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노래고 노래가 시가 아닌가?
1987년 무렵의 일이다.
1985년 경루부터 본격적으로 문화운동을 시작하고서,
여름 시인 캠프를 열기 위해
시인들을 초대하는 과정에서 어떤 단체의 구성원을 만났다.
그 때 그 시인은 우리의 모국어가 아닌 외래어로 캠프(camp)라고 쓰는 것에
동의 할 수 없다는 것과, 시인과 시를 공부하는 사람을 나누는 기준을
프로와 아마추어에 비유해서 말했다.
내가 발끈하고 한 마디 했다. 시를 쓰는 사람만 시인인가?
시를 좋아하는 사람도 시인이 아니겠는가?
결론이 없는 문답만 주고받다가 헤어진 씁쓸한 기억들이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떠오른 것이다.
밥 딜런이 시적인 노랫말로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수상한 것을 보고,
‘문학의 고정관념을 깼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가사를 문학으로 볼 순 없다’는 부정적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어느 것이 옳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부정적 반론을 펴는 문학인들은 어떤 시를 썼는지 묻고 싶다.
그들이 쓴 시가, 소설이 이 세상에 얼마나 긍정적인 요인을 주었으며,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는가? 사실 그런 문학을 남긴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문학인이라는 그 ‘허울’을 그가 살았던 시대에
완장처럼 차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시詩’보다 시답고 시보다 더 아름다운 노랫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당나라 때의 여류 시인 설도(薛濤)의 동심초同心草라는 노래를 보자.
이 노래는 봄날의 그리움<춘망사(春望詞)>중 일부를
김소월의 시인의 스승인 김억 시인이
<동심초>라는 이름으로 개사한 노래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꽃 피어도 함께 바라볼 수 없고(花開不同賞)
꽃이 져도 함께 슬퍼할 수 없네(和落不同悲)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不結同心人)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空結冬心草)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두고 김성태가 작곡해서
조수미가 불렀던 그 노래가 동심초다. 정지용의 <향수>도 마찬가지다.
시가 노래가 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회자 되는 것,
그게 바로 문학과 노래가 결합되어
만들어내는 지상의 화음이자 과찬해서 천상의 화음이 된 것이다.
소설이나 시가 아니고, 회고록과 자서전으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처칠과 이번에 수상한 밥 딜런 두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문학인들 사이에서 말이 많은데,
한쪽에선 아주 환호를 보내고, 한 쪽에선 악평을 쏟아내고 있다.
저마다 상반된 입장에서 말이다.
그러나 문학이라는 것이 어디 일정한 룰이 있는 것인가?
문. 사. 철을 운이 좋아서(?) 두루 공부했기에 인문학으로 수십 권의 책을 쓴
내가 2010년에 펴낸 자서전 <느리게 걷는 사람, 생각의 나무>를 펴냈는데,
출판사로부터 의외의 소식이 전해져왔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그 책을 그해의 ‘문학부문 우수도서‘로 선정했다는 것이었다.
작가가 되고자 했었고, 80년 대 중반에는 시인지 무엇인지 모르는
글을 4백 여 편 쓰기는 했었지만
오로지 인문학으로만 생계를 꾸려온 내가 쓴 책이
문학부문에 우수도서로 선정되다니, 무언가 모를 감개무량함을 느꼈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내 책도 이런 저런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았을까?
하는 노파심을 밥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보고 느끼는 소회다.
지금도 내 생각엔 변함이 없다. 시를 쓰던, 쓰지 않던,
시를 좋아하는 사람도 시인이고, 시를 쓰는 사람도 시인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시인이라면 얼마나 세상이 운치 있을까?
그래서 그런지 나는 곡보다는 가사 즉, 노랫말이 좋은 노래를 좋아한다.
그것은 그 노랫말 한 줄이 기운이 빠져 축 쳐졌을 때나
슬픔으로 가슴이 무너져 내릴 때, 세상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가슴을 설레게도 하는 것을 뼈저리게 통감했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나라에도 오로지 책을 더 팔게 하는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을 쓰는
시인이나 작가가 아닌, 밥 딜런 같이 사람들을 각성시키고 세상을 더 바르게 나아가게 하는 그런 글을 쓰는 문인들과 가객歌客들이 많이 나타나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2016년 10월 15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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