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자료 모음

경북 의성의 고운사와 군위 삼존석불을 답사하며 천천히 걷는다.

산중산담 2018. 4. 26. 20:49

 

경북 의성의 고운사와 군위 삼존석불을 답사하며 천천히 걷는다.

 

2018127일 토요일 경북 의성으로 답사를 떠납니다. 영주의 부석사, 안동의 봉정사를 말사로 거느리고 있는 의성의 고운사는 나라 안의 여러 절 중 들목이 아름다운 절입니다. 고운 최치원의 자취가 서린 고운사를 답사하고, 의성읍 탑리 오층석탑과 일연스님의 자취가 서린 군위 인각사, 그리고, 한밤마을과 군위 삼존석불을 답사할 것입니다.

경북 의성과 군위의 문화유산을 답사하면서 천천히 걷게 될 이번 여정에 참여를 바랍니다.

산수유꽃 노랗게 흐느끼는 의성

의성의 특산물은 마늘과 산수유꽃이다. 박목월(朴木月) 시인의 시구에 나오는 산수유꽃 노랗게 흐느끼는 봄을 지나 가을이 오면 산수유 나무마다 빨간 열매를 매다는데, 산수유는 씨를 발라낸 다음 약재로 쓴다.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 등운산 자락에는 경상북도 북부지방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부석사봉정사를 말사로 거느리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가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 등운산에 있는 이 절은 681(신문왕 1) 의상(義湘)이 창건할 당시에는 고운사(高雲寺)라 했는데 최치원이 이곳에 와서 여지(如智여사(如事) 두 승려와 함께 가운루(駕雲樓)와 우화루(羽化樓)를 지었다. 그 뒤 절을 지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호를 따라 '고운사孤雲寺'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나기 전만해도 절 입구에 수많은 여관들이 있었다는데, 비행기의 폭격에 의해 불타버리고 불교 종단의 세력 다툼으로 황폐화 되었던 이 절이 제 모습을 찾은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가을 바람에 괴로이 읊나니

세상엔 날 알아주는 이 적네.

창밖엔 삼경의 빗소리

등불 앞엔 만 리로 내닫는 내 마음

남아 있는 최치원의 시 120여수중 그의 마음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추야우중秋夜雨中>이라는 시가 남아 있는 이 절은 948(정종 3) 운주(雲住)가 중창하였다. 1018(현종 9)에는 천우(天祐)가 대웅전·약사전·극락전·적묵당(寂默堂설선당 등을 중창했다. 그 뒤에도 여러 승려에 의해 중창이 있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사명대사가 이끄는 승병들의 보급창 역할을 하기도 했다. 1835(헌종 1) 화재로 소실되자 만송(晩松호암(虎巖수열(守悅) 등이 함께 재건했다. 근대까지 재건과 중수가 계속되었는데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극락전·관음전·을 비롯한 스물 몇 채의 건물들이 있다. 가운루는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51호로, 석불좌상은 보물 제246호로, 3층석탑은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편 의성군 점곡면 사촌동沙村洞은 본래 사기점이 있었으므로 점실, 또는 사진, 수촌이라고 불렀는데, 사촌김씨들의 집성촌이다.

가뭄이 자주 들었던 사촌동의 김씨 마을에서 전해오는 말이 있었다. “사촌 처녀는 쌀 서 말 못 먹어 보고 시집간다.”그런데 지금은 사촌 처녀는 좁쌀 서 말 안 먹고 시집간다.”는 말로 바뀌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농촌 어디를 가건 시집 안간 처녀는 구경조차 할 수 없으니, 속담도 시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에 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빙계 계곡이 있다. 경상북도 안의 명승지 여덟 개를 추려서 경북 팔경을 꼽을 때에 이곳 빙계동 골짜기가 그 첫 번째로 꼽혔다고 한다. 빙계계곡은 삼복더위에 얼음이 얼고, 엄동설한에 따뜻한 김이 무럭무럭 나오는 신비한 곳이기도 하다. 이름 만큼 유명한 곳으로 매년 여름 얼음골이라는 타이틀로 각종 언론에 수없이 오르내린다.

계곡은 입구에서부터 2에 걸쳐 펼쳐져 있고 크고 작은 바위굴이 산재해 있다. 각각의 바위굴에는 얼음구멍인 빙혈(氷穴)과 바람구멍인 풍혈(風穴)이 있어 빙산(氷山)이라한다. 빙산을 휘감아 도는 내()를 빙계(氷溪)라 부르는데 빙계에는 계곡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언제나 시원함을 제공하는 물놀이장이 되기도 한다.

또한 계곡에는 빙계8경이라는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고 있는데 제1경이 빙혈(氷穴), 2경이 풍혈(風穴), 3경이 인암(仁岩), 4경이 의각(義閣), 5경이 수대(水碓),6경이 석탑(石塔), 7경이 불정(佛頂), 8경이 용추(龍湫)이며 저마다 빼어난 풍광으로 매년 휴가철 계곡을 찾는 방문객수는 수만여명에 이르고 있으며 매년 20~30%씩 증가하는 추세이다.

의성 옆이 군위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린 김극기의 시에 풍속이 순후질박하다. 비록 고을의 부자(豪家)라도 호미쟁기를 들고 농사에 부지런하며, 부잣집의 부녀자들도 비단옷을 입지 아니 한다하던 군위의 원래 이름은 노동멱현(奴同覓縣)이었다.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진 군위군은 경상북도 땅의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부계면 대율동에는 1960년대에 학자들에게 알려져 국보 제109호로 지정된 군위삼존석굴(軍威三尊石窟)이 있다.

경주 토함산에 있는 석굴암과 비교할 때 규모와 예술성은 떨어지지만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신비하고 영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위군 군위읍 용대동에서 천주교 추기경을 지냈으며 지금은 천주교 원로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김수환씨가 태어났다. 구한말 천주교 박해를 피해 용대동에서 옹기를 굽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추기경을 지낸 김수환씨 외에, 군위군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一然)스님이다. 일연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던 산이 화산 건너에 있는 옥녀봉이다.

일연스님이 입적한 인각사

일본 풍수학자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이 쓴조선의 풍수에 의하면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 속의 옥녀는 무예에 숙달한 여자이고 금은 악기이다. 풍류절미의 옥녀가 악기를 타면 누가 환회하지 않으랴. 누가 춤추고 노래하지 않으랴, 따라서 이러한 지형 그대로 두고 대대로 인재 또는 과거급제와 부자, 옥녀를 낸다고 한다고 기록되어 있고, ”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은 안산의 달빛형으로 오른쪽에 거울형, 왼쪽에 분갑기름 항아리형임을 요한다. 산발은 화장하기 위한 자세이므로, 곧 단정한 모습을 예기한다. 때문에 이러한 지형은 사람들에게 선망받는 정도로 올라가며, 또한 주시의 목표가 될 재자가인(才子佳人)을 낸다고 말하였다.

옥녀봉 자락에 있는 인각사(麟角寺)는 신라 선덕여왕 1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의흥현조에는 인각사지의 유래를 인각사는 화산에 있으며 동구에 바위 벼랑이 우뚝한데, 속담에 전하기를 옛날 기린이 이 벼랑에 뿔을 걸었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으로 전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연은 입적하기 전 5년 동안 인각사에 머물며 <삼국유사>를 완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