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 휴휴암과 설악산 자락의 영랑호, 청초호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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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병신년의 첫 하루기행을 주문진의 허균의 유적지와 문바위 그리고 양양의 휴휴암과 설악산 자락의 청초호와 영랑호를 찾아갑니다.
흰 눈에 덮힌 설악을 보며 동해 바닷가에 자리 잡은 해파랑길을 걸으며 사람들이 즐겨 찾는 휴휴암, 그리고 영랑호와 청초호를 걷게 될 이번 기행에 참여바랍니다.
허균이 태어난 사천
순포해수욕장과 가둔지 마을을 지나자 사천해수욕장이 펼쳐진다.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사천리에서 최초의 한글소설인『홍길동전』洪吉童傳을 지은 조선시대 혁명가이며 빼어난 문장가였던 교산 허균이 태어났다. 교산蛟山은 오대산에서부터 뻗어 내린 산자락의 굽이진 모양이 마치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기어가는 듯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교산 아래 허균의 외가이며 생가였던 ‘애일당’愛日堂이 있었다. 중종 때 예조참의를 지낸 김광철金光轍이 부모를 위하여 정자를 세우고 날(日)이 감을 아끼어 애일당이라 짓고, 벼슬마저 내어놓고 부모를 섬겼다는 애일당은 이제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고향 사랑이 지극하였던 허균은 자신의 호를 교산이라 지었는데, 그 산 중턱에는 <누실명陋室銘>이라는 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차를 반 항아리 달이고
향 한 심지를 피웠네.
외딴 집에 누워
건곤고금乾坤古今을 가늠하노니
사람들은 누추한 집이라 하여
살지 못하려니 하건만
나에게는 신선의 시계인저.
선조宣祖 2년 양천陽川이 본관인 경상 감사 허엽許曄과 강릉이 본관인 예조 판서 김광철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3남 2녀 가운데 막내둥이였던 허균은 자는 단보端甫이며 호는 교산蛟山, 학산鶴山, 성소惺所, 백월거사白月居士라고 불렸다. 총명하고 뛰어난 재기를 타고났던 허균은 역모죄에 몰려 죽은 인물 가운데 조선 시대 기축옥사의 주인공인 정여립과 함께 오늘날까지 신원되지 못한 두 사람에 꼽힌다. 그러나 홍길동전 및 그가 지은 수많은 글들은 오늘날까지 전해져 뭇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으니, 한 개인의 삶의 족적이나 국가의 역사를 당대에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겠는가?
광포 큰 나루
양양군 현남면 광진廣津리, 큰 나루가 있어 광나루라고 불리는 그곳에 동해의 숨겨진 비경으로 근래들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는 휴휴암休休庵이라는 암자가 있다. 휴휴암, ‘몸도 쉬고 마음도 쉬어 팔만사천 번뇌 망상을 모두 내려놓고 쉬고 또 쉰다’는 뜻을 가진 암자.
쉰다! 얼마나 가슴 설레는 말인가. 그 말이 주는 설레임은 그저 설레임으로 남겨둔 채 결코 멈추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라니……
“사람이 넉넉함만 기다리나 어느 때 넉넉하리. 늙기 전에 한가해야 이게 바로 한가한 것,” <순오지>에 실린 글처럼 늙기 전에 한가해야 쉬고 또 쉴 것인데, 사람들 대부분이 그 때를 알지 못하고 산다. 그래서일 것이다. 우리가 횡거橫渠선생의 말을 따르며 사는 것도.
“살아 있을 때 나는 우주를 따르고 섬기며, 죽으면 나는 편히 쉰다.(生吾順事設吾寧也)”
번뇌망상을 모두 내려놓고 오래도록 쉬고 싶지만, 가야 할 길……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마음을 두어 일어난 이 번뇌를 떨치지 못하고 발길을 옮긴다.
휴휴암은 바닷물에 잠겨있다 해수면이 낮아질 때 수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는 관세음보살님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관세음보살상은 묘적전 법당이 올려다 보이는 해변에 낮은 절벽을 만든 바위 아래, 바닷물이 들락날락 거리는 돌무덤에 위치한 길이 13m의 바위인데, 보면 볼수록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관세음보살 모습을 닮았다. 뿐만 아니라 바닷가 주변에서 관세음보살과 똑같은 신기로운 형상을 이룬 바위를 비롯해 선명한 발가락 모습 등 온갖 기이한 형상을 이룬 바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아바이 마을이 있는 속초
신흥사를 품에 안은 설악산 자락에 속초가 있다. 원래 양양군 도천면의 작은 포구였던 속초가 속초면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1937년이었다. 1942년에 읍으로 승격한 속초는 한국전쟁 이후 인구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라는 노랫가락 속에 나오는 ‘흥남 철수 작전’이란 군사작전 때문에 미군의 함정을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던 피난민들이 피난살이를 하다가 이곳 속초로 몰려왔다. 그 이유는 이곳 속초가 함경도와 인접해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속초는 실향민들이 이루어낸 도시라고 할 수 있으며, 지금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아바이마을이 남아 있다.
설악산에서 바라보면 바다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호수가 보이는데, 그 호수가 청초호와 영랑호이다. 또한 이곳의 특이한 수산물은 도루묵이다. 70~80년대 군대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도루묵이라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 고기의 원래 이름은 묵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 왜군에 밀려 함경도 의주지방까지 피난을 간 선조의 밥상에 이 고기가 올랐다고 한다. 피난살이에 지친 선조는 묵이 맛은 좋았으나 그 이름이 마땅치 않게 여겨져 맛도 좋고 빛깔도 은빛이 도는 생선이니 앞으로는 은어라고 부르라고 했다고 한다. 그 뒤로 피난살이가 끝나 서울로 돌아온 선조는 피난 시절에 맛 본 그 생선이 생각나서 은어, 즉 묵을 다시 찾았으나 그 맛이 그 전만 못하자 은어를 도루 묵, 곧 다시 묵으로 부르도록 했다고 한다. 한때 맛이 없다고 푸대접을 받았던 이 도루묵이 일본사람들에게 고혈압에 좋다고 알려진 뒤 전량 수출되면서 서민들의 밥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간성의 화담花潭은 달이 맑은 샘에 떨어진 것 같다. 영랑호永郞湖는 큰 못에 구슬을 감추어 둔 것 같으며, 양양의 청초호(현재는 속초시)는 그림 경대를 열은 것과 같다. 이 세 호수의 기이하고 훌륭한 경치는 위에 말한 세 호수 다음으로 아름답다.
우리나라 팔도 중에 다 호수가 있는 것은 아니나, 오직 영동에 있는 이 여섯 호수는 거의 인간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닌 듯싶다. 한편 삼일포의 호수 복판에는 사선정(四仙亭)이 있다. 곧 신라 때 영랑(永郞)․술랑(述郞)․남석랑(南石郞)․안상랑(安祥郞)이 놀던 곳이다. 네 사람은 벗이 되어 벼슬도 하지 않고 산수를 벗하며 놀았다. 세상에서는 그들이 도를 깨우쳐 신선이 되어서 갔다고 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한편 속초시에 있는 청초호는 둘레가 5km에 이르는 큰 호수로 술 단지처럼 생겼다. 어귀는 동해 바다에 잇대어 있어서 조선시대 수군 만호영을 두었으며 병선을 정박하기도 하였다.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서 이중환은 이곳을 두고 “거울을 펴 놓은 듯이 맑다.”고 한 뒤에 낙산사 대신에 관동팔경의 한 곳으로 들었었다. 한겨울에는 얼음이 마치 갈아놓은 논두렁처럼 되는데 이를 두고 용갈이, 또는 용정이라고 부르며 얼음이 어떻게 어는가를 보고서 그 다음 해의 길하고 흉함을 점쳤다고 한다.
특히 청초호는 내항으로 500톤 급의 선박들이 자유롭게 입출항할 수 있고 태풍이나 해일이 몰아올 때 어선들이 대피 할 수 있는 정박지로 이용되고 있다.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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