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자료 모음

울릉도와 독도를 답사하고 돌아오다.

산중산담 2016. 11. 30. 20:06

 

울릉도와 독도를 답사하고 돌아오다.

 

백두산의 천지를 보는 것이 어렵고, 한라산의 백록담을 보는 것도 어렵다.

지난 해 백두산을 오를 때에 들은 가이드에게 들은 얘기로

어떤 사람들은 열두 번을 갔는데도 천지를 보지 못하고 돌아와서

오기로 열세 번을 올라가서 보았다고 한다.

한라산의 백록담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맑은 날이라도 산의 정상은 금세 조화를 부리는 날씨 속에서

백록담의 분화구를 숨겨놓고 보여주지 않을 때가 많은데,

울릉도 역시 그런 곳이다.

이번 답사에 함께 하셨던 신영창 선생님도 몇 십 년의 세월 속에서

세 번이나 포항과 묵호 등지에서 바람 때문에

배도 타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울릉도까지는 그렇지만 더구나 독도는 울릉도에서도 2백 여리가 넘는

87km가 넘는 거리다보니 가기도 힘들뿐더러

독도에 내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두 번 다 오르고

한 번은 동도에 오르는 영광까지 누렸는데,

이번 역시 운이 좋게도 독도에 내 발자국을 찍는 영광을 누렸으니,

모든 것이 지금까지는 내 운이 좋다는 증거이리라.

이틀 여정 속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하여 하루를 더 머무는 데 동의 해준

도반들의 염원이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에게 전해진 탓이리라.

그래서 그런지 우리보다 한 시간 뒤에 독도를 찾았던 사람들은

풍랑 때문에 독도에 내리지도 못하고

바다만 서성이다 돌아왔다는데, 얼마나 고맙고 고마운 일인지,

 

을릉도와 독도, 어떤 곳인가?

 

도둑거지뱀이 없고, 바람향나무미인돌이 많다고 하여 삼무오다(三無五多)의 섬으로 불리는 울릉도에는 특히 바람 부는 날이 많다. 한 해에 바람기가 잠잠한 날은 70일쯤 밖에 안 되고 평균 풍속이 초속 4.5미터에 이르며 폭풍이 이는 날이 179일이나 된다. 그래서 울릉도에는 풍향에 따라 바람을 가리키는 낱말이 풍부하다. 곧 동풍은 동새라 하고, 서풍은 청풍하늘바람갈바람이라 부르며, 남풍은 들바람맛바람 또는 오방풍이라 한다. 북풍은 북새샛바람북청이라 하고, 동남풍은 울진들진이라 한다. 이밖에 북동풍은 잉감풍, 남서풍은 댕갈바람처지날댕갈댕갈청풍이라 하고, 북서풍은 북청바람 또는 북청이라고 부른다.

 

울릉도와 독도를 두고 가장 오랫동안 사용한 명칭은 우산도이다.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에 동해상의 두 섬을 우산과 무릉. 혹은 우산과 울릉이라고 표기하였다.

조선 성종 때인 1476년의 <조선왕조실록>에는 섬 북쪽에 세 바위가 나란히 있고, 그 다음은 작은 섬, 다음은 암석이 벌여 섰으며, 다음은 복판 섬이고, 복판 섬, 서쪽에 또 작은 섬이 있는데, 다 바닷물이 통합니다.” 라고 실어서 지금의 독도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1794년인 정조 8년에 강원도 관찰사인 심진현沈晉賢이 울릉도 보고서를 보냈는데,“ 갑인년 426일에 가지도可支島에 가보니 가지어가 놀라 뛰어나왔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는 이 섬을 가지도로 보았음을 알 수가 있다.

가지어는 물개의 일종인 강치의 우리말인 가제를 음역하여 부른 것으로 추정하는데, 가지도란 강치가 많이 사는 섬이란 뜻이다. 지금도 독도에는 강치가 많이 살고 있으며, 서도 북서쪽에는 가제바위란 바위가 있다.

1900년인 고종 37년에 칙령 제 41호를 발표하면서 울릉도를 울도로 바꾸고, 울릉도 근방의 작은 섬인 죽도 및 석도로 규정하면서 처음 석도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울릉도 근방의 작은 섬인 죽서竹嶼를 지칭한 것인데, 석도는 한글 표현의 돌섬이고 돌의 사투리가 인 점을 감안하면 그때부터 독도가 명칭으로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호남대 인문사회연구소가 밝힌 내용에 의하면 독도의 이름을 전라도 사람들이 지었다고 한다. 1882년 고종 때 이규원 감찰사가 울릉도 주민을 조사한 결과 전 주민 141명 가운데, 전남 출신이 115, 강원 14, 영남 11, 경기 1명이었다. 전남 지역민 중에서도 흥양군(고흥) 출신이 61, 흥해군(여수) 낙안읍성이 있는 낙안군 출신이 21명 순이었다.

독도를 석도로 표기했는데, 이 명칭은 돌의 전라도 사투리인 독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전라도 고흥의 금산면 오촌리 앞바다에는 지금도 독도라는 섬이 있다.

1904925일자에 일본 군함 니다카호의 보고에 의하면 리앙코르트 바위를 한인들은 독도라고 쓰고, 일본 어부들은 리앙코도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독도는 그 이전부터 써온 이름이지만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1906년 울릉군수 심홍택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1914년 경상북도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매천 황현이 지은 <매천야록> 1906년 기록에는 울릉도의 바다에서 동쪽으로 100리 떨어진 곳에 독도라는 한 섬이 있어 예부터 울릉도에 속했는데, 왜인이 그 영지라고 늑칭 하고 심사하여 갔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오하기문>에도 울릉도 100리 밖에 한 속도가 있어 독도라고 부른다.”라는 기록이 실려 있다.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경상도편에 실린 글이다.

 

늦은 시간 열두시 반에 전주 도착,

잠자리에 든 시간은 한 시 반, 그런데도 정신이 말짱하고

온 몸이 상쾌한 것은 좋은 기운, 동해의 바람과

울릉도의 아름답고 기묘한 경관을 많이 보고 느낀 영향이리라.

 

이번 달 말에 다시 가며는 울릉도와 독도는 어떤 사연들과 풍경들을

마련하여 내 영혼을 경탄케 할 것인지,

 

함께 했던 모든 도반들, 그리고 무사히 다녀오길 기원해주신

도반들에게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20161011일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