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상류로 봄을 찾아 나서다,
10대 후반 어디에서 어떤 마음으로 읽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을 맞추지 못하여
만날 사람이 아닌 사람을 만나
혼자서 빈 시간.“
여기까지만 기억하는 시 아닌 시,
그렇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르게
어긋나버린 인연을 말하고 있는 글이
어쩌면 무오사화의 희생자인 탁영 김일손金馹孫의
지리산 유람기 중 “인연이란 어긋나기를 잘하는 것이라서‘라는
구절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절실하게 그리워하기도 전에
이별의 슬픔을 미리 알아버린 셈이랄까.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그 시를 읽은 지
오랜 세월이 지난 뒤
금강으로 가며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자가 목지牧之인 당나라 말기의 시인 두목이
절강성에서 어느 소녀를 만나 그의 어머니를 찾아가
십 년 후 그 소녀를 아내로 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장안에서 관료생활을 하다 보니 겨를을 얻지 못해
14년 만에 호주의 관리로 부임하여 그 소녀를 찾았더니
그 소녀는 그가 오기 3년 전에 이미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서 자식들까지 두고 있었다.
그 사실을 접하고 절망한 두목이 지은 시가 <탄화歎花>이다.
“스스로 봄을 찾아 나섬이 늦은 것을
슬퍼하며 봄꽃 빨리 핌을 한탄한들 무엇하리.
광풍에 붉고 아름다운 꽃잎 떨어지고
푸른 잎은 그림자를 치우며 과실만이 가지에 가득하네.“
두목은 꽃이 피고 지고 열매를 맺는 자연에 빗대어
그의 사랑이 결실도 맺기 전에
다른 사랑으로 전이해 간 것을 노래했는데,
당나라 중기의 시인 최호도 그와 비슷한 경우를 겪었다.
최호가 청명절에 답청踏靑을 나섰다가 복사꽃이 만발한
어느 집에 들어가 물을 청해 마시고
그 다음 해 청명절에 그 집을 찾아갔더니
복사꽃은 만발했는데, 그 처녀는 간곳이 없어서
남긴 시가 <인면도화人面桃花>라는 글이다.
“지난 해 오늘의 이 문안에는,
그 사람 얼굴과 도화 꽃이 서로 어우러져 붉었는데,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고,
도화꽃만 의구히 봄바람에 웃고 있네.“(題都城南莊)
머물러 있는 것이 무엇이며
기다리지 못하고 가는 것은 또 무엇인지,“
<어느 새 가는 봄>이라는 글입니다.
어느 시절 알지 못할 인연으로 그곳의 아름다움에 취해
매년 가고 또 가는 그곳에
조팝꽃, 복사꽃, 벚꽃들이 어떤 자세로 피어
찾아온 길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나도 모르고 그대도 모릅니다.
오후에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
그 예보는 그냥 예보일 지도 모르고
어쩌면 우리가 가기도 전부터 비가 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않은 대로, 내리면 내리는 대로 좋은
봄 길을 “한 번 비에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는
속담을 떠올리며 걷다가 보면 지상에서의 잊지 못할 하루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지 않을까요?
이 새벽 문득 떠오르는 글이
오비디우스 <변신이야기> 속의 한 구절 입니다.
“인생의 짧은 봄날을 젊음을 알리는 첫 꽃들을 따 보길“
그리고 또 하나,
“만사는 봄밤의 꿈과 같아서 아무런 흔적도 없구나.”
조선 후기의 문장가인 심노숭의 글,
우리가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병신년 사월 열엿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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