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축제 길 문화 축제, 제 10회 길 문화 축제를 열면서,
30여 년 전인 1985년 암울했던 시절 겨울의 초입에
덕진동 <당신들의 천국>에서 몇 사람이 모였다.
‘지금은 무언가를 해야 할 시기’ 라고
그것이 바로 ‘조금씩, 조금씩’ 세상을 뒤바꾸기 위한 첫걸음,
새로운 문화운동의 시작이었다.
그 다음해인 1986년 3월,
<섬진강>이라는 연작시로 세상에 나온
김용택 시인을 초청하여 <시인과의 대화>를 개최했고,
그 뒤를 이어 안도현, 김준태 시인들을 초청 시인과의 대화를 연 뒤
그해 여름에 시작한 것이 <길 문화 축제>의 모태가 된 여름시인 캠프였다.
임실군 관촌면 방수리에서 박봉우, 박남준 시인을 비롯하여
150여명이 모여 시작했던 제 1회 여름 시인 캠프에서
첫 번째 상여놀이를 시작했다.
산자와 죽은 자가 모여서 벌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제,
마을에서 빌려주기로 했던 상여를 임실경찰서(모처)의 압력으로 빌릴 수가 없어
텐트의 지주를 엮어서 진행했던 상여놀이가
지리산 달궁, 변산 댐에 수몰 된 중계리로 이어져 전주까지 이르렀다.
그 뒤 여름문화마당이라는 이름으로 십 수 년을 진행하다가
2005년에 11월 11일을 ‘길의 날’로 명명하여
세상에 최초로 선보인지가 올해로 열 번째를 맞는다.
햇수로 29년, 그 세월이 지나고 나니 세상도 변하고 나도 변했다.
2014년 11월 11일을 즈음하여 여는 <길 문화 축제>
세상이 변하는 만큼 변하지 못하고 처음처럼 여는 <길 문화 축제>를 생각해보니
문득 한심하면서도, 일면 가슴이 뿌듯하기도 하다.
융통성 없고, 어리숙한 내 본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그런 것이리라.
“그렇게 가고 오는 세월이면 좋겠네. 그대를 처음 만나듯 다시 만나고, 그리고 다시 헤어지는 그런 세월이 왔으면 좋겠네. 그런 반복이 얼마나 맑은 영혼을 상하게 하는지 너무 잘 알지만, 한번쯤 그대가 바람결처럼 내게 다시 왔으면 좋겠네.
그런 기다림이 있는 가을밤이면 내 귓전에선 언제나 브람스 교향곡 4번의 4악장이 들렸네. 아무도 없는 밤에 우두커니 앉아서 들으면 내 지난날의 서러움과 그리움이 뒤섞여 나를 향해 막 들려오는 듯싶은 그 시간, 지금 이 시간,”
2086년에 발간 된 <그곳에 자꾸만 가고 싶다.>에 실은 글이다.
그래, 다시 그랬으면 좋겠다. 옛날 힘들었던 시절 그때처럼
‘고통의 축제’도 축제라고 여겼으면 좋겠다.
황홀은 아니고, 그저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신열身熱이라도 났으면 좋겠다.
소리가 사라진 새벽, 바람도 없는지, 창문조차 침묵 속에 잠긴 새벽 ,
얼마간의 세월이 더 흐르고 난 뒤엔 어쩌면 이러한 감정까지도 메말라
아무런 것조차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지.
꽃이 그렇게 피고 지더라도 아무 느낌도 없이 바라볼
그런 그 시간이 금세 올지도 모르지.
다시 전주 천변 청연루에서 여는 제 10회 <길 문화 축제>를 열면서
느끼는 감회, 끝나고 나면 어떤 상념들이 내 마음속을 휘젓고 지나갈까?
갑오년 동짓달 초엿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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