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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산꾼의 여행이야기 : 봉황각 鳳凰閣 : 강북구 우이동 254 - 삼일운동 발원지

산중산담 2016. 9. 7. 19:55

 

초보산꾼 여행이야기 : 봉황각 鳳凰閣  : 강북구 우이동 254

 

답사일 : 2016년 9월 3일 토요일

누구랑 : 광명로얄산악회 산우님들

 

수유역 3번 출구로 나와 바로 중앙 버스 전용 차로에서 153번 버스로 우이동 종점에서 내려 백운천으로 이동

손병희 선생 묘소 방향으로...

 

백운천을 우측으로 끼고 계속 걷다 나무를 배려한 주택도 지나고

 

이제 백운천과 헤어져 우이동 만남의 광장으로 올라 간다

 

만남의 광장을 대각선으로 해서 올라간다

 

만남의 광장에서 직진하면 봉황각 그리고 좌틀하면 북한산 둘레길

 

봉황각 안으로 들어가 본다

 

 

 

보통 이 건물(수련원)을 봉황각으로 착각하는데 봉황각은 이 건물 뒤에 있다

 

건물 뒤로 가면 봉황각이 보이고 좌측으로 보이는 쪽문으로 하여 선생이 묘소를 들어 갈 수 있다. 물론 관린인에 허가가 필요하다

 

봉황각

 

봉황각 鳳凰閣

이름만 보면 사당이나 사찰의 부속 건물 같지만, 실은 의암 손병희(1861∼1922) 선생이 3·1운동을 구상한 장소다.

봉황각은 민족종교 천도교의 교육기관으로 1912년 손병희 선생이 건립했다.

기와를 얹은 2층 한옥건물이 건립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어 보존가치가 높다.

이준용·문병석·안찬복 등 봉황각에서 교육을 받은 애국지사 483명이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이들 중 중 15명이 3·1운동 민족 대표 33인에 포함돼 있다.

자료 : 중앙일보 보도내용   http://news.joins.com/article/19555824

 

마당으로 올라가 본다

 

 

3·1운동 이후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가 1957년 ‘의창수도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봉황각이라는 이름은 천도교 교주 최재우가 남긴 시에 자주 나오는 '봉황'이라는 낱말을 딴 것이란다

현재 걸려 있는 현판은 민족대표 33인중의 한분이며 독립운동가이고 서예가 였던 오세창(葦滄 吳世昌, 1864-1953)이 썼다고 한다

 

 

안채에서는 살림을 하고 있는 듯...

 

선생의 묘소에 들르기 위해 마당에서 이 쪽문을 열고 들어와 되돌아 본 모습

 

손병희 선생의 묘소 올라가는 길

 

손병희 선생님의 묘소

 

 

 

묘 아래의 모습 - 아래에 문은 굳게 닫혀 있다

 

3.1독립선언문

 

 

무슨 의미일까?  좌우의 그림이 다르다

 

 

다시 마당으로 나와

 

 

둘레길에서 본 손병희 선생의 묘

 

 

 

 

 

                        초보산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