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자료 모음

허균의 형 허봉의 자취가 서린 김화읍 생창역을 다녀오다.

산중산담 2016. 11. 30. 20:09

 

허균의 형 허봉의 자취가 서린 김화읍 생창역을 다녀오다.

 

 

김화읍 생창? 내가 많이들은 곳이고, 어떤 연유가 있는데, 하면서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서 있다가 어제 문득 생각났다.

허균의 형인 허봉이 생을 마감한 곳이, 김화현 생창역이었다.

허봉은 동인의 영수였고, 율곡 이이와는 당이 나뉘기 전에는 가까운 친구였다.

그러나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누 뒤 이이를 비판하다가

선조임금에게 밉게 보여 갑산으로 유배를 갔다.

이듬해 풀려난 허봉은 정치에 뜻을 버리고 방랑생활을 하다

38세의 나이로 이곳 강원도 금화현 생창역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숨을 거두자 그의 친구이자 금화현감인 서인원이

허봉의 장례를 도와주어서 아버지 곁에 묻힐 수 있었다.

 

성호 이익李瀷은 그의 저서 <성호사설>에서 허봉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첫째, 성격이 활달하여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바를 굽히지 않았다.

둘째, 임금 앞에서 일을 논할지라도 조금도 굽힘없이 자기의 옳은 바를 내세웠다.

셋째 관의 일을 돌보는데도 명쾌하고 조리가 정연하게 처리하였다.

넷째 냉철한 이성으로 대간으로서나 어사로서 기강을 바로 잡는 데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다섯째, 문장은 전중하고 온화하며, 시에 재주가 뛰어나고 그 내용이 호방하였다.“

위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도 그가 얼마나 세상을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다갔는지를 짐작할 수가 있다.

 

 

허봉의 친구로 허균과 그의 누나인 허 난설헌에게 글을 가르쳐 주었던 서애 유성룡柳成龍이 허봉을 추억한 글을 보자.

 

내 친구 허미숙許美叔(허봉의 자)은 세상에서 보기 드문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는데 불행히 일찍 죽었다. 나는 그 유문遺文을 보고 정말로 무릎을 치면서 칭찬해 마지않았다. 하루는 미숙의 아우 단보端甫(허균의 자)군이 그의 죽은 누이가 지은 <난설헌고>를 가지고 와서 보여주었다. 나는 놀라서 말하기를,

이상하도다. 부인의 말이 아니다. 어떻게 하여 허씨의 집안에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이 이토록 많단 말인가?” 하였다.

나는 시학詩學에 관하여는 잘 모른다. 다만 보는 바에 따라 평한다면 말을 세우고 뜻을 창조함이 허공의 꽃이나 물속에 비친 달과 같아서 형철영롱瑩澈玲瓏하여 눈여겨 볼 수가 없고, 소리가 울리는 것은 형옥珩玉과 황옥璜玉이 서로 부딪치는 것이요, 남달리 뛰어나기는 숭산崇山과 화산華山이 빼어나기를 다투는 듯하다. 가을 부용은 물 위에 넘실대고 봄 구름이 공중에 아롱진다.

높은 것으로는 한나라의 제가諸家보다도 뛰어나고, 그 사물을 보고 정감을 일으키며 시절時節을 염려하고 풍속을 민망하게 함에 있어서는 열사烈士의 기풍이 있다. 한 가지도 세상에 물든 자국이 없으니 백주柏舟. 동정東征이 오로지 옛날에만 아름다울 수 없다. 나는 단보군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돌아가 간추려서 보배롭게 간직하여 한 집안의 말로 비치하고 반드시 전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

 

이런 사연을 지닌 허봉이 생을 마감한 생창역을 잊어버리고 그곳을 다녀왔다니,

더구나 허균 평전을 쓴 내가, 

기억력이 좋다. 무수히 들었던 그 말이 이젠 효용 가치가 없어졌는가?

기억력에 가장 좋은 약은 감탄하는 것이라고 누누이 말하고서

감탄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기억력 좋은 손님은 싫다.”는 프랑스의 옛말을 이제야 배운 게 아닐까?

그런 자괴감이 오랜 시간 떠나지 않았던 것이 어제의 일이다.

그렇다면 기억력이 인간의 영혼에 가장 깊숙이 스며들고 팽창되는 시기는 어느 시기일까?

 

우리들의 대부분의 기억력은 생각보다는 먼 옛일까지 생각해 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와 꼭 같이 어린이의 관찰력도 신기할 정도로 치밀하고 정확하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래서 어른의 뛰어난 관찰력은 결국 어린 시절의 관찰력을 잃지 않고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치밀하고도 정확한 관찰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결국 어렸을 때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기억을 자기고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찰스 디킨스의 <데비드 코퍼필드>에 실린 글이다.

 

어린 시절에 치밀하면서도 정확한 관찰력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것이면서도 유독 나에게 통용되는 것이 있다.

나는 관심 없는 것에는 전혀 기억력을 발휘하지 못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을 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하여간 나는 생창역과 허봉을 함께 연결시켜 생각하지 못했던 그것에 상처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내 기억력이 자꾸 쇠잔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생창역.

 

20161017(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