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자료 모음

함양의 용추계곡과 화림동계곡을 거닐다

산중산담 2013. 8. 4. 23:10

함양의 용추계곡과 화림동계곡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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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첫 주 토요일 함양군 안의면으로 갑니다. 거창과 함양의 경계에 솟은 황석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시내와 용추 폭포, 그리고 아름다운 계곡에서 한 여름의 더위를 식히고, 가을이나 겨울만 찾았던 나라 안의 절경 화림동계곡을 걷습니다.

피서가 겹치지 않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함양의 용추계곡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으로 진리 삼매경에 빠쪘던 곳이라 하여 삼진동이라고도 불리웠다. 기백산과 황석산에서 흘러내리는 계류가 만나 형성된 계곡으로 지연경관이 수려하며 유학자 돈암 정지영이 노닐던 곳에 후손들이 1806년에 세운 정자인 심원정이 자리하여 운치를 더해준다. 또한 계곡에는 높이 18m에 달하는 용추폭포가 자리하고 있는데 깊은 소와 세차게 떨어지는 물줄기가 장관을 이루어 여름철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

 

“조선시대 안의 고을이었던 곳, 그 아름다운 정자들이 즐비한 화림동 계곡(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농월정 광풍각등의 정자도 정자지만 화림동 계곡의 길이 아름다운 곳이 바로 안의입니다.

 

“육십령 아래 화림동계곡에는 거연정․동호정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정자가 있어 예로부터 정자문화의 보고라 불렀다. 그 중 하나인 농월정(弄月亭)은 조선 선조 때 관찰사와 예조참판을 지낸 지족당(知足堂) 박명부(朴明溥)가 정계에서 은퇴한 뒤에 지은 것으로, 정면 3칸에 측면 2칸으로 뒤쪽 가운데에 한 칸짜리 바람막이 작은 방이 있다. 농월정이라는 이름은 ‘달을 희롱한다’는 뜻으로, 밤이면 달빛이 물아래로 흐른다고 한다. 또한 정자 앞에는 달바위라고 부르는 1천여 평쯤 되는 너른 반석이 있으며, 흐르는 물길 너머로 줄지어 서 있는 소나무 숲은 바라만 봐도 가슴이 확 트인다. “천하의 일은 뜻을 세우게 되는 것이 우선이다. 뜻이 지극해진 뒤에는 기(氣)가 따르게 마련”이라고 했던 박명부의 기상을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농월정마저 2003년 가을 불에 타버리고 말았다.

 

화림동계곡 아래에 안의가 있다.

비단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안의면 금천변에 광풍루(光風樓)가 우뚝 솟아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으로, 태종 12년(1412) 안의현감 전우(全遇)가 객사의 누각으로 초창하여 선화루(宣化樓)라고 하였던 것을 성종 25년 정여창이 현감으로 부임한 뒤 중건하고 광풍루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정유재란 때 불에 타버렸던 것을 다시 복구하고 숙종 때 중건하였다.“

동계 정온의 옛집

덕유산 동남쪽에 있는 안음현(安陰縣)은 지금의 거창과 함양지방에 있었던 현이나 영조 4년인 1728년에 정희량(鄭希亮)이 변란을 일으키자 그 땅을 갈라서 함양과 거창에 편입시켰다. 동계(桐溪) 정온(鄭蘊)의 고향으로, 지금의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강동마을에 정온 고택이 있고 종부가 그 집을 지키고 있다.

정온은 벼슬이 이조참판에까지 이르렀으며, 광해군 때 영창대군의 처형을 반대하다가 10여 년 간 귀양살이를 하였다. 병자호란 때에는 청나라 군사가 남한산성을 포위하자 정온은 명나라를 배반하고 청나라에 항복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하였는데, 인조가 항복하려고 성에서 내려가자 스스로 칼로 배를 찔러 죽으려 했다. 정온의 아들이 창자를 배에 넣고 꿰매었더니 오랜 후에 깨어났다고 한다. 정온은 전쟁이 끝나고 청나라 군사가 돌아가자 곧 시골로 돌아가서 다시는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그의 4대 후손이 바로 정희량이다. 안음에 거주하다 순흥으로 이사를 간 그는 1728년 이인좌․박필현(朴弼顯) 등과 함께 공모하였다. 영조가 임금에 오른 뒤 벼슬에서 물러난 소론일파의 호응을 받아 이인좌를 원수로 하여 군사를 일으킨 뒤 청주를 습격하였는데, 한때 안음․거창․합천․삼가 등의 고을을 제압하였으나 오명항(吳命恒)이 이끄는 관군에 패배하였다. 그 뒤 정희량은 거창에서 체포되어 참수당했다.

이로 인해 안음현은 폐현되었고 이 지역 사람들의 벼슬길이 막히게 된다. ?동국여지승람? ‘안음현’조에는 “억세고 사나우며 다투고 싸움하기를 좋아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함양군 사람들이 흔히 “안의 송장 하나가 함양 산 사람 열을 당 한다”라는 말이 이어져 오고 있는데, 이 말은 그만큼 이곳의 사람들이 기질이 세다는 말이다.

이중환이 “안음 동쪽은 거창이고 남쪽은 함양이며 안음은 지리산 북쪽에 있는데, 네 고을은 모두 땅이 기름지다. 함양은 더구나 산수굴(山水窟)이라 부르며, 거창․안음과 함께 이름난 고을이라 일컫는다. 그러나 안음만은 음침하여 살 만한 곳이 못 된다”고 말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용추계곡과 화림동계곡에서 팔월의 하루를 보내고 싶으신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