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자료 모음

관악산에서 느낀 성간의 소회,

산중산담 2013. 8. 4. 22:41

관악산에서 느낀 성간의 소회,

 

관악산은 서울의 남쪽에 자리 잡은 산으로 연주대를 비롯한 명소들이 많이 있다.

조선 세조 때의 문신으로 집현전 박사를 역임한 성간成侃(1427- 1456)은 일찍부터 문명을 떨쳤으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그가 여름에 관악산 자락에 있는 관악사에서 더위를 피하면서 관악산 일대의 깊은 골짜기와 괴석을 보러 다녔다.

얼마 쯤 지나자 관악산 일대의 명소 중 볼 것은 모두 다 보았다고 여긴 뒤 중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 관악산의 산수는 싫도록 다 보았소, 다만 이 산의 불쪽 절벽이 기이한 것 같은데, 그곳을 가보지 못하였으니, 앞장서서 안내해주지 않겠소?“

성간의 말에 중들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산 북쪽은 숲이 더욱 깊숙하고, 바위가 험악하여 길이 끊어져 더 갈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갈 수 있는 곳 까지는 안내하겠습니다.”

성간이 그들과 함께 수없이 많은 난관을 겪으며 올라가보니 집채 같은 바위들이 빙 둘러 있었고, 그 밑은 거의 천 길 낭떠러지 같아서 정신이 아찔하였다고 한다.

그곳에서 성간은 다음과 같은 기행문을 남겼다.

“두 다리를 편 채 바위위에 걸터앉아 한참 있으니,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솔바람이 더위를 씻어 부었다.

저 아래에서 뛰노는 물고기와 나는 새, 무성한 초목이 또렷하게 보일 듯 하다.

또 서쪽 하늘과 맞닿은 바다에는 구름 안개가 자욱하며, 마침 일몰 때여서 햇살에 비친 구름이 붉은 것도 같고, 푸른 것도 같으며, 검은 것도 같고, 흰 것도 같아서 마치 귀신이 모인듯 하다.

아, 이 산에 노닐던 선비나 중이 몇이나 되는지 모르지만, 이 바위에서 본 경치를 말하는 자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노닐면서 다행히 발견하게 되었으니, 아마도 조물주가 나를 위해서 마련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장자莊子가 말하기를

“큰 숲이나 산이 사람에게 좋기는 하지만 신기神氣가 너무 가득 차면 별로 좋지 않다.”고 하였는데, 그의 말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다.

무릇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자면, 밖으로는 온갖 일이 모여들고, 안으로는 온갖 생각이 치밀어 기운이 막히고, 뜻이 침체하게 된다. 그러다가 큰 숲과 경치, 아름다운 시내를 만나 그 우뚝한 자세를 보고 장쾌한 소리를 들으면 지금까지 답답하던 가슴 속이 홀연히 풀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산수의 도움을 얻은 자가 많으니, 어찌 장자의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아무래도 그 곳이 연주대 부근일 것 같다. 예로부터 큰 바위가 많은 산은 신기가 많아 그 신기를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장소가 안 좋은 곳이라고 말한 장자의 말을 비판한 것 같지만 산에 산을 오르는 사람의 마음과, 그 산에 올라 느끼는 사람의 마음을 잘 표현한 글이라 하겠다. 문득 관악산을 다시 오르고 싶다.

 

계사년 유월 초이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