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자료 모음

강원도 철원 DMZ생태평화공원 관방유적지인 오성산 일대와 한탄강을 걷는다.

산중산담 2016. 11. 30. 19:34

 

강원도 철원 DMZ생태평화공원 관방유적지인 오성산 일대와 한탄강을 걷는다

 

 

한반도의 중심부이자 강원도 서북부에 위치한 접경지역 철원군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관련 관방유적인 성재산성과 전골총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의 상흔이 가장 많은 지역입니다. 특히 1952106일부터 15일까지 10일간 벌어졌던 백마고지 전투1014일부터 1125일까지 43일간 치열했던 오성산 일대 상감령전역(上甘嶺戰役)’은 철원군의 대표적인 전투였습니다. 중국에서는 상감령전역을 항미원조전쟁사에 길이 빛날 위대한 승전(勝戰)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쟁 당시 상감령정신은 중국인들에게 커다란 긍지가 되었고 이후 영화로 만들어져 많은 이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곳을 1015()에 걷습니다.

 

한국전쟁 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투의 현장이 비로 이곳 철원입니다.

옛 김화군 중심지인 생창리(읍내리) 일대 김화백전전투지~성재산성~전골총으로 이어지는 관방(關防)유적지와 상감령전역(저격능선전투), 금성지구전투로 대표되는 오성산 일대가 바로 그곳인데, 그곳을 답사할 예정입니다.

6.25전적지를 2016년 개장한 DMZ생태평화공원과 연계해 답사하게 될 이번 여정에 전주와 경기 남부를 함께 해서 버스 한 대, 그리고 서울과 그 밖의 지역을 묶어서 버스 한대 총 버스 두 대가 출발할 예정입니다.

 

철원군과 강원일보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철원역사문화연구소가 주관하는 제4<김화 백전대첩지 활용 및 6.25전적지 관광활성화 방안 모색 심포지엄> 행사의 일환으로 둘째 날인 1015(10:00~17:00) 진행될 DMZ생태평화공원 관방유적지 및 오성산 일대와 용양보 DMZ 일대 걷기행사입니다.

 

0DMZ생태평화공원 탐방 이후 답사할 한탄강은 철원군에서 가장 유명한 명승지이고, 송대소는 특히 주상절리가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DMZ생태평화공원은 민통선지역이라 적어도 이틀 전인 1013일까지 방문자 모두의 인적 사항(이름, 주민번호, 전화번호, 주소)이 필요합니다.

 

그 쇠둘레의 땅 철원

 

조선시대에 철원도호부(鐵原都護府)가 있던 철원군이 ?신증동국여지승람? 건치연혁(建置沿革)’편에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본래 고구려의 철원군이다. 모율동비(毛乙冬非)라고도 한다. 신라의 경덕왕이 철성군(鐵城郡)이라고 고쳤다. 뒤에 궁예가 군사를 일으켜 고구려의 옛 땅을 침략해 차지하고 송악군으로부터 와서 여기에 도읍을 정하고 궁실을 지어 더할 수 없이 사치하게 하였으며, 나라 이름을 태봉(泰封)이라고 하였다. 고려 태조가 즉위하게 되어서는 수도를 송악으로 옮기고, 철원을 고치어 동주(東州)로 하였다. 충선왕 2년에 모든 목을 재정비할 때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낮추어 부로 하였고, 조선 태종 13년에 통례에 따라 도호부로 고쳤다. 세종 16년에는 경기로부터 옮겨다가 본도에 예속시켰다.”

 

함경도로 가는 길 수백 리, 안팎의 온 강산이 또렷이 내 눈 안에 들어오네.”이이만李頤晩의 기에 실린 글이다. 산의 모양이 날아가는 학의 형체인 금학산金鶴山(947)이 동송읍 뒤편에 자리 잡아 진산이 되고, ‘한국의 그랜드캐년 이라고 부르는 한탄강이 흐르며, 철원평야라는 강원도에서는 보기 드문 넓은 평야가 펼쳐진 곳이 쇠 둘레의 땅 철원이다.

그런 연유로 경원선 열차가 다닐 때에 철원의 서남쪽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열차의 연기를 평강지방에 이르러 사라지기 전까지 한 시간이 넘게 바라볼 수 있었다고 한다.

철원의 역사에서 궁예의 태봉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통일한국이 이루어진다면 맨 먼저 할 일이 휴전선 가운데에 있는 궁예도성을 발굴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역사 속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궁예란 자는 신라의 왕자로서 젊었을 대부터 무뢰한(無賴漢)이었고, 장성하여서는 안성죽산 사이의 도둑이 되어 고구려와 예맥지역을 차지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그러나 성품이 잔인무도하였으므로 부하에게 쫓겨나고 태조 왕건이 드디어 군중에게 추대되었는바, 이것이 고려를 건국하게 된 시초였다라고 기록하였는데, 역사는 항상 승자의 기록이 되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단순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진리 탓에 궁예는 어느 기록에서는 부정적으로 그려져 있는 게 사실이다.

철원

궁예가 개성철원지역을 중심으로 후고구려라는 이름으로 나라를 세웠던 때가 893년이다.

 

궁예의 한이 서린 궁예도성

궁예는 905년 도읍을 철원으로 옮긴 뒤 경기도강원도황해도평안도충청도까지 세력을 뻗치며 후백제의 견훤과 자웅을 겨루었다. 그러나 역사는 그의 편이 아니었다. 그의 부하였던 왕건이 호족들과 연합하여 궁예를 축출했다. 905년부터 왕건이 고려를 세운 918년까지 열다섯 해 동안 태봉국의 서울로서 한 나라의 중심지였던 철원군 철원읍 홍원리의 비무장지대에는 풍천원(楓川原)이라는 들에 터만 남아 있다. 궁예가 물을 마셨다는 어수정(御水井)은 그 흔적만 있고 두 겹으로 쌓았던 성은 거의 다 허물어져 일부분만 남아 있다. ?용재총화(傭齋叢話)?철원은 궁예가 차지하여 태봉국을 세웠던 곳인데, 지금도 경성의 옛 터와 궁궐의 층계가 남아 있어 봄이면 화초가 만발한다. 지세가 막혀 강하(江河)는 조운이 어렵다고 궁예가 도읍을 정했던 철원 땅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빼어난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궁왕 대궐 터에 오작이 지지괴니 천고흥망을 아는다 모르는다라고 읊었다.

 

강원도 내에서 가장 넓은 평야를 자랑하는 철원평야는 비무장지대를 지나 평강고원으로 이어진다. 금학산오성산대성산백암산명성산 등이 있으며, 그 중에 명성산은 궁예가 왕건에게 쫓겨들어가 울었다는 데에서 연유한다.

철원평야를 휘감아 도는 강이 한탄강이다. 한탄강은 강원도 평강군 현내면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철원군 갈말면의 북쪽에서 남대천을 합친 뒤 갈말면과 어운면, 동송면의 경계를 이루면서 남쪽으로 흘러, 경기도 포천군 전곡읍을 지나 임진강으로 흘러가는 강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한탄강을 석체천(石切川)이라 기록하였는데, “양쪽 언덕의 석벽이 모두 계석체와 같아 체천이라 했다는 기록이다. 또한 한탄강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철원이 태봉국의 도읍지였던 어느 날 남쪽으로 내려가 후백제와 전쟁을 치르고 온 궁예가 이곳에 와서 마치 좀먹은 것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것을 보고는 아하, 내 운명이 다 했구나하고 한탄을 하여 그때부터 이 강을 한탄강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 구멍이 뚫린 화산석을 두고 글을 쓴 사람이 조선후기의 실학자인 이학규李學逵였다. “철원에서 나는 돌에는 구멍이 많다. 큰 것은 떡시루와 도끼 구멍 같고, 작은 것은 피리 구멍만하다. 가볍고 비어 있는 것은 옹기와 비슷하다. 요컨대 주춧돌이나 무덤의 비속으로도 맞지 않으며, 중국에서 n나는 유명한 태호석太湖石과 요봉석堯峯石 같은 기이한 볼거리도 없다.”

또 하나는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며 싸웠던 한국전쟁 때 수많은 젊은 생명들이 스러져간 곳이라 해서 한탄강이라 불렀다는 슬픈 내력도 있다.

그 강물에 기대어 펼쳐진 철원평야는 분단이 되면서 심한 물 기근을 겪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철원평야에 물을 대주던 봉래호의 물줄기를 황해도 쪽으로 돌려버렸기 때문이다. 그 뒤 철원평야는 물이 모자라서 점차로 황폐해지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60년대에 용화저수지와 하갈저수지 등을 만들었고 70년대에는 둘레가 몇십 리에 이르는 토교저수지를 포함한 저수지 여러 개를 새로 만들어 다시 물이 닿는 땅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물이 모자랐는데, 한탄강의 물을 퍼 올릴 수 있는 기계를 곳곳에 설치한 뒤부터 철원평야의 물 걱정은 줄어들었고 지금은 기름진 땅이 되었다. 물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논 한 평에 500원쯤 했다는데, 지금은 여러 배로 뛰어올랐고 철원평야에서 생산되는 철원 오대쌀이 그 품질이 뛰어나다.

철원에 관한 ?택리지?의 기록을 보자.

 

철원 고을이 비록 강원도에 딸렸으나 들판에 이루어진 고을로서 서쪽은 경기도 장단과 경계가 맞닿았다. 땅은 메마르나 들이 크고 산이 낮아 평탄하고 명랑하며 두 강 안쪽에 위치하였으니 또한 두메 속에 하나의 도회지이다 들 복판에 물이 깊고 벌레 먹은 듯한 검은 돌이 있는데 매우 이상스럽다.”

 

한탄강변에서는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현무암, 즉 곰보돌이 있다. 화산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굳어 이루어진 곰보돌은 가볍고 모양새가 좋아 맷돌이나 절구통을 만들거나 담을 쌓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철원에 경원선 철도가 놓인 것은 1914년이었다. 서울과 원산함흥을 잇는 철도가 생김으로써 이곳에서 생산되는 쌀명주실을 비롯 동해안에서 나는 싱싱한 어자원들을 실어 나를 수 있었다. 그 뒤 1936년에는 경원선이 지나는 철원역에서 금강산의 장안사에 이르는 전기철도가 개통되었다.

 

철의 삼각지

한편 철원 하면 떠오르는 것이 철의 삼각지백마고지아이스크림 고지김일성고지 등의 싸움터이다. 한국전쟁 때에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인 이곳 비무장지대인 월정역에는 가다가 부서진 채 고철로 남아 있는 열차 한 량이 남아 있다. 철원평야를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이곳은 철원군과 김화군평강군을 잇는 이른바 철의 삼각지대였다. 이곳에서 벌어진 전투로 수도고지 전투, 지형능선 전투, 백마고지 전투를 들 수가 있다.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