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사년의 여름 걷기 학교- 월출산에서 청산도까지(선착순 90명)
계사년의 여름 걷기 학교가 8월 8일부터 11일까지 남도에서 실시됩니다. 남도의 소금강이라고 일컬어지는 영암의 월출산 산행과, 강진의 다산초당과 백련사에 이르는 길, 완도의 청산도길, 그리고 해남의 땅 끝 마을길과 미황사에서 도솔암에 이르는 숲길 등, 바다와 산, 그리고 숲길을 걸을 예정입니다.
혹시라도 월출산 산생이 염려스러워 신청을 보류하시는 분들을 위해 월출산을 오르시지 않는 분들은 잘 조성되어 남녀 노소 누구나 무리가 없는 <월출산 자락길>을 걷도록 할 예정입니다.
숙소는 다산 초당 아래에 있는 강진 수련윈입니다. 남도의 맛 기행을 겸해서 멋을 찾는 2013년 남도 여름 걷기학교에 선착순 90명을 초대합니다.
“월출산은 평지돌출의 산으로 기암괴석이 많아서 남도의 소금강산으로 불리고 있다. 산의 최고봉은 천황봉이며 구정봉(743m) 도갑산, 월각산, 장군봉, 국사봉 등이 연봉을 이룬다. 대체로 영암군 쪽에 속하는 산은 날카롭고 가파른 돌산이며 강진군 쪽에 속하는 산은 육산이다.「동국여지승람」에 월출산은 신라 때에는 월나산(月奈山), 고려 때에는 월생산(月生山)이라고 불리었다.
월출산은 그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시인 묵객들의 칭송을 들었다. 고려 때의 시인 김극기는 “월출산의 많은 기이한 모습을 실컷 들었거니. 그늘 지어내고 추위와 더위가 서로 알맞도다. 푸른 낭떠러지와 자색의 골짜기에는 만 떨기가 솟고 첩첩한 봉우리는 하늘을 뚫어 웅장하며 기이함을 자랑 하누나”라며 월출산을 노래하였고, 매월당 김시습은 “남쪽 고을의 한 그림 가운데 산이 있으니 달은 청천에서 뜨지 않고, 이 산간에 오르더라.”하였다.
달은 청천에서 뜨지 않고
월출산은 수많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모습이 하나의 거대한 수석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 폭의 아름다운 산수화가 되기도 하지만 나무나 풀 한 포기 제대로 키울 수 없는 악산으로 보이기도 한다. 1973년 삼월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88년에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이 산자락 아래에서 수많은 인물들이 태어났다. 도갑사 근처의 구림마을에서 풍수지리학의 원조인 도선 국사가 태어났고 일본에「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건너가 학문을 전하고 일본 황실의 스승이 된 것으로 알려진 왕인 박사가 도갑사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도선과 관련된 최치원, 백의 등의 이름과 왕인 박사와 관련된 책굴, 돌정고개, 상대포 등의 지명이 지금도 남아있다. 도갑사에는 도갑사 해탈문이 국보 제 50호로 지정되어 있고 구정봉의 서북면 암벽 아래에는 국보 제 144호인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에 이곳 백제 유민들이 구정봉의 아스라한 바위벽에 기어 올라가 쪼아 새겼다고 전해지는 벼랑새김 마애여래좌상은 석굴암에 있는 본존불의 두곱쯤 된다. 또한 이 산자락 아래 구림면에는 마을의 질서를 지키고 미풍양속을 조장하기 위해 1565년에 만들어 지금까지 이어오는 구림대동계가 있다.
이 월출산에는 나무보다 별보다 바위가 많고 바위들이 저마다 이름이 있다. 끈덕거린다는 깔딱바위, 기름종이 같은 기름바위, 흩어져있는 회서리바위, 얹혀있는 연친바위, 애기 업는 바위, 신틀을 걸었던 신틀바위, 배를 맸던 배 맨 바위, 수좌스님 공부했던 수재 바위, 청춘남녀 연애했던 사랑 바위, 엽전 꾸러미 증발했던 도둑 바위, 팔매질하던 팽매 바위, 피난 갔던 피난 바위, 벼락 맞았던 벼락 바위 등 수많은 바위들을 어찌 다 볼 수 있을 것인가.“
신정일의 <사찰 가는 길>에서
“완도의 역사를 짚어보는 사이에 배는 청산항에 닿았다.
이른 점심을 먹고 걷기를 시작하는 이 청산도는 예전부터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영화 <서편제>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청산도가 사람들에게 더 각인이 된 것은 몇 년 전 정부에서 나라 안의 '가고 싶은 섬'네 곳중 하나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통영의 매물도와 신안의 홍도, 보령의 외연도, 그리고 청산도가 우리나라 섬 중 대표로 뽑힌 것이다.
다도해에선 드물게 300m가 넘는 산봉우리가 3개나 있는 청산도에는 고분과 지석묘, 옛 성터 등 문화재가 많은 섬인데 이곳을 슬로시티로 지정한 것이다.
슬로시티(Slow-city)란 1999년 10월 이탈리아의 몇몇 시장들이 모여 위협받는 ‘라 돌체 비타’, 즉 달콤한 인생의 미래를 염려해 슬로시티 운동을 출범시켰다. 슬로시티의 출발은 느리게 먹기인 슬로푸드와 느리게 살기운동으로 시작되었는데, 느리게 걷고 느리게 생각하고, 느리게 생활하기에 이곳보다 더 적정한 곳은 없을 듯 싶다.
일행은 자연스레 두 패로 나뉘었고, 도락 마을로 가는 길은 한가하다. 마을 고샅길에 접어들자 돌담이 이어지고, 담벼락에 빛바랜 사진들이 걸려 있고 그 중 <졸업을 앞두고>라는 사진 앞에 발길이 머문다. 검정치마에 저고리를 입은 처녀들, 머리가 다 단발머리다. 저렇듯 검은 머리가 하얗게 변했을 저 누이들은 세월의 틈바구니에서 어떤 형태의 삶을 살았을까?
구부러지고 구부러진 고샅길을 벗어나자, 해안이고, 해안을 따라 늘어선 해송나무숲이 한 폭의 그림이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나 멀리 보이는 능선에 서 있는 일행들도 역시 그림이다.
영화 ‘서편제’의 배경이 됐던 청보리 밭과 유채꽃, 을 감싸고 있는 낮은 돌담길을 지나자 마치 우리들이 한 편의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이렇게 행복하게 걷는 것을 두고 레베카 솔닛은 “아무런 장애 없이 풍경 속을 이동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던 것은 아닐까.
어느 사이 발길은 영화 <서편제>의 현장에 이른다. “아리 아리랑 아리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 에헤, 문경새재는 웬 고개인 고,” 문득 <진도 아리랑> 한 소절을 부르며 누군가가 춤을 출 것 같아 바라보니 ‘스칼렛’과 ‘별의별’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다. 능선에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대모도. 소모도가 아스라하다. <봄의 왈츠>의 세트장을 지나 푸른 보리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고개를 넘자, 돌담 사이로 난길, 억새들이 사열하듯 서 있는 길은 동화 속 풍경 같고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아련히 들리는듯 하다.
“이 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 왔건마는 세상 사 쓸 데 없다.“
잘 다듬어진 바다가 보이는 산길을 지나자 작은 해수욕장이 있는 읍리 마을이다. 더러는 앉아서 먼 바다를 바라보고, 더러는 자갈밭 해수욕장을 거닐다가 구장리를 향해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마을 숲이 아름다운 구장리에서 차길을 따라 오르자 보이는 산성 청산산성이다. 청산면 당락리와 읍리에 걸쳐 있는 성터아래 올망졸망하게 펼쳐진 논이 청산도에 있는 ‘구들장논’(논 아래 돌을 깔아 물빠짐을 줄이는 방식)이다. 계단식 논농사를 지으며 오랜 세월 인고의 삶을 살았던 청산도 사람들의 피와 땀이 얽히고 서린 산성을 내려와 다시 마늘밭과 보리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도락리에 이른다.“
“미황사는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에 있는 절이다.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에 위치한 이절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의 본사인 두륜산 대흥사의 말사로서 통일 신라 경덕왕 때에 의조스님이 창건하였지만 확실한 창건연대나 사적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다. 다만 부도밭 가는 길에 숙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민암이 지은 미황사 사적기에는 창건설화가 이렇게 쓰여 져 있다.「749년 8월에 한 척의 돌배가 아름다운 범패소리를 울리며 땅 끝에 있는 사자포 앞바다에 나타났다. 그 배는 며칠 동안을 두고 사람들이 다가서면 멀어지고 돌아서면 다가오고는 하였다. 이때 의조화상이 두 사미승과 제자들 백여 명을 데리고 목욕재계한 후 기도를 하며 해변에 나아갔더니 배가 육지에 닿았다. 배에 의조화상이 오르니 배안에는 금인이 노를 잡고 있었고 금으로 된 함과 검은 바위가 있었다. 금함 속에서는「화엄경」「법화경」같은 불교경전과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보현보살과 40성종 53선지식 16나한과 탱화 등이 들어있었다. 옆에 있던 검은 바위를 깨뜨렸더니 검은 소가 뛰어나와 금방 큰 소가 되었다.
그날 밤 의조화상의 꿈에 금인이 나타났다. 그는 자기는 우전국(인도)의 국왕인데「금강산이 일만 불을 모실만 하다하여 배에 싣고 갔더니 이제 많은 사찰들이 들어서서 봉안할 곳을 찾지 못하여 인도로 되돌아가던 길에 금강산과 비슷한 이곳을 보고 찾아왔다. 경전과 불상을 이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안치하면 국운과 불교가 함께 흥왕하리라.」하고는 사라지고 말았다. 다음 날 의조화상은 소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면서 누웠다가 일어난 곳에 통교사를 창건하였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세웠다. 절 이름을 미황사라고 지은 것은 소의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웠다고 하여 미美자를 넣었고 금인의 빛깔에서 황黃자를 따왔다고 한다.
이 창건 설화는 <금강산 오십삼불설화>와 관련이 있으면서, 앞부분은 검단선사가 선운사를 창건할 때 죽도 앞바다에서 돌배를 받아들이는 장면과 흡사하다. 이 창건설화는 우리나라 불교의 남방전래설을 뒷받침하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불교의 남방전래설은 우리나라 불교가 4세기 말 중국을 통해서 전파되었다는 통설과는 다르게 그 이전 1세기경 낙동강유역에 건국한 가야와 전라도 남해안 지방으로 직접 전래되었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 주장은 구체적인 고증 자료가 없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남지만 가야라는 나라 이름이 인도의 지명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점과 허 황후와 수로왕의 전설 그리고 지리산의 칠불암 설화를 두고 볼 때 그리 허황된 것만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비문을 쓴 면암은 이 설화의 뒤 끝에 “석우와 금인의 이야기는 너무 신비해 속된 귀는 의심이 갈만하지만 연대를 따져 고증하려는 것은 맞지 않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미황사에 가면 경전과 금인 탱화 성당 등이 완연히 있다”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신정일의 <사찰 가는 길> 중
바다와 산, 그리고 맛과 멋이 아우러지는 이번 여름 걷기 학교에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 신정일 대표님 자료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악산에서 느낀 성간의 소회, (0) | 2013.08.04 |
---|---|
섬진강 테마 강따라 길따라 도보 여행 (0) | 2013.06.14 |
천삼백 리 한강 네 번 째를 걷는다. 영월 거운리에서 단양 도담삼봉까지 (0) | 2013.06.14 |
신록의 계절에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다. (0) | 2013.06.14 |
인제 진동계곡과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가다. (0) | 2013.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