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2

각자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이다.

산중산담 2016. 7. 18. 15:05

 

각자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이다.

 

 

알 수 없습니다.

가장 잘 알 것 같은 내 마음을 가장 잘 모르고

그러면서 자기 자신에게 관대합니다.

왜 사는지도 모르고, 그 삶을 통해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것은 더욱 모르는 일입니다.

나만 해도 그렇습니다.

작가가 되겠다는 열망하나로 살았고,

그래서 뒤늦게나마 글을 써서 책을 펴내기 시작했고,

나머지는 어떤 뚜렷한 목표도 없이 막연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어지는 삶의 시간 속에서 다행스런 것은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는 책을 읽으면서 보내는 것일 테지요.

그리고 이리저리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하며 떠도는 것을

노는 것처럼 한다고 자위하며 사는 나의 삶

그 삶을 더러는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가끔씩 회의가 드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생을 단념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 역시 나의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일 것입니다.

가고 또 가다가 어느 장소의 어느 순간에

삶이 멈추기 까지 가야하는 이 생에서

나의 존재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런 물음을 유독 나만 더 나에게 묻는 것일까요?

각기 인간의 인생은 자기 자신에로의 길이며,

하나의 길의 시도이며, 오솔길의 암시인 것이다.

여태껏 송두리째 자기 자신이었던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는 그렇게 되기 위하여,

어떤 사람은 몽롱하게

어떤 사람은 명확하게 제각기 할 수 있는 대로 애를 쓴다.

각자는 탄생의 잔재殘滓와 원시 세계의 점액과 알 껍질을,

죽을 때 까지 지고 다닌다.

많은 사람들은 한 번도 인간이 되어 보지도 못한다.

그는 여전히 개구리인 채로 도마뱀인 채로, 개미인 채로 남아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위는 인간이요, 아래는 물고기이다.

그렇지만 모두 다 인간을 향한 자연의 투척인 것이다.

우리들 모두에게 유래, 즉 어머니는 공통이다.

우리는 하나같이 똑 같은 심연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심연으로부터 시도이며, 투척인 각자는

자기 자신이 목표에 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각자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인 것이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서두에 실린 글입니다.

 

더불어 사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이해해도, 이해하지 못해도

우리가 가야 할 삶은 이렇게 저렇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 길을 가는 것도, 가다가 멈추는 것도

이미 예정된 일이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의 길을 가고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는 길에서 우리는 만난 것입니다.

도반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

함께 걷고, 자고 먹고, 웃고, 그런 인연으로,

이 얼마나 소중한 인연들일까요.

 

하지만 중요한 것, “각자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이라고 하는데,

가끔씩은 내가 나를 설명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가장 증오하고 회의하는 때지요.

 

별 것도 없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왜 그리 연연해하는 것들이 많고

그 하잘 것 없는 연연함 때문에 주고받는 아픔들,

그게 어찌할 수 없는 삶의 과정이라고 생각해도

아픔은 아픔일 뿐입니다.

 

아이를 낳는 고통이 혼자만이 담당해야 할 정해진 운명이듯,

한 권의 책을 펴내는 것 역시 넓은 의미에서는

혼자만이 감당해야 할 산고産苦의 고통과 다르지 않습니다.

근간에 나올 책 마지막 교정을 보느라 한 줄 한 줄, 더듬어 나가면서

더 숙고하며 글 쓰고 더 소중한 사람들을 더 절실히 만나고

더 깊게 생각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지금 이 새벽에 떠오른 생각입니다.

 

병신년 오월 초아흐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