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서울시내 답사기

초보산꾼과 함께 걷는 곳 : 영도교(영미교)와 청계천 - 정순왕후와 단종의 이별다리

산중산담 2014. 12. 8. 20:30

초보산꾼과 함께 걷는 곳 : 영도교 永渡橋  (영미교)

 

초보산꾼의 산행기 : http://blog.daum.net/kmhcshh/2202와 함께 합니다

 

 

 

영도교(永渡橋) 영미교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다리,

영도교는 처음에는 왕심평대교(旺尋坪大橋)라고 하여. 성종 때 영도사(永導寺 : 지금의 안암동 개운사)의 승역을 동원해 돌다리를 놓은 뒤,

성종이 직접 영도교라는 어필을 내렸는데, 영도교는 이때 붙은 이름이다고도 한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복원할 때 살곶이다리와 영도교의 석재를 뜯어 사용하여 영도교는 다시 나무다리가 되었다가 시멘트를 바른 다리로 고쳐졌으나

청계천을 복원하는 바람에 그 흔적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이름만으로도 단종과 정순왕후의 아픈 사연을 증언하는 역사물로 살아 있다

현재 성동기계공고 옆 영미교길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1457년 어느날, 청계천 영도교에서 16살 단종이 17살 부인 정순왕후와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단종이 왕위를 빼앗긴 뒤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 영월로 귀양갈 때 아내 송비(宋妃)와 이별했던 장소다.

'영이별다리' ‘영영 건넌 다리’ 등으로 불리면서  후에 붙은 영미교()역시 영이별교의변음으로 추정되고 있다

尾洞에서 내려오는 하천 끝부분에 있는 다리라 해서 영미교라 했다는 설도 있고

옛날에 창신동에 있었던 영미사라는 절의 승려들이 가설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청계천 다리를 소재로 한 김별아씨의 첫번째 장편소설 ‘영영 이별 영 이별’의 주요 배경이기도 하다.

  

 

******  여인시장터에서 청계천 지나 광장시장까지  *******************

 

여인시장터를 지나면

 

너무도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안고 있는 영도교를 만나게 된다 - 주위 풍경

 

 

 

영도교

 

 

 

이제 청계천을 따라간다

 

 

천안에서 온 능수버들

 

 

빨래터

 

 

 

 

 

 

 

 

 

 

 

 

마전교에서 올라와 광장시장으로

 

 

 

 

 

 

사실 우리가 영도교를 아무리 보아도 이미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우리 기준으로 만든 영도교에서 어린 단종과 정순왕후가 생이별을 해야만 했던

가슴아픈 이별의 아픔을 느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한 번 걸어보고 나면 다시 생각해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 옴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이 초보산꾼이 느끼고자 하는 마음이다

 

 

                     초보산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