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문득 회상만 해도 달려 가고 싶은 곳이 있을 것이다.
그곳이 먼 이국이건, 아니면 지척이건,
이것 저것 따지지도 않고 묻지도 않고
길을 나서게 만드는 그곳,
네게는 그러한 곳이 너무도 많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일년의 세월이 흐른 뒤
출가에 실패한 뒤 처음 보았던 바다가
여수 오동도 앞바다였다. 그 세월이 오기 전까지는
바다는 지도에서만 보았으면서도,
호주의 시드니,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그리고 고갱의 자취가 서린 타이티 등이 내가 가고 싶은 항구였다.
아직까지도 못 가보고 가슴만 설레는 크레타 섬과
희망봉이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라면
독일의 문호 괴테에게는 이탈리아가 그런 곳이었다.
“그대는 아는가, 레몬 꽃이 피는 나라,
어두운 잎 그림자에 황금의 오렌지 빛,
부드러운 바람, 창공에서 불고,
도금양 꽃은 고요히, 월계수 높이 솟아.
그대는 아는가, 저쪽,
그곳에, 그곳에!
그대와 함께 가고파,
그리워라, 나의 귀여운 님이여.“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에 실린 글이다.
가고자 하는 곳을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 했을 때 시간이 멈추는 듯한 충격을 받을 만큼
그리움이 절절하게 켜켜이 쌓여 빛을 발하는 것
그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뿐,
다시 그리운 곳은 저만치에서 어서 오라 손짓하고,
누구나 그럴 것이다.
에밀리 디킨슨의 말대로
사람들은 지금 없는 것을 그리워 하는 법이다.
그래서 마음에 메마르거나 약해졌을 때
그리운 사람, 그리운 곳이 더 선명하게 가슴속에 파문을 내며
달려오는 것이리라.
사월이 가고 신록이 더 짙어가는 오월
내 발길을 기다리는 곳들이 많다.
하지만 더 기다려지는 것은 이미 예정된 곳이 아니라
불쑥 내 앞에 나타날
미지의 길,그 길이 기다려 지는 것이다.
언제쯤 내가 좋아하는 그곳에서
마음 속에 지고 있던 온갖 짐 내려놓고
무념 무상의 세계에 빠져서
세상을 잊을 수 있을 것인가?
병신년 사월 30일 마지막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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