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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산꾼 발길 닿는 곳 : 수락8경 속 김시습 흔적을 찾아서 3

산중산담 2016. 11. 15. 19:39

 

초보산꾼 발길 닿는 곳 : 수락8경 속 김시습 흔적을 찾아서 3

 

일시병신년(16년) 미틈달 11월 스무날 날   

인원광명로얄산악회 산우님들

어딜 : 청학리 마당바위 ~ 옥류폭포 ~ 향로봉 ~ 수락산 정상 ~ 내원암 ~ 마당바위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3379 에 있습니다  

 

 

아직 우린 만추를 얘기하고 싶지만 입동이 지나고 나니 바람소리만 들어도 이젠 겨울이 다가 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이제 곧 소설小雪이니 맘만 추운게 아니고 땅도 얼 것이고 자연도 겨울 속으로 서서히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고

김장하니 삼동 걱정 덜었다는 말이 대변하는 가장 힘든 겨울준비 김장을 서서히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봄에 창호지를 붙였으니 이제는 덧바르기만 하면 되지만 그래도 세는 바람까지도 안고 가야할 겨울 길목

이제는 이마저도 옛 얘기가 되어 버렸지만 만추에 떠나는 수락8경은 어떤 모습으로 우릴 기다리고 있을까?

 

 

김시습의 흔적을 찾아서... 수락8경 답사 진행도

 

5년의 섭정과 2년의 짧은 치세로 알려진 조선5대 문종의 죽음은 너무도 많은 불행을 조선왕조에 남겨주고 말았다

어린 세자가 단종으로 보위에 올랐지만 세조의 왕위 찬탈로 한 많은 생을 마감하고 정순왕후는 비구니가 되었다

세조를 패륜아로 생각한 사람들은 벼슬을 버리고 생육신의 삶을 살았고 또 죽음으로 맞서 싸우다 사육신이 되었다 

그 시대를 살아야만 했던 사람들, 또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사람들, 살아남은 자도 모두 다 그 시대의 희생양이다

세조의 부름을 끝까지 거부하며 살았던 생육신들 중 한분인 김시습이 가장 사랑했던 곳이 바로 여기 수락산이다

 

 

오랜만에 번개산행 수락산 수락8경 답사를 위해 청학리 마당바위에서 하차 횡단보도를 건넌다

 

만재 대장님의 체조로 몸을 풀고

 

오늘 산행지인 485봉 슬랩을 배경으로 마당바위에서...

 

마당바위에 잠시 올라 본다

 

수락 8경은 수락산의 선경 중에 정허거사(연대미상)가 즐겨 불렀다는

‘수락팔경(水落八景)’ 에서 나온 명칭이다 보니

답사하는 산객에 따라 8경의 위치와 순서가 각기 다르게 되어 있다

초보산꾼은 다음과 네이버 지도에 나와 있는 지명을 그데로 따라 답사할 예정이며

오늘 로얄산우님들과 오르는 길의 순서에 따라 순서를 정합니다

 

 

수락산의 선경 중에 정허거사(연대미상)가 즐겨 불렀다는 ‘수락팔경(水落八景)’

양주라 수락산을 예듣고 이제 오니...... 아름답게 솟은 봉이 구름 속에 장관일세
청학동 찾아들어 옥류폭에 다다르니...... 거울 같은 맑은 물이 수정 같이 흘러가네
푸른 송림 바위길을 더듬어서 발 옮기니...... 백운동에 은류폭이 그림 같이 내려 쏟고
자하동에 돌아들어 금류폭을 바라보니...... 선녀 내려 목욕할 듯 오색 서기 영롱하구나
미륵봉의 흰 구름은 하늘가에 실려 있고...... 향로봉의 맑은 바람 시원하기 짝이 없네
칠성대 기암괴석 금강산이 무색하고...... 울긋불긋 고운 단풍 그림인 듯 선경인 듯
내원암 풍경소리 저녁연기 물소리네...... 불노정 맑은 약수 감로수가 이 아닌가
선인봉 영락대에 신선 선녀 놀고 가니...... 청학 백학 간 곳 없고 구름만이 오고 가네
자료 : 서울 포스트  http://www.seoulpost.co.kr/paper/news/view.php?newsno=15833

 

수락8경의 제1경인 옥류폭포.. 그러나 상가 개인소유지라 들어가는 입구를 막아 놓았다

 

청학동 찾아들어 옥류폭에 다다르니...거울 같은 맑은 물이 수정 같이 흘러가네...

정허거사가 노래했던 옛 정취는 어디로 사라지고 이젠 흔적조차 찾을 길 없는 유원지로 변해 벼렸다

옥류동에 간폭정(看瀑亭)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겼을 것인데 어수선한 잡상들이 대신하고 있는 현실...

폭포와 주변의 바위들을 살리기 위해서도 빨리 수락산도 국립공원이 되어 정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역사 기록에 나와 있는 옥류폭포와 간폭정 정자는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우측으로 오늘 릿지로 올라야 할 향로봉 사과바위가 어서 오라 손짓하고...

 

당겨보면

 

돌계단도 지나고

 

향로봉 오름길 갈림길에서 우측 숲속으로 진행

 

이렇게 올라오고

 

이렇게 올라가다가 작품을 위해서라면... - 만재 대장님 작품

 

다행히 초보도 오를 수 있도록 로프가 설치 되어 있다

 

사과바위를 배경으로

 

한입 베어먹은 사과를 닮아 일명 사과바위에서... 만재 대장님 작품

 

누구 입인가 참 크죠?

 

사과바위에서 식후경 후 단체사진 - 만재 수석대장님 작품

 

가야할 수락8경의 하나인 칠성대와 좌측으로 주봉 수락산 정상

 

칠성대를 당겨보먼

 

역시 로얄산우님들 대단합니다.

 

수영하는 고래?  잠수함?

 

역시 수락8경의 하나인 내원암

 

주능선인 수락지맥에 접속... 잠시 우측 향로봉으로 내려가 본다

 

향로봉의 맑은 바람 시원하기 짝이 없네... 라고 노래했던 수락2경 향로봉...

 

향로봉에서 수락지맥 용암산을 배경으로 깡통님

 

자료 : 사기막고개에서 올라오다 본 향로봉.. 좌측으로 사과바위 - 초보산꾼

 

다시 사과바위로 돌아 와 잠시 헤어졌던 산우님들과 식후경

 

식후경 후 다시 출발하며 수락 8경에 속하는 영락대와 칠성대를 담아 보고

 

아까 보았던 수락3경 영락대 오름길...신선봉이라고도 하고... 그래서 신선 선녀가 내려와 춤을 추었다는...

 

영락대 바위

 

영락대봉에서 본 가야할 기차바위봉..

 

내원암과 의정부 갈림길을 지나

 

약수터를 지나 올라오면 바로 좌측으로 칠성대로 가는 길이 보인다

 

기암괴석 금강산이 무색하고...... 울긋불긋 고운 단풍 그림인 듯 선경인 듯.. 라고 노래했던 수락4경 칠성대

 

칠성대에서... 만재 대장님 작품

 

칠성대에서 되돌아 본 영락대와 향로봉

 

서서히 칠성대와 멀어지고... 사과바위도 보인다

 

기차바위 우회로에서 본 기차바위... 육안으로는 로프를 잡고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헬기장과 접속

 

수락산 정상 - 흰 구름은 하늘가에 실려 있고  청학 백학 간 곳 없고 구름만이 오고 가네라고 노래헀는데...

사실 미륵봉이 확실히 어디를 얘기하는지 햇갈리지만... 초보산꾼은 미륵봉을 수락산 정상으로 본다. - 만재 대장님 작품

 

정상에서 불암산 방향으로 내려오면 바로 내원암 갈림길이 나온다

 

계단으로 내려가면 된다

 

약수터와 수락산장

김시습 구지舊址의 위치 대한 곧 만나게 될 금류폭포의 알림판과 다른 의견이 있다

간폭정기와 조선 중기 대제학을 역임한 김유가 1712년 청학리에서 수락산을 오르면서 남긴

수락산이폭기(水落山二瀑記)’의 내용 일부를 근거로 여기 수락산장 옆 약수터라 단정하고 있다

자료 : 노원신문  http://nowon.newsk.com/bbs/bbs.asp?group_name=109&idx_num=20638&exe=view 

         매월당 구지(梅月堂 舊址)를 찾아서    황천우 역사소설가

 

내원암 풍경소리 저녁연기 물소리네...... 불노정 맑은 약수 감로수가 이 아닌가라고 노래했던 내원암

하지만 지금 한참 공사중이라 다음 기회로 미루고...

 

 

수락4경 칠성대를 당겨보고... 내원암에서 보인다

 

내원암 앞에 금류폭포가 나온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각자가 되어 있다

 

 

매월당 구지舊址가 이 곳에 있었다는 안내판... 아까 수락산장에서 얘기했던 주장과 약간 다르다


안내판을 보니 ‘道光 丁西五月(도광 정서오월)’이라 쓰고 1873년(헌종 3년)이라고 기록하였다.

도광(道光)이란 청나라 8대 선종(宣宗) 임금의 연호로 선종은 1820~1850년 재위했으니 1873년이 될 수가 없다.
정서(丁西)는 정유(丁酉)의 오자(誤字)일 터이고 선종 재위 기간에 해당하는 정유(丁酉)년을 찾아보니 1837년이다.

몇 글자 되지 않는 안내 글에 두 곳이나 오류가 있으니 너무 무심하다

자료 :  http://weekly.cnbnews.com/news/article.html?no=105933

 

아래에서 본 금류폭포

 

자하동에 돌아들어 금류폭을 바라보니...... 선녀 내려 목욕할 듯 오색 서기 영롱하구나

정허거사가 보았다는 선녀폭에 지금은 가을이라... 옥수(玉水)가득차지 않았지만...

선녀의 목욕물 옥수는 흐르고 흘러 옥류폭포를 만들고... 그래서 청학동임에 틀림없다

산과 내로 둘러싸인,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답고 좋은 곳을 뜻하거나

아님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신선이 산다는 별천지를 얘기하기 위해 동천洞天이라 했나보다

 

아까 올라올 때 보았던 이 표지판에서 우측 계곡으로 내려가야 은류폭포를 볼 수 있다

 

헨편으로 찍은 은류폭포 - 계곡에서는 안보이고 바위에 올라야 볼 수 있다

 

 

푸른 송림 바위길을 더듬어서 발 옮기니...... 백운동에 은류폭이 그림 같이 내려 쏟고...

옥류와 금류는 아니어도 본 계곡에서 가지 하나를 열어 은은하게 숨어 있는 은류폭포

그래서 선인이 숨어지낼만한 계곡이라 은선동(隱仙洞)· 폭포라 했나보다
물소리 꽃구경에 도끼썩는 줄 모르고 팔베개로 하늘을 벗삼으면 이게 신선놀음이지...

 

세상 뭐 있나요?  

 

아래에서는 이 부분만 보인다. 빙벽연습하는 곳이라고?


 

이정목도 있다

 

만약에 마당바위에서 올라 올 때는...

 

처음 보았던 옥류폭포... 청학계곡의 흔적은 사라지고...

 

로얄 산우님들과 함께 했던 이이가 붙인 이름인 오대산 소금강계곡도 알고 보면 원래 이름은 청학계곡이였다

백두대간의 황병산을 주봉으로 하여 노인봉과 매봉이 좌.우로 청학이 날개를 펼쳐 품어준 계곡이다

그래서 옛 선조들은 이런 의미있는 계곡을 청학동 혹은 옥계동이라 하여 의미를 부여했는데

수락산도 도봉산에서 보면 박쥐가 날아가는 형상이라 박쥐산이라고 불렸다고 하지만

이 곳 청학리에서 보면 좌우날개인 기차바위봉과 철모바위봉이 감싸고 있는 형상으로 보인다 

그래서 여기 수락산 청학리도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들어 시를 짓고 세상을 논했으리라... 

 

이번에는 마당바위가 아니라 청학리 수락산입구에서 마무리 한다

청학리(靑鶴里) [동학굴, 동학동, 청학동]
조선시대부터 한말까지 이 지역은 양주군 별비면에 속해 있었는데,

1914년 4월 1일 읍면 통폐합에 따라 별비면 동학(同鶴)동 전 부와 응달리, 흑석리, 덕동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청학리라 하였다.
청학리라는 리(里) 이름 은 원래 청학동(靑鶴洞)이라는 마을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청학동'이라는 이름은 '학(鶴)'과 관 련되어 있다. 푸른 학이 이 마을 동쪽편 은행나무에 자주 날아온 데서 연유한 것이다.
또한 청학리 의 다른 이름인 '동학굴(東鶴窟)', '동학꼴', '동학동(東鶴洞)' 등도 '학(鶴)'과 관련되어 있다.

학이 이 마을 동쪽편 은행나무에 자주 날아온 데서 연유한 것이다. 이는 '청학리'의 유래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마을 앞산의 모양에서 연유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앞산에 봉 우리가 잘룩한 모양으로 세 개가 있는데,

먼데서 보면 마치 학이 동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동쪽으로 날아 가는 것 같은 형상이어서, '동학굴', '동학꼴', '동학동'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남양주시

 

당고개역으로 이동 뒤풀이 후 수락8경을 겸한 번개산행을 마치게 된다

 

스물한 살 꿈 많던 청년 김시습...너무 뜨거웠나?

한양 삼각산 중흥사에서 모든 꿈을 불길에 날려 보내고...

그렇게 시작한 방랑 생활은 조선 산천 곳곳에 흔적을 남겨 놓았다

방랑생활만 했다면 초야에 묻힌..

한 때 5세신동이였던 선비가 있었더라...

역사는 그렇게 그를 잊었겠지만

이이가 선망했던 스승이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는 것은 

산수를 벗 삼아 구름에 달 가듯이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던 그가

발로 뛰며 머리로 정리하며 눈으로 확인하며..

처절하게 살아왔기에

가슴으로 묻어나는 작품들의 원동력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그래서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로 알려진 금오신화는 지금도 큰 울림이 있다

오랜 세월 금오신화의 탄생지 금오산만큼 사랑한 곳이 바로 이 수락산이였다

그 당시 수락산 정상 만장봉을 동봉(東峯)이라 부르고

거기에 자신의 호까지 동봉(東峯)으로 했다고 하니...

얼마나 수락산 사랑이 대단한지..

신선이 놀았다는 청학동 계곡과 천재 김시습의 인연은 필연이였을까?

그가 남긴 수락산 작품과 흔적들...

찾아 나섰던 오늘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다가왔던 하루로 기억될 것 같다

 

거기에 청학의 날개가 품어 놓은 청학동 계곡에 들어

정허거사가 남기신 주옥같은 수락8경과 함께 즐기고

마침 어제의 미세먼지도 거의 없는 청명의 하늘과 암벽과의 교감속에

로얄산우님들이 펼치신 아름답기까지 한 릿지산행까지...

오랜만에 함께 하신 광명로얄 산우님들과 함께

길조 중에서도 길조인 청학의 품에 다녀온 하루

그래서 하루가 지난 지금도 수락8경속에 숨쉬고 있는 듯...

 

번개산행 리딩하시느라 수고하신 만재 수석대장님 수고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해 주신 로얄 산악회 산우님들

수고했습니다.

 

 

 

 

                     초보산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