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구불길과 아름다운 섬 선유도를 가다.
우리 땅 걷기가 10월 3, 4일 군산 구불길과 고군산군도에 자리 잡은 선유도, 장자도, 무녀도를 갑니다 몇 년 후에는 새만금을 통한 다리로 연결되어 자동차로 가게 될 <고 군산 군도>의 아름다운 섬, 선유도, 장자도, 무녀도를 배를 타고 가시고 싶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조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에는 ‘오성산의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지금까지도 다섯 노인의 무덤인 오성묘五聖墓가 남아 있다’고 실려 있다.
오성산 자락 금강변에 서시포(西施浦)에서 어느 때부턴가 서포리로 이름이 바뀐 마을이 있다. 서포리는 그 당시만 해도 배를 정박하는 곳으로서 강경․황산과 함께 강가의 이름난 마을로 일컬어지고 있었다. 옛날에 서시(西施 월나라 여자로 매우 아름다웠다고 하여 미인의 대명사가 됨)가 이곳에서 출생하였으므로 그대로 지명으로 삼았다는 말이 전해지지만 ?한국지명총람?에는 서쪽 갯가가 되므로 서포라 지었다고 전한다.
지금은 군산시에 딸린 하나의 면인 임피 서편에 있는 옥구읍은 만경강의 끝자락인 서해와 인접하였으며, 백제 때의 이름이 마서량현(馬西良縣)이다. 옥구읍 상평리 동문 밖의 옥구향교에는 자천대(自天臺)가 있다. 자천대는 최치원이 일찍이 당나라에서 학문을 닦고 돌아왔을 때 세상이 몹시 혼란하고 민심이 흉흉하자 홀로 바다를 바라보며 독서로 시름을 달랬다는 곳이다. 건평이 30평쯤 되는 이 건물은 원래는 지금의 군산 비행장 자리에 있었는데 식민지 시대 말기에 옥구군 유생들이 옥구읍 상평리 향교 옆으로 옮겼다. 옮기기 전의 자천대를 이곳 사람들은 원자천대라 한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원자천대의 최치원이 앉았던 바위 위에는 최치원의 무릎 자국과 멱을 감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중환이 ?택리지?에 기록한 내용과는 조금 다르다.
전3-1옥구향교 자천대
“자천대라는 작은 산기슭이 바닷가로 쑥 들나왔고, 그 위에 돌로 된 두 개의 돌 농(籠)이 있었다. 신라 때의 최고운(崔孤雲)이 이 고을의 원이 되어 와서 농 속에다 비밀문서를 보관하였다는데, 농이란 것이 마치 큰 돌과 같았다. 산기슭에 버려져 있었지만 누구도 감히 열어보지 못하였고, 혹 이를 끌어 움직이면 바다로부터 바람과 비가 갑자기 왔다. 마을 백성은 이 농을 이롭게 여겨서, 날씨가 가물 때 수백 명이 모여 큰 밧줄로 끌어서 움직이면 바다에서 비가 갑자기 와서 밭고랑을 흡족하게 적시었다. 그런데 사객(使客 임금의 명을 전달하거나 시행하는 사람)이 옥구현에 올 때마다 번번이 가서 구경하게 되기 때문에 고을에 폐가 될까 두려워한다. 사람들은 이를 심각하게 여겼다. 그런 까닭에 예전에는 이곳에 정자도 있었으나, 100년 전에 정자를 허물고 돌 농도 땅에 묻어 자취를 없애 버려서 지금은 가서 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탁류」의 작가 채만식
옥구군 임피에서 태어나 「태평천하」 「레드메이드 인생」 등 수많은 작품 속에 풍자와 해학 그리고 그 당시의 시대상황을 세밀하게 묘사한 소설가 채만식(蔡萬植)은 나라 안에서 이름이 가장 아름다운 강 금강을 그의 소설 「탁류」의 서두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금강...
이 강은 지도를 펴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등께서 남북으로 납작하니 째져가지고는 그것이 아주 재미있게 벌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번 비행기라도 타고 강줄기를 따라가면서 내려다보면 또한 그럼 직할 것이다. 저 준험한 소백산맥이 제주도를 건너보고 뜀을 뛸 듯이, 전라도의 뒷덜미를 급하게 달리다가 우뚝… 또 한번 우뚝 … 높이 솟구친 갈재와 지리산, 두 산의 산협 물을 받아 가지고 장수로 진안으로 무주로 이렇게 역류하는 게 금강의 남쪽 줄기다.
그놈이 영동 근처에서 다시 추풍령과 속리산의 물까지 받으면서 서북으로 좌향을 돌려 충청 좌우도의 접경을 흘러간다. … 부여를 한바퀴 휘 돌려다가는 남으로 꺽여 단숨에 놀뫼(논산) 강경에까지 들이닫는다.
여기까지가 백마강이라고, 이를테면 금강의 색동이다. 여자로 치면 흐린 세태에 찌들지 않은 처녀 적이라고 하겠다. 백마강은 공주 곰나루(웅진)에서부터 시작하여 백제 흥망의 꿈 자취를 더듬어 흐른다. 풍월도 좋거니와 물도 맑다. 그러나 그것도 부여 전후가 함창이지, 강경에 다다르면 장꾼들의 흥정하는 소리와 생선 비린내에 고요하던 수면의 꿈은 깨어진다.
물은 탁하다. 예서부터 옳게 금강이다 .…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 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시가지)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그렇다. 채만식은 소설 「탁류」에서 금강을 ‘눈물의 강’이라고 명명하였는데, 당시의 군산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급하게 경사진 강 언덕비탈에 게딱지 같은 초가집이며 다닥다닥 주어 박혀 언덕이거니 짐작이나 할 뿐이다. 이러한 몇 곳이 군산의 인구 칠만 명 가운데 육만 명쯤 되는 조선사람의 거의 대부분이 어깨를 비비면서 옴닥옴닥 모여 사는 곳이다.
대체 이 조그만 군산바닥이 이러한 바이면 조선 전체는 어떠한 것인고, 이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에 승재는 기가 딱 질렸다.”
1899년 5월 2일 부산․원산․제물포․경흥․목포․진남포에 이어 조선에서 일곱 번째로 개항한 항구 군산은 외국인에게 개방되기 전까지만 해도 옥구군에 딸린 조그마한 포구였다. 백제 때의 군산은 마서량(馬西良)이었고 고려 공민왕 때인 1356년에는 금강 하구에 포구를 설치하여 개성으로 가는 배들을 머무르게 하면서 진포(鎭浦)라고 불렀다. 1397년에는 군산진이 되었다. “군산진, 관아의 북쪽 30 리에 있다. 첨사. 무관. 종 3품이다. 군관 10명이다. 지인 6명이다. 사령 7명이다.‘라고 영조 때 편찬 된 <여지도서>에 실려 있는 군산은 1910년 10월에 군산부로 승격되었다.”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전라도 편
“선유도와 장자도, 그리고 무녀도가 있는 고군산군도는 군산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50㎞ 떨어진 해상에 있으며, 무녀도(巫女島)·선유도(仙遊島)·신시도(新侍島)·방축도(防築島) 등 63개 섬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중 16개가 유인도(有人島)이다. 고려시대에는 수군진영을 두고 군산진이라 불렀으며, 조선 세종 때 진영이 인근의 육지로 옮기면서 지명까지 가져가고 이 섬들에는 옛 고(古)자를 앞에 넣은 새 이름이 붙었다. 이후 섬들은 여러 차례 행정구역의 변천을 거치면서 충청남도와 전라남도에 속했던 적도 있었고 자치단체를 달리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차례로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섬들은 해발고도 150m 이하의 낮은 구릉성 섬들로,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 중 신시도가 가장 크며 선유도·무녀도·장자도 등 일부 섬이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겨울철에는 북서계절풍의 영향을 많이 받고, 여름은 따뜻하고 습기가 많은 편이다.
근해 연안어업의 중심지로서 인근 수역은 서해 다른 지역에 비해 수심이 일정하고 해안선이 만(灣)을 형성하고 있으며 해저는 암반과 개펄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어족자원의 산란 및 서식장으로 알맞은 여건을 갖추고 있으며, 김·굴의 양식장이 많다.
선유도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섬이 주변의 물이 얕고 모래가 깨끗해 해수욕이 가능하며 어자원이 풍부해 바다낚시나 스킨스쿠버 등 레저·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선유도의 망주봉과 명사십리, 장자도의 사자바위와 할미바위, 방축도의 독립문바위, 명도와 횡경도의 기암괴석, 말도(末島)의 갈매기 등 볼거리들이 많다. 신시도와 무녀도에는 염전이 있으며, 대장도에는 1만여 점의 수석과 분재를 모아놓은 개인 소유의 수석전시관이 있고, 말도에는 등대가 있다.
특히 10리 길이의 해수욕장 모래로 유명한 명사십리(明沙十里), 해질녘 서쪽바다가 온통 붉게 물들어 장관을 이루는 선유낙조(仙遊落照), 백사장에서 자란 팽나무가 기러기의 내려앉은 모습이라는 평사낙안(平沙落雁), 귀양 온 선비가 임금을 그리는 눈물 같다는 망주폭포(望主瀑布), 장자도 앞바다에서 밤에 고기 잡는 어선들의 불빛을 이르는 장자어화(壯子漁火), 신시도의 고운 가을단풍이 달빛 그림자와 함께 바다에 비친다는 월영단풍(月影丹楓), 선유도 앞 3개 섬의 모습이 만선 돛단배가 들어오는 것 같다는 삼도귀범(三島歸帆), 방축도·명도·말도의 12개 봉우리가 마치 무사들이 도열한 듯하다는 무산십이봉(無山十二峯)을 고군산8경으로 일컫는다.
선유도의 선유동, 그리고 선유도 해수욕장과 토요일에 답사할 군산의 근대문화유산 기행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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