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산꾼 발길 닿는 곳 : 수락산 매월정 - 김시습 흔적을 찾아서4
일시 : 병신년(16년) 미틈달 11월 스물엿새 흙날
인원 : 혼자서
어딜 : 수락산역 ~ 벽운동 계곡 ~ 매월정 ~ 깔딱고개 ~ 수락산 ~ 석림사 ~ 장암역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3381 에 있습니다
요즘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겨울을 빨리 오라 재촉하며 불어 대는 바람은 옷깃을 더욱 여미게 하고
가로수 길에 떨어지는 낙옆이 쓸쓸함을 넘어 고독을 생각하게 하는 우린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지만
이미 겨울 속으로 들어가 버린 계절속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잎새를 봐야만 하는 나무가 안타깝지만
만추와 초겨울의 사이에서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지금... 다시 찾는 수락산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반길까...
김시습의 흔적을 찾아서4 ... 벽운동계곡 ~ 석림계곡 하산
수락산의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수락산이 한양에 가까우면서도 등지고 있는 형국이라 김시습은
이 형세가 맘에 들어 인생 전성기인 30대에 수락산 청학리 계곡에 폭천정사를 짓고 10여년을 생활했다고 한다
수락산에서 한양을 드나들며 세상과 교감하려 애쓰기도 하고 때론 질타하기도 하면서 남긴 수많은 글들...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수락산 깔딱고개 정상에 있는 매월정을 만나보고
이 곳 수락산에서 농사를 지으며 남긴 '색경'의 저자인 조선후기 사상가 박세경의 김시습 사랑을 만나 본다
수락산1번출구로 나와 계속 걷다 보면 수락산 백운(벽운)계곡으로 우틀한다
벽운마을 이정석을 지나
길에서 서울둘레길중 수락산 둘레길을 담아 본다. 언제 걷지?
약수터를 지나는데... 여기 어디쯤 우우당이 있었는데,,, 자료를 보면 서서히 무너지던 우우당이 결국 흔적도 없이...
우우당 안내문이 있었고.. 자료 : 초보산꾼 2012년 8월. 누가 알았나 문화재를 이렇게 천대 할줄을... 자료로 남길 수 있었으면 좋았는데...
우우당(友于堂) 수락산 입구 노원구 상계동 1241번지
영풍부원군 홍봉한이 영조 37년과 44년 두번씩 영의정을 지냈을 당시의 벽운동 별장 안채의 일부이다.
이곳에는 추사 글씨 ‘友于堂’ 현판이 걸려 있었으며, 정문 앞 살구나무 근처에는 승마대가 지금도 남아 있다.
홍씨 일문이 한창 위세를 떨칠 때 벽운동별장에는 문인·정객들이 모여들어 탄금대와 벽운루·우우당은 초만원을 이루었다고 한다.
홍봉한의 맏딸인 정조의 생모 혜경궁 홍씨도 어린 시절 이곳에서 경치를 감상하며 서정성을 키웠고, 후에 한중록과 같은 문장을 남겼다.
벽운동의 주인 홍봉한이 세상을 떠난 약 100년 뒤에는 이병직의 고조되는 부원군이 벽운동의 명승지를 사들여 5대에 걸쳐 지켜오다가,
1957년 6월에 이르러 덕성학원에서 매입, 덕성여대 생활관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자료 : http://dojung.net/bbs/board.php?bo_table=profile_03&wr_id=206&page=115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다. 우리의 문화재 관리 현주소이니.... 귀암봉 갈림길
염불사 갈림길에서 깔딱고개는 좌측 계곡으로...
안내도를 보면 김시습길, 천상병길이 보인다. 모두 수락산에 흔적을 남기신 분들이다. 천상병길도 걸어 볼 예정...
잠시 염불사를 들러본다
다시 계곡으로 들어와 갈림길에서 어디로 갈까? 오늘은 계곡길로,,,깔딱고개 방향으로 직진
벽운(백운)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수락교를 지나고... 송병완시인의 문예춘추에 남기신 '수락산'이란 시가 생각난다
도토리 삼남매 벌개미 취에 빠져
수락교(水落橋)건너 귀틀집에 갔노라
부처는 잠들어도 염불 목탁소리라
깔딱고개... 숨이차고 넘침이니... 송병완님의 시는 계속 이어지고... 장락하며 장수하소서...
물푸레 잎새에 새겨진 사연 읽고
장락교(長樂橋)에서 무병장수 빌어라
인생은 일장춘몽 즐기면서 살아라
도솔봉 갈림길에서 좌측 깔딱고개로...
백운계곡이니... 백운교도 지나가야 한다...
현사시 안개에 수락산 아름다워
벽운교(碧雲橋)에서 구름 타고 올라서
하늘에 폭포마다 청아한 바람이라
신선교를 지나는데...
외나무 다리서 구름 타고 나르네
신선교(神仙橋)넘어 깔닥재서 깔딱 깔닥
저승에 가거들랑 즐겁게 살아가소
송병완님의 시가 끝나가니 신선대가 좌측에서 나를 보고 있었네...내 노래를 들었을까?
이제 충분히 예열을 했으니 깔딱고개로... 다시 한번 절샘 갈림길이 있는 새광장에서 좌측 깔딱고개로...
깔딱고개... 오늘의 목적 매월정을 보기 위해 잠시 좌측으로 해서...
2008년에 새웠다는 매월정.. 위치야 어찌됐든 다시 한번 김시습이라는 이름 석자를 세겨 본다
매월당이 사랑했던 수락산...
노원구에서 세웠으니...
박쥐가 서울을 향해 나는 모습같다고 해 의정부쪽에서는 박쥐산으로 부른다고 하는데...
자료 : 초보산꾼 도봉산에서 본 모습으로 기차바위와 철모(배낭) 바위봉이 좌우 날개이고 정상이 대가리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보면 좌측 날개부분에 수락산 정상, 우측 날개에 도솔봉 바위가 날개를 펴고 배낭바위봉을 대가리로...
그러고 보면 그럴 듯 하다.
배낭바위 능선을 오르다 되돌아 본 매월정... 우.좌로 도봉산과 북한산을 끼고 있다
깔딱고개 오르느라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기에 배낭을 버리고 갔을까?
엄지바위? 한그루의 나무가 있어 외롭지는 않겠구나...
배낭바위에서 다시 되돌아 본 이유는.... 이 진달래 능선이 서울과 의정부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배낭바위
철모바위
수락산 정상 직전 김시습이 10년간 생활했다는 청학리 계곡 갈림길을 지나...
수락산의 모든 봉우리가 서울을 향하여 고개를 숙이고 있어 이성계가 '한양의 수호산'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는 수락산 정상
내려가야 할 석림사 계곡도 담아 보고
석림사는 좌측으로...직진은 기차바위
석림사 방향에서 본 기차바위봉이 이렇구나...
전망대에서 석림사를 담아 보고
무명 건폭에서 잠시 쉬면서 컵라면으로...
올 해 처음보는 고드름... 이 계곡이 돌산이라 냉골인가 보다
아까 깔딱고개에서 바로 넘어 오면 여기서 만나게 된다
무명폭포를 보면서 내려오다 기차바위(홈통바위)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남
石林寺... 돌이 숲을 이룬다... 계속 이어지는 돌 숲길... 그런데 돌이 미끄럽다
박세당이 김시습의 명복을 빌기 위해 중창하였다는 석림사
자세이 볼려고 했는데 겨울준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 다음 기회에...
일주문을 지나 조금 내려오면 박세당(西溪 朴世堂)의 아들 박태보의 위패를 모신 노강서원. 그런데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갈 수가 없다
바로 아래에 청풍정터가 있다
청풍정지(淸風亭址) 경기도기념물 제41호로 지정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을 추모하기 위해 서계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이 세운 청절사 주변에 이덕수와 유언보가 건립하였다.
김시습을 추도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판단되며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건물은 남아 있지 않으며 계단석과 초석만이 남아 있다.
초석은 화강암으로 조성되었으며 사다리꼴이다. 정자 아래쪽 바위의 표면에 수락동천(水落洞天)이라고 새겨진 암각이 있는데,
이는 김시습의 친필로 추정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청풍정지 [淸風亭址] (두산백과)
계곡으로 내려가 김시습의 친필로 추정되는 수락동천(水落洞天) 각자 확인. 어렵게 찾아 냈다, 찾고 보면 쉬운데...
이 글씨는 매월당이 전국을 유랑 할 즈음 이 곳 수락산에 머물고 있을 때 남겨 놓은 친필이라고 전해진다
수락산장을 지나면 바로 우측 계곡으로 궤산정의 문짝 하나만이 이곳에 정자가 있었음을 알려 줄 뿐...
돌과 샘이 어우러진 곳을 뜻하는 석천동 각자가 되어 있고 그 위에 궤산정 정자가 있었다.
궤산정은 기와로 육각지붕을 얹은 육각형 모양의 작은 정자이다. 정자 이름은 박세당이 "아홉 길 높이의 산을 쌓는 데 흙 한 삼태기가 모자라서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하라."는 뜻의 교훈을 주려고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정자 아래쪽 바위에 음각된 '서계유거(西溪幽居)' '석천동(石泉洞)' '취승대(聚勝臺)'는 박세당의 친필이다. 근처에는 박세당이 저술 활동을 하던 고택, 박세당의 묘역, 박세당의 아들 박태보(朴泰輔: 1654~1689)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노강서원(鷺江書院), 등이 남아 있다. 박세당은 주자학을 비판하고 실사구시적 학문 태도를 강조한 실학자로, 《사변록(思辨錄)》 《신주도덕경(新註道德經)》 《남화경주해산보(南華經註解刪補)》 《색경》 등을 저술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궤산정 [蕢山亭] (두산백과)
그 아름답던 정자는 무너지고 이렇게 문짝만 나뒹굴고 있다... 그래도 소중한 문화재인데...
궤산정 아래 천하의 승경을 모두 모아 놓은 듯한 아람다운 곳을 뜻하는 취승대 각자
서계가 여유롭게 사는 법을 뜻하는 西溪幽居각자
후답자를 위하여...
조금 더 내려와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진입하면 우측으로 서계 박세당의 고택과 묘역이 보인다
개방은 되지 않고 있다
김시습을 사랑했던 서계 박세당... 고택을 볼 수 없어 아쉽지만... 이제 막 내리기 시작하는 올 해 첫눈이 말해주고 있었다
장암역사 안에서 전철을 기다리며 눈내리고 있는 수락산을 배경으로...
평생을 떠돌아 다녔기에 생육신으로 추앙받으면서도 정사보다는 야사에 등장하는 인물
10대에는 천재 소리를 들으며 청춘의 꿈을 안고 북한산 중흥사에서 열심히 공부했지만
세조의 왕위찬탈은 한참 일 할 나이인 20대를 산천과 벗하며 천하를 돌아다니게 하였다
전국을 떠돈 값진 경험을 토대로 30대에는 금오산에서 인생의 터전을 닦았다면
다시 현실 정치와 만난 40대에는 나름대로 현실을 비판하고 행동으로 항거도 해 봤지만
그마져도 내려놓고 초연히 정처 없는 떠돌이로 50대에 마지막을 장식한다
금오신화는 그런 작가 김시습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이 반영되어 있다는 평가이다
어릴 때부터 신동소리를 들으며 세종이 출세를 보장하고 계속되는 세조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끝까지 방랑 생활을 멈추지 않았을까?
그의 선각자적 기질과 실천적 행동을 중요시 했던 그의 사상에서 답을 찾기도 하고
스님으로써 구도자의 길에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았던 절대 자유의 길을 걸었기에
‘꿈꾸다 생을 마친 늙은이’(夢死). 묘비명에 새겨달라고 했던 마지막 유언에 다 녹아 있는 듯하다
때론 역사를 평가할 때 비교 대상을 필요로 할 때가 있는데
바로 같은 시대사람, 김시습과 동문수학했던 서거정과의 비교이다
천재소리를 들었던 두 천재, 세조에 빌붙어 영화 속에 살았지만..
죽은 후에 철저히 잊어진 인물 서거정...
지금 사가정(四佳亭 서거정 호)에 서거정을 기리는 정자는 있지만...
요즘 박근혜 정부에 기생하며 살아갔던 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그에 반해 매월당은 누추하게 살았지만
죽어서 후세는 물론 현재도 그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가 그렇게 좋아 했던 수락산에 남겨진 흔적들 중에는
서계 박세당이 김시습의 명복을 빌기 위해 중창했다는 석림사
박세당의 아들 박태보의 위폐를 모신 노강서원(鷺江書院) 앞에 있는 현재는 주춧돌만 남아 있는
서계 박세당이 매월당 김시습을 추모 배향 하기위하여 충열사를 짓고 그 앞에 정자를 지어
유생과 학문을 강론했다는 청풍정터...
그리고 그 곳에 남겨진 매월당의 친필로 추측되는 수락동천(水落洞天) 각자까지...
또 수락산 깔딱고개까지 올라가야만 볼 수 있어 조금은 아쉽지만
노원구에서 설치한 매월정 정자가 그 뜻을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네번에 걸친 김시습의 흔적을 찾아...
김시습이 사랑했던 수락산에서 마치게 되어 더 영광이다
이 글이 맘만 먹으면 찾아갈 수 있는 수락산도
알고보면 수많은 사연들을 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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