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대로의 길목, 서울역으로 가던 길,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진리다. 강과 길을 걸으면서 과연 가능할까. 물음표를 시작하고 첫발을 떼고 진행하다가 보면 어김없이 그 마지막 지점에서 지난 시절을 회고하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지만 방송으로 <삼남대로>라는 하나의 매듭을 짓는 시간, 또 다른 감회가 물밀 듯이 말려왔다. 마지막 날 역사학자인 이덕일, 김병기 선생과 함께 동작대교에서 서울역까지 걸었다. 집단 자살자들로 오인을 받다 “여러 가지 상념에 잠겨 동작대교를 걷고 있는데, 우리 뒤를 경찰차가 따르고 있다. 그것을 보고 이덕일 씨가, “아무래도 우리를 감시하는 차인데 우리가 집단 자살하는 사람들일까 봐 따라오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런가보다. 요즘 비리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 정치인들, 경제인들이 하필 한강에 투신하여 자살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고는, 혹 우리도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지켜보는 것일 수도 …. 하지만 저렇게 우리를 보살피고 있다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일이다. 옛길은 이제 이촌동을 지나 북쪽으로 난 오르막길을 가다가 왼쪽으로 중앙박물관 앞을 거쳐 용산공고 쪽으로 이어진다. 용산공고 자리에는 조선시대에 기와공장이 있었던 낮은 고개로서 와현(瓦峴)이라고 불렀다. 다시 국방부 부근에 있던 밥전거리 ― 지금의 삼각지 부근 ― 를 지나 오른쪽으로 꺾어서 돌모루(石隅), 즉 현재의 남영역 부근에 이른다. 지금의 용산구청 부근에 있던 당현(堂峴), 즉 용산 지하상가 부근 육교를 지나며 기묘한 풍경을 본다. 노숙자들로 보이는 이삼십 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는데, 그중에는 20~30대 쯤 되는 여자들도 두서너 명이 앉아 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기독교인들이 악기를 갖추어놓고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저 일요예배가 끝나면 밥을 주는 모양인데 배고픈 노숙자들의 눈길은 모두다 밥이 있는 쪽으로만 향해 있다. 성경에도 쓰여 있지 않은가? “네 눈이 미치는 곳에는 네 보물도 있느니라”거나 “배고픈 자들아 내게로 오라“고 해놓고 찬송가를 부르는 것보다 먼저 밥부터 주는 게 배고픈 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물론 그들 나름대로의 고충과 변명은 있을 것이다. 밥부터 주면 찬송가를 부르는 일요예배가 시작되기도 전에 가버리고 말 것이라고, 하지만 노숙자들이 우리가 바라보는 것처럼 그렇게 안타깝지만은 않은가 보다. 현대의 풍수지리학자 최창조 선생이 지은 『도시풍수』에 보면 노숙자들에 대한 부분이 나오는데, 노숙자들은 높낮이가 없으며, 과거를 묻지 않고, 미래는 생각할 겨를조차 없고, 현재는 배 채우는 일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으므로 완벽한 평등을 구가하는 사람들이 노숙자들이라고 한다. 좀 더 걸어가면 청파2가인데 이곳은 조선시대에 한성부 용산방(龍山坊) 청파(靑坡)1․2가에 속했던 한양의 남부관문으로서 역촌이었다. 청파동에 있던 배다리 청파동에는 옛날에 배를 띄워 다리를 놓았다는 ‘배다리’가 있었고, 그곳을 지나는 큰 길은 ‘주교대로(舟橋大路)’라고 했다. 드디어 서울역이다. 서울역 앞에 여기저기 서 있는 노숙자들이 내게 말을 건넨다. “아저씨 담배 한대 주세요.” 하지만, 내 곁에선 누군가가 마치 작가가 떠오르는 영감을 적는 것처럼 무엇인가를 열심히 적는 사람도 있다. 가계부는 아닐 테고 …. 그렇다. 서울은 모든 것이 공존하는 도시다. 노숙자 한 사람이 쓰러져 자고 있는 바로 그 옆에서 ”하나님께 영광을!“하고 부르짖는 사람들 그리고 손을 벌리면서 길을 가로 막는 사람들,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딘가를 향해 부지런히 가고 있는 사람들, 지금 우리나라는 과연 몇 시인가?” 휴머니스트 간 <삼남대로> 중에서 어제도 그랬다. 십이 년이라는 세월이 쏜 살같이 지났는데도 그때 보았던 그 풍경은 여전했다. 그 사이에 숭례문이 불타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복구 작업을 통해 재건축되어 누구나 오갈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여기 저기 들어서서 숲을 이룬 거대한 건물들, 그래, 가고 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로구나. 어디 그뿐인가, 소주병을 옆에 두고 세상을 잊은 채 잠이 든 사내, 소주병을 마시는 사내, 길가에 대자로 누워 있는 사내, 노숙자들은 그 모습 그대로였고, 그 옆을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바쁘게 서둘러 지나가고 있었다. 길의 끝은 길의 시작, 다시 이어질 흥인지문(동대문)에서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까지 이어지는 <관동대로>에서 나는 또 무엇을 보고 느낄 것인지,
을미년 유월 초나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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