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낙동강 변의 문화유산과 병산서원에서 하회마을을 걷다.
2016년 4월 3일 안동을 갑니다. 안동시 임하면 내앞마을은 나라 안에서도 이름난 양택지인 의성김씨 종택이 있습니다. 종택을 답사 한 뒤 안동댐 아래의 임청각과 뻐흥사지 칠층전탑을 돌아보고, 낙동강 변에 펼쳐진 아름답고 유서 깊은 길인 병산서원에서 하회마을에 이르는 길을 걷습니다.
유네스코로부터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병산서원과 하회마을의 고즈넉한 이른 봄 풍경을 맛보고 부용대에 올라 하회마을을 굽어 본 뒤 낙동강의 물길을 따라 걸을 예정입니다.
“학봉 김성일과 함께 퇴계의 양대 제자 중 한사람인 서애(西厓) 유성룡과 그의 아들 유전을 모신 병산서원은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에 있다. 낙동강의 물도리가 크게 S자를 그리며 하회 쪽으로 감싸고 돌아가는 위치에 자리 잡은 병산서원의 만대루에 오르면, 넓게 펼쳐진 누각의 기둥 사이로 조선 소나무들이 강을 따라 가지를 늘어뜨리고 흐르는 강물 건너에 우뚝 선 병산이 보인다.
“이제 병산 서원을 우리나라 내노라 하는 다른 서원과 비교해보면 소수서원(紹修書院)과 도산서원(陶山書院)은 그 구조가 복잡하여 명쾌하지 못하며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안강 옥산서원은 계류에 앉은 자리는 빼어나나 서원의 터가 좁아 공간 운영에 활기가 없고, 남명 조식의 덕천서원은 지리산 덕천강의 깊고 호쾌한 기상이 서렸지만 건물 배치 간격이 넓어 허전한 데가 있으며, 환훤당 김굉필의 현풍 도동서원은 공간 배치와 스케일은 탁월하나 누마루의 건축적 운용이 병산서원에 미치지 못한다는 흠이 있다. 이에 비하여 병산서원은 주변의 경관과 건물이 만대루(晩對褸)를 통하여 혼연히 하나가 되는 조화와 통일이 구현된 것이니, 이 모든 점을 감안하여, 병산서원이 한국 서원 건축의 최고봉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유홍준 선생의 말이다.
그렇다면 병산서원에 모셔진 유성룡은 누구인가?
유성룡(1542~1607)은 본관은 풍산이고 자는 이견이며 호는 서애로 관찰사를 지낸 유중영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김성일과 동문수학 하였으며, 스물한 살 때 형인 암 유운룡과 함께 도산으로 퇴계 이황을 찾아가 “하늘이 내린 인재이니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것이다”라는 예언과 함께 칭찬을 받았다. 선조는 유성룡을 일컬어 “바라보기만 하여도 저절로 경의가 생긴다.”하였고 이항복은 “이 분은 어떤 한 가지 좋은 점 만을 꼬집어 말할 수 없다”고 했으며, 이원익은 “속이려 해도 속일 수가 없다”라고 말하였다.
25세에 문과에 급제한 유성룡은 승정원․홍문관․사간원 등 판서를 거쳐 정여립 모반사건 때도 자리를 굳건히 지켰을 뿐만 아니라 동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광국공신의 녹권을 받았고 1592년에는 영의정의 자리에 올랐다. 정치가로 또는 군사 전략가로 생애의 대부분을 보낸 그의 학문은 체와 용을 중시한 현실적인 것이었는데, 파직된 뒤에 고향에서 저술한 임진왜란의 기록 《징비록》과 《서애집》《신종록》《영보록》등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가 병들어 누워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선조는 궁중의 의원을 보내어 치료케 하였지만 65세에 죽었다. 그런데 하회에서 세상을 떠난 유성룡이 집안 살림이 가난해 장례를 치르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의 빈집이 있는 서울의 마르냇가로 몰려들어 삼베와 돈을 한푼 두푼 모아 장례에 보탰다고 한다.
유성룡을 모신 병산서원을 답사한 뒤,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또 하나 행복이 바로 서원에서 낙동강 길을 따라 하회로 넘어가는 도보 답사 길이다.
《영가지》의 지도에 청천절벽(晴川絶壁:그토록 맑은 물에 우뚝 솟은 절벽)이라고 표현된 병산을 바라보며 걷는 길은 사과과수원으로 이어진다. 사과밭에서 길을 찾는 것이 조금 문제다. 용감하게 산속을 비집고 올라가면 길인 듯 아닌 듯 싶은 길이 이어지고 그 길이 하회로 가는 산길이 된다. 어쩌다 사람이 지날 것 같은 이길, 수풀 우거진 이 길에도 패랭이꽃과 구절초 꽃, 쑥부쟁이꽃들은 서로의 아름다움을 자랑이라도 하듯 여기저기 피어있다. 강 건너 마을의 아침 풍경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그렇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다가보면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깎아지른 절벽위로 희미한 길이 이어지고 지난 새벽에 내린 이슬에 신발에서부터 바지까지 흠뻑 젖는다. 어둑어둑한 나무 숲길을 지나자 옛 시절에 닦아둔 신작로 길이 나타난다. 칡넝쿨 우거진 길옆의 산초나무에 새까만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멀리 하회마을이 나타나며 멀리 무용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논사이로 난 길을 걸어가자 하회마을에 이른다.
“하회는 하나의 평평한 언덕이 황강 남쪽에서 서북쪽으로 향하여 있는 마을인데, 서애의 옛 집이 자리잡고 있다. 황강 물이 휘돌아 출렁이며 마을 앞에 머무르면서 깊어진다. 수북산(水北山)은 학가산에서 갈라져 와서 강가에 자리 잡았는데, 모두 석벽이며 돌 빛이 온화하면서 수려하며 조금도 험한 모양이 전혀 없다. 그 위에 옥연정과 작은 암자가 바위 사이에 점점이 잇달았고, 소나무와 전나무로 덮혀서 참으로 절경이다.”고 <택리지>에 실려 있는 하회의 황강은 낙동강이고 그 일대가 부용대이다.“
<가슴 설레는 걷기 여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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