정산면에 걸쳐 있다. 교통도 불편하고 산세가 거칠고 가파르기 때문에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울창한 숲도 많다. 1973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칠갑산에는 여러 가지 나무들이 1600여종이 어울려 자란다.

 

칠갑산七甲山에는 일곱 개의 명당 자리가

칠갑산 정상에 서면 한티고개쪽으로 대덕봉(472m)이 보이고 동북쪽으로 명덕봉(320m)과 서남쪽으로 이어진 정혜산(355m)이 보인다.

날이 맑은 날은 공주의 계룡산과 서대산 그리고 만수산과 성주산이 지척인 듯 보이고 서해바다까지 조망된다 하는데 날은 희끄무레하고 바람은 잔잔하다. 이 산정에서 능선은 여러 곳으로 뻗어 줄을 이었고 지천과 잉화달천이 계곡을 싸고 돌며 7곳의 명당자리가 있어 칠갑산이라고 부른다고 하며 칠성원군의 칠()자와 십이 간지의 첫 자인 갑()자를 합쳐서 칠갑산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불교적 연원도 전한다. 충남의 알프스라는 별명은 산세가 거칠고 험준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충남의 알프스라는 말은 과장된 표현인 듯하다. 그러나 비스듬히 서있는 삼형제봉 사이로 굽이쳐 흘러가는 산들을 보면 칠갑산의 앉음새나 모양새가 그리 만만하게 볼 수는 없을 듯하다. 이 산자락으로 서북쪽의 대치천과 서남쪽의 장곡천, 지천, 동남쪽의 잉화달천 남쪽의 중추천, 동북쪽의 영화천이 흘러서 모두가 금강으로 합류한다.

 

청양군뿐만 아니라 충청도 일원에서도 널리 알려질 만큼 값진 문화재들이 산재해 있고 속이 꽉찬 절로 소문난 장곡사는 칠갑산의 깊은 골짜기에 있다. 긴 골짜기라는 말을 지닌 장곡리에서도 한참을 올라간 곳에 위치한 장곡사는 신라 문성왕 때에 보조선사가 창건한 뒤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중수를 거듭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경사가 급한 터를 닦아서 지은 장곡사에는 특이하게도 대웅전이 두 채가 있다.

 

1777년의 상대웅전 중수기에 따르면 석불이 2, 금불이 3구가 있고, 중국 오도자의 그림이라고 전하는 벽화가 있었다고 한데 5불이라면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고 노자나불, 석가불, 아미타불, 약사불을 모신 화엄종華嚴宗의 불전이나 밀교계통의 불전이 있을 것이지만 현재는 비로자나불과 약사불등의 철불 두 분과 아미타여래소조불만이 있을 뿐이다.

법당안의 중심에 있는 불상이 보물 174호로 지정된 철조비로자나불이지만 철 위에 호분을 입히고 그 위에 금을 씌워서 옛 맛이 많이 사라졌다. 그 오른쪽으로 좀 더 규모가 큰 불상이 철조약사불 좌상이다. 이 불상 역시 금을 입혀서 철불鐵佛의 맛을 잃었다. 그러나 이 부처는 광배와 대좌와 함께 국보 제 58호로 지정되었는데, 그 연유는 그 아래에 놓인 석조대좌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몽학의 난

이곳 청남면 아산리 남쪽에 있는 들이 선조 때 반란을 꾀했던 이몽학李夢鶴이선조 29(1596)7월 난을 일으켜 홍산. 정산. 청양을 함락시킬 때 진을 치고 군대를 훈련시켰다는 들이고 원촌 방죽 바로 위에는 그의 집터가 있다.

이몽학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본래 왕실의 서얼 출신으로, 서울에서 살았으나 성품이 불량하고 행실이 좋지 않으므로 그의 아버지에게 쫓겨나 충청도전라도 등지를 전전하였다. 임진왜란 중에 장교가 되어 모속관(募粟官) 한현(韓絢)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그 당시 백성들은 임진왜란이 발발 이후 계속되는 흉년과 관리의 침탈에 이루 말 할 수 없는 곤란을 겪고 있었으므로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이몽학을 따르는 자가 마치 바람 앞에 풀 쓰러지듯 하여난리가 일어난 지 며칠 만에 군사가 수 만 명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