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계절에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다.
민족의 성산 지리산 자락에 펼쳐진 지리산 둘레길을 신록의 계절 유월 둘째 주에 걷습니다. 하동에서 구례에 이르는 지리산 둘레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덕유산을 지난 백두대간이 육십령과 영취산을 지나 남원시 인월면의 팔령재를 거쳐 지리산에 이르는데 팔령재를 지나면 봄에 ‘지리산철쭉제’가 열리는 고리봉이고, 정령치를 지나 만복대를 넘어서면 노고단이 지척에 있다.
이 산이 지리산인데 『택리지』에 실린 지리산(智異山)의 기록을 보자.
‘지리산智異山은 남해南海 가에 있는데, 이곳은 백두산의 큰 산줄기가 끝난 곳이다. 그런 까닭에 이 산의 다른 명칭을 두류산頭流山이라고 한다. 세상에서는 금강산을 봉래산蓬萊山이라 하고, 지리산은 방장산方丈山이라 하며, 한라산을 영주산瀛洲山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이른바 삼신산三神山이다.〈지리지地理誌〉에는 지리산을 태을성신太乙星神이 사는 곳이며, 여러 신선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하였다. 계곡이 서리어 뒤섞였고 깊고 크다.
지리산은 남해 가에 있는데 이는 백두산의 큰 줄기가 다한 곳이므로 산의 다른 이름이 두류산이다. 세상에서는 금강산을 봉래산, 지리산은 방장산, 한라산을 영주산이라 하는데, 소위 삼신산이다. 『지지(地誌)』에는 지리산을 태을선인(太乙仙人)이 사는 곳이며, 여러 신선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한다. 계곡이 서리어 뒤섞였고, 깊고 크다.’
지리산은 백두산에서 비롯된 백두대간이 끝맺음 되는 산으로 높이는 1915미터, 산의 둘레는 8백여 리에 달한다. 전라북도‧전라남도‧경상남도 등 세 개 도와 남원시‧구례군‧하동군‧산청군‧함양군 등 다섯 개 군에 걸쳐 있는 산으로 총 면적이 438.9평방킬로미터에 이른다. 동북쪽에 있는 주봉인 천왕봉(1915m)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칠선봉(1586m)‧덕평봉(1522m)‧명선봉(1586m)‧토끼봉(1534m)‧반야봉(1732m)‧노고단(1507m) 등과 동쪽으로 중봉(1875m)‧하봉(1781m)‧싸리봉(1640m) 등의 높은 산들로 이루어진 이곳 지리산은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주능선만 해도 42킬로미터쯤 된다.
‘지리’는 원래 산을 뜻하는 ‘두래’에서 유래된 말인데, 두류산‧백두산에서 흘러내려 이루어진 산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서산대사 휴정은 이곳 지리산을 웅장하나 수려함은 떨어진다고 표현했지만 이중환은 지리산을 전국의 12대 명산 중의 하나로 꼽았다.
풍년과 흉년을 모르는 산 지리산
이중환은 다시 ‘
흙의 성질이 두텁고 기름지므로 온 산이 모두 사람이 살기에 알맞은 곳이다.
산 속에는 백리나 되는 긴 골짜기가 많은데, 바깥쪽은 좁지만, 안쪽은 넓기 때문에 가끔 사람이 발견하지 못한 곳도 있으므로, 나라에 세금稅金도 바치지 않는다.
땅이 남해에 가까워 기후가 따뜻하므로 산속에는 대나무가 많고, 또 감과 밤이 대단히 많아서 가꾸는 사람이 없어도 저절로 열렸다가 저절로 떨어진다.
높은 산봉우리 위에 기장이나 조를 뿌려 두어도 무성하게 자라지 않는 곳이 없다. 평지의 밭에도 모두 심을 수 있으므로 산 속에는 촌사람과 섞여서 살아간다.
스님이나 속인들이 대나무를 꺾고, 감과 밤을 주워서 살기 때문에 수고하지 않아도 생리生利가 족하다.
농부와 공인들 역시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모두 충족하게 살아간다. 이런 까닭으로 이 산에 사는 백성들은 풍년과 흉년을 모르고 지내므로 부산富山이라고 부른다..’고 하였는데, 이중환의 말처럼 지리산은 수많은 사람이 살 수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육산이다. 그래서 조용헌 선생은 골산(骨山)과 육산(肉山)을 빗대어 ‘사는 것이 외롭다고 느낄 때는 지리산의 품에 안기고, 기운이 빠져 몸이 쳐질 때는 설악산의 바위 맛을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남원의 동쪽에 자리 잡은 지리산이 『신증동국여지승람』 ‘산천’ 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지리산은 부의 동쪽 60리에 있다. 산세(山勢)가 높고 웅대하여 수백 리에 웅거하였으니, 여진 백두산의 산맥이 뻗어내려 여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하여 두류(頭流)라고도 부른다. 혹은 백두산의 맥은 바다에 이르러 그치는데 이곳에서 잠시 정류하였다 하여 유(流)자는 유(留)로 쓰는 것이 옳다 한다. 또 지리(地理)라고 이름하고 또 방장(方丈)이라고도 하였으니, 두보(杜甫)의 시 「방장삼한외(方丈三韓外)」의 주(注)와 통감(通監) 집람(輯覽)에서 ‘방장이 대방군의 남쪽에 있다.’한 곳이 이곳이다. 신라는 이것으로 남악(南岳)을 삼아 중사(中祀)에 올렸다. 고려와 본조에서도 모두 이에 따랐다. 산 둘레에는 십 주(州)가 있는데, 그 북쪽은 함양이요, 동남쪽은 진주(晋州)요, 서쪽에는 남원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기이한 봉우리와 깍은 듯한 절벽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데, 동쪽은 천왕봉과 서쪽의 반야봉(般若峯)이 가장 높으니 산허리에 혹 구름이 끼고 비가 오며 뇌성과 번개가 요란해도 그 위 산봉우리는 청명하다. 해마다 가을 하늘이 높으면 새매가 북쪽에서 모여드는데 열군(列郡)의 사람들이 다투어 그물을 쳐서 잡는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태을(太乙:북극의 신)이 그 위에 살고 있으니 많은 신선들이 모이는 곳이며, 용상(龍象)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도 한다.’
지리산은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숨어들었던 곳이다. 조선중기 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에는 지리산에는 병년과 흉년이 없는 피난 보신의 땅을 찾는 정감록을 믿는 사람들이 찾아들었고, 동학농민혁명이 끝난 뒤에는 혁명을 꿈꾸다 실패한 동학도들이 찾아와 후일을 도모하기도 했다. 그들은 지리산에 들어와 1차‧2차‧3차 의병전쟁의 주역이 되었고, 진주 형평사운동(衡平社運動:1923년 진주에서 일어난 백정의 신분해방운동)을 배후조종하기도 했다. 그들 중 김단야 같은 사람은 조선공산당을 만들기도 했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이현상이 이끄는 남부군이 지리산에 들어와 수없이 죽어가고 포로가 된 비운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한국의 지리산은 스페인내전 당시 파르티잔들이 활동했던 무대와는 판연히 달랐는데도 지리산으로만 가면 살 길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수없이 들어왔다가 실패하고만 한이 서린 산이다. 지리산은 한민족의 어머니와도 같은 산, 그 이상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산이 민족의 성산(聖山)이다.
지리산 남쪽에 하동군 화개와 악양동이 있다. 고려 인종 때에 기인이었던 한유한(韓惟漢)은 처음에 벼슬을 하고 있었으나, 이자겸의 횡포가 날로 심해지자 장차 나라에 환란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고 가족을 데리고 악양으로 숨어들었다. 조정에서 그의 재주를 아껴 사방으로 찾았으나 그는 악양동에 숨어서 세상에 나타나지를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신선이 되었다고 했는데, 훗날 지리산의 화엄사‧연곡사‧신음사‧쌍계사 등에서 그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는 신라말기의 학자였던 고운 최치원의 도를 이어받아 세상 사람들이 삼신산이라고 부르는 금강산‧한라산‧지리산을 신선을 따라 오가면서 노닐었다고 하는데, 화개동과 악양동이 그의 피신처였다고 한다. 수많은 문신들이 금강산과 더불어 이곳 지리산을 찾았다. 그중 조선초기의 학자인 김종직은 『유두류록(遊頭流錄)』에서 천왕봉에 올랐던 일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새벽,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느라고 놀빛이 눈부시다. 새벽밥을 재촉해 먹고 옷자락을 걷어붙인 후 석문을 거쳐 오르는데 밝히는 풀과 나무마다 얼음이 맺혔다. 성묘(지리산 여신묘)에 들어가 다시 잔을 올리며 천지가 맑게 개어 산천이 활짝 열린 것을 사례하였다. 그런 후 북쪽 봉에 오르니 비록 나는 기러기라도 우리 위로 날지는 못할 것같이 높이 오른 것이다. 마침 새로 갠 날씨여서 구름 한 점 없이 맑아 창창 망망하여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일행에게 물었다. “먼 곳을 보는 데에 요령이 없으면 나무꾼들이 바라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우선 북쪽을 본 후에 동쪽을 보고 그 다음 남쪽 서쪽을 보되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눈을 옮기면서 보아야 할 것 같지 않은가?”
지리산 둘레길 – 하동권역
1. 산청군 시천면 덕산 ~ 하동군 옥종면 위태리 위태. [ 거리 : 10.3㎞. 시간 : 4시간. ]
덕산 → 시천면 사무소(1.7㎞) → 천평교(0.6㎞) → 중태(2.6㎞) → 유점마을(2.1㎞) → 중태재(2.3㎞) → 위태(상촌 : 1㎞).
2. 옥종면 위태리 위태 ~ 청암면 중이리 하동호. [ 거리 : 11.8㎞. 시간 : 5시간. ]
위태(상촌) → 지네재(1.8㎞) → 오대사지(0.4㎞) → 오율마을(0.4㎞) → 궁항마을(2.1㎞) → 양이터 마을(0.8㎞) → 양이터재(1.4㎞) → 본촌마을(2.8㎞) → 하동호(2.1㎞)
3. 청암면 중이리 하동호 ~ 적량면 동리 삼화실. [ 거리 : 9.3㎞. 시간 : 4시간. ]
하동호 → 청암체육공원(0.7㎞) → 평촌마을(1.7㎞) → 화월마을(0.8㎞) → 관점마을(1.0㎞) → 상존티마을회관(2.6㎞) → 존티재(1.2㎞) → 삼화실(동촌마을 : 1.0㎞) → 삼화초등학교(0.3㎞)
4. 적량면 동리 삼화실 ~ 악양면 축지리 대축. [ 거리 : 16.9㎞. 시간 : 7시간.]
삼화실(구 삼화초등학교) → 이정마을(0.8㎞) → 버디재(0.9㎞) → 서당마을(1.8㎞) → 우계저수지(0.6㎞) → 괴목마을(1.2㎞) → 신촌마을(1.6㎞) → 신촌재(2.8㎞) → 먹점마을(1.7㎞) → 먹점재(1.1㎞) → 미점마을(1.7㎞) → 구재봉 갈림길(0.9㎞) → 대축마을(1.8㎞)
★ 하동읍 읍내리 지리산 둘레길 센터 ~ 적량면 우계리 서당. [ 거리 : 7.1㎞. 시간 : 2시간. ]
하동읍 → 바람재(2.5) → 관동(갓골 : 1.9) → 서당.
5. 악양면 축지리 대축 ~ 화개면 부춘리 원부춘. [ 거리 : 8.6㎞. 시간 : 5시간. ]
대축 → 악양천 뚝길(0.3㎞) → 입석(1.9㎞) → 서어 나무숲(2.3㎞) → 웃재(0.5㎞) → 너럭바위(0.3㎞) → 묵답(2.3㎞) → 원부춘(1.0㎞)
6. 화개면 부춘리 원부춘 ~ 화개면 탑리 가탄. [ 거리 : 12.6㎞. 시간 : 7시간. ]
원부춘 → 형제봉 임도 삼거리(4.2㎞) → 헬기장(1.1㎞) → 중촌(1.7㎞) → 정금 차밭(2.0㎞) → 대비촌(0.7㎞) → 백해(2.8㎞) → 가탄(1.0㎞)
7. 화개면 탑리 가탄 ~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 거리 : 10.5㎞. 시간 : 6시간. ]
가탄 → 법하(0.8㎞) → 작은재(어안동 : 1.1㎞) → 기촌(1.9㎞) → 목아재(3.4㎞) → 송정(3.3㎞).
산청에서 하동, 그리고 구례에 이르는 지리산 둘레길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을 토요일과 일요일에 걸을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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