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진리는 변화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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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제나 시간의 효과와 사물의 변천을 살피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 그와 정반대의 경우를 예상할 필요가 있다. 즉, 행복할 때에는 불행을 예상하고, 우애가 있을 때는 반목을, 좋은 날씨에는 나쁜 날씨를, 사랑 가운데 미움을, 신뢰와 고백에 대해서는 배신과 회한 등, 다시 말해서 언제나 그 반대의 경우를 분명히 머릿속에 그려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언제나 생각이 깊어져 좀처럼 속지 않게 된다. 이것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처세술의 영원한 원천이 되어줄 것이다. 우리는 이것으로 시간의 작용도 미리 알 수 있다.
그러나 경험은 어떠한 인식에 있어서나 사물의 무상함과 추이의 올바른 평가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눈앞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현상이 지속되는 한 필연적인 것이며,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다. 각각의 해와 달과 날은 마치 이제야 존재 이유를 가지려는 듯이 생각된다.
그러나 어떠한 상태도 그런 보장을 받을 수는 없으며, 유일하고도 영원한 현상은 오직 변화뿐이다.
현자란 겉으로의 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변화가 일어난 시간과 장소를 재빨리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사물의 일시적인 상태나 과정을 그대로 존속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효과만을 인정하고 원인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의 <권고와 잠언>에 실린 글이다.
지금도 변함없지만 어느 때 부터인지 내가 생각하는 진리는 ‘변화’라고 생각했다.
순간순간 변화 하는 이 우주의 질서 속에서
변화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마음만 해도 그렇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이 아니라 오만 번도 넘게 변하고 또 변하는데, 하물며, 나도 아닌, 엄밀하게 말하면 나하고 다른 행성에 있는 또 다른 우주인 다른 사람의 마음의 변화를 내가 어찌 알겠는가?
그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내 마음의 평화의 공간이 훨씬 넓어졌다. 하지만, 쇼펜하우어가 말한 것처럼 ‘현자란 겉으로의 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변화가 일어난 시간과 장소를 재빨리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내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순간순간 흔들리고, 그래서 섭섭해 하고 슬퍼하고, 자책하고는 한다.
그것 역시 아직도 내가 살아 있다는 표상이고, 살아 갈 날에 조금씩 이나마 변할 것이라고 확신하게 만드는 마음 속 현상이다.
어차피 싫든 좋든 삶은 시작되었고, 이제는 종착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인데,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까?
“우리의 운명은 사는 것, 행동하는 것이며, 생生과 행동行動은 앞을 내다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베르그송의 말이다.
주어진 운명이라면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달게 받아들이고,
사랑하면서 보듬고 가야하리라.
그 길목에서 만나는 사물들이나 사람들까지도,
그래서 나는 셰익스피어의 <끝이 좋으면 모두 좋아>의 3막 3장에 나오는 구절이 너무 좋을 때가 있다.
“나는 몇 번이고, 큰 기쁨과 슬픔을 낱낱이 맛보았으므로, 그 어느 쪽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담담한 마음으로 맞이한다.”
당신도 그렇지 아니한가?
병신년 사월 열엿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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