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임금 단종의 한이 서린 영월 청령포에서 법흥사 적멸보궁 일대를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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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5백년 역사상 가장 비운의 임금은 단종입니다. 그 단종의 자취를 따라 4월 월 마지막 주 토요일인 10일에 강원도 영월을 갑니다. 비운의 임금 단종의 한이 서린 청령포와 자규루를 들러 단종릉을 거닐고 선바위를 답사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한반도 모양의 지형이 있는 선암 마을과 경치가 빼어난 요선정, 그리고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중의 하나인 영월 법흥사 적멸보궁을 보고 서강을 걸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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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한이 서린 청령포와 단종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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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이라 불리는 평창강은 길이가 149km에 이르는데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 계방산 남동 계곡에서 발원하여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와 팔괴리 사이에서 동강과 합류하고 그곳에서 마침내 굵은 물줄기가 되면서 남한강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태어난다. 서강 저 멀리 옅은 안개 속으로 푸른 산들이 연이어 보이고 그 아랫자락에 청령포가 있다. 영월군에는 조선 왕조 여섯 번째 임금이면서 비운의 임금인 단종의 무덤인 장릉을 비롯해서 단종과 관련된 역사유적이 곳곳에 널려 있고 그에 얽힌 땅 이름과 전설이 많다.
서면 광전리에 있는 고개는 단종이 유배올 적에 넘었다고 해서 임금이 오른 고개라는 뜻으로 등치라고 불리었고, 서면 신천리에 있는 고개는 오랫동안 흐리던 날씨가 단종이 넘으려고 하자 맑게 개어서 단종이 하늘을 향해 절을 올렸다고 해서 배일치라고 불리운다.
신천리의 관란정觀瀾亭밑에는 ‘아이고 바우‘ 가 있는데, 이 바위에서 ’아이고‘를 세 번 외치면 물에 빠져 죽는다는 속설이 있는데, 또 다른 이야기는 불의한 정변政變이나 수령의 악정이 있을 때 선비들이 이 바위에 모여 ’아이고, 아이고,‘하며 통곡을 했다는 것이다. 이곳 아이고 바위에서 통곡을 하면 강원감사가 그 수령의 잘잘못을 내탐했다고 하며 악한 수령들은 그 선비들을 탄압했다고 한다.
단종이 귀양을 와서 머물렀던 청령포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삼면이 깊은 강물로 둘러 싸여 있으며 한 쪽은 벼랑이 솟아 있어 배로 강을 건너지 않으면 빠져나갈 수 없게 막힌 곳이다. 단종이 이곳에 머물러 있을 때 매월당 김시습이 두어 번 다녀갔다고 한다. 그래 매월당은 이곳에 와서 인생이 얼마나 뜬구름 같은가를 깨달았을 것이다.
나는 누구냐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다
미친 듯이 소리쳐 옛 사람에 물어보자
옛사람도 이랬더냐 이게 아니더냐
산아 네 말 물어보자 나는 대체 누구란 말이냐
그림자는 돌아다봤자 외로울 따름이고
갈림길에서 눈물 흘렸던 것은 길이 막혔던 탓
삶이란 그날 그날 주어지는 것이었으며
살아생전의 희비애락은 물 위의 물줄 같은 것
그리하여 말하지 않았던가
이룩한 미완성 하나가 여기 있노라고
혼이여 돌아가자 어디인들 있을 데 없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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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름다운 법흥사의 적멸보궁,
“이 지역 사람들이 동강․서강이라 부르지 않고 암캉․수캉이라 부르는 서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간 서면의 신암마을에는 서강이 휘돌아가면서 빚어낸 절경인 한반도를 닮은 지형이 있다.
주천면에서 주천강을 거슬??올라가다가 만나는 곳이 요선정이고 그곳에서 법흥천을 따라 올라간 곳에 적멸보궁의 한 곳인 법흥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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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리지>를 지은 이중환은 이 근처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치악산 동쪽에 있는 사자산은 수석이 30리에 뻗쳐 있으며, 법천강의 근원이 여기이다. 남쪽에 있는 도화동과 무릉동도 아울러 계곡의 경치가 아주 훌륭하다. 복지(福地)라고도 하는데 참으로 속세를 피해서 살 만한 지역이다” 그의 말처럼 아름드리 소나무가 우뚝우뚝 솟아있는 사자산은 높이가 1,150미터로 법흥사를 처음 세울 때 어느 도승이 사자를 타고 온 산이라고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인 월정사의 말사인 법흥사는 신라의 자장율사가 643년(선덕여왕 12)에 당나라에서 돌아와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 영취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등에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마지막으로 이 절을 창건한 뒤에 진신사리를 봉안했으며 그 당시 절 이름은 흥녕사였다.
그 뒤 헌강왕 때 절중折中이 중창하여 선문구산(禪門九山) 중 사자산문(獅子山門)의 중심 도량으로 삼았다. 징효대사 절중은 사자산파를 창시한 철감선사 도윤의 제자로 흥녕사에서 선문을 크게 중흥시킨 인물이다. 그 당시 헌강왕은 이 절을 중사성中使省에 예속시켜 사찰을 돌보게 하였다. 그러나 이 절은 진성여왕 5년인 891년에 불에 타고 944년(혜종 1)에 중건했다. 그 뒤 다시 불에 타서 천년 가까이 작은 절로 명맥만 이어오다가 1902년 비구니 대원각大圓覺이 중건하고 법흥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1912년 또다시 불에 탄 뒤 1930년에 중건했으며, 1931년 산사태로 옛 절터의 일부와 석탑이 유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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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의 초입에 흥녕사에서 선문을 크게 열었던 징효대사 절종(826~900년)의 부도와 부도비가 세워져 있다. 징효대사의 부도비(보물 제 612호)에는 징효대사의 행적과 당시의 포교내용이 새겨져 있고 고려 혜종 1년에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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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숲이 너무도 아름다운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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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안에 이름난 소나무 숲이 여러 곳 있지만 가장 그윽한 소나무 숲이 있는 곳이 이곳 법흥사의 적멸보궁으로 올라가는 길에 서 있는 소나무숲이다.
“나무는 별에 가닿고자 하는 대지의 꿈이다.”라는 ‘빈센트 반고호’의 말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우뚝 솟아있는 아름드리 소나무 숲길을 걸어 올라가면 법흥사선원이 있으며 그 우측에 항상 흐름을 멈추지 않는 우물이 있다. 그곳에서 구부러지고 휘어지는 오솔길을 돌아 올라가면 법흥사 적멸보궁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인 적멸보궁 안에는 불상이 안치되어 있지 않고 유리창 너머 언덕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는 사리탑이 보인다.
그러나 진신사리 탑일 것이라는 부도탑은 어느 스님의 부도일 뿐이고 정작 진신사리는 영원한 보존을 위해 자장율사가 사자산 어딘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두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가끔씩 사자산 주변에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서린다고 한다. 사리탑 옆에는 자장율사가 수도했던 곳이라는 토굴이 마련되어 있고 그 뒤편 사자산의 바위 봉우리들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적멸보궁에서 내려오는 길에 우뚝우뚝 서 있는 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어쩌면 오랜 그리움의 한 자락 같기도 하고 보고 싶은 어떤 사람 같기도 한 그 소나무들 중 한그루를 나는 “내 사랑 소나무 ”라고 점찍어 두고 가까이 다가가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본다.
까실 까실하게 혹은 오랜 세월 부대낀 세월의 무게로 내 가슴속에 한 점 그리움으로 안겨오는 소나무와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아름답게 이를 데 없는 산길이 그곳이다. 나는 가끔씩 이 법흥사를 떠올릴 때마다 이 소나무와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휘어지고 굽어 도는 서러움 같은 그 길들이 떠올라 주체하지 못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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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는 것 같은 경치가 빼어나게 펼쳐진 영월의 구석구석을 걷고자 하는 분의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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