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자료 모음

화순 세량지와 적벽에서 갈재(노령)까지 이어진 맛과 멋 기행

산중산담 2015. 6. 25. 23:23

화순 세량지와 적벽에서 갈재(노령)까지 이어진 맛과 멋 기행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에서 화순 적벽과 운주사, 그리고 영산강 유역의 영산포, 그리고 장성과 정읍을 찾아갑니다.

수많은 문화유산이 즐비한 이번 여정의 첫 번째 코스는 화순읍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호수 세량지입니다. 마치 청송 주산지를 연상케 하면서도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을 찬탄케 하는 세량지를 답사하고 화순적벽에 이릅니다. 3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화순적벽은 중국의 적벽보다 규모가 훨씬 크며 유서도 깊습니다. 중국 후베이성에 있는 양쯔강 서쪽 강가 등의 명승지를 일컫는 중국의 적벽은 역사문학 소재로 이용, 우리나라에도 매우 낯익은 지명으로 인식되어 있는데, 화순 적벽은 1982년 전남도기념물 제6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985년 동복댐이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여 실향민을 제외한 지역민의 출입을 통제했다가 지난해 10월 윤장현 광주시장과 구충곤 화순군수가 협약을 맺고 화순적벽 개방을 결정했습니다. 화순 적벽을 단순 개방이 아닌 최대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으로 '국가 명승'으로 지정, 문화관광의 산업화에 박차를 가한다는 복안인데, 그 경관의 빼어남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 곳입니다.

아름다운 부도가 있는 쌍봉사와 운주사, 불회사, 그리고 영산포 홍어로 저녁밥을 먹고, 그 다음에는 정성으로 가서 필암서원, 황룡강 전투 현장, 고봉 기대승 선생의 옛집인 애일당, 그리고 장성의 맛집인 호야정 매운탕을 먹을 것입니다. 여정은 다시 장성과 정읍을 잇는 갈재 즉 노령 옛길을 걷고, 보천교지를 지나 귀로에 오를 예정입니다.

철감선사탑이 있는 화순의 쌍봉사.

쌍봉사에 관한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쌍봉사雙峰寺 중조산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고려 시대의 문신 김극기金克己는 쌍봉사에 와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단청한 집이 붉고 푸른 숲 사이에 서로 비치니, 지경의 한가한 것 속된 눈으로 일찍이 보지 못하던 것이었네. 학은 푸른 고궁에 날아서 지둔支遁(남북조 시대의 승려)을 하직하고, 물고기 금빛 못에 놀면서 혜관에게 감사하네. 어지러운 봉우리는 옥잠같이 난간에 이르러 빼어났고, 여울은 구슬패물처럼 뜰에 떨어지는 소리로세. 말하다가 조계물을 보니, 일만 길 하늘에 연해 노여운 물결 일어나네.” 이 절은 신라 경문왕 때 철감선사澈鑑禪師 도윤道允이 이곳의 산수가 수려함을 보고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여러 기록으로 보아 이 절은 철감선사가 주석하던 시기에 사세가 크게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절에는 신라의 문화재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것 중의 하나인 철감선사 부도(국보 제 57)와 여러 점의 문화유산이 있다.

천불천탑이 있는 화순의 운주사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천불산 기슭에 위치한 운주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의 제 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로서 나지막한 산속에 들어 앉아있다. 이 절 이름을 배()자로 삼은 것은 중생은 물()이요 세계는 배()는 뜻이라고 하는데 물방울 같은 중생이 모여 바다를 만들고 세계라는 배가 그 중생의 바다위에 비로소 뜨는 것이며 역사는 중생의 바다에 의해 떠밀려가는 것이라는 깊은 뜻이 운주사의 배()자에는 숨겨져 있다고 한다. 창건당시 운주사의 명칭은 동국여지승람에는 운주사(雲住寺)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 후 중생과 배의 관계를 의미하는 운주사(澐舟寺)로 바뀌었다가 다시 훗날에 그 두 가지를 섞어서 운주사(雲舟寺)로 전해왔다. 그러한 이름 탓이었는지 이절을 처음 지을 때 해남의 대둔산이며 영남의 월출산 그리고 진도와 완도, 보성만 일대의 수없이 많은 바위들이 우뚝우뚝 일어나 스스로 미륵불이 되기 위하여 이 천불산계곡으로 몰려왔다고 한다.

이 절의 창건 설화는 신라 때의 고승인 운주화상이 돌을 날라다 주는 신령스런 거북이의 도움을 받아 창건하였다는 설과 중국설화에 나오는 선녀인 마고할미가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운주화상이 천일기도를 하여 흙 같은 것으로 탑을 쌓았는데 탑이 천개가 완성된 다음 천동선녀로 변하여 불상이 되었다는 설도 있고 거의 똑같은 솜씨로 만든 돌부처들의 모습을 보아 한 사람이 평생을 바쳐 만들었을 것이라는 설들도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석공들이 석탑과 석불을 만들었던 연습장이었을 것이라는 허황한 설도 전해진다. 운주사를 지나 불회사로 이어집니다.

영산포 홍어.

지금도 영산포에는 홍어洪魚를 조리해 파는 상점들이 여러 곳 남아있는데 영산홍가’ ‘선창홍어’ ‘호남수산등의 홍어집들이 그 유명세를 가지고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홍어는 흑산도 홍어가 일품이다. 그러나 흑산도 홍어가 별로 잡히지 않자 흑산도 홍어잡이 배가 한척밖에 남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 틈새를 비집고 칠레산 홍어가 그 빈자리를 메꾸었는데 올해들어 흑산도에서 홍어가 많이 잡히기 시작했다.

어부들의 말에 의하면 칠레산 홍어는 뻐시어가지고 맛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흑산도 홍어는 창시(내장)같은 것도 하나도 안 버리고 먹는다고 한다.” 홍어는 홍어목 가오리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로 우리나라 연근해와 남 일본 연해 동중국연해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산, 목포, 영광, 인천등지의 연근해에서 많이 서식하는데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지리지 중 가장 오래된 <경상도 지리지>에는 울산군의 토산공물로 실려 있다. 홍어는 전라남도 흑산도에서 나는 홍어를 제일로 치며 겨울철에 맛이 가장 좋다. 홍어는 홍어 자체에 매운맛이 있어 맛이 뛰어나지만 신선할 때보다, 약간 삭혀서 암모니아 냄새가 날 때 가장 맛이 있다.

칠레산은 색깔이 탁하지만 흑산도 홍어는 표피에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지만 뭐니뭐니 해도 홍어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헝겊으로 쓱싹 문질러서 대충 썰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영산포를 지난 여정은 정약전 정양용형제가 눈물로 헤어진 율정 삼거리를 지나 광주시 임곡동 고봉 기대승 고택인 애일당과 필암서원, 그리고 갈재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