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익은 봄날에 나라 안에 최고의 명승지를 걷는다.-안동 병산서원과 회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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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태양이 찬연합니다. 신록이 짙푸르러가는 시기에 찾아가면 금상첨화인 곳이 바로 안동의 병산서원과 하회마을, 그리고 명사십리 백사장에 세워진 예천의 선몽대와 회룡포 물동이동입니다.
그런 연유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명승으로 지정된 안동의 하회마을과 예천의 의성포라고도 부르는 회룡포입니다.
오로지 자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그 절묘한 정경, 낙동강과 내성천변에 자리 잡은 물동이동과 병산서원, 그리고 하회마을과 그 전경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부용대등을 찾아갑니다,
특히 병산서원에서 하회마을로 가는 길과, 장안사에서 전망대 지나 의성포로 가는 철다리 길은 가는 걸음걸음이 다 추억이 되는 길입니다.
시간이 있으면 삼강나루의 주막까지 찾아갈 이번 여행에 함께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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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부수형인 하회마을
안동 하회마을은 경상북도 안동군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지정 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12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하회마을은 풍산 유씨(豐山柳氏) 동족마을로, 터전은 낙동강의 넓은 강류가 마을 전체를 동․남․서 방향으로 감싸는 명당이며 지형은 태극형 또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고 한다. 풍산 유씨가 집단마을을 형성하기 전에는 대체로 허씨(許氏)․안씨(安氏) 등이 유력한 씨족으로 살아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조 13년(1635)의 ?동원록(洞員錄)?에도 삼성(三姓)이 들어 있기는 하나 이미 유씨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그 이전에 유씨들의 기반이 성립되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마을을 감싸 도는 화천(花川)은 낙동강 상류이며 그 둘레에는 퇴적된 넓은 모래밭이 펼쳐져 있고 그 서북쪽에 울창한 소나무 숲이 들어서 있어 경관이 아름답다. 백사장이 펼쳐진 강 건너에는 층암절벽이 펼쳐지고 그 위에 여러 누정이 자리 잡고 있어 승경(勝景)으로서의 면모도 잘 갖추고 있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부용대(芙蓉臺)의 절벽과 옥연정(玉淵亭)․화천서당이 있으며, 서북쪽에서 강물이 돌아 나가는 부근에는 겸암정(謙菴亭)과 상봉정(翔鳳亭)이 자리 잡고 있다. “하회별신굿을 보지 못하면 죽어서도 좋은 곳에 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기 때문에 별신굿이 열릴 때면 나라 곳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하회별신굿에 쓰이던 가면들은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데, 제작연대가 고려시대로 추정되어 하회마을의 역사적 배경이 뿌리 깊음을 말해준다.
경2-5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부용대가 위치한 광덕리(廣德里)는 본래 풍산현 지역으로서, 넓은 둔덕이 있다 하여 광덕․광덕이․광덕리라 하였다. 부용대는 낙동강가에 높이 80미터가 넘는 높이로 깍아지른 듯 서 있는 암벽으로, 그 밑에 달관대(達觀臺)․운송대(雲松臺)․형제암이란 이름의 기이한 바위가 있으며, 그 사이 사이에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또한 서쪽 기슭에 겸암정(謙岩亭)․봉상정(鳳翔亭), 동쪽 기슭에 옥연정(玉淵亭)의 고적이 있다. 바로 밑에는 서남쪽으로만 흐르는 낙동강이 이곳에 이른 뒤 동쪽으로 흘러서 추월담(秋月潭)․옥연(玉淵)을 만들어낸다. 부용대에서 내려다보는 하회마을은 차마 혼자서 바라볼 수가 없을 만큼 아름답다.
그 중에서도 옥연정은 부용대 동쪽 기슭에 있는 정자로 선조 19년(1586년)에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이 창건하였다. 낙동강이 이곳에 이르러 옥같이 맑은 못을 이루었다는 뜻에서 옥연서당(玉淵書堂)이라 불렀다. 옥연정 남서쪽 뜰에는 삼인석(三印石)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서 유성룡과 노수신(盧守愼)․정전(鄭瑑)의 3정승이 놀았다고 한다. 삼인석 밑에는 청파대가 있는데 낙동강 물이 범람하여 높이 파도를 쳐도 이 바위에는 미치지 못하므로, ‘청파대(淸波臺)’라는 석 자를 새겼다고 한다.
실학의 대가이자 명재상으로 이름난 유성룡의 고향이 바로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이다.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경상도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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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로 가는 길에 만나는 절경이 호명면에 위치한 선몽대이다. 모래가 아름다운 내성천변에 아름드리 노송사이에 있는 선몽대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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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의 큰 흐름과 내성천과 금천이 합쳐지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의성포가 있다.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이 느닷없이 커브를 돌면서 거의 제자리로 돌아오는 물도리동으로 이름난 곳은 안동의 하회마을과 정여립이 의문사한 전북 진안의 죽도와 무주의 앞섬일 것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천하 비경을 자랑하는 곳이 바로 예천군 용궁면의 의성포 물도리동이다. 장안사 뒷길로 300미터쯤 오르면 전망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의성포 물도리동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신비하기 짝이 없다.
의성포는 회룡 남쪽에 있는 마을로 내성천이 감돌아 섬처럼 되어서 조선조에 귀양지로 되었는데, 고종 때 의성사람들이 모여 살아서 의성포라고 하였다고도 하고, 1975년 큰 홍수가 났을 때 의성에서 소금을 실은 배가 이곳에 왔으므로 의성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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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속에 고립된 섬처럼 그렇게 떠 있는 의성포의 물도리동은 ?정감록?의 비결서에 십승지지(十勝之地)로 손꼽혔고 비록 오지이지만 땅이 기름지고 인심이 순후해서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한다.
고려 때의 문인인 이규보는 그가 지은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의 고율시(古律詩)에 이곳 용궁현에 와서 원님이 베푸는 잔치가 끝난 뒤에 <십구일에 장안사에 묵으면서 짓다>라는 시 한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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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이르니 진금(塵襟)을 씻을 수가 없구나.
하물며 고명한 중 지도림(진 나라 때의 고승으로 자는 도림)을 만났음에랴
긴 칼 차고 멀리 떠도니 외로운 나그네 생각이요
한 잔 술로 서로 웃으니 고인의 마음일세
맑게 갠 집 북쪽에는 시내에 구름이 흩어지고
달이 지는 성 서쪽에는 대나무에 안개가 깊구려
병으로 세월을 보내니 부질없이 잠만 즐기며
옛동산의 소나무와 국화를 꿈속에서 찾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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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마다 절경이 펼쳐져 경탄에 경탄을 거듭할 이번 기행에 함께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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